모두들 ‘지붕 위 소’만 쳐다볼 때

[1단 기사로 본 세상] 국토교통부 공무직 하천보수원이 파업한 이유는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눈이 선했다. 50대 후반인 그는 검게 그은 얼굴에 군살 하나 없이 단단했다. 박종진 지부장은 2012년부터 10년째 4대강 유역을 관리하는 하천보수원으로 일 해왔다. 한수원 하청회사에서 비슷한 일을 해온 경험까지 합치면 하천과 함께 살아온 인생이었다.

국토교통부는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급하게 추진하면서 국가하천시설을 유지 보수할 공무직 하천보수원 130명을 뽑았다. 하천보수원은 국가하천에 있는 제방과 배수문 등을 점검하고 유지 보수한다.

그러나 하천보수원은 노동부 표준 직종직렬이 명확하지 않아 건설기술인의 전문성과 경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편재된 직종직렬이 없다 보니 각종 잡무와 공무원이 지시하는 모든 일을 수행했다. 뒤집어 보면 국토부는 4대강 등 국가 주요 하천에 널린 시설물 점검을 법적 자격도 갖추지 않은 이들에게 맡겼다.

제방과 수문 같은 토목시설물 점검과 관리는 ‘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법에 따라 토목 초급기술 이상의 자격을 인정받는 건설기술인만이 해야 한다.

이들은 이런 어정쩡한 신분을 벗어나려고 노조를 만들어 공공운수노조에 ‘국토교통부지부’로 가입했다. 이처럼 공공운수노조엔 이름만 들으면 어마어마한 산하 지부가 많다. 공공운수노조 ‘고용노동부지부’는 고용노동부 산하 공무직들의 모임이다. 공무원도 아닌 민간인인 비정규직이지만 한 부처의 이름을 따왔다. 그만큼 이들은 일선 현장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만 처우는 형편없다.

흔히들 노조의 싸움 가운데 가장 힘든 주제가 ‘정부 정책’을 바꾸는 거라고 말한다. 민간 기업에서도 ‘공정’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름으로 정규직 이기주기의 팽배한 데, 공기업도 아닌 정부 부처에선 정규직이 곧바로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이다.

국토교통부지부는 노조를 만들어 줄곧 토목 분야 직무를 인정해달라고 사용자이면서, 동시에 법 집행기관인 국토교통부에 요구했다. 처음엔 씨알도 안 먹혔다. 관료 사회의 경직성까지 더해져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한 교섭은 차일피일 미뤄지거나 내용 없이 공전하기 일쑤였다.

지난해 여름 기록적으로 긴 장마로 많은 비가 내렸다. 많은 비에 4대 강 곳곳에서 홍수가 나 제방이 무너져 농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폭우로 집과 축사가 물에 잠기자 소들이 지붕 위로 올라갔다.

모든 언론이 파란 양철 지붕 위에 올라간 소에만 주목했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언론은 경남 합천에서 홍수에 휩쓸려간 소가 85㎞ 떨어진 창원시 한 야구장 둔치에서 발견됐다는 등 감성팔이에 나섰다.

한 칼럼니스트는 소가 왜 지붕에 올라갔느냐며 과학적 해명을 나놨다. 소의 배는 크고 빵빵해서 물에 빠졌을 때 이게 부력(浮力)을 지녀 물이 차오른 지붕 위로 쉽게 올라간다는 게 그 사람의 설명이다.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이 광경에 국토교통부지부는 답답했다.

지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회견문엔 이런 답답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2월 3일 일요신문 보도. [출처: 일요 신문 화면 캡쳐]

2020년 8월 6~7일에 걸쳐 연이은 태풍과 장마로 섬진강 수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댐 방류가 진행돼 섬진강 직하류 수위가 급격 상승했다. 섬진강 직하류에 있는 전북 순창군 유등면 외이제 제내지의 농경지와 민가 보호를 위해 배수문(외이 제1 배수암거)을 급히 조작해야 했다. 평소 배수문과 하천시설물 유지보수는 국토교통부가 담당하고, 배수문의 개폐 등 조작과 운영은 관할 지자체 소관이지만 긴급 상황엔 재난재해 비상매뉴얼(수해대비임무매뉴얼)에 따라 현장을 가장 잘 알고 일상으로 시설물을 유지관리하는 하천보수원을 투입해 대응이 가능하다. 그러나 비상시 매뉴얼이 전혀 가동되지 않았고, 하천보수원이 출동하지 못했다.

뒤늦게 지자체 담당 공무원이 현장에 출동했으나 허둥대다가 열린 수문을 닫지 못했다. 그 결과 불어난 강물은 무너진 제방이 아닌 열린 배수문으로 들어와 순창군 유등면 축사와 농경지, 민가 등을 완전 침수시켰다. 지부는 전형적인 인재라고 지적했다.

이런 난리를 겪고도 관료들은 변하지 않았다. 급기야 지부는 지난달 1일 파업에 들어갔다. 그제야 제대로 된 교섭이 열려 하천보수원에게 10년 만에 토목 분야 직무를 인정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노사합의서가 한 달 여 만에 체결됐다. 합의서에는 “사용자는 하천보수원이 수행한 업무에 대한 경력증명 확인과 관련해 조합원의 직무 분야를 토목으로 우선 합의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박종진 지부장은 오랜 시름을 내려놨다.

  매일노동뉴스 3월2일 보도. [출처: 매일노동뉴스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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