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었는데”…성폭력 혐의 거론없는 애도는 본질적으로 백래시다

[기고]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과 ‘애도’를 둘러싼 논쟁에 부쳐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와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 하나가 올라왔다. “박원순 씨 장례를 5일장, 서울특별시장(葬)으로 하는 것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이 그것이다. ‘성추행 의혹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력 정치인의 화려한 5일장을 국민들이 지켜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국민청원. 공무와 무관한 사망이자,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터였기에 짧은 기간 내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표했다. 12일 현재 54만3486명(오후 7시 30분)이 청원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번에도”이다. 가해자는 사망했고 그 ‘죽음’은 성폭력 의혹을 무력화하는데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사회에 망자에 대한 애도만 넘쳐난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미 박원순 시장 지지자들 중심으로 ‘사자명예훼손을 멈추라’는 청원마저 게시됐다.

박원순 시장에 대한 다면적 평가가 있을 수 있다

박원순 시장은 오랫동안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이후 내리 3선을 지킨 정치인이자 행정가였다. 망자의 삶을 반추하자는 건 아니다. 박원순이라는 인물이 여러 영역에서 활동했고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인연을 쌓았다는 걸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그 관계들이 모두 같은 형태일 수는 없다. 박원순 시장에 대한 평가도 제각각일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박원순 시장 사망과 ‘애도’를 둘러싼 논쟁은 정쟁화된 채 끝나버릴지 모른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개인적으로도 그렇다. 박원순 시장의 여러 면들을 보았고 그에 대한 평가들도 같지 않다. 지난 9일 박원순 시장이 잠적한 사실이 보도되기 직전, 한 지인과 유력대권주자들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박원순 시장이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봤다.

행정가로서의 박원순 시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많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서울시는 서울도서관에 합동분향소를 차렸다.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애도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주차’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자, 서울시는 서울광장을 둘러싼 도로를 주차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세월호 참사의 의미와 그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생각한 행정의 한 모습이었다. 그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박원순 시장의 행정은 이런 거구나’라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가 열렸을 때도 기억한다. 서울시는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쏠 수 없도록 수돗물에 대한 관리 권한을 행사했다. 그리고 사용 가능한 화장실 위치 정보를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제공했다. 한강공원에는 ‘배달존’을 만들어 배달차량으로 인한 사고예방에 나서기도 했다. 이렇듯, 박원순 행정은 ‘디테일’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명박·오세훈 전 서울시장들과는 다른 서울시장의 탄생이었고, 우리는 경험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서울시 교통방송tbs 내 비정규직 노동 문제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곧바로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그 후, tbs는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로 새 출발하게 됐다. 개국 30년 만에 독립적인 서울시 출연기관으로 출범하게 된 것이다. 이 또한 박원순 시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을 지지하진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는 말이 더 적확한 표현일 것 같다. 박원순 시장이 좋은 면들이 있었지만 그 평가들이 곧 지지로 이어지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박원순’이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각인 된 때는 2006년이었다. 문화연대에서 활동을 하던 시절, “시민사회단체 공동신문”를 표방해왔던 <시민의신문> 이형모 사장의 성폭력 사건이 폭로됐었다. 당시 이형모는 시민사회 내 여러 단체들의 대표 등 굵직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만큼, 시민사회는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공론화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방안들을 마련하는데 힘을 모아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끼리끼리” 봐주기 문화가 작동됐다. 그 여러 인사들 중 박원순 시장이 있었다. 박원순 시장은 당시 <시민의신문> 이사였고, 사태 해결을 위한 책임이 있었지만 성폭력 사건에 입을 꾹 다물었다. 침묵의 카르텔의 작동.

그 결과는 참담했다. 박원순 시장을 비롯한 시민사회 내 막강한 파워를 발휘하던 인사들이 입을 다무는 사이 <시민의신문>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시민의신문> 정상화를 위해 싸우던 기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성폭력 피해자는 2차, 3차 가해로 고통 받아야 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입을 다물었던 저 인사들에게 운동이란 무엇일까’, ‘시민운동운동가라고 떠드는 저들을 존경하는 일을 없을 것 같다’라고 말이다.

행정가로 변신한 박원순 시장에 분노한 때도 있었다. 2014년, 서울인권헌장제정 시민위원회는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를 담은 인권헌장을 마련했지만 서울시가 제정을 취소하면서 논란이 제기됐다. 그리고 성소수자 및 인권단체들은 서울시 점거농성에 나섰다. 박원순 시장은 당시 보수기독교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동성애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정치인’으로서 박원순이라는 사람은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내팽개칠 수도 있는 인사로 각인된 사건이었다.

박원순 시장에 대한 앞의 두 사건은 매우 강렬하게 뇌리에 박혔다. 박원순 시장을 ‘시민운동가’ 그리고 ‘정치인이자 행정가’라는 두 영역에서 지지할 수 없게 된 계기였다. 특히, <시민의신문> 이형모 성폭력 사건은 박원순 시장이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현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 또한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박원순 시장이 당시 피해자의 말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다면 그래서 사태 해결을 위해 전면에 나섰다면 어땠을까하는 허망한 생각이 스쳐가는 이유다.

‘애도’하지 말라는 게 아닌데…

박원순 시장이 ‘실종’됐다는 보도에 걱정했고, 성폭력 혐의로 고발된 상태였다는 소식에 분노했다. 그리고 사망했다는 발표가 나오고 나서는 여러 감정들이 뒤죽박죽 섞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박원순 시장에 대한 다면적 평가들과 맞물렸기 때문일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에 개인적으로 애도한다. 그런데, 그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성폭력 혐의는 없는 일’로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 원인이다. 누군가는 “박원순 시장 조문은 자유”라며 조문을 두고 정쟁화하지 말라고 말한다. 성폭력 혐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도 주장한다. ‘사람이 죽었는데, 애도부터 하고 성폭력 사건은 나중에 얘기하라’는 얘기도 들린다. ‘박원순 시장이 사망해 반론권이 없으니 피해자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는 말도 쏟아졌다. 이 같은 주장들은 일부 합리적이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으나 본질적으로는 개소리이자, 백래시다.

박원순 시장이 사망하면서 성폭력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음에도 달라지는 건 없다. 성폭력 혐의와 피해자의 실체가 분명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2017년부터 성폭력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동안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텔레그램을 통해 부적절한 사진을 수차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증거들이 이미 수사기관에 제출됐다. 피해자는 더 있다고도 한다. 사건이 종결됐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박원순 시장이 사망하면서 2차가해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박원순 시장 지지자들 중심으로 ‘미투가 사람을 잡았다’는 비난들이 쏟아진다. 피해자가 성폭력 혐의를 제기한 것을 두고 정치적 음모설로 몰아가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다른 한편에서는 피해자 색출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오랫동안 성폭력 피해로 고통 받다가 이제야 고발에 나선 피해자가 왜 이런 말들을 들어야 하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 박원순 시장에 대한 ‘애도’와 ‘조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할 부분은 여기에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고위공직자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한국사회가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얘기다.

애도와 조문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성폭력 혐의를 받고 사망한 망자에 대한 애도 그리고 그 표현은 조심해야한다는 말이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고위공직자들이 보다 신중해야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장례를 치르는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것은 안희정 전 지사 모친 빈소를 찾은 공직자들의 추모와 대통령 명의의 조화 논란과도 맞물리는 문제다. 그런데, 지금 어떠한가.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박원순 시장의 성폭력 혐의 관련 질문을 던진 기자들에게 “예의가 아니다”라고 버럭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의 행보가 한국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자명하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그것이 한국사회에 득이 될 것인가. 박원순 시장의 사망, 침묵해야할 자들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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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저씨

    고뇌가 많겠습니다. 살아계실 수도 있다고 보입니다만. 이렇게 역사교과서는 기록하지 않겠습니까

    1 전향자, 또는 법률가, 진보주의자
    2 정치적 타살로 은둔 (신자유주의와 복고적 사회주의의 대립에 의한 희생 또는 헌신)
    3 관료주의자들에 의한 퇴출

  • 문경락

    소식 감사드리며늘 건강하시길...........

  • 징검다리

    4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을 4년 동안 당했다는 피해자의 고발을 영원히 묵살시킨 가해자로 기록되겠죠.

  • ㅇㅇ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위선자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비겁한 자로도 기억될 것 같구요. 성폭력 가해자로 기억되겠죠. 저에게는요.

  • 아저씨

    4년동안 당했다는 건 좀 무리 아닌가.
    성범죄는 보통 처음이나 몇 달 안으로 신고를 하는 것이잖어. 그런데 기간이 길다면 다른 목적이 섞일 수 밖에 없다. 여성은 더 추해질 수도 있고. 심각한 성의 영화를 보면 오랫동안 가두기도 한다는데 그 여성은 4년 동안이나 갇혀있었다고 그러데, 사실관계를 떠나서 여성의 의도적 접근이 보이잖어. 정보기관, 또는 화류계에서 색계를 했나. 너 하고 싶은 일을 잘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