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정치가 익숙했던 청소년, 19살 정치인이 되다

[이슈①] 경기도의원에 출마한 신은진 진보당 후보

3개월 전만 해도 교복을 입던 한 학생이 정치인이 됐다. 올해 만 19세가 된 신은진 진보당 청소년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3월, 경기도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해 말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총선·지방선거의 피선거권 연령 기준이 만 25세에서 만 18세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정당 가입 연령 역시 기존 만 18세에서 만 16세로 낮아졌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부모 동의’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청소년의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법 개정은 당사자들의 요구와는 달리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법 개정은 불과 몇 달 전에 이뤄졌지만, 신은진 후보는 훨씬 전부터 정치에 대해 고민해 왔다. 신은진 후보가 진보당 당원으로 가입한 건 중학교 2학년 때다. 당시 지역아동센터에 다닌 것이 계기가 됐다. 지역아동센터의 인문학과 체육 수업이 특히 재밌었다는 신 후보는 당시 선생님들이 모두 진보당 당원이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진보 정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법적으로 정당 가입이 보장되지 않아 공식 당원은 아니었지만, 청소년 정치 활동 보장을 위한 ‘청소년위원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특성화고 노조에서 활동하며 청소년·청년의 삶을 말하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현재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의 경기지부 조직부장과 경기남부지회 지회장을 맡고 있는 신은진 후보를 《워커스》가 만났다.

  신은진 진보당 경기도의원 비례대표 후보 [출처: 은혜진 기자]

경험에서 만들어진 정책들

신 후보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신 후보의 아버지는 대학에 진학한 그의 언니에게 “특성화고에 가지 그랬냐, 취업을 빨리하지 그랬냐”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신 후보는 중학교 졸업 이후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취업이 잘 된다는 수원의 한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2학년 때 세무행정과 도제반에 들어갔다. 도제제도는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제도다. 통상 3학년 2학기에 취업을 목표로 진행하는 현장실습보다 시기적으로 빠르고, 정부의 예산 지원도 받는다. 도제반 학생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회사로 출근하고, 나머지 날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 처음 도제반을 추천받았을 땐 조금 망설였다. 학교 성적과 회사 생활을 모두 챙기기 버거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도제반에 들어간 가장 큰 이유는 ‘임금’ 때문이었다. 한 달에 6~8번 정도 회사에 출근하고 당시 기준 40만 원을 받았다. 신 후보는 그것을 자격증 공부를 위한 학원비에 썼다. 취업을 원하는 특성화고 학생에게는 자격증 취득이 필수인데, 학교에서 이를 위한 교육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취득하라는 자격증이 있어요. 자격증 취득 여부를 두고 학년별로 비교하기도 하는데, 정작 학교에서는 이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요. 그래서 저도 학교 재학 중에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학원비로 100만 원 이상을 썼어요. 경제적으로 부담이 컸죠. 도제 실습으로 받은 임금 40만 원을 학원비와 교통비로 썼는데, 만약 이 돈이 없었으면, 부모님께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말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도제 실습은 직무와 관련된 교육을 제공해야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일을 했다. 세무 행정 관련 직업 교육은 이뤄지지 않았고, 영수증을 붙이거나 우체국을 다니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나머지 시간에는 자습을 했다. 신 후보는 도제 실습과 관련한 체계적인 교육 과정이 구축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학창 시절의 경험은 이번 지방선거 출마에서 주요 공약으로 이어졌다. 전문적인 직업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학생들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이것이 청소년들의 경제적 부담으로 연결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청소년 기본수당 지원 조례를 제정해 청소년들의 기초 생활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교육비, 통신비, 의복비, 교통비, 문화생활비를 지원하고 싶어요. 이 바우처가 등록된 청소년증 발급을 통해 청소년이 느낄 수 있는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려 합니다.”


신 후보는 제시한 항목을 모두 합해 연간 360만 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나아가 학교뿐 아니라 국가 역시 학생의 취업을 책임져야 한다며, 공공부문 고졸 일자리를 확대를 강조했다. 특성화고는 취업률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졸업생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 후보는 특성화고 졸업생 취업 지원 조례를 제정해 직업계고 현장실습 운영 및 지원 예산을 확대하고, 공공기관에서 고졸 노동자를 30% 의무 채용하는 공약을 내놓을 예정이다. 실제로 2018년 경기비정규직지원센터가 경기도 지역 특성화고 졸업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244명의 취업자 중 비정규직은 86.9%(212명)였으며, 정규직은 13.1%(32명)에 불과했다.

“제가 잠깐 세무법인에서 도제 실습을 했던 것도 학교 취업률 통계에 잡혀 있어요. 관련 현수막도 걸려있고요. 학교는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아르바이트 일자리까지 취업률로 포함합니다.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가 기관이 함께 책임져야 해요.”


공공부문에 고졸 일자리를 확대하려면, 먼저 현장 실습처부터 확대해야 한다. 현재는 공공부문에서 현장실습을 진행한 사례가 드물고, 현장실습을 하더라도 정규직 전환이 쉽지 않다. 특성화고노조가 공개한 사례에 따르면, 공공기관 현장실습에 나간 한 특성화고생은 졸업 이후 6개월간 인턴 생활을 했지만, 본인을 제외한 대학교 졸업생들만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특성화고노조는 지난해 특성화고 졸업생을 8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이 공공기관에 취업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정부와 지자체가 특성화고 졸업자나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채용 제도를 진행하고 있지만, 졸업생 수에 한참 못 미친다. 현재 인사혁신처는 특성화·마이스터 고등학교의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지역인재 9급 직원 선발시험’을 운영 중인데 지난해 고작 316명이 합격했다. 합격자는 전국 17개 시도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등에서 학과성적 상위 30% 이내의 졸업(예정)자 중 추천받아 필기시험·서류전형·면접시험을 거쳐 선발한다. 울산시 역시 지난해부터 교육공무직 채용에 특성화고 전형을 도입했다. 하지만 올해 채용된 울산 소재 특성화고 졸업(예정)자는 12명에 불과하다.

한편에서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이 ‘교육을 빙자한 노동력 착취’라며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신 후보는 “특성화고 학생에게 현장 실습은 취업과의 유일한 연결고리다. 현장실습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하지 못한 노동환경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따라서 “학교와 기업, 국가가 나서서 안전한 실습 환경과 실습 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 문제가 개선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마스크 없이 납땜하는 실습생, 환기되지 않는 곳에서 옷감을 자르며 수많은 먼지를 마셔야 하는 실습생 등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해요. 이는 애초에 학교부터가 현장 실습생을 노동자로 보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나이 어린 정치인

  지난 3월 21일 진보당 신은진 청소년특별위원회 위원장이 경기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의원 비례대표 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출처: 진보당]

청소년 정치에 오랜 고민을 이어온 신은진 후보는 지방선거 출마 선언 이후, 여러 차별적인 말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지방선거 출마를 다룬 기사에는 사실 확인도 없이 ‘기업 현장을 가보지 않았으면서 무엇을 아느냐’라는 댓글도 달렸다. 신 후보는 이러한 시선이 ‘나이가 어리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방선거 출마 이후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느냐’, ‘어린데도 말을 잘한다’라는 등의 얘기를 들었어요. 칭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이가 어려서 미숙할 것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린 것이죠.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은 나이가 많든 적든 모두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청소년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에는 ‘미숙하다’라는 시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 정치와 노조 활동은 교칙으로도 가로막혀 있다. 진보당 청소년특별위원회는 3월에 진행한 경기도 고등학교의 학생생활인권규정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지난달 인권 침해 교칙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수 조사 결과, 경기도 내 정치 기본권을 침해하는 규정을 둔 학교는 41.4%(201개교)에 달했다. ‘특정 정당이나 사회단체를 지지하는 내용을 학교 안에서 배포하거나 게시할 수 없다’, ‘불법적인 정치 활동을 금지한다’, ‘교내 서명운동을 금지한다’, ‘정당 활동에 관여할 경우 퇴학 이하의 징계가 내려진다’ 등의 규정이었다.

“노조에 가입한 학생을 퇴학 처분한다거나, 기업체에서 현장 실습생의 부주의로 일어난 산업재해는 모두 학생이 책임진다는 등의 노동권을 무시하는 규정도 있었어요. 불온서적을 읽으면 안 되고, 교내에 포스터를 부착할 때 학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실제 노조 관련 포스터를 교내에 부착할 때 학년 부장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야 했던 적도 있었어요. 노조가 실습처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을 감추고 피해 학생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학교를 규탄하는 투쟁을 했는데, 이때도 학교 측의 간섭과 제재가 있었죠. 전남 여수에서 실습 도중 사망한 특성화고 고 홍정운 현장실습생 사건 관련 유인물을 학교 앞에서 나눠줄 때도 교사가 ‘노조가 한국 사회를 좀먹는 것도 모르냐’, ‘학생의 소유권은 학교에 있다’라는 등의 망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학교 세 곳 중 두 곳으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아냈죠.”


학교는 여전히 청소년을 ‘통제’하고 ‘억압’해야 할 존재로 바라본다. 신 후보가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것도, 청소년·청년이 스스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피선거권 연령 하향으로 한국 사회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만 19세 출마자를 보게 됐다. 신 후보는 청소년·청년들이 지방의회에 입성해 직접 정치를 구현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공약 중에는 청소년·청년들이 복지·고용·환경 등의 정책에 직접 의견을 내고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미래 정책 공동 협의기구’ 설치도 포함돼 있다.

“청년이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해요. 청년이 의무적으로 지방의회에 진입할 수 있는 ‘청년 정치 의무 할당제’로 청년들의 정치 효능감이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사자 청년·청소년들이 직접 정치를 통해 스스로 원하는 정책과 미래를 그릴 수 있어야 해요. 좋은 교육·일자리, 돌봄·출산·육아가 보장되는 사회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청년 정치가 늘어날 거라고 봐요.”


기성세대를 통한 정치가 아니라,

교육부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포털에 따르면, 경기도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특성화고 학생이 있다. 지난달 24일 기준, 경기도 지역 특성화고 학생은 3만2441명으로 전국(16만1819명)의 20.0%를 차지한다. 특성화고 출신인 신은진 후보가 출마한 경기도의회에는 현재 특성화고 출신 의원이 있다. 황대호 의원(더불어민주당, 수원4)은 지난 2019년, 특성화고노조 주최로 진행된 노동 인권 토론회에서 특성화고 졸업생 고 김태규 씨의 산재 사망을 거론했다며 토론회를 무산시킨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황 의원은 같은 해 ‘경기도형 도제교육 운영 및 지원 조례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는데, 지난해 이 경기도형 도제 실습에 참여한 학생들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신은진 후보를 비롯한 특성화고노조 활동가들은 경기도형 도제 실습에 참여한 학생들의 최저임금 미지급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전개했다. 신 후보에 따르면 현재는 이들에 대한 임금 인상이 이뤄졌다. 신은진 후보는 기성세대가 아닌, 당사자들이 직접 의견을 제시하고 문제를 바꿔내는 정치가 필요하다며 “여성, 특성화고 졸업생, 다문화 가정, 노동자 등 차별을 상징하는 정체성을 가진 만큼, 경기도의회에 나와 같은 청소년·청년 정치인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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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청소년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에는 ‘미숙하다’라는 시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 정치와 노조 활동은 교칙으로도 가로막혀 있다. 진보당 청소년특별위원회는 3월에 진행한 경기도 고등학교의 학생생활인권규정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지난달 인권 침해 교칙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수 조사 결과, 경기도 내 정치 기본권을 침해하는 규정을 둔 학교는 41.4%(201개교)에 달했다. ‘특정 정당이나 사회단체를 지지하는 내용을 학교 안에서 배포하거나 게시할 수 없다’, ‘불법적인 정치 활동을 금지한다’, ‘교내 서명운동을 금지한다’, ‘정당 활동에 관여할 경우 퇴학 이하의 징계가 내려진다’ 등의 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