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브라질 대선, 룰라 다 실바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INTERNATIONAL2]

2022년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 vs.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

브라질 대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10월 2일, 브라질은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를 한 번에 치른다. 브라질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 언론도 일찍부터 대선에 주목하고 있다. 2019년 11월 8일 580일의 수감 생활을 마친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은 법정 싸움 끝에 2021년 3월 8일 대법원으로부터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의 대선 출마 가능성이 확인된 그 순간부터 올해 브라질 대선은 핫이슈가 됐다.

판결 직후인 2021년 3월 중순 진행된 여론 조사(1)부터 최근까지,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은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에게 지지율 1위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대선 6개월을 앞두고 3월에 세 차례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적게는 8%p, 많게는 15%p 앞선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올해의 브라질 대선은 미국 도널드 프럼프 전 대통령과 나란히 극우파를 대변했던 보우소나루 대통령, 그리고 200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분홍빛 물결을 이끌었던 전직 좌파 대통령의 대결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언론에서 조명하는 브라질 대선의 양자 대결은 일종의 스펙터클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은 4월 중순 경 공식 후보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부터 많은 사람이 그의 출마를 고대하고 있다. 그들이 20년 전 대권을 잡았던 룰라 다 실바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2000년대 노동자당의 룰라 다 실라, 룰라 다 실바의 노동자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최근 언론 인터뷰를 끝내고 남긴 기념사진.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은 공식적인 대선 출마를 앞두고 연설, 인터뷰에 임하고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출처: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 트위터 공식 계정(@LulaOficial)]

2002년 10월 대선에서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브라질은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열었다. 전 세계의 시선도 브라질로 향했다. 네 번째 도전하는 대선에서 그는 보수파와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중도 좌파의 입장을 취했고, 친근하지만 제도권 정치인의 이미지를 쌓았다. 하지만 그는 노동자였고, 노동자당 당원으로 정치계에 입문해 노동자 세력을 지지기반으로 삼는 노동 좌파 정치인이었다. 14살에 볼트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그는 프레스에 왼쪽 새끼손가락이 절단됐고, 20대 중반 금속노조의 조합원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35세가 되던 1980년 노동자당(Partido dos Trabalhadores, PT) 창당에 앞섰던 그는 1986년 하원 의원으로 선출된 후, 1989년부터 노동자의 대표로 세 차례 대선에 도전했다.

세 차례 낙선 이후, 선거 메커니즘을 받아들인 그는 2002년 대선에서 급진적 이미지를 벗어던진 덕분에 당선됐다. 노동자당의 로고는 붉은색에서 분홍색으로 바뀌었고, 망치와 낫은 사라졌다. 이미지 변신 차원을 넘어서, 그는 취임 직후 브라질 중앙은행 총재에 우파의 전통적 경제 정책을 대변하는 엔히크 메이렐레스(Henrique Meirelles)를, 재무부 장관에는 노동자당 소속의 좌파 정치인 앙토니우 팔로치(Antonio Palocci)를 임명했다.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를 다독이는 데 성공한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은 국내 정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마침 원자재 가격 상승과 중국 경제 호황으로 국제 경제 상황이 브라질에 우호적으로 바뀌었고, 이를 브라질 경제 성장의 기회로 삼는 데도 성공했다. 경제 성장의 이익은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를 비롯한 취약 계층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재분배됐다. 빈곤율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빈곤 가정 아동이 학교에 출석해 예방 접종을 받는 조건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보우사 파밀리아 덕분에, 취약 계층의 최저 생계 보장과 교육과 보건 서비스 확대라는 뚜렷한 성과를 남겼다. 당시 브라질 인구의 8%에 해당했던 1500만 명의 극빈층은 4년 만에 천만 명으로 감소했다. 그의 연임은 놀랍지 않았다. 노조와 사회운동 세력이 뒷받침했던 지지 기반은 선거를 통해 중산층 엘리트 집단까지 확장됐다. 재임 기간 시행한 사회 정책 덕분에 빈곤층까지 지지 세력으로 결집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두 번째 임기를 마칠 때까지도 그의 지지율은 굳건했다. 그의 후계자로 대선에 출마한 지우마 호세피는 1차 투표에서 47%, 결선 투표에서 5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노동자당의 세 번째 집권기를 열었다.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2014년 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2018년 노동자당의 몰락과 보우소나루의 등장

  지난 2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책을 설명 중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이날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아우실리우 브라질(Auxilio Brasil)의 도입을 소개하며 이같은 사회 정책 프로그램이 영구적으로 재편성될 것이라 강조했다. [출처: https://www.gov.br/planalto/pt-br]

2018년 10월 대통령 선거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브라질은 새로운 역사의 한 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전 세계의 시선은 ‘제2의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브라질에 쏠렸다. 그의 당선으로 15년간의 노동자당 집권기는 막을 내렸다. 노동자당이 밀려난 정치 무대에 올라선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군 장교 출신이었다. 19세가 되던 1974년 군사학교에 입학한 그는 장교로서 삶을 살다가 1988년 기독민주당(Partido Demócrata Cristiano) 소속으로 정치계에 입문했다. 1990년 연방 하원 의원에 당선된 후 여러 보수 정당에 적을 두며 보수 민족주의자로 이름을 알렸다. 2018년 사회자유당(Partido Social Liberal, PSL) 소속으로 출마한 그는 결선 투표에서 5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노동자당의 페르낭두 아다지(Fernando Haddad)에게 패배를 안겼다. 4년 만에 노동자당은 7천5백만 명의 표를 잃은 셈이었다.

15년간 행정부를 이끌어 온 노동자당은 2014년 이후 입법부와 사법부로부터 도덕적·정치적 공격을 받아 뿌리 채 흔들렸다. 2014년 무렵 원자재 가격의 하락으로 시작된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2016년 5월 12일 지우마 호세피 전 대통령이 의회에서 탄핵당했다. 2018년 4월 7일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은 부패 혐의로 체포됐다. 중도 우파인 브라질민주운동당(Partido do Movimento Democrático Brasileiro, PMDB)은 지우마 호세피 전 대통령과 연립 정부를 구성했음에도 의회에서 탄핵을 주도했다. 세르지우 모루(Sergio Moro) 연방 판사는 라바 자투(Lava Jato) 수사를 주도해 대선을 6개월 앞두고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던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의 후보 출마를 막았다. 그 후 그는 보우소나루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2019년 임기를 시작한 보우소나루 정부는 열성 지지자가 끊임없이 분노할 거리를 만드는 데 열심이었다. 이를 두고 어느 정치 평론가는 “운동-정부(governo-movimento)”라고 표현했다. 보우소나루 정부가 자기 파괴적 행태를 보이며 대중 운동처럼 활약한다는 의미였다.(2) 정책은 중요성을 상실했고, 정부 기관, 지방 정부, 언론, 사회운동단체 등 민주주의 하에서 합법적이고 제도적으로 활동하는 정치 단위들과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이 불협화음에 족벌 언론은 물론이고 텔레그램과 트위터 등 SNS가 적극 활용됐다. 그렇게 보우소나루 정부의 내각은 정치인이나 해당 부처의 전문가가 아니라 보우소나루 개인에게 충성하는 인맥 네트워크로 채워졌다. 이를 두고 보우소나루 정부를 반정치적(antipolítico) 정부로 분석하기도 한다. 보우소나루는 노동자당과 다른 정치적 노선을 제시해 당선되거나 통치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치인을 제거한 공백 속에서 당선됐고, 정치 제도를 통하지 않고 대중 사회에 정치적 사안을 ‘던진다’. 그래서 그에 대한 정책적 평가는 어렵다.

코로나19 이후 실업과 인플레이션

대선을 앞두고 국내외 언론들은 브라질의 경제적 위기와 빈곤율 등을 보도하며 룰라의 귀환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UN의 라틴아메리카·카리브경제위원회(CEPAL)가 올해 1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라틴아메리카 주요 13개국 가운데 전년도 대비 빈곤율이 감소한 국가는 브라질이 유일했다.(3) 노동자당이 국정을 운영했던 2014년과 비교해도 보우소나루 정권기에 빈곤율이 눈에 띄게 증가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3일 브라질 통계청(Instituto Brasileño de Geografía y Estadística, IBGE) 보고서에 따르면 현금을 지원하는 사회 정책 프로그램이 그나마 빈곤율의 증가를 억제하고 있다. 룰라 다 실바의 최대 업적으로 손꼽히는 보우사 파밀리아의 아우라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아우실리우 브라질(Auxilio Brasil) 프로그램을 도입해, 보우사 파밀리아에 비해 세 배 많은 현금을 지급했다. 2020년 4월 빈곤 가구당 월 600헤알(106달러)을 지급한 덕에 통계 수치상 빈곤층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우실리우 브라질 프로그램의 수혜자인 빈곤층이 이를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여길 리 만무하다. 오히려 보우사 파밀리아의 아우라가 더 강력해졌을 뿐이다.

절대적인 수로 보면 브라질 국민 네 명 중 한 명은 여전히 빈곤 상태에 놓여있다. 다른 말로 브라질 유권자의 25%가 빈곤층이다. 의무투표제인 브라질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투표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 투표율이 80% 선으로 유지되는 이유이자, 브라질 빈곤층이 중요한 유권자 집단으로 고려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2억1천만 명이 넘는 브라질 인구 중 1천2백만 명은 155헤알(약 27.5달러)로, 5천만 명은 450헤알(약 79달러)로 한 달을 산다. 코로나19의 확산과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이들이 룰라 다 실바의 후보 출마를 고대하게 만들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빈곤층의 절반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2021년 인플레이션은 10.41%를 기록했다. 2019년 평균 환율은 달러당 3.94헤알이었지만 2021년 5.28헤알이 됐다. 지우마 호세피 탄핵 후, 국제 유가 변동에 따라 국내 유가를 결정하게 만든 탓에 환율 인상폭을 감당할 수 없는 수백만 가구는 산유국에 살면서도 장작을 때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3월 셋째 주 기준, 부엌에서 사용하는 13kg 가스통은 브라질 전국 평균 112.54헤알이 됐다.(4) 올해 최저임금인 1212헤알의 10%에 해당한다.

과거의 소환이 아닌 미래의 비전을 향해

2014년 원자재 가격 하락과 함께 노동자당이 정치적 위기를 맞이했듯이, 브라질 국민은 2021년의 경제 위기 앞에서 룰라 다 실바에게 환호하고 있다. 그러나 2003년 룰라 다 실바에게 걸었던 진보적 비전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2018년 대선 1차 투표에서 노동자당 소속의 페르낭두 아다지에게 투표한 30%는 그 비전을 고수했을지 모른다. 대선을 6개월 앞둔 지금, 룰라 다 실바의 지지율은 40% 내외다. 추가로 10%p가 룰라 다 실바를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연임을 반대하기 때문이거나 룰라 다 실바와 함께 누렸던 브라질의 전성기를 추억하기 때문이다. 룰라 다 실바가 지지율 1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까닭은, 그의 전성기가 흔들리지 않는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룰라 다 실바에게는 과거의 전성기를 다시 불러올 전략이 없다.

지난 20년 동안 브라질 국민이 원하는 것은 ‘구조적이고 진보적인 변화’에서 ‘성장하는 강한 국가’로 바뀌었다. 과거 룰라 다 실바는 양손에 두 가지를 모두 거머쥘 수 있었다. 올해 그는 어떤 비전을 보여줄 것인가. 그에게 어떤 비전을 요구할 것인가. 지금 룰라 다 실바를 향한 기대는 과거에서 오지만, 남은 6개월 동안 그가 보여주어야 할 비전은 미래의 것이다. 미래의 불확실함을 걸고 어떤 정치를 실현할 것인지 밝혀야 하고, 물어야 한다.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이 브라질 역사의 한 장을 덮은 것은, 그가 친기업적인 우파 대통령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 4년 동안 브라질의 역사에서 ‘정치’라는 챕터를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법의 자율성을 전제로 한다. 각 영역은 각각의 논리에 따라, 각각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며 상호작용한다. 법의 논리가 정치 무대를 좌지우지하는 것도, 경제적 논리에 따라 정치의 기능이 상실되는 것도, 정치 활동이 여론으로 발가벗겨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2022년 브라질 대선에서 룰라 다 실바에게 걸어야 하는 기대는 실종된 정치의 회복이다. 진보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상징이었던 한 인물에게 걸어야 하는 최선의 기대가 이토록 보수적이어야 하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만,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각주
(1) Revista Fórum/offerwise가 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브라질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여론 조사 추이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es.wikipedia.org/wiki/Anexo:Sondeos_de_op ini%C3%B3n_para_las_elecciones_generales_de_B rasilde_2022
(2) https://politica.estadao.com.br/blogs/gestao- politica-e-sociedade/o-governo-movimento/
(3) CEPAL(2022), Panorama Social de Améria Latina 2021, 69페이지. https://hdl.handle.net/11362/47718
(4) https://www.cesla.com/detalle-noticias- de-brasil.php?Id=29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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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지난 20년 동안 브라질 국민이 원하는 것은 ‘구조적이고 진보적인 변화’에서 ‘성장하는 강한 국가’로 바뀌었다. 과거 룰라 다 실바는 양손에 두 가지를 모두 거머쥘 수 있었다. 올해 그는 어떤 비전을 보여줄 것인가. 그에게 어떤 비전을 요구할 것인가. 지금 룰라 다 실바를 향한 기대는 과거에서 오지만, 남은 6개월 동안 그가 보여주어야 할 비전은 미래의 것이다. 미래의 불확실함을 걸고 어떤 정치를 실현할 것인지 밝혀야 하고,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