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혐오를 향해 날리는 카운터펀치- 책 <노 헤이트 스피치>

[새책] 헤이트 스피치를 향한 일본 시민들의 ‘카운터’ 펀치, 우리가 배울 점은?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혐오범죄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던 지난 5월 24일 일본에서 의미 있는 법이 제정되었다. ‘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 해소를 위한 대처법’, 일명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국내 주요 언론도 ‘혐한시위 규제법’으로 이 소식을 전하긴 했다. 하지만 ‘혐한시위’에 대한 ‘한국’의 관심이 아니라,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응은 거의 없었다.

  간바라 하지메 지음, 홍상현 옮김, <노 헤이트 스피치>, 나름북스, 2016.

이는 민족주의에 갇힌 시야 탓이 크다. ‘한국인에 대한 일본 극우세력의 혐오시위를 규제하는 법이 제정되었다니 다행이군. 처벌조항이 없어 아쉽긴 하지만’ 식의 남의 다리 긁는 반응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헤이트 스피치 문제와 연관하여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 일본의 시민사회는 어떻게 대응했는지, 무려 아베 정부가 혐한시위 억제법을 제정케 한 힘은 무엇이었는지 적극적으로 묻고 배워야 했다. 우리 안의 혐오세력과 싸우느라 정신없어서 갖지 못한 그 배움의 기회를 주는 책이 출간되었다. 간바라 하지메가 쓰고 홍상현 씨가 옮긴 <노 헤이트 스피치: 차별과 혐오를 향해 날리는 카운터펀치>(나름북스, 2016)가 그것이다.


아베 정권 하에서 ‘혐오발언 해소법’이 제정된 것은 재특회(재일 조선인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의 인종차별적 언동에 대항한 시민운동, ‘카운터’라 불린 활동이 매스컴과 정치권을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책의 저자 간바라 하지메는 ‘카운터’의 촉발자이자 대명사이기도 한 ‘인종주의자 타격대’, 일명 ‘시바키 부대’의 멤버이자 일본 극우세력의 눈엣가시 같은 ‘액션 인권변호사’이다.

2013년 신오쿠보에서 벌어진 재특회와 시바키 부대 간 첫 번째 전투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반-인종주의 시민운동의 탄생과 의미를 기록한 활동 보고서이다. 또한 간바라 하지메는 인권변호사의 관점에서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법적 규제의 정당성과 필요뿐만 아니라 그것의 한계와 위험까지 꼼꼼하게 따지면서 최후의 해법은 시민의 힘에 있음을 성찰한다. 판형과 편집에서도 ‘팜플렛’ 느낌을 주는 이 책은 헤이트 스피치에 맞서 싸우는 한국의 시민들에게 건내는 연대 보고서라 할 수 있다.

명명은 힘이 세다. 혐한시위? 헤이트 스피치!

재특회와 맞서 싸운 ‘카운터’ 운동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명명의 힘이다. ‘혐한시위’, 혹은 ‘혐한’의 효시로 지금도 넷우익의 이론적 지주로 자리매김해 있는 야마노 사린의 <만화 혐한류>를 꼽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재특회 회장인 사쿠라이 마코토도 자신의 책에서 “인터넷 보급으로 일본인들도 한국의 실태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한국에 반격을 하는 기폭제로 작용한 것이 <만화 혐한류>지요” 라고 했다. 재특회는 자신을 ‘혐한단체로, 자신의 직접행동을 ‘혐한시위’로 부른다. 즉 ‘혐한’, ‘혐한시위’란 단어에는 일본을 대표해서 한국을 혐오한다는 극우 민족주의 사상이 담겨 있다. 그에 대항한 ‘카운터스’는 재특회를 ‘레이시스트’라 부르며, 그들의 시위를 ‘헤이트 스피치’로 규정했다. 이것은 재특회가 원하는 민족주의 구도를 벗어난 명명으로, 그런 새로운 명명이 ‘카운터’ 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했고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까지 만들게 했다.

"말이란 신기한 것이다. ‘조선인을 죽여라’ ‘바퀴벌레’, ‘몰아내자’ 같은 일련의 표현들을 헤이트스피치라 이름 붙이는 순간, 사람들은 사안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를 찾아낸다. 해외에는 헤이트 스피치를 금지하는 나라도 있다는 말에서 용기를 얻는 이도 있을 것이다. 말이란 이렇듯 각자의 체험을 사회적인 문맥 속에서 파악해 재고하게 한다. 성희롱이 그랬던 것처럼 헤이트 스피치도 마찬가지다." (<노 헤이트 스피치>, 55쪽)

2000년대 인터넷을 통해 출현한 재특회 등의 극우세력을 넷우익이라 부른다. 일본의 넷우익은 2000년대 초 ‘2채널’이라는 익명 게시판의 발흥에 따라 수를 늘리기 시작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국의 ‘일베’가 그랬듯이 익명 게시판으로 분출되어 나온 일본 대중의 억압된 충동은 적절한 공격 대상을 찾고 있었고, 한일 월드컵을 통해 전해진 (우리에게는 ‘길거리 응원’과 ‘4강 신화’로 기억되는) 한국의 엄청난 민족주의 열풍은 일본의 인터넷 대중들에게 (한국인들은 일본이 지기를 원하며, 한국의 4강 진출은 심판의 편파판정 덕분이라는 식으로) 민족주의 감각세포와 공격 대상을 일깨워 주었다.

<만화 혐한류>가 발매된 2005년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의 절정기였다. 그해 11월 자민당은 창당 50주년 기념대회에서 ‘신헌법초안’을 발표한다. 이 일본 우경화의 절정기에 ‘혐한’ 사상이 사회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듬해 2006년 12월 재특회가 결성 준비 모임을 가졌고 2007년 1월 발족 집회를 열었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보수 세력은 반공의 동지로 한국(남한)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하지만 급속한 우경화 속에서 역사교과서와 독도 영유권 문제를 통한 민족주의 대결 구도로 돌아섰다. 이에 화답한 한국 정치인은 뜻밖에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2008년 7월 일본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겠다는 주장에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라는 발언을 했다는 요미우리 신문 기사로 곤혹을 치른 이명박 대통령은 2013년 8월 10일 느닷없이 독도를 방문했다. 퇴임을 4개월 앞두고 극심한 레임덕과 측근비리, 친인척 비리로 사실상 식물 대통령 상태였던 이명박의 독도 방문과 ‘텐노(천황) 사죄 요구’는 자신의 국면전환과 함께 일본 대중의 민족주의 열풍에 불을 지폈다. 그 덕분에 재특회는 한인거리 한복판에서 시위를 하는 것도 모자라, 서너 명씩 무리를 지어 한인 상점 앞을 지나면서 상인들에게 “바퀴벌레들, 일본을 떠나라”며 위협을 가하고 영업을 방해하는 이른바 ‘산보’를 시작했다.

‘카운터스’는 재특회의 민족주의 구도에 빠져들지 않았다. ‘카운터스’는 재특회를 ‘레이시스트’라고 부르고 그들의 ‘혐한 시위’를 ‘헤이트 스피치’로 규정했다. 이 영어 명명은 재특회의 혐한시위를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제주의적 관점에서 보게 했다. 그러자 재특회는 일본을 대변하는 애국단체가 아니라 특수한 인종차별 집단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재특회에 반대하는 것은 일본을 배신하는 게 아니라 낡고 편협한 인종차별주의자에 맞서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행위로 인식되었다. 2016년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을 세계적 기준의 정상국가로 선전하고픈 아베 정부로 하여금 인종차별적 혐오발언 해소법을 제정하게 만든 것은 이런 명명의 힘이었다.

외부세력? 우리 모두가 당사자다!

재특회가 ‘매국노’, 혹은 ‘자이니치’라고 부르는 대항 시위대를 인종주의자에 ‘대항하는 사람들’, 즉 ‘카운터스(counters)’라고 부른 것도 의미심장하다. 재특회의 혐오대상에는 분명 ‘중국인’도 있고,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출신의 이주민들도 있지만, 식민지 시대 일본으로 강제 이주한 ‘자이니치’ 조선인들과 그 후손들이 핵심 비중을 차지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일베’가 여성, 전라도 등 소수자들의 ‘무임승차’ 척결을 자신의 정의론으로 내세우듯이 재특회는 일본 사회 내 대표적인 소수집단인 ‘자이니치’에게 부여된 ‘특권’을 공격함으로써 자기가 일본의 사회, 경제적 정의를 구현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또한 재특회는 ‘재일’ 대 ‘재특회’의 구도를 통해 식민지 재일 조선인에 함축된 침략의 콤플렉스로부터 ‘일제’를 해방시키는 역사 수정주의 과제를 자임할 수 있었다. 한국식으로 치면 ‘어버이연합’과 손잡고 ‘고엽제 전우회’처럼 움직이는 ‘일베’라고 할까.

‘카운터’는 이 구도에 말려들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혐한시위의 직접적 피해자인 ‘자이니치’를 운동의 ‘당사자’로 여기고, 자신을 ‘한국인 수호대’로 불렀다면 그들의 운동은 실패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들은 ‘외부세력’으로서, 당사자들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천차만별이고 시시각각 변하는) 의사에 따라야 하며, 참여 문턱도 높다는 운동의 한계를 넘지 못했을 것이다. ‘카운터스’는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을 ‘카운터스’로 부르며, 인종주의로부터 일본의 시민사회를 지키는 당사자, 일본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주체로 자임했다.

"카운터는 ‘재일(코리안)’ 대 ‘재특회’라는 구도를 뛰어넘어 ‘일본사회’ 대 ‘인종주의자’라는 구도를 형성시켰다. 여기서 ‘일본사회’란 ‘지리적으로 일본에 존재하는 사회’로서 일본인 외에도 재일코리안, 중국인 필리핀인 및 기타 외국인이 공생하는 사회를 말한다. 재특회는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것은 ‘특아特亞의 인간들(중국, 한국인들)’ 뿐이라고 반론했지만, 이런 규정 자체가 깔끔히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들은 ‘올재팬All Japan’의 반격을 받아 간단히 패배했다." (<노 헤이트 스피치>, 46쪽)

‘카운터’에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도쿄 시내 총리관저 앞에서 금요일마다 열리는 반-원전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다. 그들은 반-원전 운동의 당사자가 후쿠시마 주민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후쿠시마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원전 자체를 없애기 위해 활동한다는 생각을 가졌고, 그 덕분에 광범위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전후 일본 시민운동의 부활을 보여주는 반-원전 시위대의 역량과 지혜가 고스란히 반-인종주의 시위대로 이어졌고, 특정한 지도부 없이 다양한 시민들의 창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그 대항시민 운동은 헤이트 스피치 규제법을 제정하는 성과와 함께 일본 시민사회에 운동적 활력을 불어넣었다.

번역이 본래 맥락을 빻을 수 있다. 배외주의? 레이시즘!

‘카운터’의 명명법에서 우리와 직접 관련된 교훈은 ‘헤이트 스피치’와 ‘레이시즘’은 뗄 수 없다는 것이다. ‘카운터스’가 넷우익의 ‘혐한’ ‘혐중’ 발언을 ‘레이시스트’의 ‘헤이트 스피치’로 명명한 것은 거꾸로 한국의 시민사회가 ‘hate speech’를 ‘혐오발언’으로 번역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네티즌은 일본 넷우익의 ‘혐한’, ‘혐중’과 같은 파생법을 따라 어순만 다른 ‘여혐’, ‘남혐’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인종차별적 언어행위로서의 헤이트 스피치라는 원래의 의미는 증발하고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지칭하는 ‘혐오 발언’만 남았다. 그 결과 ‘혐오’라는 단어는 어떤 대상에도 붙을 수 있는, 대상에 따라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는 개념이 되어 버렸다. ‘번역’이 원래의 ‘맥락’을 ‘빻아버린’ 것이다. 때로는, 어떤 단어는 번역하지 않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그래야 원래의 언어 맥락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헤이트 스피치’라는 단어가 그렇다. 그것을 ‘혐오 발언’으로 번역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이 ‘레이시스트’들의 언표행위임을 간과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카운터스’는 racism도 ‘인종차별주의’로 번역하지 않고 ‘레이시즘’으로 부른다. 왜냐하면 ‘인종차별주의’라 번역하면 단지 다른 인종에 대한 배외적 태도만 포착되기 때문이다. ‘레이시즘’은 비단 다른 인종, 민족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여성, 장애인 등 사회 내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태도를 내포한다. 레이시즘은 인간을 생물학적 ‘종’으로 규정, 우수한 개체군population과 열등한 종으로 나누고 ‘인구population’를 건강하고 우수하게 발달시키기 위한 우생학적 조치를 긍정하는 태도를 지칭한다. 그 레이시즘의 맥락에서 열등한 종으로 간주된 소수자의 차별행위를 선동하는 것이 헤이트 스피치이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헤이트 크라임(hate crime)이다.

2016년 7월 26월 일본의 사가미하라시의 장애인 시설에 칼을 든 남성이 침입하여 45명을 살상했으며, 이 중 1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의 범인 우에마쓰 사토시(26세)는 장애인 시설에서 올해 2월까지 일하던 종사자로, 아름답고 건강한 일본을 위해 살 가치가 없는 중증 장애인은 없애는 것이 좋다고 말해왔다. 전형적인 레이시즘이고, 헤이트 크라임이다. 재특회에 대항하여 주로 ‘자이니치’ 등 인종적 소수자에 가해지는 헤이트 스피치에 반대하는 운동단체인 ‘인종차별반대정보센터’(Anti Racism Infomation Center, ARIC)가 우에마쓰 사토시의 살인을 헤이트 크라임으로 규정하고 그런 레이시즘을 방조 내지 조장한 극우 정치인과 우경화된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바퀴벌레 조선인은 분신자살하라!”와 “벌레같은 중증장애인은 없는 게 낫다”는 동일한 레이시즘의 언표행위이다.

헤이트 스피치에는 카운트 펀치가 필요하다.

‘카운터스’의 효시이자 대명사가 된 것이 ‘시바키 부대’이다. 한국어로 ‘타격대’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시바키 부대는 재특회가 서너 명씩 무리지어 한인상점을 대상으로 행패를 부리는 이른바 ‘산보’를 물리력으로 저지하는 행동대이다. 이들은 2013년 2월 9일 재특회의 ‘불령선인 추방! 한류박멸 데모 in 신오쿠보’에 처음 등장했다. 재특회의 산보가 시작되자 트위터로 모집된 시바키 부대가 앞을 가로막고 시위대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사방에서 승강이가 시작되고 그동안 재특회의 행패를 방관해왔던 경찰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재특회 시위에 경찰이 개입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경찰대가 재특회 쪽에 해산을 명령했고 재특회와 시바키 부대 모두 흩어져 사라졌다. 시바키 부대가 재특회와 맞장 뜨는 영상이 인터넷으로 확산되자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고 재특회에 맞설 용기를 얻었다.

그 후 2월 17일 재특회 시위에는 ‘사이좋게 지내요’를 비롯해 개성 넘치는 문구의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대를 따라다니며 항의하는 일명 ‘플래카드 부대’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재특회의 “나가 뒈져라”에 “니나 뒈져라”로 맞받아치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대담함과 용기에 많은 사람들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플래카드 부대는 시바키 부대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지 않고, 평화로워 보였기 때문에 점차 그 수가 늘어 3월 17일에는 재특회의 시위대를 수적으로 압도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재특회 시위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카운터스’라 불리게 되었다. 2008년 한국의 촛불시위가 그랬던 것처럼 이후 ‘카운터스’에는 실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위에 참여하여 실로 유쾌, 상쾌, 통쾌하게 재특회를 압도해 버렸다.

‘카운터’ 운동에 힘입어 재특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었고, 매스컴, 변호사, 야당 정치인이 움직였다. 6월 16일에는 시위대와 카운터의 충돌이 일어나 양측에서 4명이 체포되었고, 6월 30일에는 재특회 시위대의 출발장소인 오쿠보 공원 주변에 인간 사슬을 만들어 출발 자체를 저지하려 했다. 신고 집회라서 시위 자체를 저지할 수는 없었지만 시위대를 동요시키고 코스를 변경시켰다. 9월 8일 카운터스는 재특회가 시위를 시작하자 그 앞에 주저앉아 시위대를 온몸으로 막아냈다. 비록 경찰에 의해 들려 나왔지만 이 ‘싯-인sit-in’ 부대의 활약으로 인종주의자들은 스스로 선택한 결전장에서 결정적 패배를 맛보았다. 싯-인 부대에 대해 간바라 하지메는 다음과 같이 의미 부여했다.

"일본인들은 사회적 부정의를 ‘몸으로 막아낸’ 경험이 거의 없다. 지극히 예외적 사례로 아하곤 쇼우코 씨가 이끈 이에지마 기지 반대 투쟁 등 오키나와 기지 투쟁 정도가 있었고, 최근에는 헤노코 기지 건설 반대투쟁이나 다카에 지구의 헬리포트 건설 반대 운동이 여기 해당한다. 미국의 공민권 운동은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으로 시작되어 수많은 비폭력, 직접 행동을 통해 진전되어 왔다. 민주주의가 단지 ‘선거’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민주주의는 오직 사람들의 끊임없는 ‘운동’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연좌시위 같은 ‘비폭력. 직접’ 행동이 포함된다." (<노 헤이트 스피치>, 47쪽)

인종주의자들을 한 대 패기 위한 ‘시바키’ 부대, 재특회를 향해 “너희는 쓰레기”라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플래카드 부대, 그리고 재특회 시위 행렬 안으로 들어가 연좌하여 가로막는 ‘싯-인’ 부대에 대해 신오쿠보 한인타운의 한인상인들 중에는 “너무 과격하다”. “재특회와 다를 바 없다.” “시위가 두 배로 늘었다”며 불평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주류 언론도 카운터 시위의 ‘과격함’과 시위현장의 ‘혼란’을 부각시켰다. 그럼에도 ‘카운터’ 운동으로 인종주의자들의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일어났고, 정치권까지 움직여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까지 제정하게 되었다.

‘카운터스’는 그 이름과 활동방식, 주류언론의 비난 내용까지 ‘미러링’ 전략으로 ‘일베’의 헤이트 스피치에 대항한 ‘메갈리아’와 비슷하다. 의제와 성격에서 다른 점이 많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논쟁과 설득’ 모델이 아니라 ‘대항 전투’ 모델에 따라 헤이트 스피치에 맞선다는 것이다. 우파 정부의 방조 하에 활개 치는 민간 파시스트(인종주의자) 조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그들처럼 전투적으로 움직이는 ‘카운터’ 부대의 타격이 필요하다. 그래야 혐오세력의 활동을 마치 아무 문제없는 양 방조해 오던 경찰과,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의 주류가 그들의 헤이트 스피치를 ‘문제시’ 하고, 대처 방안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말로 타이르거나 논리로 설득시켜서 될 일이 아니다. 헤이트 스피치를 일삼는 자들에게는 강력한 카운터 펀치가 필요하다. 논쟁과 설득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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