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동자 시신침탈, 경찰-삼성 공모 없이 가능했을까

두 차례에 걸쳐 10분 만에 대규모 경력 투입, 시신과 유골 빼돌린 경찰

검찰이 삼성 노조파괴 문건 수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삼성전자서비스 염호석 열사 시신침탈 사건의 진상 또한 밝혀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은 경찰이 대규모 경력을 동원해 시신과 유골함을 빼돌린 경우여서, 검찰의 수사 범위가 경찰과 삼성의 유착 의혹으로까지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12 신고전화 후 10분 만에 3개 중대 투입, 시신 탈취
신고자 신원 파악조차 없이 경력 투입...경찰 “대비했었다”


삼성전자서비스 염호석 열사는 지난 2014년 5월 17일, 강릉시 해안도로 인근에 세워진 승용차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는 유서를 통해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달라”로 밝혔다. 다음 날인 18일 새벽 1시 30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임원과 염호석 열사의 부친 등은 그의 시신을 강릉의료원에서 서울의료원 강남분원으로 옮겼다.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까지만 해도 장례절차와 관련해 지회와 친부의 이견은 없었다. 친부는 ‘장례절차에 관한 모든 권한을 금속노조에 위임한다’는 위임장을 작성하고 서명하기도 했다. 그날 새벽 6시 30분, 친모도 서울의료원에 찾아와 노조에 교섭권한을 위임하겠다고 서명했다.

갈등이 발생한 것은 18일 오전부터다. 친부는 오전 10시부터 약 1시간 40분가량 자리를 비웠고, 돌아온 뒤 노조에 권한을 위임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노조가 알지 못하는 사이 염습이 이뤄졌고, 부친은 시신을 부산으로 옮기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노조가 부친을 설득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노조와 부친의 이견 대립 도중, 경찰이 대규모 경력을 투입해 시신을 탈취했다.

[출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경찰이 대규모 경력을 투입한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112 신고’ 접수다. 그날 오후 6시 10분 경, 112종합상황실에 최초 신고가 들어왔다. ‘서울의료원 강남 분원에 유가족이 노조한테 갇혀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의 신고였다. 신고 접수를 받은 경찰관은 ‘경찰관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과 10분 뒤, ‘경찰관’이 아닌 약 300명 가량의 경력 3개 중대가 현장을 덮쳤다. 이에 반발하는 조합원들을 상대로 캡사이신을 발포했고, 25명을 연행했다. 당시 부친이 경찰 측에 3차례에 걸쳐 철수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오후 7시 55분 경, 경찰은 시신탈취에 성공했다.

사건 이후, 경찰이 삼성과 사전에 시신 탈취를 공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실제로 경찰 측은 신고 접수 이전부터 사건에 ‘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사건 발생 약 한 달 후인 5월 22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이인성 당시 경찰청 차장 등으로부터 사건 관련 보고를 받았다. 당시 이인성 차장은 “처음 강릉서부터 노조원들 다수가 여러 그런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노조 측 주장과 부의 주장이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서울로 오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저희가 대변을 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와 친부사이에 이견이 발생하기 전인 17일 경부터 이미 갈등을 예견했다는 말이다. 아울러 이 차장은 “대비를 하고 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만약 경력 투입이 ‘112 신고’에 근거한 것이라 하더라도 문제다. 당시 경찰은 최초 신고자의 신원조차 파악하지 않았다. 그날 비공개 간담회에서 이 차장은 최초 신고자에 대해 “염호석의 외삼촌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염호석 열사는 친모와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채 살았고, 친모는 노조에 장례절차를 모두 위임한 상태였다. 당시 이 처장은 “(최초신고자가 계모의 형제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최초 신고자가 계모의 형제인지, 아니면 제3의 인물인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경찰이 신원 파악 없이 대규모 경력을 투입한 셈이다. 이 자리에서 은수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외삼촌이라는 분이 장례절차가 진행 안 된다는 전화 한통에 강남서와 서울청의 경찰병력 300여명이 투입된 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 아니고,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화장장 직원’ 신고전화 10분 만에 2개 중대 투입, 유골함 탈취

이틀 뒤인 5월 20일에는 경찰이 유골함을 탈취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그날 오전, 노조 조합원들이 수소문 끝에 밀양시공설화장장에서 염호석 열사 시신을 화장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오전 11시 30분 경 조합원들이 밀양화장장으로 모였다. 친모도 화장장으로 도착해 아들 유지에 따라 노조가 장례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에도 ‘112 신고’를 근거로 대규모 경력을 투입해 유골함을 빼돌렸다.

이날 112에 최초 신고를 한 인물은 다름 아닌 밀양화장장의 장의담당 직원이다. 그는 자신이 “장의담당자인데 노조원들이 못 가게 막고 있다”고 신고했고, 경찰은 “경찰관을 보내주겠다”고 답했다. 신고 11분 뒤인 오후 12시 6분, 이번에도 2개 중대 약 350명의 경력이 투입됐다. 경력이 투입될 당시 노조 조합원 및 관계자들은 고작 30명 내외였다. 당시 친모는 “유골이라도 내게 전달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경찰은 부친을 앞세워 다시 유골함을 탈취했다.

[출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112신고 접수로 10분 만에 대규모 경력을 꾸려 투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또 다시 경찰과 삼성의 사전 공모 의혹이 일었다. 장하나 전 민주통합당 의원이 경남경찰청으로부터 받은 경력 투입 현황 등에 관한 답변서에 따르면, 경찰은 ‘112 신고를 받고 밀양상황 대비중이던 경력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당시 밀양 송전탑 투쟁에 대비하고 있던 경력을 밀양화장장으로 배치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밀양 송전탑 투쟁이 벌어지던 장소와 밀양화장장까지의 거리는 27km, 차로 약 4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당시 화장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경찰버스는 경남지방경찰청 제1기동대와 창원중부방범순찰대 차량이다. 경남청 제1기동대가 위치한 곳에서 화장장까지의 거리는 53km, 차로 약 1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다.

박정환 전 장하나 의원실 비서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18일과 20일 경찰의 대응은 비정상적이었다. 112신고 후 경찰차 출동은 아무리 빨라도 5분 이상이 소요된다. 하지만 한 개 경찰에서 유치할 수 없는 대규모 경력이 10분 만에 도착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특히 화장장은 밀양시 외곽에 위치해 있다”며 “당시 우리는 삼성과 경찰이 협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경찰은 계속 ‘신고에 따라 움직였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설명했다.

그 날 밀양 화장장에서는 오전 11시 55분 최초 신고 이후에도, 총 7차례의 신고가 더 있었다. 그 중 4건은 친모와 이모(친모의 동생)이 신고한 전화다. 하지만 경찰은 ‘장례 절차를 노조에 위임해야 한다’고 요구한 친모의 신고에는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다. 경력 투입 이후인 오후 1시 40분 경, 경찰은 지회 조합원에게 캡사이신을 무차별 살포했고 친부와 경찰 등은 유골함을 들고 화장터를 빠져나갔다. 이와 관련해 경남경찰청은 장하나 전 의원 측에 “112 신고와 부의 경찰보호 요청에 따라 경찰조치 하였으며 유족과 경찰은 별도의 어떠한 합의도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사건 지휘는 관할서인 밀양경찰서 서장이 맡았다.

밀양경찰서에 당시 상황을 묻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4년 전 일이라 그 당시 담당자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발령받았다”고 밝혔다. 경남경찰청 측은 “홍보실을 통해 질문을 전해달라”고 밝혔다. 현재 경남경찰청 측에 당시 투입된 경력이 어느 장소에 대기중이었는지, 11분 만에 2개 중대가 투입되는 것이 통상 가능한 일인지, 부친과 모친 사이에 이견이 있었음에도 경력을 투입해 부친에게 유골을 인수토록 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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