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상’ 받은 1세대 시민운동가 박원순, 그 이면의 기록

[이슈] 2006년 시민사회 성폭력 사건, 침묵한 민주화 세대

[출처: 김용욱]

직장 내 성희롱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인권변호사

비서 성추행 의혹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원순 전 시장은 90년대 ‘여성운동가’로 이름을 알렸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1993년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 특히 서울대 우 조교 사건은 국내 최초로 제기된 직장 내 성희롱 소송이었다. 그는 외국의 직장 내 성희롱 개념을 처음 국내로 도입한 변호사였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 문제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전문가였다. 또한 여성 인권 문제에 있어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을 피력해 온 시민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1994년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변론 당시, 그는 “성희롱을 당한 대부분의 여성들이 대인혐오 증세를 보이는 등의 질환으로까지 발전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든 형편”이라며 “보이지 않는 상처가 유형적인 상처보다 더 심각하고 오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① 직장 내 성희롱을 “업무상의 위력을 갖고 근무조건을 담보로 원하지 않는 성적, 공격적 행위를 지속하는 것”이라고 정의했고,② 남성들에게 “성에 대해 분별을 잃는 것이 남자로서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치명적인 인격적 결함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③ 충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가해자뿐 아니라 고용주에게도 직장 내 성희롱의 책임을 물었다.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재판은 가해자의 500만 원 벌금형으로 승소했지만, 박 전 시장은 이를 ‘반쪽짜리 승리’라고 평가했다. 가해자의 과오 인정에만 그쳤을 뿐, 가해자를 고용했던 고용주의 책임이 응징되지 않았다는 비판이었다. 이와 함께 “소송은 최후의 극단적 구제방법이므로, 남녀고용평등법에 고용주가 성희롱 방지책을 강구할 의무규정을 두고, 고용주는 ‘성희롱에 대한 사규’를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여성 단체와 함께 각종 여성 관련 소송 변호사로 활동했고, 여성의 지방의회 참여를 위한 시민사회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 여성의 전화’에서 이사를
역임했고, 여성민우회 고용평등본부 공동대표로도 활동했다. 이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19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다. 당시 여성운동상 수상자는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공동변호인단인 박원순, 이종걸, 최은순 변호사였다.

1998년,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박원순과 이종걸

시민운동에서 굵직한 역사를 써 내려간 박원순 전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그리고 2020년 7월까지 국내 최장기 서울시장으로 재임했다. 그의 이름은 민주당 차기 대권 후보로 자주 오르내렸다. 그의 다음 행보는 ‘대권 도전’이 될 터였다. 하지만 그는 지난 7월 10일 새벽, 숨진 채 발견됐다. 박원순 전 시장의 비서였던 A씨가 그를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직후였다. A씨 변호인은 박 씨가 집무실에서 피해자의 신체를 밀착해 셀카를 찍고, 무릎에 입술을 댔으며, 음란한 문자와 속옷 차림의 사진을 전송하는 등 피해자를 성적으로 괴롭혔다고 폭로했다. 시장과 비서라는 위계 속에서, 위력에 의한 직장 내 성추행은 장장 4년간 지속됐다.

그와 함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던 이종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 시장 사망 이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울시라고 하는 거대한 단체를 균형 있게 해나가시는 데 심적 노고가 많았을 것”이라며 “그런 상태에서 만약에 그 피해자, 피해고소인이 주장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비정상적인 긴장 상태가 계속된 상황 속에서 내적인 평정심이 좀 균형을 잃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인권문제, 국가보안법을 사실상 폐지시킨 가장 큰 공로자도 박원순 시장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간의 공로와, 유일한 재산이었다는 100억 원대 건물을 기증한 사연 등을 털어놓았다.

이종걸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자신의 트위터에 박근혜 당시 의원을 ‘그년’이라 지칭해 논란을 일으켰다. 해당 표현이 문제가 되자 ‘그년’은 ‘그녀는’의 줄임말이라거나 ‘그녀는’의 오타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는 “표현이 약하다, 더 세게 하지, 이종걸이 너무 무르다는 말씀을 해 준 사람도 있었다”고 발언했고,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실수는 했지만 그 말을 그냥 그대로 두고 싶었던 생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④ 지난해 말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마음이라며 황교안 전 대표를 ‘교안 오빠’라고 지칭해 논란을 일으켰다.

‘미투운동’ 지지했던 박원순, 그가 영입한 참모

박 전 시장은 서울시장이 된 후에도 여성 문제에 있어서는 과거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를 냈다. 미투운동을 지지했으며, 성평등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면서 “82년생 김지영의 슬픔이 서울에는 없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8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우 조교 사건’이라고 칭한 기자에게 “우 조교 사건이 아닌 신 교수 사건”이라고 핀잔을 줬다는 일화도 있다. 모 언론은 “박 시장의 말은 철저히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라며 이 일화를 소개했다.⑤

한편으로 박 전 시장은 안희정 전 지사의 측근이자,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인물을 자신의 전 참모로 영입했다. 지난 4월, 박 전 시장은 정무직 인사 교체 당시 소통전략실장으로 장훈 전 충남도 미디어센터장을 임명했다. 장훈 전 실장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메시지팀장과 안희정 캠프 홍보기획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2018년 3월,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터지자 안 전 지사와 함께 사표를 냈다. 그리고 해당 성폭력 사건 1심 재판에서 “피해자가 지사님을 많이 좋아해서 일을 더 열심히 했다”, “그래서 (피해자가 보직이 변경됐을 때) 상심이 더 컸을 것”⑥, “안 전 지사는 민주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 “얼마 전만 해도 편하게 얘기했던 사람 (김지은 씨)이 어떻게 갑자기 우리를 ‘소통 못하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갔다”⑦ 등 피해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

박 전 시장이 사망한 후로는 정무직 인사들에 대한 책임론도 나오고 있다. 일명 ‘6층 사람들’로 불리는 이들이 피해자의 호소를 외면했고, 성추행을 은폐했다는 의혹이었다. 일부 언론은 성폭력으로 구속된 안희정 전 지사와, 성추행 혐의를 받고 사망한 박원순 전 시장을 연이어 보좌한 장훈 전 실장을 ‘비운의 참모’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2006년 시민사회 성폭력 사건의 기록, 침묵한 민주화 세대

박원순 전 시장은 2006년에 발생한 ‘시민의 신문’ 성폭력 사건의 중심에도 있었다. 그해 시민단체인 희망포럼 여성 간사는 ‘시민의 신문’ 이형모 사장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발했다. 피해자는 이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고, 며칠 뒤 이 사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튿날 열린 임시이사회는 이 사장의 사퇴 처리를 연기했다. 이후 열린 이사회에서도 “사표를 수리할 정도의 사안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와 사표를 반려”한다고 결정하더니, 곧바로 다시 이사회를 열어 “본인의 사퇴의사가 강력해 대표이사 및 이사직 사표를 수리한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이틀 뒤 이사회는 이 사장이 차입한 부채와 시민의 신문이 소유하고 있던 재외동포신문의 주식을 상계처리하며 이 사장의 부채를 정리했다.⑧ 이로써 재외동포신문은 시민의 신문에서 분사했고, 이형모 사장은 현재까지 재외동포신문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반면 시민의 신문은 이듬해 서버와 사무실이 일방적으로 폐쇄됐고, 직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다.

[출처: 김용욱]

박원순 시장은 성폭력 사건 당시, 시민의 신문 이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시민의 신문’은 시민사회의 정론지이자 시민단체 공동신문을 표방하며 1993년 창간한 매체다. 박원순 전 시장을 비롯한 시민운동 진영의 대표적 인물들이 이사 혹은 편집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⑨ 당시 이사진은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당시 여성연합 공동대표),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송보경 소비자리포트 대표 등이었다. 그리고 박원순과 정현백, 이학영, 최열, 송보경 등은 성폭력 피해자가 근무한 단체인 ‘희망포럼’의 상임운영위원이기도 했다. 이형모 사장은 희망포럼의 운영위원장이었다.

이 사건은 이형모 사장이 성희롱 사실을 부인하고, 시민의 신문 직원들을 상대로 형사고소와 1억 8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제기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하지만 박원순 전 시장은 이 사장의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했다. 당시 성폭력공대위 활동을 벌였던 조한진희 활동가는 “이형모 사장은 시민사회단체에서 갖고 있는 직위와 인맥이 상당히 많았다. 박원순 전 시장은 이형모와 시민의 신문, 희망포럼 등을 함께했다”며 “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이사회 자리에서 박원순 시장이 침묵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간접적으로 가해자를 보호했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소위 시민운동의 명망가들이 포진한 단체인 만큼,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시민사회진영의 지지와 연대도 쉽지 않았다. 사건을 무마하려 했던 이사진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정현백 전 장관은 2007 년 언론 인터뷰에서 해당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올해는 대선까지 있는 해인데, 이 사건이 자꾸 쟁점화 되면 그 부분(시민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당시 공대위는 성명을 통해 “이형모를 비롯한 이사회 인사 대부분은 이른바 시민운동 1세대 그룹들이다. 그런 이들이 시민의 신문 이형모 전 사장의 성희롱 사건과 시민의 신문 사태 과정에서 보여준 처신과 행동은 오늘날 시민운동의 현실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며 “시민운동 1세대가 내부의 부도덕과 자기 식구 감싸기 등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⑩ 한편 박원순 전 시장은 지난 2014년, 이형모 재외동포신문 대표와의 대담에서 “서울시가 대외동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적극 돕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성누리당’을 비판했던 민주당, ‘권력형 성폭력’의 반복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집권여당이던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은 갖가지 성폭력 사건으로 ‘성누리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보수여당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과 미흡한 재발방지 대책을 비판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지 3년 반. 이제 집권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연이은 성폭력 사건에 휩싸이며 ‘더불어만지당’, ‘더듬어민주당’ 등의 오명을 얻게 됐다. 과거 보수당을 향했던 ‘낮은 성인지 감수성’과 ‘미흡한 재발방지 대책’에 대한 비판은 오롯이 민주당의 몫이 됐다.

안희정 지사와 오거돈 시장, 정봉주 의원을 비롯해 이재현 구청장, 민부기 구의원, 유승현 전 의장, 그리고 박원순 시장까지. 권력에 오른 정치권 인사들의 ‘권력형 성폭력’은 예외 없이 반복됐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당은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제명으로 무마해 왔다. 안희정 전 지사는 성폭력 폭로 당일 출당 및 제명됐고,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당 윤리심판원 회의 20분 만에 제명됐다. 연이은 성범죄 사건이었지만 진상조사나 재발방지대책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피해자를 위한 활동이나 2차 가해에 대한 보호조치 또한 없었다.⑪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효율화를 이유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폐지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가위를 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 통폐합시키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난 7월 14일에는
당 대표의 운신의 폭이 제한된다며, 당 최고위원 구성에 30%여성 할당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각주>

① ‘우조교 성희롱 사건’ 무료변론 반원순 변호사 “남성들 의식부터 변해야죠”, <한겨레>, 1994.10.11
② “남성도 성희롱 표적”, <경향신문>, 1994.4.20
③ 인격결함의 산물 ‘성희롱’, <한겨레> 1996.2.29
④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 국회의원 이종걸 징계안(의안번호 제1122호), 2012.10.12.
⑤ “우 조교가 아니라 신 교수” 박원순의 이유 있는 ‘핀잔’, <오마이뉴스>, 2018.3.20.
⑥ “김지은이 도지사 좋아했다”는 안희정 측근, <노컷뉴스>, 2018.7.11.
⑦ 김지은 안희정, 또 다른 증언...또 다른 반전?, <이뉴스데일리>, 2018.7.11
⑧이형모 없는 시민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시민의 신문 투쟁 경과 (2006.9.5.~2007.4.29.)
⑨ <시민의 신문>을 둘러싼 몇 가지 궁금증, 김형진, <월간 사람>, 2007.7.9
⑩ 이형모의 형사고소와 <시민의 신문> 이사회의 짝퉁 주총 강행 규탄한다!, 시민의 신문 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2007.2.23
⑪ 민주당의 성폭력 사건 대응...‘아묻따’ 제명은 옳은가?, <참세상>, 2020.4.30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윤지연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