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제로시대 선언 4년, 우리는 여전히 비정규직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33)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투쟁이야기④

기쁨은 잠시, 그대로 비정규직으로 남아

“정규직전환 의지 없는 한국가스공사 규탄한다!“

“정규직전환 의지 없는 채희봉은 사퇴하라!”

“비정규직 정규직전환 대통령이 책임져라!”


6월 5일 오전 서울 마포대교 위. ‘문재인 대통령은 정규직전환 약속을 지켜라’라고 적혀있는 노란색 몸자보를 입은 한국가스공사(사장 채희봉)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행진한다. 한국가스공사 대구 본사와 전국 생산기지·지역본부 등에서 청소·시설·특수경비·전산·홍보 등의 업무를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공공운수노동조합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지부 소속) 현재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고 있는 업무는 원래 정규직이 하다가 1997년 IMF 이후 외주화(용역) 한 것이다. 매년 계약서를 새로 써야 하는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삶을 살아왔다.

이들은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한국가스공사 평택기지본부~안산 경기지역본부~서울지역본부~청와대 까지 가스 배관망을 따라 300리(118km)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6월 1일부터 매일 20~30km를 걸으면서 한국가스공사 경기본부와 국회 앞 등에서 노숙을 하고, 마지막 날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하는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역시 6월 1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인천국제공항공사 자회사·용역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이 날 한국가스공사 노동자들과 만나 함께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도 이날 도보행진에 함께 한다.

  마포대교 위를 행진하고 있는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 [출처: 연정]

그동안 우리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용역회사가 바뀔 때마다 이번에도 일 할 수 있을까 매일 불안에 떨었습니다. 물가가 오르고 국가에서 정한 임금이 올라도 임금이 오르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로 비정규직의 삶이었습니다. 비정규직의 삶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국가스공사 담당자의 말 한마디에 일자리를 잃어야했고, 물가가 올라 월급을 올려달라고 해도 한국가스공사가 예산을 올려주지 않으면 월급이 오르지 않는 그런 삶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더 이상 일자리가 불안하지 않고 비정규직이라고 월급 차별을 받지 않는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고용을 안정시키고 차별적인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뻤습니다. 더 이상 가스공사 담당자의 눈 밖에 났다고 실업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국가에서 결정하는 시중노임단가가 인상되면 월급도 자동으로 오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희망을 갖고 가스공사와 협상하고 투쟁해왔습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로 남아있습니다. 비정규직으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송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여성노동자의 목소리에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희망, 절망이 담겨있다.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2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2017년 7월 정부가 발표한 상시·지속 업무 종사자의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고용 할 것을 요구하며 20일 간의 파업을 진행한바 있다. 당시 대구지역 코로나19 확산으로 부득이하게 파업을 마무리하고 나서 오랜만에 거리에서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난다. 4월 30일부터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천막농성도 하고 있다고 한다.

고령 노동자들이 하는 미화 업무가 청년선호 일자리?

한국가스공사는 2017년 11월부터 지난해 7월 까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논의하기 위해 16차례의 노사전문가협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까지 정규직 전환 방식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사장이 3번 바뀌고, 노사전문가협의회 사측위원이 5번 바뀌었다. 사장이 공석이었던 시기도 있었다.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었을 리 없다.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안정만 보장되는 무기계약직, 흔히 말하는 ‘중규직’에 불과한 직접고용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한국가스공사 정규직 전환에 관한 그간의 논의 과정은 지난하다. 처음에 한국가스공사는 (생명·안전 업무인)소방·파견을 제외한 전 직종 자회사를 주장하다가 2019년 말 전 직종 직접고용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러면서 오랜 기간 젊은 사람들이 지원조차 하지 않았던 고령의 노동자들이 해온 미화·시설 등의 일자리를 청년선호 일자리라며 공개경쟁 채용을 하겠다고 했다. 또, 용역업체 65세 정년을 60세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회사로 가면 정년을 65세로 해준다고 했으니 애초부터 한국가스공사는 직접고용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고 볼 수 있겠다.

공개경쟁채용과 정년 60세 협박이 통하지 않자 지난해 2월 7일 한국가스공사는 다시 입장을 바꾸어 소방·파견을 제외한 전 직종에 대한 자회사 전환을 주장하며 직접고용은 회의 자리에서 얘기하지도 않겠다고 했다. 정규직 노동조합인 한국가스공사지부가 직접고용을 반대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후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시중노임단가 적용 등 처우개선과 고용안정이 보장된 자회사 안에 대한 검토 의사를 밝히자 회사는 시간 끌기와 말 바꾸기로 일관한다. ‘자회사만 받아들이면 시중노임단가도 호봉제도 다 해줄게’라고 했던 가스공사는 막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논의 의사를 밝히자 자신들이 했던 말을 다 뒤집었다. 자회사 전환 시 한국가스공사와의 교섭 구조를 마련하는 안에 대해 ‘훌륭한 안’이라고 했던 한국가스공사는 언제 그랬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올해 4월 이후 한국가스공사 정규직 전환 논의는 중단된 상태다.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 사측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담당자가 바뀌어서...’ 와 ‘기억이 나지 않는다’였다. 그래서 회의록을 들이밀면 ‘개인 의견일 뿐이다’,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이번 도보행진 4일차가 되던 날, 한국가스공사 노사전문가협의회 사측 단장이 찾아와 빠른 시일 내에 17차 노사전문가협의회를 열자고 이야기 하고 갔다. 노동조합에서는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에 관한 안을 제시했지만, 이 또한 도보행진 투쟁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될지 사측이 어떤 안을 들이밀지 알 수 없다.

  2020년 2월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지부 파업 당시 대구 한국가스공사 본사 로비 집회. [출처: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지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4년을 싸웠는데, 가스공사는 시간끌기만 하고 전환을 안 해주고 있잖아요. 노사전협의회(노사전문가협의회)를 16번 했는데, 몇 번 하다보면 인사발령으로 인해 사측 위원들이 자꾸 바뀌어요. 바뀐 상태에서 다시 노사전협의회를 재개하면 처음 듣는 소리다 이거죠. 새로 시작하게 되고, 또 새로 시작하게 되고. 그렇게 4년이 흘러온 거죠. 조합원들이 다들 너무 힘들다보니까 자회사 방안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만약 자회사로 가게 될 경우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에 대한 확답이 있어야 하거든요. 제가 볼 때는 공사는 자회사 전환도 꺼려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정부는 좋은 취지의 정책을 만든 건데, 공사는 좋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거저먹으려는 식의 직접고용’을 해준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근무 때문에 마지막 3일 동안 노숙하며 도보행진을 했는데, 너무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에 어금니 꽉 깨물고 끝까지 완수하자 했어요. 정말 사측과 제대로 얘기라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걸어왔어요.” (박성덕, 인천생산기자 소방·안전 업무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자 절반을 해고자로 만드는 공개경쟁채용

어렵게 휴가를 내고 3일 동안 도보행진에 참여한 박성덕 씨는 인천생산기지에서 7년 동안 용역업체 소속으로 소방·안전 업무를 해왔다. 성덕 씨는 화재 시 대피 업무와 화재대응 훈련, 안전사고 방지, 하역·방호 대기, 기지 내 소방시설물 작동점검, 외부 협력업체 안전교육 등 화재·안전과 관련된 많은 중요한 업무들을 하고 있다. 심지어 성덕 씨는 한국가스공사 정규직 직원들에게 매달 소방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소방· 안전 업무는 책임감과 사명감, 기관에 대한 이해와 경험 없이는 할 수 없는 업무로, 원래는 정규직이 하던 업무였다. 그런데 2010년 한국가스공사는 생명과 안전에 관한 중대한 업무를 외주화해서 용역업체에게 맡겼다.

“생명·안전 업무인 소방직하고 파견직도 공개경쟁채용을 하겠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근무한 게 있으니 가산점 5%는 줄 수 있다. 이유를 물으면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간다고도 하고, 다른 어디 어디도 경쟁채용을 했다고도 해요. 청년선호 일자리라는 이야기도 하고요. 근데 그건 둘째 문제인거 같고요. 가장 큰 문제는 공사 직원들이 반대한다는 거예요. ‘거저먹기 식 직접고용’을 납득하지 못한다. 특히, 젊은 노동자들이 전환 채용은 절대 안 된다고 반대를 많이 해요. 우리는 힘들게 취업 준비해서 어렵게 입사했는데, 소방대는 생명안전 직군이라고 가만히 근무하다가 전환채용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다. 시험을 봐라. 그런 거죠. 우리는 직접고용 하게 되면 별도 직군과 별도 임금테이블을 만들어서 운영하게 될 건데, 나중에는 본인들하고 임금이 똑같아질 거라고 생각을 하더라고요.” (박성덕)


‘비정규직 정규직전환 가이드라인’에는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한 업무는 기관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소방·안전 업무도 여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한국가스공사 역시 그동안 소방·안전 업무의 직접고용 원칙을 이야기해왔다. 그럼에도 소방·안전 업무의 정규직 전환에서 조차 4년 내내 합의점을 못 찾고 있다.

  6월 1일, 한국가스공사 평택기지본부 앞에서 도보행진 출정식에 참여한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 [출처: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지부]

많은 공공기관이 고용노동부의 ‘정규직 전환 관련 채용비리 방지를 위한 지침’(2018)에 언급된 채용비리 예방과 청년선호 일자리의 공정한 기회 부여를 이유로 생명·안전 업무 직접고용 전환 시 공개경쟁채용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오랜 기간 해당 업무를 해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한국공항공사는 정규직 전환 시 기존 근무자들에게 근무 기간에 따라 5~10%의 가산점을 주었지만, 절반에 가까운 40%에 달하는 기존 비정규직 노동자는 해고자가 됐다. 인천국제공항과 한국공항공사 직접고용 채용 과정에서 탈락해 해고자가 된 노동자들이 노동위원회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통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지만, 각 공사는 해고된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고 재심 청구를 했다. 한국가스공사도 이 길을 가겠다고 고집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다들 불안해

“우리가 먼저 직접고용 해달라고 한 게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 직접 인천공항 가서 비정규직 제로시대 선언하고, 정부가 가이드라인 만들고 정규직 해주겠다고 한 거잖아요. 생명 안전 분야는 직접고용을 한다고 한 거고요. 그러더니 갑자기 공개경쟁채용을 하겠다면서 원래 일하던 비정규직들을 내몰려는 것으로 밖에 안 보입니다. 이럴 거면 그냥 놔두지...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는 용역이지만 소방 설비 자격증도 있어야하고 소방차 운전도 해야 하기 때문에 나이 있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공사에서도 경력자를 원했으니까요. 소방학과 나온 분들도 많고 자격기준이 까다롭죠. 그분들이 정년퇴직을 하면서 신입직원이 젊은 사람들로 바뀌고 있는 추세이긴 한데, 그래도 자격 조건이 되는 경력자를 뽑기 때문에 보통 30대 이상은 돼요. 생산기지가 다 바닷가 근처라 자차로 출근해야하고 밥도 사비로 사먹어야 하거든요.

전에는 10년 이상 근무한 분이 절반 이상은 됐는데, 오히려 가이드라인 이후에 근무조건이 점점 안 좋아지다 보니 사람들이 계속 이직하고 있는 상태에요. 요즘 지원자가 없어서 한 명 나가면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요. 회사는 젊은 사람을 뽑고 싶어 하지만, 그 사람들 여기 지원 안합니다. 지금은 분명 청년선호 일자리가 아니고 사람 한 명 구하기도 힘든데, 직접고용이 되면 청년선호 일자리가 되고 몇 백대 일 경쟁률이 되겠죠. 청년선호 일자리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어요. 원래 있던 노동자들 내쫓고 새로운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걸까요? 지금 소방 노동자들은 직접고용 안 될 수 있겠다는 생각 많이 해요. 다른 공사에서 공개채용 떨어지는 거 보니까 남 일 같지도 않고.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 다들 불안해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박성덕)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이 쓰여 있는 깃발을 들고 도보행진 하고 있는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 [출처: 연정]

한국가스공사는 2017년 7월 이후 입사자들은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라며 선을 긋고, 이들의 거취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은 이들 노동자들까지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에 상시업무 노동을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던 자리에서 그대로 정규직이 돼 고용불안 요인을 제거하고 처우를 개선한다는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의 취지가 무색하다.

인천공항공사에서 20년 동안 소방대 근무를 해온 베테랑 노동자가 직접고용 공개경쟁채용에서 탈락하는 일도 있었다. 이 노동자의 질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대답을 할까?

“문재인 대통령님이 2017년 5월,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하지 않으셨더라면 어땠을까요?” (매일경제 3월 20일)


※ 본 기사는 <노동과 세계>와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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