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의 개인화가 아닌 손실의 사회화가 필요하다

[요즘 경제] 금리인상과 가계부채의 위기


빨라진 금리인상의 위협

금리인상 이슈가 전 세계적인 화두다. 미국 중앙은행이 예상보다 일찍 금리 인상을 개시하고, 그 횟수도 기존의 공표했던 것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발언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쪽에선 이를 두고 10년 넘게 진행돼온 완화적 통화정책의 시대가 저물고, 긴축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는 신호탄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선 고용 확대에 무게를 둔 기존의 기조는 유지하면서 최근 급등한 인플레이션에 맞대응하려는 조치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실제 미국 중앙은행 수장의 발언은 후자에 더 가까웠다. 무엇이 맞든 간에 금리 인상 신호는 오랫동안 초저금리 상황에 익숙했던 몇몇 현실에 조금씩 파열을 내기 시작했다. 한국은행 역시 이에 맞춰 금리 인상을 시작했고, 앞으로 몇 차례 더 인상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시중 대출 금리가 오르기 시작했는데, 그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 예상된다.

한국은행은 현재 코로나 위기 이전 수준까지 금리 수준을 되돌린 상황인데, 앞으로 더 올릴 계획을 하고 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지난 십여 년 동안 계속해서 낮은 저금리 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에, 최근 금리 회귀 현상을 두고 완화적 통화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는 분석은 섣부를 수 있다. 하지만 금리 인상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금리 숫자가 오른 것에만 있지 않다. 원금에 금리를 곱해야 이자가 계산된다는 것은 모두 아는 상식이다. 그래서 원금 자체가 많으면 금리가 낮아 보여도 매달 갚아야 할 이자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위기 이전과 비교하면 민간부채 중에서 특히 가계부채가 매우 큰 폭으로 상승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영끌족’이라는 말이 회자할 정도로 빚을 내서 부동산, 주식,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붐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했다. 현재 가계부채가 1,800조 원을 넘었는데, 이는 GDP 대비 100%대 수준으로서 OECD 국가 중 1위다. 그뿐만 아니라, 이자만 내는 대출 비중이 80~90%로, 미국의 50%보다 훨씬 높다. 즉 원금상환 시기가 도래할 때 대출만기 연장과정에서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이 큰 폭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런 통계지표를 볼 때, 현 가계부채 수준은 모든 객관적 상황이 동일하게 유지될 때 겨우 현상 유지가 가능한 아슬아슬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보통 자산 대비 부채비율 따져 부채의 위험도를 평가하는데, 문제는 자산 가격이 예상치 못한 하락에 직면하게 되면 부채비율이 급속도로 높아진다는 점이다. 이러면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보다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바로 은행들의 원금상환 압박이다. 이 장면은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봤던 모습이다.

금리인상의 파급력은 매우 차등적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매우 심각한 상황을 가정한 것뿐이다. 현재 대중의 자산이 대부분 몰려 있는 부동산 가격이 갑작스레 하락하진 않을 것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파생금융 상품의 연쇄 부도 사태 때문에 미쳐 손쓸 시간 없이 위기가 매우 심각해졌지만, 지금은 그런 연쇄 부도 사태가 벌어질 만한 객관적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위기는 항상 취약한 지점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금리 인상의 여파가 어디서부터 위기를 전파해 나갈지 살펴보고, 누가 그 고통과 가장 심각하게 마주하는가를 짚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가령 부동산 가격이 수억씩 올랐는데 불과 몇천만 원 떨어진 게 대수냐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수억씩 올랐다는 것은 그것을 그 가격에 샀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높은 자산 가격에 구매한 사람에게는 과거에 올랐던 건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떨어질 게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과잉부채로 형성된 가격이라면 더욱 위험하다. 부채가 늘어도 소득이 함께 늘어 자산 가격 하락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에게, 금리 인상으로 인한 위기 전파의 파급력은 매우 차등적일 수밖에 없다. 가처분소득대비 가계부채비율은 박근혜 정부 말기부터 급상승하다가 코로나 사태를 지나면서 다시 폭등했다. 현재 200%가 넘는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자산, 소득 모두 감소하면서 부채만 늘어난 계층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바로 코로나 위기를 2년 동안 가장 심각하게 마주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이다. 이들에게 지원된 현금성 자금이 매우 미비했다는 점은 모두 인정할 것이다. 그들은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대부분 빚으로 메우며 버텨왔다. 또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해 폐업한 사례도 매우 많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더라도 이 위기 속에서 차곡차곡 쌓인 빚은 해결되지 않는다. 100조 원 손실보상 같은 실질적인 채무 탕감 계획이 없다면 회복은 불가능하다.

가계부채 위기의 장기화

현상 유지를 잘하면서 안정화하는 것이 가계부채 대책의 정답이라고들 말한다. 말은 참 쉽다. 그런데 현상 유지가 가능한 계층은 고신용, 고소득의 자산가들이고 그렇지 못한 계층의 부채는 현상 유지조차 힘들다. 속된 말로 쥐어짜면서 근근이 버터야 한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 내내 사회적 문제가 됐던 ‘푸어족’ 이야기가 다시 소환될 가능성이 커졌다. 당시 ‘국민행복기금’이라는 기관을 만들어 악성 부채에 시달리는 개인을 구제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했었다. 또한 국가가 상환 능력을 상실한 개인들의 부실채권을 액면가 이하로 싸게 사들여, 이를 소각하자는 사회적 운동도 벌어졌었다. 채권시장에서 거래된 부실채권들이 불법추심업체들로 넘어가면서, 이들로부터 오랫동안 고통당하는 사례가 사회적 문제로 비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에도 이런 정책이나 사회적 제언을 두고 한쪽에선 모럴해저드와 같은 논란을 제기하면서 가계부채에 국가재정을 동원하는 것을 비판했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아마 똑같이 논란은 반복될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듯 빌려준 정책자금을 계속 만기 연장해 주면서 근근이 버텨 가도록 만드는 경제적 ‘안락사’의 굴레 속에서 가계부채의 위기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악성 가계부채가 늘지 않도록 사전에 관리하고, 국가가 국가재정을 통해 정책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10년 넘게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할 때, 가계부채를 통해 내수가 부양되는 현상이 방치되지 않도록 해야 했었다. 박근혜 정부 중반부터 시작된 ‘빚내서 집 사라’는 금융완화 기조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세금정책으로만 대처한 것은 한계적이었다. 이후 집값 급등 현상을 겪으면서 여러 조치를 내놓았지만 이미 글로벌 차원의 초저금리 시대 속에 ‘빚투’ 열풍을 잠재우긴 힘들었고, 뒤늦게 대출 억제와 금리 인상으로 대처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 위기가 몰고 온 양극화 속에서 ‘벼락 거지’라는 엉뚱한 신조어까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한편에선 빚으로 하루하루 연명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빚으로 안락한 미래를 꿈꾸고자 하는 열망이 분출하는 기이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손실의 개인화가 아닌 손실의 사회화가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이런 문제가 해소돼온 방식은 상황이 점점 악화해 사회적 위기 수준으로 치달을 때까지 방치하다가 선별적 접근과 손실의 개인화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이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자영업자 손실보상 이야기 나온 지 1년이 넘었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다. 그 이유는 손실보상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기준을 잡는 것에서부터 여러 이해 당사와 정책 수립자들 사이에 갈등과 인식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라며 매번 고통 분담을 강조했지만, 2년 동안 한쪽만 고통받게 되면서 이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국가재정을 동원한 위기 대응이 선제적으로 과단성 있게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 사후적으로 불거진 가계부채 문제에 대응하기 곤란해진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코로나 위기 당시 국가부채를 대폭 늘려 국가재정을 통해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대신 가계부채는 크게 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정반대였다. 국가부채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스스로 족쇄를 채워 위기 대응의 폭과 깊이를 충분히 만들지 못했다. 결국 위기에 처한 개인들은 빚을 통해 그 위기로 인한 삶의 공백을 메웠다. 다른 쪽에선 고신용 고소득자들이 완화적 통화정책의 수혜 속에서 위기를 자산획득을 위한 투자의 기회로 삼았다. 지난 2년 동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기이한 양극화 현상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동안 가려져 있던 이 양극화의 후과가 앞으로 벌어질 금리 인상 시기를 맞이하여 점점 사후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사후약방문일 순 있어도 이제 손실을 사회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가령 태풍과 폭우 때문에 도로가 유실되고 가로수가 뽑히는 재난이 발생하면 이 손실을 개인이 메우지 않는다. 우리가 코로나 사태를 재난으로 규정한다면 이로 인한 삶의 고통과 손실을 사회화하는 방향으로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계채무자에 대한 대출만기를 상당 기간 연장하고, 코로나 위기 속에서 소득감소가 명확히 확인되는 개인에 대해서는 과감한 채무탕감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이 난무하는 대선, 이것이야말로 확실한 행복 공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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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매우 심각한 상황을 가정한 것뿐이다. 현재 대중의 자산이 대부분 몰려 있는 부동산 가격이 갑작스레 하락하진 않을 것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파생금융 상품의 연쇄 부도 사태 때문에 미쳐 손쓸 시간 없이 위기가 매우 심각해졌지만, 지금은 그런 연쇄 부도 사태가 벌어질 만한 객관적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위기는 항상 취약한 지점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금리 인상의 여파가 어디서부터 위기를 전파해 나갈지 살펴보고, 누가 그 고통과 가장 심각하게 마주하는가를 짚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 독자

    "빚투" 표현을 미투운동 폄하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사용해 유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