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민중재판 릴레이 인터뷰 6] 박경석 장애운동가

전쟁은 사회적 약자의 노력과 희망을 부숴버리고 있다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하나이기에 우리는 싸웁니다"

박경석 대표를 찾아가 만난 뒤 거의 한 달 가까이가 지났다. 당시 박경석 대표는 국회 앞에 천막을 쳐 놓고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이미 정립회관 민주화를 위한 농성이 130여일 가까이 계속 되던 때였고, 그것과 관련해서 대표는 경찰서에 체포되어 들어갔다 나온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욕창이 심하다고 했다. 그 몸으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니…….

전범민중재판과 관련해서 기소장을 들고 인터뷰를 받으러 다녀야겠다 하고 생각을 하게 해준 분이 바로 박경석 대표였다. 한참 기소인 운동을 시작하던 10월 초, 장애여성공감의 연극팀에서 무대에 올린 연극을 보러 갔다가 박경석 대표를 만났다. 물론 그 때도 대표는 정립회관에서 60일을 넘기며 농성 중이었다. 먼저 얼굴을 알아보신 대표님께서 "그거 전범민중재판 운동은 어떻게 잘 되고 있어요?" 하고 인사를 건네오셨다.

지금 알다시피 사활을 걸고 있는 싸움들이 얼마나 많은가? 당시에도 그런 것은 충분히 예상되고 있었고, 어떻게 전범민중재판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다른 주제 운동이나 영역 운동과 연대하는 속에서 힘을 받을 수 있게 할까가 고민이었다. 그러던 때 박경석 대표를 만났던 거였고, 박경석 대표가 보자마자 건네는 인사를 들으면서, 그렇다면 각 주제 운동과 영역 운동에 사활을 걸고 있는 그 분들을 찾아다니며 기소장 받는 일을 하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한 거였다.

한 달 가까이 지나 대표 님을 괴롭히며 나눈 이야기를 이제서야 올린다. 내가 대표님을 찾아간 날은 국회 앞의 농성 천막들 (국보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 장애인이동권 및 교육권)이 전경의 침탈을 당한 다음 날이었다. 그 날은 대표 님을 만나러 온 이들이 많았고, 바로 중요하게 회의에 들어가셔야 했기에 그 날은 그대로 돌아왔다. 아래 농성장 하루 총화 발언은 이 날 담아온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찾아갔을 때 대표 님은 유기홍 의원을 만나러 가느라 농성장을 비우고 없었다. 이 날은 비가 제법 내린 날이었다. 날이 다 저물고 밤이 되어 대표님이 농성장으로 돌아왔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그대로 대표님의 승용차 안에서 인터뷰를 했다. (대표님의 차는 발로 밟는 브레이크나 클러치가 따로 없고 손으로만 조작할 수 있게끔 되어 있는 자동차다.)

아래는 그 날 대표님과 나눈 긴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기도 했지만 그건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여서 뺐다. 그것 말고는 가능한 한 토씨까지 그대로 옮기려 했다.


……그중 장애인의 문제는 여전히 정말 소수자의 문제이고, 정말 약한 자의 소리, 그리고 그들이 단지 보살펴주는 상태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거리를, 그러한 굉장히 큰 격차를 보면서 좀 더 우리의 투쟁이 조직화되고 더 넓어져야 되고 이것들이 우리를 무시하지 말게 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의 투쟁의 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앞으로 더, 아마 더 질긴 투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전히 수박 겉핥기식으로 그들은 이야기하고 있고, 이것들이 장애인의 교육받지 못하고 이동하지 못하는 이 현실이 얼마나 처참한 현실이고 노동하지 못하는 이, 그래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쓰레기로 살아가야 하는 이러한 인생들이, 얼마나 안타깝고 악랄한 차별 속에서 장애인의 삶들이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이어지는지에 대한 부분들에 대해서 저들은 그 심각성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장애인이 떨어져 개죽음으로 끝났습니다.

항상, 누구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는 대중교통에서 장애인이 떨어져 죽는 그러한 사실들을 보면서 그 죽음을 개죽음으로 받아들여야하는 우리의 이 힘없는 현실에 대해서 슬프지만은 여기서 멈출 수 없기에 더 큰 투쟁을 더 조직하고 그렇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투쟁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언론의 문제도 큰 것 같습니다. 깜빡하고 깜짝쇼를 하고, 이렇게 해서 우리를 잠깐 보다가 이젠 식상해지는 모양입니다. 그 식상함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제 다시 그것들이 언론의 본질이 무엇이고, 정말 힘이 무엇이고, 우리가 질기게 투쟁해야 하는 과제들을 안고, 뭔가 깜짝쇼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우리 하나하나 우리의 주변을 조직하고 더 큰 투쟁으로 만들어가고, 그리고 저들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어야할 과제가 지금의 이동법안 법률을 쟁취하고, 교육예산 확보하고, 노동권 확보하는 투쟁의 현안 과제보다 더 중요하게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투쟁이 끝까지 같이 함께 하실 수 있겠습니까?

투쟁!!

예, 동지들께, 우리가 참으로 농성 들어오고 난 뒤 이제 하루 총화들을 하고 그렇게 합니다. 굉장히 우리가 좀 조직적이지 않고 체계적이지 않은 모습들인데 제 바람은 누가 봐주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한두 명이 있더라도 규칙적으로 지키고, 그리고 여섯 시에 너랑 나랑 두 명이 있더라도 좀 서로 총화하고 나누고 서로의 동지적인 애정을 나누면서, 앞으로 12월 3일까진데 굉장히 길게 갈지 모르겠지만 아마 국회 파행이 나면 더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겨울을 여기서 보내야할지 모르니까 좀 사람의 숫자가 적더라도 좀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규칙적으로 진행하면서 이렇게 같이 투쟁의 공동체로 만들어서 투쟁의 공동체를 만들어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투쟁) 그리고 오늘 일곱 시에 전체회의가 있습니다. 전체회의에서 결론 나겠지만은 더 강고한 투쟁을 조직해서 깜짝 놀라게 해야되는지는 잘 모르게지만 하여튼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예, 구호로 정리하겠습다.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장애인 차별 철폐하자. 장애인 차별 철폐하자.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


-국회 앞 단식 농성 10일 째 되던 날 하루 총화 집회 발언 가운데에서)

“이거 왜 아까보다 조금 밖에 안 줘요?”

- 이거 진하면, 너무 진하면 먹기가 좀 그렇지 않아요?

“나는 단 게 좋은데.”

(웃음)

- 저기… 지금 유기홍 의원 만나고 왔다고요?

“유기홍, 유기홍 의원이 동작 쪽이거든요.”

- 그죠, 예. 열린우리당. 프랭스네 지역구라고 했는데. 그럼 동작이 아니라 관악이다, 프랭스가 관악이니까.

“그 사람 뭐 운동했다고 그러던데. 운동했던 친구라고.”

- 의원 쪽에서 먼저 대표님 만나자고 연락이 온 거예요?

“그렇지는 않고 어저께 인권 단체 연석 회의에서 이부영 의장 면담 있었거든요. 인권의 여러 가지 현안들, 국보법, 비정규직 그리고 또… 과거사 청산, 군의문사, 국가인권위원회 요번에 또 새로 2기 출범, 이런 인권 현안 중에 장애인 이 문제 하나가 있어 가지고 참여했죠. 그래서 이부영 의장이랑 이야기하면서 여러 가지 현안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니까 시간이 짧으니까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고 구체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국지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때 이부영 의장이 참여를 했으니까, 아니 이부영 의장의 옆에 배석을 한 친구가 유기홍이고, 여러 사람 배속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교육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더라고요.”

- 아, 유기홍 의원이요? 그러면 주로 오늘 나눈 이야기는 예산권에 대한 거였어요?

“예, 장애인 교육문제, 그거 가지고 이야기했고, 건설교통부 지상버스 문제도 의무화 문제는 자신은 찬성한다, 그렇게 해결해야할 문제인데 일단은 교육위이니까 건교위 의원 소개시켜준다.”

- 아, 소개시켜 줄 거다 이런 약속…

“아니, 소개를 해서 전화번호 받고 내일 연락을 해서 만나…….”

- 소개받은 의원은 누구에요?

“아까, 이름 기억…… 아, 의원들 이름 모른다고 쫑크 주던데 내가 의원들 이름을 어떻게 알아? 내 이름도 잘 기억 못하는데. (명함을 꺼내면서) 윤호중.”

- 윤호중? 이 사람도 열린우리당 의원이지요?

“예, 열우당, 열린우리당.”

- 그래서 뭐 장애인 교육 예산에 대해서 유기홍 의원이 긍정적인 답변 준 게 있어요?

“우리가 요구한 것들은 이제 아, 국가인권위원회 농성하면서 교육부가 합의한 사항들이 있거든요…”

- 아, 올 7월.

“그 때 올 7월에 합의한 사항에서의 예산 문제가 있어요…”

- 육 프로, 그때도 육 프로였나요?

“육 프로는 이제, 교육예산 대비 육 프로는 장기적인 과제고, 지금 일쩜, 교육 예산이 일쩜 몇 프로밖에 안되는데, 지금 일쩜 몇 프로밖에 안되는데 내년도에 당장 육 프로 하려면 뭐, 일쩜 몇 프로에서 바로 육 프로를 달라 그러면 누가 해주겠어요.”

- 제가 어디 요구안을 보니까 육 프로라고 되어 있어서요.

“응, 그거 육 프로는 이제 그런 비전들을 제시하라, 향후 몇 년 후면 육 프로로 확보하겠다 라는 공약 사항으로서 약속을 받는 거지, 내년도 목표가 아니죠 뭐. 내년도 목표가 되면 좋은데 그만큼 힘이 없잖아요.”

장애인에게 교육권은 생명입니다. 이것이 욕심입니까?

- 그래서 올 인권위원회에서 합의했던 사항에 대해서…

“그런데 이제 그것들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예산이 육십억이에요. 최소한의, 현실적으로 가능한 예산. 방과 후 교실이나 그리고 또 보조 교사 확보나 성인 야학에 대한 지원이나 요런 몇 가지 항목들에 대한 것들을 내년도에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육십억으로 맞췄던 것이고, 그 육십억 교육부에서 짜서 올렸는데 기획예산처에서 다 날아가 버린 거죠. 그래서 그것들이 날아갔기 때문에 교육권 연대 같이 농성하고 있는 것이고,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그럴 수 있느냐? 교육 관료, 그 국회의원 이야기하는 게 당정 협의가 있고 당정 협의 때 그런 것들을 마치 해 준 양 선전을 했는데, 실질적으로는 다 짤려 버렸으니까 어떻게 된 거냐? 뭐 이렇게 서로 그것들에 대해 설명하고, 의원 자신도 그러한 문제들을 충분히 공감을 하니까 교육 예산 문제에 대해서는 살릴 수 있도록 교육위원회, 상임위원회 하면 육십억 정도는 뭐 살릴 수 있지 않겠느냐 하고, 이동권 문제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갑갑해 하죠 뭐.”

- 유기홍 의원이 그렇게 대답해준 거요, 뭐 문서로 남기거나 한 거는 아니지만 구두로나마 그렇게 약속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대표님이 보시기에는 어때요? 오늘 이야기하는 모습 보니까 믿을 만 한 거 같았어요?

“(웃음) 국회에 가 가지고 국회의원하고 그런 자리를 만들어 처음, 이야기해본 적이 없으니까…….”

-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말 바꾸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그러잖아요.

“그거는 뭐 여러 가지 핑계를 대겠죠. 어떤 자신의 힘의 한계, 자신은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주변의 조건들이나 뭐 이런 것들이 이제… 만약에 안 되면 그럴 것이고, 만약에 되면 뭐냐 그럴 건데, 일단은 내가 바라보는 부분들에서 이제 그 육십억, 그 교육 예산의 육십억 그거는 이제 큰 정치적 사안이나 어려운 문제는 아니거든요. 한 명의 이제 뭐, 몇몇의 이제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육십억 정도는, 그거는, 국가 예산 다루고 있는데, 총 예산 규모가 얼만데 육십억에 대한 문제는 아주, 그거는 이제 너무나, 내가 보기에는 진짜 의지가 있으면 할 수 있는 문제고 정말 이것마저 안하면 개똥이죠. 진짜 나쁜 놈이죠.”

- 교육권 투쟁 관련해서는요, 요 가까이 10월 22일이던가 경남 도교육청에서는 경남 장애인교육권연대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합의를 했다,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그 투쟁 과정에서 부모님 세 분이 삭발을 하면서 천막 농성을 하고 그랬다 하기도 하고요. 그러면 이 합의의 내용은 어떤 거예요? 말 그대로 정말로……

“그랬죠, 그런데 아주 구체적인 사항들에 대해서는 제가 잘 잘 기억을 못하고, 예산을 갔다가 내년도 예산을 백오십억 정도 늘리겠다. 이런 얘기거든요.”

- 경남도에서만요?

“경남도에서만. 특수 학급도 사십 학급을 늘리겠다. 여기는, 서울시 교육청에는 지금 뭐 논의하고 있는데 두세 학급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경남도에서 사십 학급을 내년도에 늘리겠다고 약속한 것은 규모가 서울에 비하면 쨉도 안 되는 규모인데, 그렇게 까지 약속을 하는데 서울은 뭐 아주 이제……”

- 그러면 경남 지역에서 이룬 합의의 내용은 정말 엄청난……

“경남 지역이 열심히 투쟁을 많이 하는 고장이라서. 싸우면 그냥 도지사가 알아서 해준데요. (웃음) 서울 정서하고는 굉장히 다른 모양이지?”

- 그래도 일단 경남에서 이 정도의 성과를 이루어냈으면 이런 문제가 서울이나 다른 도, 다른 지역에 영향이 미치게 될 텐데, 하나의 선례가 돼서

“그렇죠. 그런 것들을 가지고 계속 이제 서울도 천막 농성 시작하는 것이고 울산에서도 하고 있고, 대구에서도 또 들어갔고 이렇게 계속 들어가고 있어요. 지자체 같은 경우가 이제 교육 예산 같은 경우에가 중앙 예산도 중요하지만은 지방 교육청의 재량이 굉장히 많이 있거든요. 지방 교육청에 대한 싸움이, 지자체 싸움이 굉장히 중요하지요.”

- 그런데, 제가 잘 몰라서 다시 여쭙는데요, 아까 유기홍 의원 만나서 교육 예산 얘기하던 것이 육십억 하는 얘기했는데 지금 경남 얘기에서는 백오십억을 늘린다 이랬단 말이죠? 그럼 그 육십억은 서울시 예산을 얘기한 거였나요?

“아니에요.”

- 그러면 전체 예산에서 육십억이라고요?

“예.”

- 아, 그럼 정말 얼마 안 되는 거구나. 몇십억 몇십억 하니까 이게 얼마나 되는 건지 감도 없고 해서……

“저는 예산 체계에 대해서 잘 모르겠는데, 기본적으로 이제 지방 교육 예산이 있어요, 이게. 지자체로 넘어간 교육 예산이 있는 것이고 그리고 이제 예산을 나눌 때, 중앙에서 나눌 때 교육부에서 나누고 각 지자체로 다 주고 거기서 자율적으로 짜거든요, 또. 근데 요거는 이제 요 싸움만 하라고 지방으로 내릴 돈이죠. 그러니까 그냥 일반적인 교육 예산으로 지방으로 내려가면 지방에 맞게끔 교육 예산을 짜거든요. 그러니까 장애인 교육에 관심 있는 도지사는 예산이 높은 것이고 관심이 없는, 투쟁이 없는 곳은 굉장히 낮고 이런 형태거든요. 그래서 지방 교육청 싸움이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지금 국회 싸우는 것은 그거와 더불어 진짜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서 중앙 예산으로 짜서 그걸 목적으로 내리라 하는 거죠. 그러면 목적 사업으로 내리면 거기에다만 쓰는 거죠. 그걸 딴 교육이나 일반 교육 예산에 쓸 수 없는 거죠. 그런 목적 예산을 갖다가 잡는 투쟁이에요.”

노들 장애인 야간학교 2003 해오름식


- 얘기를 하다보니까 교육권에서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요. 사실은 지금도 육십억, 백오십억 하면서 억억 이러거나 아니면 교육 예산 몇 프로 몇 프로 하면서 얘기를 하니까 피부로 잘 와 닿지는 않는데요, 장애인 교육권을 이야기 하는 데에 있어서 장애를 가진 분들이 교육의 부분에서 겪는 아픔이나 힘겨움이 어떤 데에서 어떻게 가장 큰지 들어보고 싶거든요. 물론 장애인 분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것이 교육권 뿐 아니라 이동권도 있고, 노동권도 있고 많지만 그 가운데에서 교육을 놓고 이야기를 한다면요.

“그래서 저는 노들 장애인 야간 학교를 하는 것이고, 11년이 됐죠, 이제.”

- 11년? 94년부터…

“93년부터 개교했고, 교사 활동은 94년부터 했고. 교사 활동하다가 열심히 이제 여러 두루 주요 내각들을 다 거치면서…”

- 집행부? (웃음)

“저희 야학에 오는 학생들이 거의 다 성인이고 교육받지 못했던 장애인들이고, 그렇죠. 그들은 교육받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전부 다 이제 집이 가난하거나 교육받아서 장애인들 쓸 데가 뭐 있겠는냐? 하는 뭐 이런 것들. 당연히 그 나이 때에는 장애인이 교육받는 문제에 대해서 의무 조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특수교육진흥법이 만들어지고 1994년도에 장애인들에 대한 의무교육이 중앙에 들어간 거거든요. 초등학교 중학교에 대한 의무교육. 1994년, 1994년 내 줄까지 쳐 놨다. 1994년도 특수 교육법 전면 개정을 통하여 장애 학생 교육은 초등학교 과정과 중학교 과정의 의무 교육을 명시했어요.”

- 그러면 의무 교육이라 하면 의무적이라는 건데 그 교육을 안 받으면 벌금을 내거나 하나요?

“초등학교 나왔죠?”

- 네.

“초등학교를 안 다녔으면 부모님이 처벌받죠?”

- 네.

“그렇죠, 그렇게 되야죠.”

- 그럼 시행이 되고 있어요, 이 법이?

“94년도에 이런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의무교육으로 하고 법적으로 명시했는데 그런데 여전히 국가에서는 10년이, 94년이면 10년이 넘었잖아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이 법을 지키고 있지 않고 있는 거예요.”

- 아아, 어쩐지 이상하다 해서요.

“의무 교육을 했지만은 의무 교육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이 얼마 없는 거죠."

- 수용할 수가 없다? 교육 시설 자체가?

“그쵸, 장애 아동의 교육 수혜율은 22.3%에 불과하대요. 갈 학교가 없어요. 학교가 없고, 특수 학급이 없으니까. 의무 교육이라고 하지만은 장애 아동 취학률 22.3%만 배우고 있는 거죠. 그럼 나머지 70% 이상 은 의무 교육이라 하지만은 초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이죠. 이런 문제 들이고. 학급이 없어서 학교가 없어서 초등학교에 의무 교육으로 규정하지만은 의무 교육의 법적인 적용이 아니라, 학교에 가고 싶어도 학교가 없어서 가지 못하는 그런 현실인 것이고. 그래서 이제 장애 통계를 보면 51.6%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상황에서 통계에 의하면. 그래서 이제 늙은 나이에 20년, 30년 집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나오고, 이제 처음으로 야학에 나온 사람들, 이제 야학을 통해서 20년, 30년 돼서 처음으로 나오면서, 야학을 통해서 사회화 과정을 처음 겪는, 사람의 관계, 사람을 만나서 사귀는 방법들을 배우는 것이고.”

- 그럼 지금 장애안 교육권에 있어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것이 이것이다 라고 한다면 뭐가 될까요? 학교를 만드는 거? 학급을 늘리는 거?

“그렇죠. 그런데 그건 먼저라기보다 다 동시의 문제인데 특수 학급을 확보하는 것이고 교사를 확보하는 것이고 그리고 또, 조기 교육에서의 문제점들, 특히 장애 아동과 같은 경우에는 보다 빠른 장애에 대한 진단과 이런 것들을 통해서 조기 교육시키면 좀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리는데 조기 교육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들이고, 조기 교육 같은 경우에도 3살에서 5살까지 3만 명 가까이가 조기 교육을 해야 되는데 기껏 수용할 수 있는 유치부하고 유치원들, 특수학교 유치부, 특수학교 유치부가 있고 사설 유치원이 있고. 이런 유치원과 유치부, 일반 학급 거기에서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2004년도에는 3050명밖에 안된대요, 3만 명 가까이 되는 장애 아동이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 일단 가장 시급한 거는 특수 학급, 학교…

“예, 학교를 늘리는 문제고 교사를 확보하는 것이고, 이런 문제들이 중요한 문제고 그리고 이제 교육받지 못했던 성인 장애인에 대한 교육 문제들을 해결해야 되는 것이고…….”

-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건 뭐니뭐니해도 예산, 역시 돈이겠어요.

“그렇죠, 그걸 하려면 다 돈이 드는 건데 돈이 문제죠.”

- 죄송해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지금 장애인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교육의 부분에 대해 좀 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장애인 교육을 생각했을 때는 장애를 가진 이들이 저마다 장애의 내용이나 정도가 다르잖아요. 장애라고 다 똑같은 장애가 아니라 청각 장애, 시각 장애부터 정신 지체 장애, 지체 장애, 그러면 교육이 그런 장애마다 다 다르게 이루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어떤가 몰라서요. 그래서 저마다 필요한 개별 교육이나 맞춤 교육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면…….

“그래서 특수 학급 같은 경우, 지금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이제 정신 지체 장애인들이 지체 장애 같은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통합 교육이 가능한 것이고, 일반 학급에 들어가면 되는 거죠. 특수 학급에 들어갈 필요는 없는데 뇌성마비나 이런 부분들이 특수 학급 쪽으로 많이 가고 있고, 청각 장애나 시각 장애 같은 경우에는 특수학교, 시각 장애만 가르치고 있는, 청각 장애만 가르치고 있는 이런 쪽으로 많이 가고 있고, 정신 지체 같은 경우에 특수 학급에 많이 가고 있고…….”

- 그러니까 예를 들면요, 노들 야학을 떠올리다 보니까 제가 그 의문이 들었거든요, 야학에서는 학생들이 어떻게 모여 공부를 하나 그 그림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요.

“그러니까 노들 야학은 그렇게 전문적으로 가르쳐줄 수 있는 교사들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 통합 교육이 가능한 지체 장애인과 뇌성마비 장애인만 가르쳐요.”

- 으응, 지체라면 정신지체 장애인?

“아니요, 아니요. 지체 장애인.”

- 아아, 그러면 신체 지체 장애인, 뇌성마비 장애인.

“청각 장애 같은 경우나 시각 장애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 조건이 안 되기 때문에, 청각 장애인을 가르치려면 기본적으로 수화를 다 해야 하는 것이고 시각 장애인을 가르치려고 하면 어떤 점자 교육이나 이런 것들이 가능해야 하는데 야학 같은 경우가 일반 학생들, 대학생들 자원 활동을 통해서 하기 때문에 그런 교육은 불가능하죠.”

“94년도에 이런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의무교육으로 하고 법적으로 명시했는데 그런데 여전히 국가에서는 10년이, 94년이면 10년이 넘었잖아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이 법을 지키고 있지 않고 있는 거예요.”

“94년도에 이런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의무교육으로 하고 법적으로 명시했는데 그런데 여전히 국가에서는 10년이, 94년이면 10년이 넘었잖아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이 법을 지키고 있지 않고 있는 거예요.”

- 아까 대표님 말씀에서 그렇게 거의 뭐 50%도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서야 야학에 나오면서 사회화 과정을 겪는다 했는데 이런 성인 야학이 노들 장애인 야학 말고도 얼마나 더 있어요?

“전국에 한 열다섯 개 정도 있어요.”

- 그럼 서울에는?

“서울에는 한 서너 개 있어요.”

- 그럼 지금 노들 장애인 야학에는 학생하고 교사 수가 얼마나 돼요?

“교사는 한 열다섯 명 정도에서 왔다갔다 하고 학생은 한 삼십 명에서 삼십 다섯 명 사이에서 왔다갔다 해요.”

- 저는 처음에 솔직히 말해서 노들 장애인 야학을 보면서 정말 학교 맞나, 정말 수업을 하기도 하나, 이 학교는? 그랬거든요. (웃음) 그러니까 그게 다른 뜻이 아니라요, 노들 야학을 생각하면 공부하는 것보다는 뭐랄까 이동권 투쟁 같은 그런 쪽으로 먼저 떠올라서 그렇거든요. 지난겨울에 야학에 얹혀서 지낼 때에도 제가 수업 시간에는 안 있어 보고, 계속 이동권 투쟁 준비하는 모습, 그런 것만 봐 가지고요. 그래서 혹시 앞으로 야학을 지향하는 운동 단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웃음) 그러면 노들 야학에서는 어떤 커리큘럼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분반을 해서 학생들하고 공부를 하고 있어요?

“수업하죠. 수업은 당연히 하고, 한글도 못쓰고 있는 한글도, 산수도 모르는 한글반부터 있어요. 이름은 ‘우리반’이라 그래 가지고 ‘우리반’이 있고, 초등학교 과정의 검정고시 ‘청솔반’이 있고, 중학교 과정의 검정고시 ‘불수레반’이 있고, 그리고 또 고등학교 과정의 검정고시를 하고 있는 ‘한소리반’ 이렇게 있죠. 이렇게 네 개 반이 있고, 월요일부터 금요일 네 시 반부터 열 시까지 수업을 해요.”

- 그러면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게 된 것에 대해 어떤 얘기를 많이 해요? 학생들의 반응이나 소감 그런 거요.

“뭐라고 많이 하기는 뭐…… 연애하기 바쁘고 술 먹기 바쁘고.”


- (웃음) 와아, 재미있다. 그러면 지금 커플은 몇 커플이나 있어요?

“모르겠어요. 깨졌다 헤어졌다, 이 사람 좋아했다 저 사람 좋아했다, 여기 찔러 보고 저기 찔러 보고.”

- 아아, 그렇구나. 그럼 연애 상담도 교장 선생님이 많이 해주세요?

“아유, 연애에 대해서는 최고 꼴찌예요. 야학에서 썸씽이 일어나면 제일 늦게 아는 게 나고, 현장에 있는 교사들이 많이 알죠. 그런 거 가지고 많이 술 먹고 이야기하고.”

- 대표님은 83년에 행글라이딩으로 장애를 입게 되셨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 뒤에 거의 10년이 지나, 93년부터 야학을 함께 하셨는데 대표 님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이 야학에 함께 하게 되셨어요?

“그게, 내가 이제 88년도에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 들어갔고, 83년도에 다치고, 그리고 그때 만났던 장애인들이, 88년도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의 동문 선배가 있는데 그 선배가 서울장애인올림픽을 거부하는 투쟁을 했던 소위 장애인 운동계에서 운동권이죠. 운동을 했던 사람이고 그 사람이 우리 동문이었고, 그 사람이 장애인들을 열심히 조직하기 위해서 이제 동문회 자격으로 많이 왔죠. 많이 와서 이제 열심히 데리고 나가 가지고 술 먹이면서 뭐 세상은 이렇게 아니야, 뭐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술 열심히 얻어먹다가 아 그렇구나! 그래서…”

- (웃음)

“…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출신 중에서 소위 운동권이 된 장애인들이 그 선배하고 정태수라고 하는 내 동기하고 나하고 세 명이 이제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출신의 장애인 운동계의 운동권이었죠. 그래서, 장애인 운동을 보면 이제 86, 87 이때 장애 운동의 역사들을 보면 청년 장애인들이 막 조직되고 그때 장애 문제를 계급적으로 바라보면서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면서 진보 쪽, 계급적 장애인운동을 해나가면서 투쟁들이 벌어지는 시기였는데 86, 87. 많은 출신들이 지금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정립회관 출신들이 많아요. 거기는 소아마비 출신, 소아마비 장애인들이 많고 그들은 이제 중학교 고등학교 때부터 선후배 관계로 엮어져 있어 가지고 그런 인맥들이 쭉 형성되어 있는 동아리 써클들 중심으로 해서 장애인 활동가들이 많이 있는 것이고, 나는 이제 중도 장애고 서울장애인복지관의 동문 형태로 이제 장애 운동의 활동가로 이제 있는 것이고. 그렇게 보면 좀 장애 운동 내에서도 그쪽에 있는 사람들이 20년이 지난 지금에서 장애 운동에서 일정 정도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고, 여권에 잘 붙어있고 지금 뭐 옛날의 386형태처럼 장애인 계에서 이제 정보 파트너로서의 이런 권력들을 다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돼 버렸죠. 그런 계통에 있는 친구들이고. 나 같은 경우에는 이제 싹틈이고, 그 때 이제 우리 동문회가 ‘싹틈’이고, 싹이 튼다 해서, 맨날 동문회 이름을 ‘싹틈’이라 지어 놔가지고 싹트다 말고 싹트다 말고 이제 동문회는 없어졌는데 (웃음), 그런데 그 출신중에 장애인 올림픽을 점거했던 선배가 박흥수라는 형인데, 장애 운동하면서 빈민 운동을 같이했던, 청계천에서 노점상 투쟁을 같이 했던 선밴데, 그 선배도 결국은 죽었고…”

- 돌아가셨어요? 어떤…

“결국은 빈민의 삶을 살다가 술 때문에 죽었죠, 술을 너무 많이 먹어가지고 죽었고. 정태수는 또 같은 동긴데 같이 싹틈 출신의 같은 동기인데 그 친구도 활동하가다 과로 때문에 죽었죠. 우리 싹틈 출신 중에서는 혼자 남았죠. 그 형이랑 태수랑 속해 있었던 단위가 ‘장애운동청년연합회’에요. 그게 이제 싹틈 출신 우리들하고, 우리는 몇 명 없었죠, 세 명밖에 없었고, 아까 이야기했던 주류들 정립회관 출신 주류들이 조직했던 청년들이 있고, 장애운동청년연합회가 90년대, 장애 운동의 계급적인 성격들을 가져가면서 민중 운동과의 연대들을 통해서 장애 운동을 확장시켜야 한다 하는 입장들을 가지고 활동했던 조직이었는데 그것이 이제 활동가 재생산에서 막히면서 통합하게 돼요. 좀 열심히 잘 먹고 노는 이제 친목적인 전국 조직을 가진 ‘장애인한가족협회’하고 통합을 하면서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 이게 전장협이거든요. 전장협으로 통합을 하면서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활동가만 있고 대중적인 조직을 하지 못하는 이러한 형태들에서 지역 사업으로 고민한 게 장애인들을 어떻게 잘 꼬셔가지고 데모를 하게 만들어야하는데 뭘 하는 게 좋을까 싶어 가지고 조사를 해 봤더니 야학이 적당하다…”

- 그만큼 교육에 대한 요구가 많았구나.

“장애인들이 제도 교육을 받고 싶다, 그래서 야학을 갔다가 목적의식적으로 조직을 한 거죠. 저는 그 때 야학을 조직할 때 열심히 이제 공급책이었죠, 소위 얘기하는."

- 학생들을 꼬셔오는?

“학생은 딴 애가 꼬시고, 저는 91학번으로 학교를 다녔으니까 대학생을 열심히 꼬셔서 교사를 공급하는 책이였죠. 그 때 선배 하나 하고 후배 하나를 꼬셔 갖고 교사로 집어넣었더니만 하도 힘들어가지고 왜 그 블랙홀에 자기들만 집어 넣어놓고 나는 안 들어 오냐 그래 가지고 94년도 교사하기 시작했죠. 그 때 굉장히 어려웠으니까, 교사 수급도 안 되고.”

- 그러면 노들장애인야학을 하면서는, 벌써 10년, 11년, 12년이 됐는데 그 시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텐데요. 그 가운데 가장 기뻤던 얘기, 짠했던 기억, 너무 힘들어서 슬펐던 기억 같은 것을 들려주세요.

“기뻤던 거요? 하하, 기뻤던 거는…… 질문들 중에서 맨날 기뻤던 거, 슬펐던 거 이런 건데…”

- 아우, 너무 상투적이구나, 질문이?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웃음) 가장 좋은 것이, 보람되는 것이 야학에서 맨날 술 먹고, 초기에는 교사들하고 계속 술 먹고 학생들 꼬셔서 술 먹고 밤새도록 먹고 인생에 대해서 크흐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면서 인간의 정을 느끼면서 아, 마치 천 년 백 년 갈 것 마냥, 인생의 모든 것을 다 내줄 마냥 이야기하지만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현실 사회로 돌아가면 떠나버리고 마는 그런 것들에 대한 반복. 가장 허무한 것들이 대학 시절에는 휴학까지 하면서까지 하고 이랬던 것들인데, 투쟁이랄까 인간적인, 인간 사회 고민도 하고, 뭐 아주 미세한 인간 사회 문제들까지 다 고민해가면서, 생일 안 챙겨주면 삐지고부터 시작해서 이런 모든 연애의 문제, 이 사람과 이 사람의 삼각관계의 문제, 이 모든 것들을 풀어가면서 술을 그렇게 퍼마시고 해도 결국은 기본적인 장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는 장애인 당사자들도 그렇고 교사들도 그렇고 한 때 순간으로 다 지나가더라고요. 결국 그것은 조직되지 않으면 운동이라는 문제에서 야학이라는 공간이 왜 생겼고, 장애인이 왜 이렇게 교육을 이렇게 늦게 받아야 되고, 이런 것들이 단순하게 교육을 시켜주는 자기만족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로부터 파생됐던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변화시키는데 있어서 개인 간의 친함의 문제나 인간사의 문제를 다 들어준다고 그것들이 조직되는 것이 아닌 것이고, 그걸 끊임없이 이야기해야하고 그냥 뭐 한낱의 추억으로만 가버리는 그리고 많은, 이백 명 가까이의 학생들이 졸업하고, 이백 명 가까이의 교사들이 나갔다 치더라도 학교에 이제 동문회 행사조차도 나중에 오기 힘들어지는, 일 년에 한번조차도 오기 힘들어지는, 자기들의 인생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가는 것들에 대해서는 뭐… (전화받음)”

“그래서 그렇게 떠난 사람들을 볼 때는 슬픈 것이고, 이제 열심히 술 먹여 가지고 세상은 이런 것이 아니다, 뭐 이래 가지고, 노동절 때 이제 한 번 야학 학생들을 조직해서 나간 적이 있거든요. 처음 깃발을 들고 그 때가 97년도인가? 96년, 97년 이 때 아마 민주노총이 건설, 이런 투쟁들을 할 때, 이때 노동절을 맞이해서 그때 야학생들하고 같이. 하여튼 투쟁의 판에 학생들을 조직해나가는 것이 그게 가장 남는 것이고, 그리고 지금은 야학 출신들 가운데 아주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활동가로서, 맨날 지하철 점거하고 뭐 거리고 나가는 (웃음) 이런 친구들이 남는 것이 뿌듯하죠.”

- 엊그제요, 여기 농성장들이 모두 부서지고 철거당하고 그랬잖아요.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 농성장부터 국보법 농성장에 사립학교법 농성장까지. 그 때 당장 와 볼 수가 없어서 오지는 못하고 인터넷으로만 봤거든요. 인터넷에 보니까 빨리 사람들 모여 달라고 위급한 요청이 있던데요, 엊그제 상황, 그리고 그 때 선생님 심정은 어땠어요? 한두 번 겪은 건 아니지만요.

“이런 거 인터뷰하면 안 되는데…….”

- 왜요?

“난 좋았는데. (웃음)”

- 좋았다구요?

“예, 좀 당해봐야지 크지. (웃음) 두 시 반쯤 되가지고 구청 직원들이 왔고, 구청 직원과 경찰들이 오자마자 기습적으로 쫓아 나오면서 다 박살, 텐트를 다 박살내버렸죠. 경찰들이 천막 뜯어가지고 박살내버리고 전경 차 네 대가 여기 쫙 서더니만 한꺼번에 주루루루룩 줄 서더니만 갑자기 쳐들어와서 다 박살내고, 다 박살내더니 철수하기 시작하더라고. 그래서 가만히 있던 우리는 쇠사슬을 묶고 이제 저항하다가 천막 다 부서졌으니까 다시 이쪽으로 내려와서 전경 차를 잡았죠. 잡아가지고 안쪽에 있는 경찰들 못나오게 문을 쇠사슬로 다 묶어버리고 몸으로 쇠사슬로 묶어서 차가 못 떠나도록 만들어놓고 막아놓고 경찰들을 안쪽에다 집어넣어 가지고 포위시켜 버렸죠. 그걸 인질로 잡아가지고 이제 천막 물어내고 천막 다시 보장하라 하고 저녁때까지 투쟁했고, 결국은 이제 경찰이 천막 치는 것을 보장하고, 차 두 대는 풀어주고.”

- 그래도 이겼네.

“아니, 반쪽의 승리죠. 천막 값은 못 받았잖아요. 천막 값을 못 받아 가지고…….”

- 지금도 쇠사슬 이야기 나왔는데요. 평상시 농성 때는

국회 앞의 농성 천막을 경찰이 강제로 떼어내자 함께 농성중이던 장애인들이 자신의 몸을 경찰차와 함께 묶으며 강제철거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은 장애인이동권연대 투쟁국장 이규식 님.


- 지금처럼 이렇게 있다가 엊그제처럼 경찰차가 오고 뭔가 침탈의 분위기가 있거나 하면 쇠사슬을 꺼내서 몸과 휠체어를 그 자리에 묶는 거예요? 그러면 평소에도 농성하고 시위를 할 때면 늘 쇠사슬을 이렇게 준비하겠어요.

“예, 비상용으로 갖고 다니죠.”

- 사실 이동권 투쟁 하면은 제일 먼저 세 가지 떠오르는 게 꽁지머리, 쇠사슬, 그리고 또 하나는 버스타기 이 정도가 떠오르거든요.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 이 쇠사슬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거기에 기댈 수밖에 없는 절박함, 처절함을 곧 알 수 있을 텐데요,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이 볼 때에는 굉장히 낯설게 느끼기도 하는 것 같거든요. 쇠사슬이라는 게 그것만 떼어 놓고 보면 좀 섬뜩한 이미지가 있기도 하고요.

“쇠사슬을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억압일 수도 있고, 사회가 장애에 대한 억압의 표현일 수도 있고 또 반대로는 우리의 저항일수 있는 것이고, 이렇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쇠사슬이, 특히 휠체어 탄 장애인이 가지고 있다 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는 굉장히 이중적인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너무나 장애인을 불쌍하고, 약한 존재이고, 돌보아줘야 될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미화해왔고, 미화보다 치장해왔고, 그래서 자선, 사랑의 리퀘스트 뭐 이런 형태, 열심히 울고 짜고 불쌍하게 보여야만 하는, 이래야지만이 후원금을 얻을 수 있고 돈을 얻을 수 있는 그러한 대상 그리고 도와주는 대상, 그래서 시설에서 있다가 시설에 장애인들한테 가서 목욕시켜주고 빨래해주고 그러면서 좋은 일 했다 자위하고, 자신들의 착한 일을 하기 위한 자위의 대상으로 장애인을 보아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쇠사슬을 묶고 차를 멈추고 지하철로 내려가고 하니 그런 문제들에 대한 일반적인 의식, 의식의 차이들, 때문에 이것들을 보고 과격하다, 뭐 이런… 실질적으로 과격한지는 모르겠는데.”

- 과격한 게 아니라 그만큼의 절박함이죠. 절박함, 처절함.

“그들의 차별과 폭력에 대하면 아무것도 아닌, 미미한 저항일 뿐인데…….”

- 예, 그야말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 그 이상도 아니죠. 쇠사슬을 가지고 휘두를 것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몸과 휠체어를 묶어서 끌고 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뿐인데요. 그러면요, 계속해서 이동권 운동 관련한 것을 더 여쭈어 볼 게요. 아무래도 지금 정기국회 시기여서 이렇게 천막들도 국회 앞으로 모인 거잖아요? 장애인 이동권 문제도 국회에서 제대로 입법이 되기를 바라는 거고요. 그래서 장애인이동보장 법률 입안 실현을 위해서 현애자 의원이 대표 발의를 하고 17명 의원이 서명을 하고, 또 58명의 의원들이 지원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 발의는 7월에 한 거였죠?

“예, 에.”

- 또 한편으로는 건교부가 편의증진법이라는 걸 내놨다고 하는데…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 네, 그러면 지금 같은 문제에 대해 두 법안이 나와 있는 건데, 이동보장법안하고 건교부가 내 놓은 편의증진법안, 이 두 법안의 중요한 차이는 어떤 것에 있나요?

“우리가 올린 법안과 건설교통부가 정부입법안으로 내놓은 법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제 지상 버스 도입, 장애인이 탈 수 있는 계단이 없는 지상 버스 도입의 의무화에 대한 거예요. 정부입법안은 권고안이거든요. 할 수 있다는 거, 우리는 해야 한다, 그 차이죠. 그것이 가장 크고 그 다음에 그것들을 어겼을 때 처벌에 대한 강제적 조항에 대한 것이 약하냐 강하냐의 차이죠. 정부입법안은 권고 사항으로 그치지만은 이것들을 어겼을 때 굉장히 미미한 처벌 조항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러면 있으나마나한 법이 되는 것이죠.”

- 지금 대표님이 보기에는 어떠세요? 이번 정기 국회에서 입법이 될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세요?

“아마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 그래요?

“음, 그건 뭐 우리의 투쟁의 역량과 이런 문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장애인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사회적인 압력, 장애인계에 대한 문제와 이런 것들이 강 하지 않는 거죠. 정부입법안이 통과된다고 우리 사회가 정치적 영향력이나 그런 표어의 문제들이 달라질 수 있느냐 그러면 그렇지 않다는 거거든요. 또 일반 시민들은 정부가 또 그런 법률안을 통과시키면 마치 장애인을 위해서 통과 시키는, 옛날에는 없었는데 그래도 좋아졌다 하고 선전해낼 수 있는 기재와 언론들이 굉장히 많이 있는 거죠.”

- 그러면 편의 증진법이 통과된다는 건 꼭 필요한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는 결과 이상으로 그렇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는데도 마치 보통 시민들에게는 뭔가가 이루어지게 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결과까지 낳는다는 거겠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이동권 투쟁을 지지하던 시민들조차도 이제는 뭔가가 되었나 보다 하고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대한 긴장을 놓아버리게 될 수도 있고요.

“그렇죠. 시민들이 볼 때는 정부에서 해 줄만큼 해 줬는데 왜 저러나 하게 되죠. 그러한 전선이 있고, 또 하나는 재정적인 문제가 걸린다는데, 굉장히 예산 자체도 미미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크게 생각하고 있는 이러한 것들. 경제성장의 논리를 갖다 이야기하면, 현실론을 이야기할 거고, 현실론을 이야기하면 결국은……”

(이야기를 듣던 중 최병수 선생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통화를 하고 난 뒤 박경석 대표에게 바꾸어 주었다.)

“여보세요? … 예, 안녕하세요? 건강 괜찮으세요? … 류금신 동지 통해가지고 들었어요. … 아, 건강하셔야죠. 그래야지 세상을 바꾸지. … 예. … 아이 아이 예. … 건강하셔야죠. 예. … 아이고 몸조리 잘해가지고 투쟁의 현장에서 만납시다. … 예, 예. … 예.”

- 이번에는 가벼운 질문인데요, 하여튼 입법에 대해서 이렇게 뭐랄까… 조금 불안한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는데…

“아유, 국회의원들 만나보니까 암담해 하더라고요.”

- 강제 조항이 없이는 권고 조항만으로는 있으나마나한 법이다 할 때는 뭐라고 하던가요?

“개정시키려고 많이 노력하지 않느냐, 이러죠 뭐. 믿어 달라.”

- 국회 안에, 저 둥근 지붕의 집 안에 지금 들어있 있는 장애인 의원은 두 분인 거예요?

“비례 대표로 둘이고, 선출된 의원들도 있어요, 몇 명.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 같은 경우도 장애인이에요.”

- 어떤 장애요?

“그 국회의원도 내가 알기에는 교통사고 때문에 다리를 조금 저는 걸로 알고 있어요. 몇 명의 장애인이 있어요. 비례 대표로는, 그렇게 장애인계의 몫으로 한나라당의 정화원 의원하고 열린우리당의 장향숙 의원이죠.”

- 그분들의 활동, 활약은 어떤 것 같아요?

“국감에서는 잘했다고 그러데요. …… 장애인이 국회에 들어가서 성과는 있죠. 그 자체만으로도 성과는 있죠. 뭐 선전용이든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든 성과는 분명하게 있는 것이죠. 예전에는 장애인 비례대표를 하지도 않았는데 장애인 비례대표를 했다는 이런 것들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고 성과는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고.”

- 그럼 예를 들면요,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요, 이동보장 법률이나 장애인 교육 예산 같은 문제에 있어서 장애인 의원이 별로 큰 역할을 못하고 있나요? 실제적으로.

“실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의원들이, 저는 뭐 한 의원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대중적 투쟁과 힘들이 필요한 문젠데 그것들이 뒷받침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리고 장애인 의원이 국회에 진출했다 해도 실질적으로 이 이동보장 법률이나 교육위 예산 같은 경우에는 교육위원회와 건설교통부 소관이지 보건복지부 소관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장애인 문제라고 해서 장애인의 만능의 문제는 아니다. 장애인이라 해서, 보건복지부에 속해 있는 장애인이 건교위나 교육위원회에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죠.”

총선 때만 해도 각 당에서는 장애인 후보를 비레대표의 앞자리에 놓는 모습들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선심을 쓰듯 의원 몇 자리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장애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 활동, 장애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 국회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요, 질문으로 미리 준비해 온 건 아니고 지금 문득 생각이 났는데요, 415 총선 때 민노당에서 비례대표직 후보 경선이 있을 때 박경석 대표님 글이 많은 사람들한테 감동을 줬어요. 아시지요?

“글쎄, 조회수는 많았던 거 같아요. (웃음)”

- 네, 인터넷에서 여러 군데로 퍼 날라지면서, 이거 봐라, 이렇게 해야 한다, 진정으로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는 정당,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대변하려면 이래야 하는 것 아닌가, 의회 진출이 현실화 되고 있으니까 그 초심은 잃고 정파끼리의 다툼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면서 그렇게 정파적 입장으로 비례대표직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그런 경종으로 울림을 주는 글이었는데요, 그 때 비례대표 의원직을 고사하던 그 글을 쓰던 때 마음이 어땠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인데,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실질적으로 굉장히 많이 있고, 그런데 그것이 더 하찮거나 뭐 이런 문제는 아니고, 어차피 소용이 없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 하는 뭐 이런 것은 아니고.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분명히 필요한 것이고, 필요한 것인데 대중적인 투쟁들이 확산되지 않고 차별 받아왔던 대중들이 자기 현장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투쟁하는 것들이 조직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변절해 나갈 수 있고 개인적인 욕망들로 채워갈 수 있는, 우리는 다른 것보다 많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여기에서 그건 나의 선택의 문제였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한 것들은 그런 것들인 거죠.”

- 아, 그럼요. 선생님은 지금도 한 정당의 당원이잖아요, 어느 정당의. 그리고 그 정당에서 열 명의 국회의원들이 들어가 있고요. 당시 선생님이 선택을 한 것, 나는 바깥에서 대중들하고 함께 투쟁을 하겠다 하는 선택에는 나대신 원내에 들어가는 의원이 우리 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해달라 하는 요구 부탁 이런 게 있었던 건데 지금 안에 들어간 의원들의 점수를 매긴다면 얼마나 주시겠어요?

“그 이야기했다간 나중에 맞아죽지. (웃음)”

- (웃음) 성에 안 차서요? (웃음)

“어차피 열 명의 의원들도 거대한 구조들 내에서 한계들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에 안 찬다, 성에 찬다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이죠.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그런 부분에 대해 인정을 하는 것이죠.”

- 짖궂은 질문 드려서 죄송해요. 저기, 바로 얼마 전 9월 3일에 저곳 국회 후생관에서 <버스를 타자> 영화 상영을 했잖아요. 영화 상영을 하고 이 안에서 또 그 날도 쇠사슬로 묶고 국회에서 농성을 했다는 기록을 봤거든요. 아, 그 때 상황들을 제가 잘 모르는 게 저는 그 때 저기 파병반대 단식 순례를 하던 때여서 뉴스를 다 보지 못할 때였어요. 그러다 대표님 만나러 오기 전에 자료와 기사를 찾아 정리해보다 본 건데, 현애자 의원님이 여기 안에서의 투쟁에 까지는 동의를 못한다, 그만 농성을 풀고 돌아가 달라, 의회 안에서는 우리가 대신 싸우겠다, 심상정 의원님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확성기가 되어서 여러분이 해온 3년간의 투쟁을 우리가 짊어지고 나가겠다 고 했고요. 민주당의 손봉숙 의원과 한나라당의 정화원 의원도 오고 그랬는데, 그 당시 사진 한 컷을 봤어요. 그 때 현애자 의원이 농성을 풀어 달라 하는 얘기에 박경석 선생님이 아주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이었거든요. 심각할 뿐 아니라 힘들어 보이기까지 했는데요, 그 때 판단을 내리기 참 어려웠을 것 같거든요.

“경찰들하고 맞붙어서 경찰이 물러서라 그러면 아예 단호하게 거절할 건데, 이건 뭐 같은 지향을 가지고 있는, 같은 쪽에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니 그게 제일 곤혹스럽죠. 곤혹스럽고, 싸움에 대한 판단의 문제하고 어떻게 싸워야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의 문제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는 것도 확인을 한 거죠.”

- 네, 그 때 대표님 말씀 중에 가슴에 그대로 박히는 말이 있었는데요, 그게 ‘우리가 이 안에 들어오는데 3년이나 걸렸다, 이대로 나갈 수 없다’ 하고 울먹이며 하셨다는 말이거든요. 한 달도 훨씬 지나서 지난 신문으로 그 글귀를 찾아 읽는 데에도 그 말을 보는 순간 울컥하더라고요. 그러니 대표님이나 함께 싸우고 있는 분들 심정은 그 때 정말 어땠을까 싶었어요.

“농성을 지지하고 사수하고 언론화 작업을 하고 이슈화시키는 게 같이 했었다면 좀더 아름다움 싸움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걸 의원 분들도 지지하고 확장시키는 투쟁으로 가면, 개인적인 욕심은 그렇게 되었으면 좀 더 선점을 하고 장애이동보장 법률에 이런 부분에서 열린우리당 보다 선점을 하고 갈 수 있는, 그 때 그래서 국회 내에서 농성을 장기화시킬 수 있는 투쟁으로 갔으면…… 민주노동당이 파병문제 때문에 국회 내 의원 내에서 국회 내에서 농성했듯이 그런 지원들의 체계들을 만들어줬으면 훨씬 지금의 이러한 문제들 속에서도 좀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런 판단들이 다르니 그러한 문제들 속에서 그렇게 갔을 때 당이 또 가지는……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지만 압박감들이 있었던 모양이죠.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잘 이해는 못하겠지만은 그런 압박감이라면 파병 문제 가지고는 국회 내에서 농성을 하고 자리를 깔았는데 압박감을 갔다가……"

- 이동권 문제에 있어서 지금 핵심은 지상 버스라고 알고 있는데요, 지상 버스라는 것에 대해 일부러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본 사람들이나 알 텐데요, 먼저 지상 버스라는 게 어떤 건지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

“일반 버스는 이제 계단이 있고, 올라가는데 이 버스는 계단이 없는 거죠…”

- 네, 휠체어가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예, 그렇죠, 계단이 없고, 버스가 가고 서 가지고 올라갈 때는 휠체어가 오면 또 반쯤 기울어져요. 기울어지면서 발판이 나와요. 예, 경사막. 그렇게 때문에 휠체어가 쉽게 탈수 있죠.”

- 이 지상버스에 대해서 나름대로 자료를 찾아보느라 뒤져본다고 했는데요, 정부 측의 말 바꾸기가 굉장히 심하더라고요. 몇 대를 도입하겠다, 언제까지 몇 대를 확보하겠다…… 하는데 지금 정확하게는 현황이 얼마나 되지요?

“38대가 돌아다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한 번 더 물어봐야겠다.”

- 서울 수도권이요?

“예에. 아주 미미해요. 돌아다니는 버스가 모두 만 육천 대라고 치면 그 중 서른여덟 대니까 그 정도 숫자 가지고 장애인이 몇 프로 이용하냐 하면 어불성설이죠.”

- 그래서 이 지상 버스를 많이 알리느라고, 그리고 지상 버스의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보여주느라고 10월 25일부터 11월 2일까지 순회 투쟁, 그때 지상 버스도 같이 돌았나요?

“그럼 지상 버스 타고 같이 돌아다녔죠.”

- 그거 비싼 건데, 이동권 연대에 그게 있어요?

“아니, 아니. 갖고 있는 게 아니라 현대를 통해서 빌렸어요. 이 행사를 통해서 공문을 통해 빌린 거예요.”

- 그래서 지상버스 전국 순회투쟁을 가졌는데요, 어땠어요? 대표님은 이 자리에서 단식 투쟁을 하느라 직접 함께 다니시지는 못했지만요. 지상 버스 전국순회 투쟁에서 의의라거나 성과를 찾는다면요.

“지방에 지상 버스 도입 문제나 이동보장법률 문제를 홍보한 것이고, 홍보하고 선전하고 하는 것이었지만은 지역을 조직하기 위한 것이었죠. 그리고 또 하나는 지금 이제 장애운동들 내에서도 진보적 장애운동과 기존의 소위 보수라고 이야기하는 보수 관변화되어진 운동과의 차별성들을 가지면서 투쟁을 해야되겠다, 그러한 것을 조직해 나가는 조직화의 문제들이 있는 거죠. 대표적으로 그러한 조직화의 문제가 있었던 거고 현장 투쟁들을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고 결국 그것들을 통해서 장애이동보장 법률을 선전하는 것이고 그런 거였죠.”

12월2일로 농성은 164일째, 집단 단식농성은 8일째를 맞고 있다.


- 제가 대표님한테 이 인터뷰 때문에 찾아간 건 삼 주 전쯤이었어요. 그 때 노들 야학으로 갔는데 대표님 지금 몸이 많이 힘들어서 댁에 들어갔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때부터 욕창이 많이 심해졌다고 하던데. 그래서 생각한 게 몸이 그렇게 힘든데 지금 정립회관 농성은 어떻게 하고 있나 하는 걱정이었거든요. 당시에는 아직 이렇게 국회 앞 농성장도, 단식도 들어가지 않았을 때였고, 대표님을 만나려면 정립회관 농성장으로 가야한다 하는 생각만 하던 때였어요. 그러더니 10월 13일이던가, 체포를 당했다고 하는 거예요. 잡혀 갔다는 기사 보면서는 더욱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일찍 나와 불행 중 다행이지 뭐예요. 하여튼 어제 찾아왔을 때 농성장 저녁 총화 때 보니까 정립회관 농성이 136일, 오늘로 137일째 계속 되고 있다는데 정립회관은 계속 대치 상태인 건가요?

“그렇죠. 지금 풀리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아주 길게 가야 되지 않을까.”

- 정립회관 문제는 그 핵심을 좀 요약해서 말한다면.

“11년 동안 관장으로 있던 이원수 관장이 정년을 맞이했는데 이사회에서 정관을 개정해서 임기를 연장해버린 거죠. 그것들에 대한 투쟁이고 그것에 대한 시설 민주화 투쟁이죠.

- 그런 시설의 싸움을 보면요, 예전에 에바다 회관 때도 그랬고요, 그런 관장이나 원장 측의 측근들이 시설을 마치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어떤 사유 시설물화 하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이권을 가로채는, 그런 갈등이 계속 되풀이 되어 오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맞서 민주화를 이루어내기 위한 싸움, 대체로 이런 유형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런 시설 투쟁이 있는 것이고 정립회관 투쟁은 다른 투쟁이에요. 에바다 투쟁 같은 경우에는 시설 비리 그래서 이사회를 직접 교체한 투쟁이고, 시설에서의 이사회는 이제 권력인 거죠, 권력, 권력. 핵심적인 조항이고 핵심적인 기구죠. 그러니까 정권을 바꿨다 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죠. 정권을 바꾼 것이고, 에바다 같은 경우에는. 모든 법인에서의 의사 결정 기구와 법적인 권한은 이사회에 있고 이 이사회가 다 날아가 버린 투쟁이 에바다 투쟁인데 그것의 직접적인 원인은 시설 비리의 문제죠. 인권 침해, 시설 비리, 공금 착복, 횡령 뭐 이런 악질적인 비리의 문제이고 정립 회관 문제는 그렇지 않아요, 또. 그러한 시설 문제와 다르게 시설 민주화에 대한 문제죠. 주로 이사회에서 이야기하면, 시설 투쟁이라고 이야기하면 비리의 문제,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죠. 물론 이것도 인권의 문제가 있지만은 정립회관 투쟁 같은 경우에는 이사회에 대한, 걔네들이 이야기하는 건 무슨 에바다처럼 비리가 있느냐, 실질적으로는 비리는 없거든요. 돈 몇 푼 떼먹은 거야 찾아보면 있겠지만은 그거는 뭐 논의 대상이 아닌 것이고, 그리고 또 수용 시설이냐, 수용 시설이 아니라 이용하는 시설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굉장히 다른 문제인데, 그러면 왜 정립회관의 문제가 터지고 있느냐 라고 이야기하면 바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 이것이 하나가 있고 그러면서 이제 그러한 것과 장애인의 당사자주의라고 하고 이야기하고 당사자운동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정립회관 같은 경우에는 장애운동의 시발점이자 거기서 많은 장애 활동가들이 나오고, 장애운동의 주류를 이룬 사람들이 배출된 시설이라서 일반적인 장애 시설하고 또 달라요. 그런 곳인데, 그렇게 있는 곳에서 이 문제가 이제 불거지는 문제는 바로 민주화라고 이야기하는 관장에 대한 임기 문제에서 시작했죠.

정년제를 지키지 않고 그것을 연장하고 했던 것들인데 그 연장의 배후에는 장애인 당사자, 걔네들이 장애인 당사자 얘기하고 자립 생활을 얘기했던 주체들의 의견을 전혀 무시했던 것이 하나 있는 것이고, 그리고 또 아래로부터의 의견을 무시한 채 야합해 버린 의사결정과 더불어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들인 것이죠. 그 두 가지 축인 거죠. 그 두 가지 축을 가지고 그것들에 반하는 문제하고 반하지 않는 세력들의 투쟁이죠. 외부에서 보기에는 ‘어, 시설 비리도 많고 뭐 이런 것들이 있는데 왜 이런 것들로 싸워야 되는냐’ 하고 매도하기도 하는데 그리고 그것들을 일반적으로 보기에는 이 투쟁은 장애운동의 역사 속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거죠. 인권과 비리의 문제에서만 벗어나서 실질적인 아래로부터의 의사 수렴과 참여의 문제, 민주주의 문제로 이사회 구조가 가야 되는 것이고, 의사 결정이 가야 되는 것인데 장애인 문제들 속에서도, 장애계 안에서도 그들은 보수 지배 계급들의 형태들을 갖다가, 관리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장애인들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장애인 문제라고 해서 다 장애인의 일반적인 문제로 통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애인 문제를 해결함에서도 관점들이 다르고 계급의 문제가 들어가고 이런 것이죠. 민주주의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고.”


- 그럼 그 이완수 관장도 장애인인 거죠?

“장애인이에요. 장애인인데 마치 노동조합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노조가 있기 때문에 장애인 시설을 다 말아 먹는다. 장애인은 장애인끼리 뭉쳐야한다.”

- 그럼 노동조합에는 사회복지사들이 많이 있는 거예요?

“그렇죠, 장애인도 있지만은 시설 사회복지사들. 그래서 비장애인들을 다 쫓아내서 장애인들 일자리를 챙겨야 한다 라고 하면서 지역에서 돈 받고 움직이는 장애인들을 붙잡아서 비 장애인을 공격하는 형태들로 나가는 거죠.”

- 꼭 그런 시설의 갈등이 있을 때면 내부의 그런 관장이나 원장 측에서 내부의 원생들이나 뭐랄까 회사 식으로 말하면 구사대라거나, 그러니까는 정립회관에서는 곰두리 봉사대? 뭐 이런 봉사대, 그런 사람들을 앞세우고 에바다 때도 그 원생들 앞세워서 대표님 똥물도 뒤집어쓰고 그랬잖아요.

“어, 맞아. (장난스러운 얼굴) 똥물 뒤집어썼지. (웃음)”

- (웃음) 래군이 형하고 둘이.

“래군이는 안 뒤집어썼어, 래군이는 조금 튀겼고 나는 정면으로 맞았어. 그런데 같이 똥물 뒤집어 썼대. (장난스러운 얼굴)”

- (웃음) 시설에서 갈등이 빚어질 때 일어나는 폭력의 양상이 늘 그런 식으로 벌어지는 것 같아요. 어용 식으로 내부의 원생들을 움직이게 하거나 나중에는 아주 폭력배를 동원하고 그러면서 바깥에서 볼 때는 장애인들끼리의 갈등처럼 비춰지게끔 하면서요.

“장애인중에서 이제 구사대를 동원한거죠. 곰두리라는 조직은 돈 받고 움직이는 용역 깡패 새끼들이에요. 깡패 양아치들이에요.”

- 어? 그럼 곰두리 봉사대가 장애인들 아닌가요?

“장애인이면서도, 장애인 중에서도 철거 용역 깡패로 들어가고 하는 애들이 많아요. 돈 받고 움직이는 양아치 새끼들이 얼마나 많은데.”

- 아, 그래요?

- 이동권 투쟁의 시작은 2001년 오이도역 추락 참사 때부터 본격적으로 싸워오고 있는 거라고, 이동권 확보를 위한 백만 서명 운동도 그때부터 시작한 거고, 버스타기 운동도 그 때부터 시작해서 벌써 38차인가요? 이 달 마지막 주가 39차인가? 싸움이 시작하던 2001년부터 지금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는데요, 그 때와 지금 2004년을 견주어 볼 때 대표님이 가장 큰 변화로 느끼는 건 어떤 부분이에요? 이동권 문제를 비롯해서 장애인이 살아가는 조건들에서요.

“바뀐 것은 굉장히 많죠. 2001년도 같은 경우에는 지하철 역사 모든 부분들이 리프트를 설치해도 편의 증진법에 법률적으로 위반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맨날 사고 나고 다쳐도 자기들은 법적으로 다했다고 핑계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합법화되어졌던 것들이었는데, 그래서 리프트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지하철 역사에 다 설치하는 것들이 그들의 정책이었어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보다. 그런데 이제 발산역 투쟁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 들어가 농성하면서…”

- 그 때가 39일 단식 농성할 때였지요?

“예. 농성하면서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고, 얼마 정도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새 공사는 많이 하고 있잖아요. 아직도 약속이 안 지켜진 것들이 많이 있지만은 일정 정도 엘리베이터로 바꾸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정책적 합의나 돈의 문제나 시기의 문제가 남은 것이지 일정 정도 되어 있는 것이고. 그리고 이 지상 버스 같은 경우에는 일반 시내버스 노선의 운행이 불가능하다 이야기했고 무료 셔틀버스로 몇 대 하겠다 라고 하는 것들이었는데, 지상 버스를 일반 시내버스에 도입하겠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돌아다니고 있고.”

- 아까 38대가 돌아다닌다고 했는데 그럼 그건 노선버스인 거예요?

“일반 시내버스 노선이에요.”

- 일반 시내버스 중간 중간에 하나씩이 지상 버스인 거예요?

“300번이 많이 배치돼 있고, 그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사기업들은 잘 안 받아들이는데 그쪽 몇 개의 회사에서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 정부 지원을 받아서 하는 거예요?

“정부 지원 받죠. 1억 한 8천정도 되는데, 보통 버스가 엘엔지 달아서 팔천 정도 든대요. 거기에다가 지상 버스는 1억 정도 추가되는데 그걸 받는 거죠.”

- 그렇게 정부에서 지상 버스를 사는 돈을 주는 데도 버스 회사들에서 왜 그렇게 꺼려하는지는 모르겠는데요.

“그래도 그런 것들을 유지하고, 뭐 이런 편견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안하는 거죠.”

빈곤해결과 최저생계비 해결을 위한 삼보일배의 길 위에서 최옥란 열사 영정을 안고 함게 하고 있다.


- 대표님도 말씀하시면서 강조하듯이 장애인 안에서도 계급의 문제는 또한 굉장히 심각하게 있는 것 같아요. 장애인들 같은 경우는 비장애인들보다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는 말할 것 없이 어렵지만 들어가는 돈은 굉장히 많잖아요. 치료에 드는 돈도 그렇고 약값도 그렇고, 공교육으로 보장을 해주지 않으니 사교육을 하려면 비장애인 사교육보다 몇 곱절 어려운 교육을 해야 하고요. 무슨 특수 교육이니 특수 치료니 하는 것들도 가난한 형편에서는 꿈도 못 꿀 텐데요. 그런 교육이나 치료는커녕 기본적인 약값이나 기초 생활비용을 마련하기에도 너무 어렵고요. 쉽게 말해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막막한데요. 거기에다가 장애에 가난,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은 그 힘겨움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겹겹의 이중삼중의 고통일 거라 짐작하거든요. 그런 생각하다 보면 최옥란 님이 떠오르곤 하는데요, 최옥란 님하고 대표님은 누구보다 가까운 동지로 함께 일하고 그러셨지요? 이동권 투쟁을 시작하던 무렵 서울역 철도 점거하고 나서 처음 체포를 당했을 때도 대표님과 최옥란 님 두 분이 같이 벌금형을 받았더라고요. 최옥란 열사를 생각하면 어떠세요? 대표님에게는 좀 더 남다른 기억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투쟁을 할 때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냥 느낌으로 인제 통할 수 있는 친구죠. 점거하자 라고 이야기하면은 그것들에 대한 설명이나 이유 필요 없이 그냥 하자 같이 하고. 철로 점거하고 난 뒤에 300만원, 150만원 벌금 나왔을 때 대책위 회의하자 했더니만 단위들은 안 나오고 세 명이 딱 모여가지고, 그것도 조직이라고 조직적인 부담을 하기 위해서, 오이도 대책위 때, 어떤 단체는 점거하자마자 보건복지부 전화 받고 탈퇴해버리고 뭐 이런 것을 조직적으로 물을 수 있나?”

- 어떤 곳에서 보건복지부 전화를 받고 바로 탈퇴를 했어요?

“서울지체장애인협회 같은 경우 바로 다음날 탈퇴해버리고 뭐 그래 가지고 벌금 나왔을 때 오이도 대책위 때 참여했던 단체들 모아가지고 회의하자 그랬더니 몇 단위 안 나오고 그랬어요. 그래서 둘이서 앉아가지고 이걸 항소할 것이냐, 항소하려면 또, 그 때는 조직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변호사를 대줄 단체도 없고 그래서 그냥 맞고 들어가자, 그러자 그렇게 끝나버렸죠. 그래가지고 항소도 안했죠. 그래서 벌금 맞았고. 둘 다, 나는 300만원 맞았고, 나는 계속 안내가지고 수배 떨어져 가지고 이 차 타고 고척교 지나다가 수배 차량이 찍혀서 바로 잡혀서 영등포 구치소로 갔고…”

- 그럼 어떻게 나왔어요?

“그래서 하루 3만원씩 해가지고 그 300만원 해가지고 백 일 동안 살아야 하는데 3일 딱 살고 나니까 영등포에서 욕을 좇나게, 검찰 새끼들한테 욕 좇나게 하더니만 씨발 이렇게 수용할 시설도 안 만들어놓고 잡아들여오면 다냐, 그러더니만 영등포 구치소 내 교회 조직을 통해서 목사를 보내가지고 내 벌금을 그 쪽에서 내 줘 버렸어요. 그래가지고 나는 나와버렸죠.”

- 네에. …그런데 왜 얘기가 이쪽으로 와 있지? (웃음)

“아, 그래서 최옥란 같은 경우에는 내가 그러고 나온 뒤에 150만원 이제 벌금을 갖다가 내지 않고 들어가 살겠다고 검찰에 갔죠. 검찰에 가서 내가 벌금을 안 내고 있어서 수배 떨어져 있으니 잡아가라, 그러니까 옥란이를 보더니만 검사가 할 말이 없어가지고 벌금 안내도 된다, 안내고 있어라, 잡아가지 않겠다 그러고 난 뒤에, 그런 확답을 받고 난 뒤에, 그런데 거기까지 갔으니까 차 없다. 지하철타기 힘들다. 검사 차까지 얻어 타고 집으로 들어갔죠. 그렇게 열심히 투쟁했던 친구죠."

- 네, 최옥란 열사 하면 올 봄 집회 생각이 나는데요, 올해가 2주기였죠? 3월 26일 그 때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장애인 문화제, 장애철폐 문화 기획단 하다가

“에, 그 때 개떼같이 잡혀 갔죠, 첫 날. 첫 날 시작하다가…”

- 네, 그 때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나고 답답했던 게 뭐냐면 이미 이 사회의 기득권 집단들이야 그 바탕이나 본성이 어디에서 비롯했고, 어디에 닿아 있는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개혁을 이야기하는 시민들이, 당시에는 거의 날마다 광화문에 탄핵반대 촛불시위가 열리곤 했었잖아요. 그 날만 해도 저녁에는 탄핵반대의 촛불을 든 시민들이 광화문을 가득메웠을 텐데, 그리고 그 자리에서 ‘민주수호’의 딱지를 들고 흔들었을 텐데 그것과 아주 대조되는 장애인 문화제의 모습을 보면서 진정 민주주의가 무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거든요. 집회를 시작도 못해 보고 무대를 쌓다가 그대로 8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강제로, 폭력적으로 연행되는 그 자리에서 그렇게 소수자들이 당장 겪고 있는 폭력을 외면한 채 그 광장에서 이야기하는 민주주의라는 게 무언가 하고요. 그저 그 또한 우리들만의, 자신들만의 민주주의를 외친 건 아니었나 싶어서 굉장히 많이 답답하고 안타깝고 실망스럽고 좀 그랬어요. 그래서 말하자면 탄핵을 무효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인 반면에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나 장애인 집회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저 사람들, 좀 딱한 사람들, 저 장애인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 이상으로 여겨지지 못하는 건 아닌가. 장애인 뿐 아니라 장애인의 자리에 이주노동자가 들어가도 그러하고 성적소수자가 들어가도 그러하고 병역거부자가 들어가도 그러하고요. 이렇게 소수자들의 권리 문제로 들어갔을 때 그 권리들이 ‘우리의 권리’로 되지 못하고 있는 그런 인식의 저열함, 연대가 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니까 개혁을 말하는 쪽의 사회에서조차도 그러한 사회적 소수자, 약자들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라고 바로 여기지 못하고 저 소수 집단들의 문제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저 소수 집단들의 문제’라는 말은 어느 순간에 ‘저 딱한 사람들의 문제’로 껍데기가 바뀔 수도 있고요. 이런 까닭들 때문에 아까 대표님이 말했던 시혜와 동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식이라는 게 정부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은 물론 이른바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시민사회나 운동사회 안에도 있지 않나 싶어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대표님이 느끼는 안타까움이나 답답함, 말하고 싶은 것들이 많지 않으세요?

“장애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잘 이해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하고요, 보면 물론 보수적 영역들에 있는 보수집단들이 바라보는 시각이나 진보적인 영역에 있는 사회단체나 사람들이 활동가들이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는 있지만은 본질적인 문제에서 별반 다름이 없는 경우가 굉장히 많이 있어요. 장애를 이해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 장애에 대한 사회적 낙인들을 그대로 관철시키고 있죠. 그 어떤 것들이냐 하면 집회하면서 많이 이런 이야기를 하죠. 행사 중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신체적 장애가 아니라 마음의 장애가 더 그렇다 하는 식으로 말을 하고, 뭐 여기 있는 장애인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장애인이 아니라 정말 전두환이가 장애인이다, 뭐 이런 이야기들… 여기에 있는 장애인들은 어 정말 그렇지 않고…”

- 아, 그러면 그 말 자체에는 장애가 나쁘다는 말이 이미 배어 있는…

“그렇죠, 사회적 낙인이 되어 있는 거죠. 장애인이라고 이야기하는 말 속에 전두환을 비교하는 것들은 이미 장애인은 전두환, 이 개 같은 것들과 장애인이 동격화되는,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장애인인데 장애인은 이 사람들이 아니라 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물론 용어의 문제인데 그것들은 인식이라는 것들이 결국은 마찬가지로 맞닿아 있다 라고 생각을 해요. 그거는 뭐 어디에 여성들과 남성들이 죽 있는데 여기에 있는 여성들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고 전두환이 여성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하고, 흑인하고 집회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백인이고 진짜 나쁜 놈은 조지 부시가 흑인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하고 차이가 뭐냐는 거죠. 장애인이라는 문제에 대한 자기 정체성 이러한 것들이 있는 거죠. 뭐 장애는 고착화되어진 것이고, 그것은 치료의 대상도 아니고 나아서, 뭐 성령의 은혜를 받기 전에는 아마 낫기는 힘들 것 같고 (웃음), 이런 낫는 문제 뭐 물론 치료를 해야되는 과정이 있고 이런 문제들이 있기는 있지만은 정체성에 있어서 남성이나 여성처럼, 흑인과 피부색에 대한 문제, 인종의 문제처럼 아주 고착화되어 있는 것과는 다르게 유동적인 문제가 장애와 비장애에는 유동성이 많이 있거든요. 장애가 비장애가 될 수도 있고, 좀 치료를 잘해서. 그리고 비장애가 장애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폭넓죠. 흑인이 백인이 되는 경우하고 여성이 남성이 되는 경우하고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은 장애라는 사회적인 장애, 신체적인 장애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들하고, 장애가 장애가 되는 것들은 사회적 차별이 장애를 만드는 것이지 자기가 가진 조건들, 정체성이 장애를 만드는 것은 아니거든요. 사회적 차별로부터 그것을 깨버리는 투쟁들이 중요한 것인데 마치 장애 정체성들이 사회적 낙인화 되는 것들, 그래서 신세 조진 것으로 보는 것들 그건 뭐 마찬가지 그런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고, 그리고 또 사회 운동의 영역들에서도 힘의 문제에서도 결국은 립 서비스가 많이 있는 거죠.”

- 립 서비스요? 말로만?

“(웃음)”

- 하여튼 저 개인적으로도 느끼고 반성되는 부분이 되게 많았는데요. 솔직히 보통 일상을 살 때 지극히 비장애인의 시각으로 비장애인 중심으로 사고를 하고 그랬던 것 같거든요. 뭐 길을 걷다가 턱이 높은 부분을 본다고 이런 곳은 턱을 없애야 할 텐데 하는 생각 한 번 못했고요, 휠체어 탄 장애인은 건널 수 없는 육교를 볼 때라거나 버스정류장을 중앙 차로로 옮길 때 같은 때 그런 걸 장애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지 못했거든요. 아, 또 생각한 게 그거, 버스를 타도 버스 안내 방송이 다 음성으로만 나오니까 청각 장애인들은 힘들 수밖에 없고 뭐 그런 거요. 어디든 보도블록이나 아니면 건물 안의 복도 같은 곳에도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보도블록 같은 게 있어야 할 텐데… 그런데 실은 이런 생각조차도 겨우 이번에야 한 번 해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그저 의식을 가지는 것으로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가장 차별받는 분들의 처지로 동일시해가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을 텐데요, 그러면 그건 어떻게 할 때 가능할까,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계속적인 훈련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물론 뭐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서 알고 싶으면 찾아가고 만나고 이야기함으로서 관심의 폭과 지지가 넓혀질 수 있겠죠. 만나서 이야기해 보고 생활을 해 봐야지만이… 그런 문제인데. 사람은 한 사람인데 할 일이 있는데 자기 목적이 있는데, 장애 운동을 할려는 것도 아니고 일상적인 문제들, 자기의 방향들이 있는 것인데. 나는 그런 것들보다 오히려 더 그러한 사람들이 사회에 나와서 많이 만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2001년 시작한 버스타기 운동은 4년째 계속되어 39차로 이어졌다.


-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많이 만날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집구석에만 처박혀있고, 밖으로 못나가게 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일상적인 버스를 타고 보고 개인적으로 알든 말든,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고 거리에서 만나고 뭐 학교에서 만나고 일하는 공간에서 만나고, 그럼으로써 개인적으로 알고의 친숙함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그 차별들을 보고 그것의 개선을 갖다가 느낀다면 자연스럽게 장애에 대한 편견들이 사라질 것이고 그걸로 인한 무지와 이런 부분들이 사라질 거고.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장애인 차별에 대한 문제도 굳이 그렇게 개인적으로 고민해서 사람을 꼭 사귀어서, 친한 사람을 사귀어서 뭐 이렇게 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닙니까? 뭐 4500백만 사람들을 다 사귈 수는 없는거니까 (웃음).”

- 아, 정말 그래요. 그런 부분 얘기를 듣다 보니까요, 대표님은 후천적 장애이시니까 오히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쪽저쪽 이해를 더 잘하시겠다 싶어요. 비장애인으로 20년 가까이 사셨고, 그 뒤로 또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20년 가까이…

“아, 그러고 보니까 장애인으로 더 오래 살았구나, 으 (얼굴 찡그림)”

- 그래요? 하여튼 그래서 이쪽저쪽에 대한 이해가 더 폭넓으실 것 같은데요, 처음에 아까 말씀하셨던 복지관, 그 복지관을 다니면서 그런 선배, 그 선배를 만나고 장애인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느끼고 자각하고 의식화되고 이러기 전까지는 갑자기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이 되면서 충격도 크고 그랬을 것 같은데요, 그 시기는 어떠셨어요?

“말할 게 뭐 있겠습니까? 글라이딩타다가 떨어져가지고, 열심히 잘 놀고 잘 쫓아다니고 운동도 하고 공부도 안하고 돌아다니다가 다쳤으니 얼마나 갑갑하겠어요. 신세 조졌다고, 인생 조졌다고 생각한 것이죠. 끝난 거라고 생각하니,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람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고, 그래서 죽음을 생각했던 것이고, 죽기 위해서 열심히 또 나름대로의 노력들을 한 것이고…”

- 네? 그게 무슨 말…

“인생 조졌으니까 자살해야죠, 이제. 83년도에 다치고 나서 자살하기 위해서 열심히…”

- 자살하려고 그러셨어요?

“그건 뭐 다 겪는 과정일 것 같애요. ……그러한 과정들, 그리고 그 뭐 다시 살아야겠다는 마음 이런 것들”

- 거기에서, 그 절망 속에서 다시 살아야겠다는 마음 그거는 구체적으로 어떤 계기가 되었던 게 있었나요?

“계기요? 특별한 계기보다는 그렇게 누워있는 게 지겨워가지고 (웃음) 지겨웠던 측면들도 있는데, 그 우리 집이 기독교 집안인데 열심히 이제, 죽어도 자살하고 싶었는데 자살하고 싶어서, 한번 다쳐가지고 어머니한테 불효자가 됐는데 죽는 것도 집안에서 죽으면 너무 큰 불효가 되니까 최소한 밖에 나가서 죽어야 되겠다 싶어가지고 열심히 약을 많이 모았죠. 그리고 밖에 나가서 그 때 이동 수단이 없고, 혼자서 나갈 수 없으니까 돈이 필요했잖아요, 돈이 필요했죠. 콜택시를 불러서 가야 하니까 돈이 필요했죠. 아픈 나한테 누가, 다쳐가지고 드러누워 있는데 누가 돈을 주겠어요? 우리 매형이 나한테 약속을 한 게 있어요. 성경을 백 쪽을 읽으면 돈을 주겠다 (웃음) 그래서 열심히 읽어서 돈을 모았죠. 돈을 모아서 자살을 하려고 이제. 그리고 또 교회를 나가면 돈을 주겠다 그래서 교회를 또 열심히 나갔죠, 일주일에 한 번. 뭐 교회에 나가고 싶어서 갔던 것도 있지만 한번 나가면 밖에 나갈 수 있을니까. 그래서 이제 오년 동안의 삶이 가만 보니까 교회에 가면 일주일에 한번 외출하는 거였죠. 일주일 한 번 외출하는 것이 주일마나 가니까 한 달에 네 번 내지 다섯 번, 이제 이동권 투쟁할 때 그런 것이 나만의 일인 줄 알았더니 많은 장애인들이 70.5%가 한 달에 다섯 번도 외출을 못한다 라는 이런 통계들이 나타났듯이 수많은 장애인들이 그런 삶을 살았더라고요. 밖에 나오지 못하고 집구석에서 처박혀있고, 개처럼 처박혀 있는 거죠. 왜 개냐고 그러니까…”

- 뭐라고요? 잘 못들었어요.

“왜 장애인이 개냐고 그러니까.”

- 누가 그런 말을 했는데요?

“어떤 장애인이 한 말인데 왜 개처럼 느끼냐 그러니까 직장에 갈 때 어머니가 ‘밥 잘 먹고 집 잘 지켜!’ 그러면서 나가고 또 직장에 갔다가 들어오면 ‘집 잘 봤어?’, 그런 속에서 자기는 집 지키는 개처럼 느껴졌다고 하는 것들이, 그런 삶이죠. 그렇게 나갔죠, 일주일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나가면서 목적은 이제 돈을 모으고 멀리 나가서 이제 열심히 죽겠다 라는 것들 때문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나가니까 웬걸요,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 그러면요. 장애가 없었던 83년 이전 시절과 견주어서요, 장애를 입고 난 뒤 바뀐 점을 들어 말하자면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텐데요. 그 가운데에서도 생활적인 면에서, 또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또는 사람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의식적인 면 같은 것에서 장애를 입기 전과 입은 후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장애를 가지기 전에는 꿈은 마도로스였어요. 그냥 이제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열심히 즐기면서 잘 살았죠. 그래서 글라이딩도 하고. 장애에 대한 어떠한 이해도 없었던 것이고 장애인들을 만나는 삶도 가지지 못했고, 그리고 또 열심히 이제 배를 잘 타고 돈을 열심히 벌어서 결혼을 열심히 잘해서,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을 해서 잘 먹고 잘살자 그러한 것이 최대의 희망이었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해병대도 갔던 거고. 하여튼 그래서 야학이 내가 20대 초반에 그렇게 살 때 그런 고민들 전혀 없이 이렇게 살았던 시절이 있는데, 20대 대학 들어와서 야학을 하고 교사를 하는 사람들 보면은 굉장히 소중하다는 감히, 여전히 많은 사람들과 이런 고민들보다 자기만의 고민들, 자기 이익에 대한 고민들 자기의 향락에 대한 고민들에 빠져있고, 그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는데, 야학이나 이렇게 운동하는 친구들이나 이런 세상의 모순들을 고민하는 친구들은 굉장히 소중한 친구들이고 20대에 그런 것들을 느낀다는 참, 어디를 가도 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런 경험들이 좀 더 자기화되고 자기 인생이 되어져서 훌륭한 활동가가 되는 게 많아지는 것들이 세상의 희망이다 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전에는 나는 20대에 그렇게 살지 못했고 나만의 이런 향락들, 돈 버는 문제 거기에 비해서는 얻은 것들이 많이 있죠. 그래서 우리 어머니 오죽하면 니가 다치기 전에는 그런 생각도 안 하며 살다가 지옥 갈 거 같다가…”

- 아아, 다친 이후에는 좋은 일 많이 하고…

“우리 어머니 수준에서는 좋은 일이 아니잖아요.”

- 좋은 일이죠, 이거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어요?

“싫어하던데….”

- 사람들이?

“예.”

- 어떤 사람들이?

“저기, 저어 집에 있는 사람들이. (국회의사당을 가리키며, 웃음)”

- 아, 까먹었다. 내가 뭐 물어보려고 그랬는데. 이따 생각나면 물어봐야지.

“그런데 이런 거 다 적어야 돼요? 이거 뭐.”

- 아, 오래 앉아 계셔서 힘드시지요?

“그게 아니라, 이렇게 많이 해가지고 언제 다 적으려고.”

“전쟁이라는 것은 이런 장애 운동을 하고 이렇게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고 함께 사는 세상이 되게 만들어가는 꿈과 희망들을 한 방의 폭탄으로 싸그리 다 날리는 거죠. 소수자의 문제나, 오직 힘만 남고 약육만 남고 강탈만 남는, 그걸로 정복하고 하는 것들만 남는 것이죠."


- 이제 전쟁하면요, 당연히도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피흘림인데요, 그 엄청난 사람들이 죽고, 또 그 엄청난 사람들의 몇 곱절 되는 이들이 다치고. 실제로 지금도 이라크에서는 보고서에 따라 10만이 죽었다, 4만이 죽었다 하는데, 그러면 그 부상자까지 더하면 몇 십만 명이 죽거나 다쳐서 장애인이 되었을 텐데, 또 대표님은 대표님 나름으로 한국 사회에서 장애 운동의 치열한 싸움터에 계신 분으로서 2년 가까이 계속 되어오고 있는 이 전쟁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전쟁이라는 것은 이런 장애 운동을 하고 이렇게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고 함께 사는 세상이 되게 만들어가는 꿈과 희망들을 한 방의 폭탄으로 싸그리 다 날리는 거죠. 소수자의 문제나, 오직 힘만 남고 약육만 남고 강탈만 남는, 그걸로 정복하고 하는 것들만 남는 것이죠. 만약에 우리나라에, 지금 우리 뼈 빠지게 장애인에 대한 인권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함께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지상버스 도입을 이야기하고 하는데 뭐 장애인의 교육받을 권리를 이야기하는데 전쟁이 난다, 그러면 이런 거는 한 방에 다 날아가는 거죠, 한 방에 다 날아가는 거. 오죽하면 같은 민족의, 독일 같은 경우 나치가 전쟁을 수행하는 위해서 유대 민족을, 자기 민족의 순수성을 이야기하고 유대 민족을 갖다가 학살했듯이 그 이전에 전쟁 수행에 능력이 없다고 장애인을 유대인 학살보다 더 많이 했거든요. 더 많이란다, 더 먼저 가스실로 보냈거든요. 같은 독일인이라도, 인종과 관계없이, 전쟁 수행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니까 쓰레기라라고 해서 싸그리 다 정신지체 이런 장애인이나 그런 사람들을 죽였죠.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다양함의 가치들, 다양함의 희망들을 한방의 가치와 힘의 가치, 폭력의 가치 이런 것들로 다 몰아버리고 그것들로 사람이 사람을 죽여 버리는, 그걸로 이제 승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잔혹한 행위이고, 그 행위에 그 많은 돈을 처넣는다는 것이 얼마나 역사를 후퇴시키는 길인가.”

- 그래서 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면서 파병 한국군 철수를 바라는 운동으로 지금 전범민중재판운동을 하고 있는 거 아시지요? 대표님 같은 경우에는 발기인으로 함께 하시기도 했는데요, 아직 기소장은 쓰지 않으셨잖아요? 그럼 지금 이 자리에서 대표님이 생각하는 전쟁범죄자 부시, 블레어 노무현을 전범재판대에 세우는 기소의 이유를 말씀해주셨으면 하거든요.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것하고도 조금 되풀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내가 장애인의 장애 운동을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전쟁 문제를 바라봤을 때는 소수자에 대한 이러한 가치들, 다양성의 가치들 이러한 것들이 전혀,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한방의 폭탄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들이고, 그러한 것들이 전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존중받지 못하는 환경들이 바로 전쟁이라는 환경이라고 생각을 해요. 아까 나치의 경우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전쟁 수행에 쓸모가 없다고 자민족조차도 먼저 가스실로 보내버리는, 사회적 약자의 희망을 그냥 날려버리는 것이고 그들의 삶의 노력들을 부셔버리는 것이 전쟁인 것이고, 그리고 또 전쟁 후에 남는 폐허와 그런 것들이 또다시 그것을 재생산하는 것이죠.”

- 정말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고요, 사실 우리 약자들이 살기에는 이 사회에도 곳곳이 전쟁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바로 여기 대표님이 농성을 하고 있는 이곳 국회 앞도 그렇고요. 단지 다르다면 미사일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사회적 차별이 억누르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조금이라도 저항을 하려하면 바로 폭력 경찰이 달려들고요. 그래서 또한 이라크 전쟁을 막는 일과 장애인 이동권 싸움을 하는 것이 다르지 않은 하나의 일이고, 명동성당 이주노동자들의 싸움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 쌀 개방에 직면한 농민들의 싸움이 다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마지막으로요, 혹시 오늘 이야기를 나누다가 미처 못다 한 이야기가 있었으면, 마지막으로 이 말만은 꼭 했어야 하는데 하는 게 있으면 얘기해주세요.

“장애인 운동에 대한 문제 이야기를 하면 함께 하는 연대의 틀들을 폭넓게 가져가야 되는 것이고, 그것이 이제 맨날 같이 그냥 할 때마다 하는 이야기인데 야학에서도 단순하고 바라볼 때 도움을 주는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이게 그 항상 하는 말이 사파티스타 이야기를 하면서, 원주민 투쟁을 함께 하기 위해 간 세계 여러 진보적인 활동가들에게 원주민들이 하는 말이 ‘당신이 단순하게 우리를 도와주기 왔다면 헛된 것이고,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같다면 함께 싸우자’라는 말이 장애인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말하고 싶은 운동의 연대라는 관점이라는 거죠. 단순한 도움의 문제는 헛된 것이고, 그 헛됨이라는 문제는 아주 그 쓸모없는 문제는 아니지만은 야학을 하면서 느껴왔던 그런 허무함, 그런 느낌들이 굉장히 많아요.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의 길에 함께하는 문제라면 싸워야 되는 문제고, 그 싸움의 문제는 실제로 조직하고 투쟁해야 되는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노들야학에서도 늘 이 이야기를 하는데, 노들야학의 준말이 이제 노란 들판인데, 아니다 ‘노들’의 준말이 노란들판인데…”

- 아, 정말 늘 궁금했는데 그건 무슨 뜻이에요?

“평등하게 나누어 가지라는, 노랗게 익은 들판의 수확을 이야기하는, 수확을 평등하게 나누어 가지자는 건데, 수확을 나누어 가지는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은 가을 녘에 지주 놈들이 다 가져가버리고 남는 텅빈 허무함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텅빈 허무함에 대한 반복들이 계속되어지는데 더 이상 그래서는 안되겠다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고, 그래서 도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연대들을 조직하고 투쟁하는 길로 가야되겠다, 해방의 길을 함께 조직하자. 이런 거죠.”

- 긴 얘기, 계속 어제부터 와서 괴롭혀드려서 죄송하고요, 지금 진짜 길게 앉아서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절실히 싸우는 만큼 꼭 좋은 성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힘내세요.

‘당신이 단순하게 우리를 도와주기 왔다면 헛된 것이고,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같다면 함께 싸우자’라는 말이 장애인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말하고 싶은 운동의 연대라는 관점이라는 거죠.


앞서 밝힌 것처럼 박경석 대표님과 이 이야기를 나눈지 한 달 가까이 지나 이제서야 정리해 올리는 것이다. 대표 님은 보름 동안 단식을 계속 잇다가 몸이 너무 좋지 않아 단식은 마쳤지만 국회 앞의 농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해결이 나지 않는 정립회관 민주화 농성은 벌써 170일 가까이 계속 되고 있으며 정립회관 농성장에 있는 분들의 단식이 다시 시작되어 열흘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날 인터뷰를 한 뒤 채 열흘도 지나지 않은 11월 18일 지하철 이수역에서 40대 시각장애인이 선로로 떨어져 역으로 들어오던 전동차에 치어 죽는 일이 있었다. 장애인들이 살기에 이 사회는 언제 따로, 어디 따로 할 곳 없이 온통 전쟁터나 다름이 없다.

이라크에서는 다들 아시다시피 팔루자에서만 사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학살을 당해 죽어갔다. 전역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수는 어림이 되지 않는다. 전쟁은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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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 전범민중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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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상버스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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