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범국본은 노무현정권을 끈질기게 물고늘어져야

사회구성원 모두와 호흡하는 저항의 투쟁네트워크로

28일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가 발족했다. 범국본은 그동안 농축수산비대위, 민주노총, 영화인대책위, 시청각미디어공대위, 문화예술공대위, 교육공대위, 교수학술단체공대위, 보건의료공대위, 학생대책위, 지적재산권대책위 등 부문 분야별 대책위 구성에 큰 탄력을 받아 탄생했다.

범국본 발족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나는 한미FTA라는, 한국과 미국 간 자유무역협정 추진을 저지하는 것을 직접적인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한미FTA는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안고 있는 폐혜의 대부분을 담고 있다. 따라서 특정한 사안이나 부문 영역에 제한된 이슈가 아니다. 협상으로 놓고 봐도 한칠레FTA나 한일FTA와는 내용과 범위에 있어 비교되지 않을만큼 종합적이이고 총체적이다. 따라서 한미FTA를 저지하는 것은 곧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미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범죄 자체를 물리치는 맥락을 갖는다.

또 하나는 조직 꼴에 있어 범국민운동본부라는 점이다. 단순하게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그동안 시민단체는 대체로 민주화와 개혁 의제를 중심으로 연대활동을 해왔고, 노,농,빈 등 대중조직과 민중단체는 민중의 기본권 쟁취와 반신자유주의 실천을 중심으로 연대활동을 해왔다. 민중운동진영의 연대활동은 한편으로는 전국민중연대처럼 상설적 공동투쟁체를 통해 이루어졌는가 하면, '파병반대'나 '양극화해소'처럼 이슈와 쟁점에 따른 사안별 대책위를 통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한미FTA를 놓고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대부분이 참여하는 범국민운동본부라는 조직꼴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운동 진영에 있어서도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상층 차원에서 전화로 뚝딱뚝딱 만들어진 연대체가 아니라 각 부문분야별 대책위 건설과 맥락을 같이 하며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기존의 관성적인 연대운동체 건설 방식과는 분명히 비교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사회구성원간 대립과 계급계층간 큰 격돌이 예고되고 있다. 노무현정권이 집권 이후 주도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은 노동유연화 강화, 사회양극화 심화, 사회적 빈곤의 확대, 개방화 시장화에 따른 생태 파괴와 공공성 위협, 여성에 대한 이중적인 착취 고착화, 남북 시장화에 가속을 붙여왔다. 이에 가장 큰 책임을 갖고 있는 노무현정권은 각종 지표에서뿐 아니라 피부로도 위기를 실감하게 되자, 세계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 일류와 싸워 일류가 되자는 식의 투기식 정세인식과 의지를 피력했고, 이는 곧 막강한 선동과 함께 한미FTA 협상으로 집약되어 나타났다.

들여다보면 계급투쟁의 맥락에서 볼 때 현재 계급계층간 대립 양상은 보수-개혁 전선의 급격한 붕괴를 예고한다. 노무현정권을 지지해온 개혁세력의 상당수가 급격한 보수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보수와 개혁세력간 구분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사실상 소멸되고 있다. 예상컨대 5.31 선거 후에는 인물과 계파를 중심으로 보수세력과 개혁세력이 큰 구분없이 헤쳐모이는 장면이 연출될 전망이다. 그 대신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는 한미FTA 추진과 이에 저항하는 새로운 운동지형 창출 가능성이 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범국본은 지금까지 연대운동에서 보여온 관성적이고 상층 중심적인 방식에서 탈피, 한미FTA 저지 싸움을 공세적으로 벌여야 한다.

범국본의 발족은 시작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기존 상층연대운동의 낡은 관성도 크게 작용하고 있고, 한미FTA의 성격 분석과 저지를 위한 실천 방안도 뚜렷하게 서있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범국본 스스로 연대운동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서 보다 많은 정치토론을 갖는 한편, 실천에 있어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가령 범국본 발족식에서 병노협의 범국본 가입 결정을 기존 운동 관성의 잣대를 들이밀어 유보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범국본은 말 그대로 국민적인, 전인민의 저항의 네트워크로 자리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문과 참가단위의 합으로서의 범국본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고, 아직 미개척한 부문 분야를 일구는 한편 지역에서의 대응 체계를 갖추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공세의 유형은 위로부터의 이데올로기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 곳곳에서 인민의 삶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까지 부문별 공대위가 구성되어왔고 그 힘을 바탕으로 범국본이 탄생했다면, 이제는 즉각 지역에서 공대위, 실천단, 네트워크 등 다양한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현장운동력과 노동조합운동이 결합할 수 있도록 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한편 한미FTA 저지가 '반대'에 머무르지 않고, 한미FTA 저지 이후 병들고 망가진 우리 사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 각 분야 전문 연구자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의 역할이 막중할 것이다. 이미 교수학술단체공대위가 구성되어 있고 여러 사업을 펼치고 있다는 점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연구자들이 정부와 자본이 공모해서 내놓는 각종 통계와 데이터의 허위 여부를 가려내고, 각 부문 분야에서 대안적인 처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디어의 노력도 중요하다. 한미FTA만 놓고 볼 때 오늘날 방송과 종이신문 등 미디어의 대부분은 저널리즘을 포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FTA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 돌아보기조차 않고 있다. 음습한 지배자의 정서와 결탁한 침묵의 카르텔이 미디어의 뿌리를 쥔 채 놓아주지 않고 있다. 전 미디어에 걸친 침묵의 카르텔을 깨뜨리기 위한 미디어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국면을 경과하고 있다.

범국본은 이제 자신의 임무를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천명해야 한다. 한미FTA를 강행하는 노무현정권이 두 손을 들고 패배를 시인할 때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이 점이 한미FTA를 저지하는 가장 유력한 방향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범국본은 이 실천을 통해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와 호흡을 같이 하는 저항의 투쟁네트워크로 발전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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