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불량소녀, 생명의 땅 새만금을 걷다

[에뿌키라의 장정일기](1) - 참회의 백팔배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한미FTA반대! 새만금에 생명을, 대추리에 평화를 위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생명의 권리를 묻기 위한 대장정 - 걸으면서 질문하기'를 내걸고 10일부터 22일까지 부안에서 새만금, 평택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장정이다. 민중언론 참세상은 대장정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의 소식을 연재로 게재한다. - 편집자 주


아침 일찍 기상! 아침을 먹고 햇창갯벌로 향했다. 장승과 솟대들이 나부끼는 그 곳, 제 자신이 자연임을 너무 쉽게 망각하는 오만방자한 인간들 때문에 이제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굳어가는 그 땅에서 우리는 행진을 시작한다. 굳어버린 진흙에 화석처럼 박힌 채 죽어 있는 무수한 생물들. 으아악! 갯벌은 무덤으로 변하고 있었다. 죽합, 백합, 그리고 이름 모를 무수한 조개들, 소라들이 속수무책으로 자신들의 죽음을 지켜보았을 것을 생각하니, 아팠다. ㅠㅠ

한때는 발가락 사이를 간질이며 삐져나오는 부드러운 진흙이 수억의 생명체를 품고 있었겠지. 하늘의 별처럼 많은 고동들이 물길을 따라 머언 길을 이동했을 거야. 갯지렁이가 꼬물거리고, 커다란 눈의 말뚝 망둥어는 기운차게 튀어 오르고, 삐뚤삐뚤 농게들이 만드는 조그만 구멍들이 가득한.

“바다 조개의 80%가 새만금에 와서 산란을 했었대. ”

옆에서 함께 걷고 있던 나우시카가 나지막하게 말한다.

“새만금은 8000년 동안 수많은 생명이 살던 공동체였다구.”

“칫, 누가 워킹 네이바 아니랄까봐-_-”

“백합이 왜 백합인 줄 알아? 백이면 백 모두가 제각각이어서 그렇게 부른다는 거야.”

윽. 눈물나올 것 같았다. 인간에게 똑같은 삶이 하나도 없듯이, 백합도, 갯벌을 채우며 공생하던 수많은 생명도 그렇다. 그 무수한 삶 중에 불필요한 삶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러나 지금, 허연 속살을 쩍 드러낸 채 살해당한 저 백합. 칼날처럼 갯벌에 박혀 굳어버린 맛조개들. 인간은 어쩌다가 이 모든 생명들을 죽이면서 몸집만 키우는 비대한 괴물이 되었을까. 펄럭이는 현수막에 기가 막힌다. ‘친환경 개발’이라니!

“저런 무식한 소리를 해대다니 [미래소년 코난]도 못 보고 자란 거 아냐?”

나의 투덜거림에 파김치 오라버니 왈.

“전라도에서 선거에 당선되려면 어째야하는지 알아?”

“웅?”

“새만금 사업을 누구보다도 환타스틱하게 포장하는 거래. 지역 발전시킨다! 이제 우리도 잘 산다! 뭐 이런거지.”

한숨. 하긴, 부안에서 반대했던 핵폐기물처리장을 경주가 지역개발논리로 받아들이자 주요 일간지는 “경주 시민들의 위대한 선택” 운운했지. 일년에 지원금 얼마, 방사능 폐기물 반입 수수료 얼마라는 식으로 선전될 때, 방사능의 무서움은 감수 할만 한 것이 되나보다. 놀랍다. 70년대의 개발 신화가 파이를 키운다며 우리 농촌을, 공돌이 공순이들을 희생시켰듯이, 개발자본 또한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느니 자기 부상열차를 만들겠다느니 하며 어민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새만금 간척 사업은 정치논리에 의해 공사를 중단할 수 없게 되었을 뿐, 경제적으로만 생각해 볼 때도 이득이 없다. 농업용지 사용이라니, 지금 농촌에서 농지가 놀고 있는 거 모르나? 게다가 그 땅이 정상적인 농업용지가 되려면 20-30년이 필요하다. 공업용지라해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발전의 망령에 꽁꽁 붙들려 있다는 거다. 모든 것을 죽이며 자신의 몸집을 키우는 자본의 논리를 스스로의 욕망으로 불러오고, 그렇게 모든 생명을 살해하는 긴 자살의 행렬에 동참한다. 다채로운 삶들을 엄청난 탐욕으로 먹어치우는 개발이라는 괴물이 된다. 주변의 산을 깎아 갯벌을 막는다. 산이 갯벌을 죽게 하고, 만물이 만물을 죽게 하고, 생명들이 와글거리며 살고 있던 공동체를 다른 공동체와 싸우게 하며 모두를 죽인다. 지나가는 자리마다 폐허다. 그 괴물의 폭력을 오늘 새만금에서 봤고 5월 4일 대추리에서 봤고, 매일의 FTA 논의에서 본다.

주저앉아 땅에 귀를 대자 톡톡톡 톡톡톡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억개의 생물이 내는 소리였다. 우리는 땅에 귀를 대고 한동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용하지만 수없이 다양한 생물이 내는 그 소리가 한번 들리기 시작하자 점점 커지고 나중엔 가슴에 가득 차 텅텅거리며 울리기 시작했다. 우아! 아직 갯벌은 죽지 않았잖아! 그리고, 갯벌을 죽일 수 없다는, 갯벌이 생명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외침도 죽지 않았다.

단지 개발의 속도만큼 포기도 빨랐던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뿐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만물은 말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듣지 못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본과 생명이 싸우고 있었는데 우리는 보지 못했다. 화려한 것에 속고, 돈이 되는 것에만 반응하고, 글자만을 믿고, 시끄러운 소리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참회의 백팔배를 올렸다. 우리들이 잊고 있었던 생명들에게 사죄의 의미로 일배, 반생명적 가치를 내쫓기 위해 일배, 모든 생명적 가치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담아 일배. 맨발로 108배를 올렸다. 인간들이 죽음을 명령한 곳에서 우리의 질문을 시작하겠다고. 이미 죽은 듯이 보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할 힘을 발견하겠다고. 고통 받는 소수자들을 통해서 고통이 아닌 생명의 지혜를 배우겠다고.

저녁 식사 후엔 부안 터미널 근처의 집회에 참석. 평택 미군기지 문제를 자기 것으로 생각한 부안시민들 몇몇이서 벌써 7일째 촛불집회를 벌이고 있다. 핵 폐기장 반대를 성공적으로 이끈 부안시민들은 평택 미군기지가 이미 평택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는 거다. 모든 소수자의 문제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만물을 죽이고, 서로 싸우게 하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아주 미세한 눈을, 아주 민감한 귀를 가져야 한다. 그 때 깨닫게 된다. 우리가 소수자고, 만물이 소수자라는 것. 수많은 친구들과 함께 걷는 이 길 위에서 우리는 또 다른 무수한 나를, 무수한 우리를, 함께 함으로서만 지속되는 삶을 만나리라는 것. 행진 첫날부터 이런 공력 높은 깨달음에 도달한 불량소녀의 일기 끝.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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