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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파병 아닌, 경제원조 등으로 힘 보태야

[한상진의 레바논통신](5) - 유엔잠정군 제기능 수행. 이스라엘 재침공 또는 내전 가능성 커

엊그제 한국에서 반전 운동을 하는 한 친구가 메일을 보내 왔더군요.

“한국에서 레바논에 평화유지군(공식명칭은 유엔잠정군) 파병 움직임이 본격화 되고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한국군의 파병에 반대하는 레바논의 움직임을 알려달라”는게 골자였습니다.

이 글을 받고서 유엔잠정군(UNIFIL)에 대한 레바논 사회의 분위기를 한국에서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 이 글을 씁니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형태의 군사적인 개입에도 분명히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사실상 레바논에 정부는 없다

레바논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횟수를 센다는 게 무의미 할 정도로 오래 동안 겪어온 내전을 포함한 많은 전쟁을 이 사람들이 겪어왔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만 합니다. 전쟁 기간 중에는 전쟁 기간이기에 정부가 제 기능을 못했다는 변명이 가능 합니다. 하지만 내전이 끝나고 난 후에도 민중들에게 정부는 없었습니다.

내전을 종식하기 위해 레바논에선 내전의 주체였던 각 세력들이 모두 참여한 거국내각을 꾸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내전 기간 중 학살의 책임이 있던 자들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모두 고스란히 정부에 들어가서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들의 눈에 국민이 보일 리 만무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의 부패를 견제하고 감시할만한 세력은 없습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 한 세력에 줄을 대고 있거나, 아니면 특정 정치 조직에서 직접 운영하는 언론사입니다. 시민단체들도 이런 군사 정치 조직들이 설립한 조직이거나 이들과 줄을 대고 있는 단체가 대부분입니다. 간혹 가다가 정치조직과 관계없는 단체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정치문제에는 아예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각 정파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짓들을 보면 사실 정부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입니다.

혹시라도 상대방 정파의 인구가 자신의 정파의 인구보다 많게 나올까 불안하여 인구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인구조사는 민주주의를 위해서나 사회보장을 위해서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입니다. 하지만 특정 정파의 인구 증가는 그 정파의 영향력 확대로 연결되기 때문에 아예 정치적 안정을 기한다는 이유로 아예 인구조사 자체를 안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호단체들이 구호사업을 위해 필요한 통계 자료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습니다. 레바논에 관한 비교적 정확한 통계 자료는 레바논 정부가 갖고 있는 게 아니라 UN 기구들이 갖고 있습니다.

“차라리 이스라엘이 점령했을 때가 더 나았다”

레바논에서 60여 년째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아직까지도 시민권이 없어서 자신의 이름으로 땅 한 평을 가질 수 없고, 또한 가질 수 있는 직업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더라도 팔레스타인 사람은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고, 의대를 졸업해도 레바논에서는 의사가 될 수 없습니다. 이유는 이들이 순니 무슬림이기에, 이들에게 시민권을 주면 순니파의 권력이 강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점령했던 남부지역 마을 주민들 중 일부는 “차라리 이스라엘이 점령했을 때가 더 나았다. 최소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필요해서 주민들의 협조를 요구할 때는 뭔가를 해줬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번 전쟁 이후에도 레바논 정부는 피해 주민들을 위해서 한 일이 거의 없습니다. 겨우 한 일은 UN 긴급구호팀과 구호단체들이 구호물품을 배분하기 전 잠시 보관할 수 있도록 정부 소유의 창고를 제공한 정도가 레바논 정부가 한 일의 전부입니다. 그나마도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구호품 중 일부가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레바논에 대한 구호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유엔은 이를 쉬쉬하고 있습니다. 레바논 정부는 전쟁 이후 국가 부채가 늘어났다고 엄살을 부리고 있지만, 이렇게 빌려온 돈을 이번 전쟁의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유엔잠정군, 미국 개입 없는 레바논에서는 제기능 해

반면 유엔은 주민들을 위해서 뭔가를 해주고자 하고 있고, 또 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미국이 개입되지 않은 곳에서는 유엔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때문에 미국이 UNIFIL에 참여를 거부한 바람에 레바논에서는 유엔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엔의 산하조직은 지뢰 제거 긴급구호 장기개발 사업 등을 위해 정말로 분주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영공 침해에 대해서도 레바논 총리가 국제사회에 이를 막아달라는 호소를 한 것 이외에는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을 때, 유엔 잠정군(UNIFIL)은 발포를 할 수도 있다고 직접 이스라엘에 경고를 합니다.

그리고 오랜 외세의 간섭 속에서 생활해 온 레바논 사람들은 외국군대의 존재 자체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습니다. 무감각해져 버린 것입니다.

또한 레바논의 정치 세력 역시 나름대로의 계산속에서 UN의 주둔을 반깁니다. 물론 이들은 자신의 권력유지와 직결되지 않는 한 국가 안위조차도 관심 없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인 헤즈볼라 역시 UN의 존재가 이스라엘의 재침략을 견제할 수 있고, 재무장 및 조직 정비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지식인들은 어차피 주변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레바논에 새로운 외세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냉소적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에게 다른 주변나라들 군대보다는 유엔이 훨씬 나은 존재입니다. UN의 존재는 이들에게 이 나라를 떠날 수 있는 기회를 하나 더 제공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극히 소수이고 위와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습니다.

즉 다시 말해 레바논에서는 어떤 형태든 유엔 잠정군의 존재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레바논은 이라크와는 다릅니다. 한국에서 레바논 파병 반대운동을 할 경우 이런 상황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과 실전경험 해볼 의사 아니라면, 실익 없어

그간 유엔을 무시해왔던 이스라엘의 행태를 봤을 때 유엔잠정군의 존재와 상관없이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재침공할 여지는 다분해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 분위기는 상당히 험악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레바논을 침공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입니다. 또한 최근 몇일 레바논 경찰과 UN을 대상으로 한 수류탄 공격이 연달아 벌어졌습니다. 내전의 재발 가능성도 전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이 재침략 하거나 내전이 재발할 경우 유엔잠정군이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세계 최강이라는 이스라엘 군과 실전경험을 해볼 의사가 아니라면 레바논 파병은 여러모로 실익이 없습니다. 파병 보다는 부패한 정권이 아닌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경제지원과 같은 도움을 주면서 유엔과 협력한다면, 비록 군을 보내지는 않더라도 유엔 결의안 이행에 힘을 보태는 것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말

한상진 활동가 후원계좌 하나은행773-910053-98605, 제일은행250-20-440303, 국민은행063301-04-054340, 농협205035-56-033336 예금주: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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