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들, 트랜스젠더 요구 들어나 봤수?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인권과제 좀 들어보슈](2) - 성전환자 인권과제

종종 ‘우리’의 이슈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우리’ 혹은 ‘트랜스젠더’의 이슈라고 뭉뚱그려 말할 때, 현재의 상황에서 어떤 내용을 말해야 효과적일까? ‘우리’ 혹은 ‘트랜스젠더’의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하는 이슈들이 결국은 내가 안다고 믿고 있는 다른 사람들(그리고 나)의 상황을 나의 수준으로 환원하고 선별한다는 점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로 주장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간단하지 않은 상황은 비단 이런 고민 때문만은 아니다. 만약 나의 ‘당연한’ 요구가 부당한 요구거나 과도한 욕망으로 치부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지금의 고민은 달랐을 테다. 현재의 대선후보들이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이슈에 ‘관심’이라도 표한다면 지금 나의 고민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지율 수위를 다투는 후보들이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과연 어떤 요구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트랜스젠더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다섯 가지 요구

이런 고민 속에서 ‘성소수자 10대 요구안’(10대 요구안)을 통해 “트랜스젠더/성전환자들의 행복추구권, 건강권, 노동권이 보장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는 요구를 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성전환자 성별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호르몬 투여와 성전환수술에 드는 비용의 의료보험 적용 △취업 지원 시스템 마련 △트랜스젠더를 위한 긴급 의료 지원 센터 설립 △FTM('Female to Male',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사람)의 병역면제 규정 완화 등 다섯 가지다.

트랜스젠더 이슈나 트랜스젠더의 삶을 이 다섯 가지로만 수렴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이 다섯 가지의 요구안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너무도 자주, 트랜스젠더 이슈는 호적상의 성별변경과 의료과정 뿐이라는 식의 얘길 듣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를 통해, 또다시 ‘트랜스젠더 이슈는 호적상의 성별변경과 의료과정으로 수렴되겠구나’라는 염려를 하면서도 이런 요구를 하기로 했다.

트랜스젠더 개개인들의 상황에 따라 이 다섯 가지의 요구사항이 필요한 정도는 다르지만,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며 겪는 어려움을 어느 정도 덜어주거나,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열기 때문이다. 그리니 이런 요구는,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법/제도가 전무한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다.

‘최소한’의 요구라고 하지만 이런 ‘최소한’의 주장마저,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결국 당연한 권리를 요구해야만 하고, 이렇게 주장할 때에도 받아들여 질 수 있을 지의 여부를 알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이,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분명하게 말해준다.

주민등록증의 '1' 과 '2'.. ‘나를 부정하다’

다섯 가지의 요구사항 중, 첫 번째인 호적정정 특별법을 요구한다는 건, 호적상의 성별표기가 사람들의 삶을 규제하는 방식이며 이런 규제가 트랜스젠더의 삶에 커다란 장벽이란 걸 의미한다.

정규직으로 취직할 때, 이동통신에 가입할 때, 술집에 갈 때, 금융 거래를 할 때 등등, 살아가는 거의 모든 곳에서 성별을 표시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신분증에 적혀있는 성별과 외모를 통해 해석할 수 있는 성별이 ‘불일치’한다고 사람들이 인식할 때, 신분증명서는 나를 증명하지 않는다. 호르몬투여나 수술을 하지 않아 이 두 ‘성별’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 같을 때에도, 신분증명서는 나의 성별을 증명하지 않는다. 신분증이 필요한 모든 영역에서 나의 ‘정당한’ 권리는, 부당하거나 부정한 요구로 바뀐다. 신분증이 나를 부인할 때, 내가 문제가 아니라 신분증명제도가 문제임에도 호적정정을 하지 않은/않는 트랜스젠더들은 비정규직으로 취직하거나,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취직하기마련이다.

만약 호르몬투여를 하고 있거나 수술을 할 예정이라면, 경제적인 어려움은 가중된다.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의료적 가이드라인이 없고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니, 원가의 10배를 부르건 20배를 부르건 병원에서 부르는 금액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다시 경제적인 문제다. ‘돈’이 없으니 호르몬투여와 수술을 할 가능성은 요원한데, 법원과 행정제도는 호르몬투여와 수술을 호적상의 성별변경을 위한 최소 요건으로 요구한다. “트랜스젠더들의 빈곤의 악순환”은 이처럼 성별이 드러나는 신분증(호적정정), 의료경험, 경제적 상황이 물고 물리며 발생한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대선주자들, 성소수자를 분노케하다

사실, 이런 물고 물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는 상황, 이른바 대선주자들이라고 하는 이들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답하는 것으로 충분히 대답했다고 믿고 있는 상황이 우릴 분노케 한다. 그러니 ‘우리’들이 정말 요구하고 싶은 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려면 당연히 했어야 하는 고민들을 아직까지 하지 않고 있는’ 후보들 자신의 태만과 부족, 의무불이행에 대한 반성이다. 또한 대선후보로서의 자격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답해야 하는 가치관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라는 말로 충분하다고 믿는 태도를 ‘검증’할 것을 요구한다.

단지 득표를 위해, 당선되어서 권력을 쥐기 위해, 법을 제정하겠다거나 뭔가를 하겠다는 태도와 약속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그러니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는 ‘우리’들의 주장이 과도하다고 믿지 않는다. 크게는 10대 요구안, 좁게는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한 다섯 개 항목을 실행할 의지가 있는지의 여부는 이런 성찰과 반성의 여부에 있다. 성찰과 반성이 없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는, 차별금지법안에서 7개 항목을 빼고도 “이 정도로 제정되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라”며 도리어 큰소리치는 태도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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