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의미에서 87년 6월과 2008년 5-6월은 확연히 다르다.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돋보였다는 점에서는 닮은꼴이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은 매우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87년 체제는 6월 항쟁으로 촉발되어 구체제와의 단절을 기대케 하고 새로운 사회가 열리는 신호탄으로 인식되었지만, 그 결과는 처음부터 예상했던 대로 ‘군부독재타도’와 ‘민주쟁취’로 상징되는 대의제 민주주의로 귀결되었다.
당시의 투쟁은 노동자 학생들의 선도투쟁에 힘입어 체제에 대한 변혁을 예고하였고 대중들의 직접적인 참여와 소통을 매개로 참세상 건설을 위한 총진군이었다. 하지만, 군부정권의 기만적인 언술과 책동 그리고 제도권 야당과 일부 기회주의 세력의 야합으로 의회민주주의 시대로의 전환과 동시에 87년 이전의 구체제와의 동거라는 태생적 한계를 갖게 되었다. 물론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정권을 마지막으로 형식적인 면에서 군부 통치가 종식되고 권위주의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이 빠르게 감소하는 등 한국사회가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87년 6월 항쟁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이었지 변혁운동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87년 이후 개발독재의 논리를 대체한 신자유주의가 국정운영, 경제운영, 일상생활 등 모든 부문의 주요 원리로 등장하면서 각종 사회적 불평등이 오히려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87년 체제에서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가 도입·전면화되면서 보수의 외연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한국 사회가 보수화 경향을 드러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87년 체제는 박정희의 개발독재체제로부터 1997년을 경과하면서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위한 교두보였으며, 이와 함께 새로운 대안 체제로 전환해 갈 가능성이 남아있는 교착점인 것이다. 즉 1997년을 분기점으로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이 됨과 동시에 새로운 체제로의 선택도 놓여있는 것이다. 따라서 87년 체제를 뛰어 넘는 새로운 정치의 틀이 필요하다.
▲ 참세상 자료사진 |
그런 의미에서 2008년 5-6월 촛불투쟁은 87년 체제의 부정적 유산에 대한 소산이었다. 지난 세월 동안 세계화 경쟁에서 탈락하여 삶이 더욱 피폐해진 민중들의 불만은 기본적인 저항의 토대이며, IMF 이후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민생안정을 내팽개치고 공허한 개혁구호에 매달린 자유주의 지배세력에 대해 대부분의 국민은 실망하였다. 또한 한국정치의 후진성에 실망한 국민들의 정치적 냉소주의는 확대일로를 걸어왔다. 그래서 선택의 폭이 거의 없는 조건 속에서 부득불 이명박 정권에게 조금이나마 먹고 사는 문제를 기대했지만 성장에 집착해 고환율 정책으로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여 경제를 반쯤 죽인 상태에서 쇠고기 문제가 터진 것은 당연한 것이다.
광우병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제기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국가권력의 노동자 민중에 대한 일방향적 관계로 인한 소통의 부재, 일상생활의 불평등, 보편적 시민으로서의 권리확장, 교육·보건의료·미디어·민영화 등 실질적 민주주의(또는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 대중들은 87년 체제의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면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모색하게 된 것이다.
국민의 생명권까지 위임받았다고 인식하는 이명박의 대의정치
한국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표 선출과 통치의 위임이 핵심 원리이지만 이명박 정권은 ‘위임’에 대한 개념을 거의 모르는 것 같다. 그것은 국가수반으로서의 대표성과 함께 국민의 요구를 책임감을 갖고 민주적으로 실천하라는 의미인데, 기업의 CEO로서의 인식과 국민 통치의 전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특히 국민의 생명권까지 위임받은 것으로 인식하는 무지의 소치를 드러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일방주의적·권위주의적 국정 운영은 당연한 것이며, 그에 대한 대중들의 저항 또한 당연한 것이다.
2008년 촛불투쟁에서 나타난 대중의 직접행동과 요구수준은 1987년 당시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는 것이었고, 이는 지난 21년 동안 한국사회를 관통한 기회주의적이고 개량주의적인 체제에 대한 정면도전인 것이다. 화석화된 대의제 민주주의만 남은 곳에서 자본과 권력에 맞서 대중들이 할 수 있는 투쟁 수단은 직접행동이 거의 유일한 것이다. 이들은 직접행동의 새로운 주체이자 전위요 지도부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과도한 해석은 경계해야할 필요가 있다. 직접 민주주의로의 이행 가능성, 자발적이지만 복잡한 대중들의 급진성 등에 대한 성급한 판단은 새로운 체제를 향한 진군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거대한 물결을 규정하거나 통제할 수는 없다. 그것이 가장 큰 무기이다.
지난 40여 일 동안의 투쟁은 전초전에 불과하다. 6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에서 재협상을 거부하고 추가협상을 고집하고 있는 오만함에서 본격적인 투쟁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그동안 무관하다고 주장하던 한미FTA 때문이라고 스스로 고백했다. 중국과의 마늘협상에 비유한 것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대운하 사업도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은 “국민이 반대한다면”이라는 전제조건이 있기 때문에 결코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니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
결국 이명박 정권은 거짓과 변명으로 일관되게 국민과 소통하고 있으며, 추가협상에 대한 집요함은 한미동맹 제일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국민의 생명권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기본이고 안일한 정세 인식과 쓸모없는 판단 능력, 무엇보다 대통령으로서의 무능력과 무지함을 스스로 드러냈다. 이제 크고 작은 것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을 할 정도면 스스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좌이다. 그의 말대로 이제 새로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투쟁하지 않으면 권리를 못 찾는다는 보편타당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할 때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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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인 논설위원은 한신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