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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행일랑 모르는 쥐꼬리망초

[강우근의 들꽃이야기](69) - 쥐꼬리망초

여름 끝자락에서 쥐꼬리망초 꽃이 핀다. 길가에서는 별꽃아재비, 까마중과 어울려 꽃 피고, 밭둑에서는 개여뀌와 깨풀 사이에서 꽃 피고 있다. 산기슭 공원 쥐꼬리망초는 뽕모시풀, 모시물통이, 쇠무릎과 함께 꽃 피고 있다.

아파트 단지 감나무 아래서 꽃 피는 쥐꼬리망초는 품이 넓다. 밑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져 옆으로 퍼져 자라다 다시 가지를 세워 위로 자라 오른 것이다. 많은 가지를 치고 가지 끝과 잎이 난 자리마다 꽃 이삭을 다닥다닥 달고 있는 것을 보면 여름내 줄기를 뻗고 잎을 키웠을 텐데 여름 끝자락에 꽃이 피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띈다.


쥐꼬리망초 잎은 크기가 작고 잎 가장자리도 밋밋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꽃은 크기는 작아도 벌을 불러들이려고 공을 많이 들였다. 꽃잎의 아래 판은 벌이 좋아하는 자주색으로 물들이고 벌이 잘 내려앉을 수 있도록 흰색으로 활주로도 그려 넣었다. 꽃잎의 위판에서는 벌이 꿀을 빨기 위해 꽃 속에 머리를 들이밀 때 등 쪽에 꽃가루가 묻도록 수술이 아래쪽을 향해 나와 있다. 쥐꼬리망초 꽃은 공을 들인 만큼 눈에 잘 띈다. 그런데 꽃이 너무 작아 벌이 제대로 내려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좁은 꽃 속으로 머리를 넣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꽃가루는 기껏해야 벌 이마쯤에나 묻지 않을까.

쥐꼬리망초는 산길 옆에서 같이 자라나는 들깨풀과 모양새가 닮았다. 특히 막 꽃 피기 시작할 무렵에는 자주 헛갈린다. 작은 잎사귀가 마주나는 모습도, 꽃 이삭에 한두 개씩 꽃이 피고 지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들깨풀은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줄기도 여섯 모 난 쥐꼬리망초와 달리 네모지다. 꽃이 피고 지고 씨가 맺히면서 둘은 차츰차츰 모습이 달라진다.

쥐꼬리망초는 꽃 이삭이 쥐꼬리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데, 꽃 이삭을 이리저리 살펴봐도 쉽게 쥐꼬리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쥐꼬리망초 꽃 이삭은 쥐꼬리보다는 쥐 얼굴을 더 닮은 듯하다. 또 꽃잎 속을 잘 보면 거기에도 쥐 얼굴 모습이 보인다. 가을이 깊어지고 꽃 이삭이 아래서부터 날마다 한두 송이씩 꽃 피고 자라나면 꽃 이삭은 조금 길쭉해진다. 그때쯤 되면 꽃 이삭이 쥐꼬리 같아 보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쥐꼬리망초라는 이름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쥐꼬리망초는 이름에 '망초'가 붙었지만 '망초'나 '개망초'와는 전혀 다른 풀이다. 아마도 망초처럼 흔하고 볼품 없어서 그렇게 불리게 되지 않았을까.

쥐꼬리망초는 많은 가지를 치고 그 많은 가지마다 꽃 이삭을 달고서 많은 씨를 맺는다. 하지만 이듬해 더 많은 쥐꼬리망초가 싹 터서 자라나 꽃 피지 않는다. 쥐꼬리망초 한 포기가 맺는 씨앗의 수는 얼마나 될까? 수만 개에서 십 수 만 개에 이를 것이다. 그 가운데 싹 터서 열매 맺는 것은 결국 한두 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쥐꼬리망초는 가을 내내 꽃을 피워 벌에게 꿀을 먹이고, 겨울 내내 새나 쥐들에게 씨앗을 먹인다. 그렇게 먹고 남긴 부스러기로 새 삶을 이어간다. "자연은 부스러기만으로도 목적을 이룬다."(헨리 데이빗 소로우) 그러나 그 부스러기는 수만 개 가운데 남은 몇 개가 아닌가. 장맛비를 맞고 수북수북 자라나는 저 흔한 잡초들도 한 포기, 한 포기가 수만 개 씨앗 가운데 살아남은 하나다. 쉽게 자라나는 것 같지만 수만 가지 시행착오를 피하고 살아남은 것들이다. 쥐꼬리망초는 한 포기 싹이 터서 자라게 하기 위해 수만 개 씨앗을 준비한다. 그런 쥐꼬리망초 삶에 요행이란 없어 보인다. 쥐꼬리망초가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은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쥐꼬리망초에게는 그게 최선의 방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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