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해 지는 게 먼저예요”

[철철폐연대-참세상 비정규직 10년 전망 기획(3)] 인터뷰 : 정금자 간병분회장

그녀들, 서울지방노동청을 점거하다

2004년 2월 25일 5-60대 여성노동자들이 서울지방노동청을 점거했다.

  참세상 자료사진

“2003년, 15년 이상 직접 무료소개소를 운영하던 서울대병원이 하루아침에 이걸 폐쇄하고 유료소개소를 만들겠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유료소개소를 잘 알거든요. 다들 유료소개소에서 인간취급도 못 받고 돈도 뺐기고(중간착취) 하다가 서울대병원에서 공개적으로 간병인 뽑는다니까 아름아름 모인 거였거든요”

24시간 6일이라는 장시간 노동과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던 노동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자신이 노동자인지 몰랐던 노동자. 여기서도 쫓겨나면 당장 먹고 살 수가 없어 멸시와 모욕도 다 참아가며 노예처럼 살았다던 노동자. 그녀들은 특수고용노동자, 간병 노동자였다. 그녀들이 서울대병원 측의 무료소개소 폐쇄에 맞서 2003년 노조를 결성했다. 당시 노동조합 결성의 중심에 있었던 정금자 공공노조 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 간병분회 분회장을 만났다. 그녀는 전국요양보호사협회 협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94년 그녀는 40대 중반이었다. 그녀도 남편의 실직으로 먹고 살기 위해 간병인이 되었다. 결혼하기 전에 간호보조업무를 했기에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남편이 실직하고 나니까 아이들 학교 갈 때 차비도 주지 못했어요. 내가 나서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되었죠.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간병인이 된 거죠. 처음 일할 때 재미있었어요. 근데 너무 힘들더라구요. 24시간 휴식도 없는 장시간 노동에 수면장애가 오고 각종 근골격계 질환이 오는 거죠. 근데 다 감수했어요. 내가 살아야 했으니까요. 이 일이 아니면 굶어 죽으니까요”

  정금자 공공노조 의료연대 서울지역본부 간병분회 분회장

업무를 지시한다는 이유로 한참이나 어린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인격을 모독하고 보호자들마저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들은 참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대병원 측이 간병 노동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그간 운영하던 무료소개소를 없애고 유료소개소를 이용하겠다며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2003년이었다. 각종 명목으로 많게는 수십 만 원 씩 웃돈을 받았던 유료소개소의 문제점을 잘 알기에 그녀들은 분노했다. 그녀들이 한 둘 모이기 시작했다.

“위기가 오니까 그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지요. 이길려고 노동조합 만들었어요. 열심히 일했는데 이대로 쫓겨날 수 없다는 거였죠. 유료소개소가 들어올 바에는 경험이 많은 우리가 소개소를 운영하게 해달라고 했어요”

남편에게도 숨겨야 했던 노조가입

그녀들은 특수고용노동자였다. 모든 업무를 간호사 등에게서 지시받지만 그녀들은 소개소를 통해 들어온 개인사업자였다. 대부분의 특수고용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렇듯이 노조를 만들자 그녀들은 해고 협박에 시달렸다.

“노조 가입한 것 남편에게도 숨기라고 했었어요. 그런데 세상에 비밀이라는 것이 있나요. 위기가 닥치니까 노조로 모이더라구요. 노조는 뭐하느냐 이렇게 해보자 요구하기도 하구요. 모이기 시작하니까 노조 탈퇴 안하면 일 안준다고 협박했어요. 끝내 10명 안팎만 남게 되었죠”

결국 2003년 9월 1일부로 서울대병원은 무료소개소를 폐쇄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간병인도 노동자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유료소개소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들은 8개월을 조금 넘긴 2004년 4월 ‘희망간병’이라는 무료소개소를 직접 만들어 서울대병원으로 다시 들어갔다.

노동조합을 만든 후 가장 큰 성과가 무엇이었는가라는 뻔한 질문에 그녀는 “내가 노동자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는 진심어린 답변을 내놓았다.

“노동조합은 세상을 바로 만드는 일을 하는 거잖아요. 노예처럼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어요. 노동조합을 만든 이후에 내가 잘못하지 않는 한 쫓겨날 이유도 없고 모욕을 당할 이유도 없다는 걸 깨달았죠.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동안 간호사, 의사 앞에서 고개도 못 들던 조합원들이 어깨를 펴고 당당히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죠. 인간으로서의 자존감, 자신감 이런 것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남긴 가장 큰 성과였어요”


그리고 그녀는 “우리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었어요”라고 했다. 그녀들이 유료소개소의 문제점을 알려내고 직접 무료소개소를 운영하자 유료소개소들도 긴장했다. 서울대병원에 들어온 유료소개소는 다른 곳에서는 소개비를 5만 원 이상 받았지만 서울대병원 안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유료소개소를 통해 일하는 간병노동자들의 조건도 많이 바뀌었어요. 물론 중간착취가 없어졌다고 할 순 없지만 노동조합이 움직이니까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었죠. 하지만 유료소개소에서 일하는 간병노동자들은 여전히 어렵게 일하고 있어요. 자신들의 상황이 문제점이 뭔지 요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거죠. 알더라도 먹고 살아야 하니 참아야 하구요”

울타리 넓히기

간병노동자는 물론 노인장기요양보호법 시행으로 새로 생긴 요양보호사들의 노동조건은 여전히 최악이다. 요양보호사들은 스스로 ‘국가 공인 파출부’라고 부를 정도다. 정금자 분회장은 이제 요양보호사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전국요양보호사협회 협회장도 맡고 있다.

“요양보호사들과 관련된 제도는 아직 엉망이에요”

인터뷰를 하던 날도 그녀는 노동부와 면담을 하고 오는 길이었다. 어렵게 노인장기보험법 시행령에 요양보호사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지만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인 상태다. 보건복지무는 시행령을 따라 요양보호사들은 노동자고 4대 보험을 들어야 한다고 했지만 노동부가 방해를 하고 나섰다. 60만 명의 요양보호사들이 노동자가 아니고 개인사업주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노동부의 입장에 노동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협회가 없으면 요양보호사들은 고아나 같아요. 노동부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그래서 협회를 통해 만나고 교육도 하면서 우리가 왜 노동자인지,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알려내고 있죠. 협회의 목적은 제도를 제대로 만들고 요양보호사들도 노동자라는 것을 인정받는 것이에요”

“당당해지는 것이 먼저”

  참세상 자료사진

특수고용노동자로 살고 그녀들과 함께 노조를 만들고 지금도 싸우고 있는 그녀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를 어떻게 조직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당당하다, 우리는 노동자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요. 간병인이면 간병인으로서, 요양보호사면 요양보호사로서 당당하게 사는 것이 먼저죠. 그래야 요구도 생가고 싸울 용기도 생기는 것 아니겠어요. 이건 교육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에요. 스스로 행동하고 조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냥 노동조합 가입서 들고 다니면서 가입하세요하는 것으로는 안돼요. 내 자리는 내가 지킨다는 생각이 모여야 하는 거죠”

그녀는 “당당해 지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 말이다.

“우리는 두려움이 없었어요. 스스로 당당했으니까 말이죠.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가 생기니까 더 힘이 생겼어요. 이 울타리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으니까요. 이 울타리를 끝까지 지키고 더 크게 만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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