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일리톨’이 가르쳐주지 않은 핀란드 헬싱키

[방방곡곡99절절](12) 도시 속 문화공간 ‘꼬르야모 컬쳐팩토리 & 카펠리’

지난 6월, 어느 초여름의 따뜻한 햇살이 반기는 날, 천 명을 실은 피스보트는 ‘핀란드 헬싱키’ 항구에 가닿았다. 그 곳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한국을 기준으로 북유럽이고, 69번째 지구 일주 항해를 시작한 피스보트의 열여섯 번째 기항지였다. 모든 여행은 ‘그 곳을 가고 싶다.’ 라는 욕구에서 시작되는 것은 물론 당연하다. 그 중에서도, 나는 핀란드 헬싱키를 간다는 사실에 기대가 컸다. 그 이유는 핀란드와 헬싱키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점 때문. 누군가의 기록 혹은 만들어진 이미지로 인식된 고풍스런 유럽의 범주 안에 헬싱키는 없었고, 핀란드의 교육방식이 얼마나 획기적인지에 대한 EBS다큐를 보고서 매우 부러웠던 기억과, ‘휘바~’를 외치던 ‘자일리톨’ CF가 어느새 핀란드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어 있었달까. 전혀 모른다는 사실은 오히려 모든 것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 되었다.

또 하나, 좋아하는 일본 영화 <카모메식당>.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는 시나몬 롤과 일본식 주먹밥의 향연이 이어지는 맛있는 일상의 배경이 헬싱키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픽션이지만, 왠지 헬싱키에선 막 구워낸 시나몬롤 냄새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진짜 이유는, 내가 메모해 온 쪽지 한 장에 쓰여 있는 두 줄의 이름, 재미있는 두 공간 때문이었다.

  피스보트가 헬싱키 항구에 도착했을 때의 사진

진짜 문화를 데뷔시키는 전차 저장고, 꼬르야모 컬쳐팩토리 Koryaamo Culture factory

헬싱키 항구에 도착했을 때, 거짓말처럼 정말 카모메(일본어로 ‘갈매기’)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가까이 날아들었다. 갈매기들의 환영을 받으며, 쪽지 한 장만을 달랑 들고, 항구를 나서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한국에서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눈여겨보았던 공간을 무턱대고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시내의 풍경이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쪽지를 들고 두리번거리다가, 정류장에 서있던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아띠‘Atti'였다. 신기하게도, 내가 찾아가려는 그 공간은 그의 집과 가까이 있는 공간이었기에, 쪽지에 적힌 ’꼬르야모 컬쳐팩토리‘를 보고서 반가워했다. 그날 그는 마침 일을 쉬는 날이었고, 도시를 산책하는 중이었다. 몇 마디 말을 서로 건네다가 흔쾌히 나를 위해 공간을 직접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와 트래블메이트(여행 친구)가 되어, 기꺼이 친절한 안내에 응했다. 나는 초행길인 여행자니까. 발걸음은 햇살만큼 가벼웠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꼬르야모 컬쳐팩토리‘에 가닿았다.

  꼬르야모 컬쳐팩토리 전경

꼬르야모 컬처팩토리(이하 꼬르야모)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은, ’도심 속 문화공간‘이란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본 꼬르야모의 첫 장면은, ’누구나‘ 휴식을 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이곳은 갤러리, 전시실, 공연장, 카페, 바, 음악 및 필름 전문 서점, 소규모 사업을 위한 사무실 등이 자리 잡고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내가 쪽지를 들고 찾아갔을 리는 없었다. 꼬르야모의 재미있는 사실은, 이곳은 원래 ’전차 저장고‘였다는 사실이다. 기차가 들어있는 창고였다는 것이다. 존재의 역사가 19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갔을 때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독립 사진 전시도 이어지고 있었다. 고비용의 미술 갤러리 대신, 전차저장고의 한 벽면에 사진과 그림을 표현해, 비주류 청춘 예술가의 데뷔 역시 매끄럽고 즐겁게 이뤄지고 있었다.

  젊은 아티스트의 데뷔 사진전

이곳은 이미 ’꼬르야모‘라는 이름을 가진 독립기업이 운영을 하면서 헬싱키 시와도 유연한 협력 관계를 가지고 홍보가 가능한 탓인 건지, 시내에서도 문화 예술 공간으로 인지도를 갖고 있었다. 꼬르야모에서 일하고 있는 멤버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했었는데, 유럽에는 자체적으로 독립문화센터들의 네트워크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Trans Europe Halles라는 이름을 갖고서, 프로젝트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고 한다. 꼬르야모도 이 비영리 네트워크의 영역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꼬르야모 건물들을 서로 이어주는 사이 공간에서 아띠Atti가 건네주는 커피를 사이에 두고서 그의 마음씀씀이에, 그리고 꼬르야모의 즐거운 기운에, 낯선 유럽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웃고, 또 웃었다.

모두에게 쓸모 있는 ‘전선’공장, 카펠리KAAPELI

헬싱키 여행길에서 만난 가장 유용한 ‘전선’공장을 소개하려고 한다. 전기를 흐르게 하는 그 전선이다. ‘카펠리’는 핀란드어로 ‘전선’이라는 뜻이다. 항구에서부터 나의 지도가 되었던 내 쪽지의 적힌 첫째 줄은 꼬르야모, 둘째 줄은 바로 ‘카펠리’였다. 꼬르야모에 이은 아티스트들의 또 다른 신나는 작업장! 그 곳이 카펠리다.

  카펠리의 전체 전경

과거 유럽을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산업’과 ‘공장’이었다. 하지만, 이 산업시대는 정보화시대가 되었고, 도시 개발에 따라 ‘공장’도 더 이상 무언가를 생산할 수 없게 됐다. 카펠리는 핀란드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노키아’Nokia의 전선 공장이었다. 1930년 당시에는 핀란드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진 공장이었다고 했다.

산업의 발전에 따라 노키아는 더 큰 공장이 필요했고, 작아진 전선 공장에 대한 활용을 고민할즈음, 많은 예술가들은 저렴하고 조용한 카펠리로 왔다. 카펠리 입주자들이 된 예술가들은 공간을 변형시키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인 문화 예술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들의 노력은 언론을 통하여 큰 이슈가 되었고, 긴 논의 끝에 헬싱키는 건물과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보존하기로 결정하였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했다.

  활발히 작업중인 카펠리의 전시 타임테이블
꼬르야모에서 전해들었던 네트워크 조직인 Trans Europe Halles에 속해있는 대부분의 문화센터가 오래된 산업, 공장 빌딩들을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기존의 형식과 전통에 물음을 던지는 방식의 공간 활용이 정말 흥미로웠다. 이곳에는 박물관과 9곳의 갤러리, 댄스공연장, 운동시설, 예술학교-유아들을 위한 건축학교-, 250명 남짓 되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리허설 스튜디오, 방송국 그리고 레스토랑과 같은 이 모든 것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 곳 작업실의 99%가 임대가 되고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운영이 되고 있다는 기록을 나중에 찾아서 읽기도 했다. 천정과 바닥과 벽면은 공장과 같은 느낌이 맴돌았다. 흔히 떠올리는 콘크리트와 조금은 칙칙한 분위기의 모습들, 하지만 오히려 그것도 하나의 ‘디자인’이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내부 활용은 완벽했다.

나도 우아하게 갤러리와 작업실을 살펴봤다.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멈춰 있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른 위치와 각도에서도 작품을 보고 있던 중, 신기한 장면이 펼쳐졌다. 이름하야 ‘찾아가는 큐레이팅 서비스’. 보통, 어떠한 미술 작품 옆에는 당연하게 그 작품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작가의 소개가 붙어있기 마련이다. 한 치의 의심 없이. 그래서 나도 당연히 작품을 보고, 안내를 보고 다음으로 시선을 옮기는 그 순간, 맙소사! 내 앞에는 그 작품의 아리따운 작가가 서있었다. 작가 사진이 안내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녀는 작품 곁에 앉아 있으면서, 작품을 보러 찾아와주는 사람 한명 한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너무나 친절하게. 예전에는 미술 작품을 볼 때면, 그 안내에서 권위와 기품이 느껴졌다. 작가의 우아함이 절로 묻어났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날 헬싱키에서의 그녀와 만남에서 예술이 진짜 일상과 만나기 위해서는 훨씬 친절하고도 일상적인 만남으로도 가능하다는 지점을 느꼈다. 그녀는 나에게 친절한 작품 설명을 해주었기에 나의 감성의 지평이 한 뼘 자랐고, 그날의 방문으로 그녀는 젊은 큐레이터로 데뷔하기도 했기에 우리는 윈윈win-win 성장을 한 셈인 것이다.

  아띠Atti와의 티타임
서로 환영과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서 카펠리의 존재에 놀라며, 계속 아띠Atti와 초여름 헬싱키의 햇살을 따라 걸었다. 걸음마다 세련된 감수성의 언어를 더하던 그는, 알고 보니 인테리어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디자이너였다. 그의 인테리어 가게는 카펠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나는 꼬르야모 컬쳐팩토리와 카펠리의 신선한 기운에 힘입어, 그의 공간에 초대받았다. 그의 일과 작업공간을 구경하면서, 나는 감사한 선물까지 받게 됐다. 바로 그가 조각한 작품. 그가 작업했기 때문에, 세상에 단 두 점 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그는 선뜻 작품 중 하나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도 자신의 작품을 잘 보관해달라는 그의 고마운 얘기와 함께. 그와 하하 호호 웃으며, 동네에서 맛있는 헬싱키 식사도 먹고, 길을 지나다가 그의 친구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나를 ‘한국 친구’로 소개했다. 참 고마웠다.

피스보트는, 다음 기항지를 위해 다시 항해를 시작해야 했다. 모두가 정해진 시간까지 배로 돌아가야 했고, 약속한 시간동안만 헬싱키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 머무름의 시간이 끝나갈 때쯤, 배로 돌아가는 길모퉁이에는 ‘카모메식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영화로 보았던 그 곳이 실제로 있었다. 지구 반대편 헬싱키에서, 따뜻한 주먹밥과 계피향이 솔솔 나는 시나몬 롤을 구워서 내놓는 곳. 하지만, 내가 헬싱키에 닿았던 날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식당의 문은 열려 있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도 다행이었다. 그 날이 일요일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띠Atti를 길에서 만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아띠Atti와 그의 작품

이 여행의 맛있는 진짜 요리는 꼬르야모 컬쳐팩토리와 카펠리, 그리고 아띠Atti와의 만남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피스보트는 헬싱키와 작별하고, 다시 뱃머리를 유럽에서, 남미로, 아시아로 돌려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를 지금의 일상으로 돌려 보내주었다. 피스보트의 여행 안에서 핀란드의 헬싱키를 꺼낼 수 있었던 것은, 꼬르야모 컬쳐팩토리와 카펠리를 소개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내’가 헬싱키로부터 소개받은 것은 이 두 공간을 관통하는 헬싱키에서의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나는 이 기사를, 영어와 핀란드어로 볼 수 있도록 해서, 아띠Atti에게 전하려고 한다. 이것은 넓은 세계를 친숙하고 가깝게 연결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나의 여행을 일상으로, 다시 일상을 여행으로 가져가는 연습이기도 하다. <99절절 방방곡곡> 99줄의 핀란드 헬싱키 여행기는 끝이 났지만, 다시 여행은 시작이다. 진짜 재밌는 만남의 여행.^^


<공간 찾아가는 방법>
* 꼬르야모 컬쳐팩토리 Korjaamo Culture Factory
Töölönkatu 51 b Helsinki, Finland 00250
지도: http://foursquare.com/venue/197028
* 카펠리 KAAPELI
헬싱키 메스로 노선의 첫 역인 루오호라흐띠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Kiinteistö Oy Kaapelitalo, Tallberginkatu 1 C 15, 00180 Helsinki
지도: http://www.kaapelitehdas.fi/sijaintikartta

<함께 나눌 수 있는 정보>
* 꼬르야모 컬쳐팩토리Korjaamo Culture Factory (http://www.korjaamo.fi/)
* 카펠리KAAPELI (http://www.kaapelitehdas.fi/)
-<문화, 예술 발전소를 만들어 나가는 헬싱키의 유휴공간 재생프로젝트>,「월간도시문제」9월호, 2009년.


* 만효는 69번째 피스보트 지구대학을 성공회대 교환유학생으로 다녀왔습니다. '만효의일상여행'(saydream88.tistory.com)으로 일상을 소통하고 있습니다.
* <방방곡곡99절절>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www.glocalactivism.org]가 기획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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