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국신민의 선거로 전락한 대선

[칼럼] 내가 주권국가다

국민이 풍요로운 삶을 만드는 것이 정치라 했던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이 말을 하면서 국민이란 말이 황국신민의 약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창씨 개명을 두 번씩이나 한 박정희 독재자의 딸이니 그 사실을 알 리 없을 터이다.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 과거사 문제가 대선 가도의 발목을 잡자 과거사를 한 번 주욱 정리하겠다고 했단다. 참으로 오만한 발상이다. 그게 한 번 주욱 정리한다고 해서 정리될 문제인가. 이제라도 과거사를 죽 정리하겠다고 한다면 대통령 후보 수락을 죽 철회해야 한다.

  24일 오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여의도 당사 4층 기자회견장에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출처: 새누리당 누리TV]

오늘 과거사 문제를 두고 기자회견 한다지만 1970년대 대한민국이 발전했다는 것은 독재자 박정희 덕분이 아니었다. 그 시절의 발전은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처럼 장시간 저임금 노동으로 무한착취 당한 노동자로 인해 GDP가 커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것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애초에 대통령 후보로 나오게 되면 과거사 문제가 이렇게 불거질 줄 몰랐나. 그 정도 감각으로 어떻게 국민이 풍요로운 삶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아버지 의식만 있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에게 무슨 역사의식이 있으랴. 표를 의식한 과거사 반성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식이 있었다면, 과거사를 진정으로 반성했다면 감히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는 발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짐이 곧 국가’였던 세상으로 회귀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주권국가’인 세상으로 바뀐 시대에 걸맞게 사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도대체 누가 국민인가. 해외도피자산이 888조 원으로 세계 3위를 차지하는 이 나라에서 과연 누가 국민인가. 해외로 빼돌릴 돈조차 없는 사람들을 누가 국민으로 강요하는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도 안철수 무소속 후보도 국민을 거론한다.

2010년 통계로 한국 사회의 15세 이상 인구 4045만5085명 중 취업자가 2337만7378명이고 비경제활동인구가 1607만3086명이다. 취업자 2337만7378명 중 실업자는 100만4621명이고 임금노동자가 1661만6561명이다. 대통령 대선 후보들이 이야기하는 국민은 도대체 누구인가. 비경제활동인구를 실업자로 보면 1707만7707명이 실업자고 반드시 그렇지 않더라도 살기 힘든 사람들이다.

대통령 대선 후보들에게 국민은 정확하게 누구를 지칭하는가. 그런데도 막연하게 국민이라는 단어를 볼모로 잡고 시장에 돌아다니며 떡볶이를 먹으니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결국 노동자 민중 아닌가!

노동자 민중을 국민으로 바꿔치기한 대통령 후보들은 사실상 후보로 나서지 말았어야 한다. 국민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후보들이 어떻게 해서 국민을 풍요롭게 하고 국민과 함께 가겠다고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더군다나 우리들 각자는 국민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권국가다. 그러한 주권국가들에게 어떻게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들이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는가. 논리적으로 한 주권국가의 대표로 나서겠다는 사람들에게 주권국가가 표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헌법은 주권국가들을 국민들로 규정하여 선거의 의무를 강요하고 있지만 사실상 우리에게는 선거를 치러야 할 의무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 각자는 표 들러리나 그림자가 아니라 이미 주권국가이기 때문이다. 나의 몸은 다른 주권국가들로부터 오는 국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그 주권국가가 공모하는 사회적 폭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할 권리를 갖는다. 그것은 나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을 노동 작업 행위로 일별하는 가운데 사회가 행위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행동, 규칙을 강제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선거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다. 선거 당일 투표장을 찾는 나의 발길은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표를 투표함에 집어넣는 행동을 하는 것뿐이다. 인간의 행위가 가능하려면 우리들 각자가 말과 행위로써 주권국가로서의 권리를 선언해야 한다. 그것이 행위이자 더 나아가 정치적 행위이다.

충분하게 예상되는 일이지만, 선거철이 다가 오면 주위가 시끄러워질 것이다. 장갑을 낀 선거도우미가 손을 흔들고 선거용 타이탄 트럭에서는 뽕짝이 흘러나오며 대통령 후보들은 끊임없이 국민을 호출할 것이다. 이참에 주권국가로서 소음에 따른 피해보상을 주권국가의 대표로 나서겠다는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건 어떨까. 더 나아가 노동자 민중의 선거가 아니라 황국신민의 선거로 전락하고 노동자 민중들의 말과 행위를 박탈한 채 진행되는 선거를 보이콧하는 것은 또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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