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FTA 괴담’은 누가 만드나

[보수언론 벗겨보기] 미국서 아이 1명 낳으려면 4250만 원

2차 병원 쯤에서 신생아 한 명을 자연분만하면 2~3일 정도에 퇴원하고 돈은 20만 원이 채 안 든다. 제왕절개해 낳으면 5일정도 입원해야 하고 50만 원쯤 든다.

뉴욕타임스가 1일자 신문에 “미국에서 아이 한 명을 낳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평균 3만7341달러(약 4250만 원)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자연분만은 평균 3만 달러(3,300만 원), 제왕절개는 5만 달러(5,500만 원)쯤 든단다. <중앙일보 3일자 21면>


미국의 출산비용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중앙일보는 그 이유를 “의료제도와 관련이 있다. 미국에서는 출산 관련 절차를 세분화해 각각의 서비스마다 적지 않은 비용을 물리고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뉴욕타임스를 인용해 “아일랜드에선 공공병원에서 출산하면 전액 무료이고, 스위스는 자연분만 비용이 4,039달러(462만원), 프랑스 3,541달러(405만원), 뉴질랜드 2,386달러(273만원) 수준으로 낮지만 미국보다 훨씬 나은 출산 관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뭐 이렇게 복잡하게 설명하는지 모르겠다. 미국의 출산 비용이 높은 이유는 공적 의료보험 체계가 개판이기 때문이다. 엉망인 미국의 의료보험 체계를 중앙일보처럼 “출산 절차를 세분화해 각각의 서비스마다 비용을 물린다”고 세련되게 표현하면 좀 더 있어 보이긴 하다.

이런 얘기는 2008년 촛불 때나 한미 FTA 저지 싸움 때, 많이 들었다. “한미 FTA 체결하면 영리병원이 확산돼 맹장수술비가 천만원까지 오르고 아이 출산비가 몇 천만원씩 급증한다더라”는 얘기는 당시 유행이었다. 보수언론은 이런 말을 ‘FTA 괴담’이라고 역공했고 일정 부분 성공했다. ‘FTA 괴담’, 말도 참 잘 지어낸다. 이들은 작명의 대가들이다.

중앙일보는 올 들어 지난 3월 18일자 전면을 털어 <농업.중소기업 붕괴? FTA 괴담은 대부분 허구였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한미 FTA가 발효된 지 정확히 1년이 지난 2013년 3월 15일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이 기사에서도 중앙일보는 의료괴담 얘기를 한다. 중앙일보는 대표적 의료괴담으로 “영리병원의 확산으로 맹장수술비가 900만 원까지 오르고 약값도 폭등해 사실상 국민건강보험이 유명무실해진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소개했다.


미국 출산비용을 다룬 중앙일보의 3일자 기사의 제목은 <미국서 아이 1명 낳으려면 4250만원>이다. 900만 원이 아니라 4천만 원이 넘는 출산비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런 미친 나라를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따라 하자고 협약을 맺는 게 제정신인가.

심부름센터의 과욕이 종종 언론에 오르내린다. 심부름센터는 돈을 받고 불륜 남녀의 뒷조사를 해주다가 자주 물의를 일으킨다. 이 심부름센터가 요즘 학교 폭력의 뒤치다꺼리로 먹고 산단다. 학교나 아파트 주변에 “돈주면 때린 애 때려준다”는 내용의 전단을 붙여 활발하게 영업하고 있단다. 심부름센터가 학교 폭력을 당한 강남의 부자 아이들의 부모에게 돈을 받고 조폭을 동원해 가해 학생을 위협하거나 대신 때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 학부모들에겐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조선일보 5일자 10면>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 적나라함을 강조하려고 실제 서울 송파구의 한 중학교 앞에 붙은 ‘학교 폭력 해결사’ 전단을 사진물로 소개했다. A4 크기의 전단에는 심각한 학교 폭력을 보도한 신문 기사와 함께 ‘우리가 학교 폭력을 해결하겠으니 연락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전단 아랫부분은 연락처를 하나씩 찢어갈 수 있도록 돼 있었고 몇 장의 연락처를 사람들이 뜯어간 상태였다.

조선일보의 이 기사 제목은 <“돈주면 때린 애 때려줍니다” ... 이젠 학폭(學暴)해결사까지 등장>이었다. 학교폭력을 조폭 같은 심부름센터를 동원해 해결하는 세태를 꼬집었다.


그런데 심부름센터가 송파구 한 중학교에 붙인 전단지에서 소개한 ‘학교 폭력을 보도한 신문기사’는 다름 아닌 조선일보 2011년 12월 28일자 5면에 실린 ‘애꿏은 학생 죽음 선택했는데~’라는 제목의 기자수첩이다. 이 기자수첩은 올 들어 학생 2명이 자살한 대구의 한 중학교와 그 학교의 교사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조선일보는 피해자가 잇따라 자살하는 데도 교사들은 “가해 학생들이 평범하다”고만 하는 교사들의 안일한 대응을 비판했다. 일견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학교와 교사들만의 문제일까. 또 조선일보 말대로 가해학생들에게 무조건 처벌 위주로만 나간다고 학교 폭력이 근절될까.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과 치유가 필요하다. 학교 폭력의 밑바닥엔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학력 중심사회’가 숨어 있다. 이 문제에 눈을 감으면 학교 폭력은 절대 해결할 수 없다. 학력 중심사회가 중학교 교감과 교사들이 나선다고 쉽게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다.

우선 정책당국이 교육 정책의 방향을 뜯어고치고, 조선일보처럼 자극적인 팩트(사실)만 골라서 보도하는 보수신문의 ‘냄비 보도’를 근절해야만 해결의 단초를 겨우 마련할 수 있다. 이 심부름센터가 교묘히 이용해 먹은 위기감을 조성하는 신문기사는 조선일보의 위 기사와 함께 매일경제신문의 2011년 12월 29일자 27면 <경찰 “보복폭력 학생 구속도 불사”>라는 기사였다. 이 역시 가해학생의 처벌을 강화하자는 쪽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잡고 있다.

두 신문 다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자기들 기사가 심부름센터의 불법을 부추기는 불쏘시개로 사용됐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심부름센터만 비난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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