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인종주의

[양규헌 칼럼] 숱한 약속·공약이 휴지조각되는 동안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개월이 훌쩍 지났다. 유족들은 자식과 가족이 죽어가는 생생한 과정을 현재도 겪고 있다. 아픔과 절망의 연속이다. 국가의 통제와 조절과 보호 기능이 실종된 가운데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는 투쟁은 광화문과 청와대 인근, 그리고 국회에서 계속되고 있다. 국회는 박근혜 정권의 2중대가 되어 대통령 입만 쳐다보는 꼴이고 야권 또한 정당의 존재가치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모든 정치적 과제에 민생이 우선이라는 대통령의 주장이 웃음을 유발하는 이유는 대통령이 민생의 본질을 이해 못하기 때문이고 민생의 범주에 노동자, 민중은 제외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했던 박 대통령의 공약의 실체적 내용에도 ‘부자들은 제외’이고, 서민들에게는 간접세 방식의 세금포탄을 퍼부으면서 재정의 부족분을 채우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눈에 훤히 보이는 본질적인 문제를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게 웃긴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진행 과정에서 우리는 국가의 역할과 노동자 민중에게 올바른 ‘정치의 상’이 무엇인지 볼 수 있다. 세월호에 탔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는데도 국가의 최고책임자와 정치권의 무기력은 도를 넘고 있다. 보수정당들은 물론이고 진보정치조차 무기력한 분위기에 휩싸여 세월호 투쟁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모습으로 전락했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주요한 쟁점들이 의회의 담장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는 동안, 진보정치 또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어줍지 않은 여론만 살피는 꼴이다. 노동자 투쟁의 성과로 출발한 진보정치는 국회에서 벽에 막히면 거리로,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어 대중을 조직하고 투쟁전선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운동 방식으로 적극성이 담보되었을 때 진보정치는 대중으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고 진보의 전망을 열어갈 수 있지 않는가. 한계에 부닥친 세월호 투쟁을 거리투쟁을 통해 노동자대중을 조직하고 계급정치를 복원시켜야 진보정치가 살아갈 수 있다.

광화문 농성장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유민아빠 김영오 씨의 목숨 건 단식을 계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동조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청와대 옆에서는 유족들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한 달 가까이 노숙농성으로 박근혜 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진상규명에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한 명도 구출하지 못한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진상조사를 방해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뿐만 아니라 유족들에게 불순의 딱지를 붙이는 모습을 보면서 섬뜩했던 유신 정권의 반역의 깃발들이 눈앞에 나풀거린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이 450만 명을 넘어 500만 명을 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400만 명을 넘긴 서명이 단 한 번도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50%가 훌쩍 넘는다는 발표에 대한 실제 내용이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정권이 여론을 주도하고 조작하는 모든 사정기관과 언론과 국회까지도 지배하여 맘대로 통제하는 상황에서는 세월호 서명이 1천만 명이 훌쩍 넘는다고 해도 지지율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 최고책임자의 약속이 유명무실해 졌을 때, 그 사회는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역사의 진리이다. 박 대통령의 숱한 약속과 공약들이 쓰레기장에 흐트러지는 휴지조각이 되었고, 세월호 사건과 관련한 약속도 어지럽게 흩어지고 있다. 특별법에 대해 “세월호참사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한 정확한 규명, 책임자 처벌, 적폐타파, 관피아 척결을 통한 안전한 대한민국”을 주장했고 유족들에게 “찾아오시면 언제든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의 원인규명은 방기하고 유족들을 불순한 세력으로 몰아가며 정치전선을 구축함으로써 유족들을 정치적 반대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언제든 만나겠다는 유족들이 청와대 인근에 한 달 가까이 노숙하며 면담을 요청하고 있으나 청와대로 향한 길엔 경찰들과 경호원들이 철통같이 막아서고 있다.

사회적 쟁점이 해결되지 않고, 노동자 민중의 요구들이 정치적으로 반영되지 않을 때 우리는 광화문과 시청 앞에 모여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의지와 결의를 모아왔다. 이러한 집회에 어김없이 나타나 집회를 방해했던 집단은 ‘어버이연합’, ‘가스통 할배들’이다. 이들은 자식들이 해고되어 일자리를 잃고 생존의 벼랑에서 삶의 희망을 찾기 위한 몸부림에도 귀 기울이기는커녕, ‘빨갱이들 요구는 북한에 가서나 하라’고 조롱한다. 이들의 두뇌 속엔 민생을 이야기하는 자체가 빨갱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데 세월호 유족과 시민들이 단식농성을 시작하면서부터 농성 반대 세력이 확대되었다. 처음엔 짙은 선그라스를 쓴 ‘엄마부대 봉사단’이 찾아 와 근거 없는 억지로 유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이어서 ‘폭식투쟁’이라는 해괴한 방식으로 유족들에게 비아냥과 조롱을 일삼으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등장했다. 일베는 그간 온라인에서 머무르던 한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오프라인에서 현실정치판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걸로 읽혀진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일베의 활동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이동한 점이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는 것은 그간 온라인을 통해 주장되었던 워딩이 상식이나 관습은 물론, 인간의 사고에서 거리를 둔 해괴망측한 발상들이기 때문이다. 강자와 약자의 역학관계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줄 강자의 모델을 찾았다면 그는 숭배의 대상이고 영웅이다. 일베에게 사회적 약자는 빨갱이 아니면 다른 인종으로 분류된다. 특히 이들에게 전라도는 ‘전라디언’으로 멸족을 당해야 하는 해외 ‘홍어족’이다. 여자는 ‘김치년’으로 경멸의 대상, 합법적 강간의 대상일 뿐이며, 세월호도 ‘저주의 땅인 전라도에 갔기 때문에 저주받았다’고 한다. 일베에게 노동자나 서민들은 다른 인종인 양(자신들의 신분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데도), 인종주의적 주장들과 ‘호남몰살’ 주장을 통해 자신들을 결속시켜 왔던 일베가 오프라인으로 나온 이유는 우연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일베는 애국보수를 자처하고 구역질나는 인종주의적인 행태를 보이면서 100% 미국주의로 뭉친 ‘KKK단’을 연상하게 한다. ‘KKK단’의 백인우월주의는 모든 인종이 미국화 되어야 한다는 이념으로 제시되었고 이들의 주장은 ‘용광로 이론’이다. 다양한 불순물이 섞인 쇠붙이를 녹여 강철을 뽑아내듯이 세계각처의 다양한 인종과 종교, 언어 그리고 각기 다른 문화와 풍습을 가진 사람들이 미국인으로 새롭게 태어나야한다고 주장한 것이 KKK단이다. 특히 흑인, 황색인종이 용광로에 들어가 백인과 유사하여야 한다는 소름끼치는 주장이다. 일베의 행태도 호남인과 사회적 약자는 물론 애국보수로 분류되지 않는 자유주의자, 진보주의자는 ‘용광로 이론’을 덧씌우는 행태이다. 애국보수주의자를 자처하지 않으면 없애야할 대상으로 구분하기에 KKK단의 용광로 이론과 다를 바 없다.

죽은 사람이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비극이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도리이다. 여기에는 보수도 진보도 좌와 우의 논리도 반론이 있을 수 없다. 만약 국가다운 국가에 대한 부분에 관심을 갖는다고, 안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자는데 방기하거나 반대한다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패륜이다. 사안이 이러함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좌우의 논리니, 보수진보의 대립이니 하는 것은 정치권력의 공작이다. 그런데 이런 공작이 현재 성과를 거두고 있다. 참이 아니고 진실이 아닌 현상을 진실로 조작해 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엄청난 범죄행위인지 생각해 봐야한다. 그리고 일베가 인종주의적 분류의 잣대를 들고 설쳐대는 꼴이 자신이 속한 정치세력에게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두둔하거나 묵인하는 자체도 역사적 범죄가 될 것이다.

새누리당이야 소속 국회의원들이 일베를 방문하는 사진이 찍힐 정도이니 일베와 관계가 깊다고 본다. 하지만 새정련은 그 정치적 지지의 중심을 호남 유권자 및 그 지역 출신들에게 두고 있으면서도 호남을 향해 인종주의적 혐오와 차별 발언을 일삼는 일베의 패악에 대해 어떠한 공식 발언도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새정련은 그 전신인 민주당 시절에도 일베의 행패나 기타 지역차별 문제와 관련하여 단 한 건의 공식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일베의 이번 광화문 폭식 투쟁과 관련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그리고 또 하나의 원내 정당인 정의당은 어떠한 공식 논평도 발표하지 않았다. 이 현상은 우리나라의 제도 정치권이 이 문제에 대해서 보여 온 위선과 천박한 현실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결과가 세월호 유족조차 인종주의 잣대에 적용되고 다른 인종으로 분류되며 조롱받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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