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있다, 여기 성소수자가 있다

[김한울의 표본실](2) 어떤 사람, 어떤 인권 - 서울시민인권헌장 파동

인권은 늘 정치적이다. 대개 ‘인권’이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마땅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인권’의 역사를 들여다보노라면 인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는 그야말로 맨바닥에서 시작하여, 결국 누구에게나 마땅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로 관철시켜 온 피나는 투쟁의 결과물이다. 인권의 최전선에는 늘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가 있었고, 그들의 요구가 자신들만의 것을 빼앗아 가버릴 것이라고 믿는 자들은 핍박을 서슴지 않았다.

인권은 늘 도발적이다. 언제나 쉽게 받아들여 질 수 없는 요구를 멈추지 않는다. 피부색이 다르더라도 모두 똑같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도발이던 때가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수천 년의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일 중 하나지만 이제 우리에겐 상식이 되었다. 비록 그 상식을 삶의 순간순간에서 궁색한 변명으로 피해보려는 이들이 남아있을지언정, 적어도 그 상식을 뒤집으려 드는 이들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인권은 늘 위협적이다. 노예가 사라지면 세상이 무너질 것이라 소리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성이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면 세상이 뒤집어질 것이라 소란을 떨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반대를 위한 거짓 속임수가 아니라 진짜 공포였다. 인권의 반대편에 섰던 이들은 진정 그 요구가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순간에 세상이 뭔가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돌이킬 수 없는 인권의 역사가 쓰였다. 실제 인권의 반대편에 섰던 이들조차도 그것을 인정하여 인권의 역사는 진일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권은 늘 보편적이다. 잠시 무언가를 빼앗아 가지는 싸움이라면 우리는 늘 같은 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권은 늘 보편적인 지평 위에 섰다. 격렬한 반대와 탄압 앞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한 번 자리 잡은 인권은 보편적인 가치가 되었다. 그렇게 다른 인권의 디딤돌이 되었다. 아직 놓이지 않은 돌을 지고 묵묵히 역사의 돌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이 고난을 통해 열매를 맺어왔던 것이다. 그것이 더 넓은 인권을 위한 모든 노력의 공통점이라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인권은 늘 진화한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할 때에도, 어느 누군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는 사람은 누구나 동등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인권을 유예시킨다. 하지만 이는 다시금 여전히 우리가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명제를 확장하기 위한 길 위에 있음을 방증한다. 그럴 때 마다 인권은 어느새 작아져 버린 인권의 그릇을 시대에 맞게 키워왔다. 자유권과 평등권에서 사회권으로 진화해 온 인권의 역사는 그 증거다.

그리하여 인권은 늘 소란스럽다. 도발적이고 위협적인 요구를 통해 정치적으로 첨예한 요구를 그치지 않는 인권의 싸움은 그래서 항상 가장 소란스러운 역사의 현장 한 가운데에 자리해 왔다. ‘그것은 인권이 아니’라는 부정, ‘그것은 인권 밖의 문제’라는 주장은 그 때마다 반복되었지만 결국 그 모두는 인권의 문제였고, 보편의 확장이었다.

이와 같은 인권의 싸움이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중심으로 2014년 세밑, 서울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12월 1일 6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통해 인권헌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서울시를 규탄하고, 인권헌장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서울시는 세계인권선언일인 12월 10일에 맞춰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선포하기 위해 지난 6월부터 시민위원 150명과 인권전문가 30명 등으로 시민위원회를 구성하여 토론회 등을 통해 인권헌장을 준비해왔다. 반대도 있었다. 지난 달 20일에 열린 인권헌장 공청회 현장에 기독교계 반동성애 단체 회원들이 동성애 관련 조항을 문제삼으며 폭력적으로 공청회 진행을 방해한 것을 비롯해 반대 시위를 펼쳤다. 문제는 하나다.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 금지를 명시한 조항 때문이다.

결국 서울시는 6개월 간 시민의 뜻을 모아 인권헌장을 준비해 온 시민위원회의 최종합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원합의가 아니라는 이유다. 인권헌장 중, 차별금지 조항에 ‘성별 종교 나이 등 차별금지 사유와 함께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적시한 1안과 ‘서울 시민은 누구나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2안이 표결에 부쳐진 것이 문제가 됐다. 50개 조항 중 이견이 없는 45개 조항은 만장일치 통과된 상황이었다. 나머지 다섯 가지 미합의 조항은 정한 바에 따라 표결을 통해 차별금지 조항 1안이 통과되었지만 서울시는 합의 방식을 전원합의로 하라는 당일 통보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실상 인권헌장을 폐기한 것이다.

곳곳에서 인권헌장을 제정한 사례는 무수하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만 봐도 해외에서는 캐나다 몬트리올, 호주 빅토리아주가, 국내에서는 광주광역시가 있다. 이들 사례에서 이번에 서울시에서 문제가 된 성소수자 관련 조항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시민위원회가 표결로 채택한 1안과 같이 확인 된 차별 금지의 항목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2007년, 130개국 1000여개 지방정부 대표가 참여한 세계지방자치단체연합 제주 총회에서 채택된 ‘도시에서 인권을 위한 지구 헌장-의제’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의 도시들은 ‘도시에서의 인권 보호를 위한 유럽헌장’을 통해 같은 방식을 취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반동성애 단체들은 2안을 지지했다 한다. 가만히 두고 보면 1안과 2안은 내용적으로 차이가 없는 듯도 하다. 하지만 왜 반동성애 단체들은 2안을 지지했고, 시민위원회는 1안을 채택했을까. 반동성애 단체들의 시각에서 ‘누구나 차별받지 않아야’ 하지만 ‘성적지향’은 차별의 근거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고자 하는 시민들은 이에 반해 구체적인 차별의 근거를 최대한 명시적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반동성애 단체에 있어서 이번 서울시민 인권헌장은 정치적이고 도발적이며 위협적인 시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 인권헌장 선포의 역사가 시민위원회의 의결 절차에 따라 그대로 쓰였다면, 우리는 보편적인 인권의 지평을 한 걸음 더 멀리 디뎌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2월 10일이라는 상징적인 날짜를 임박해두고 서울시는 조용히 없던 일이 되기를 바라고, 인권단체들은 도저히 없던 일로 지나갈 수 없는 역사적 사건으로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는 첨예한 갈등의 과정에 있다.

단순히 합의 절차의 문제로 덮어두고 볼 수 없는 이유는 시민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서울시의 판단이 그 자체로 반인권적이라는 데에 있다. 이미 국내를 포함한 보편적인 인권에 대한 범인류적인 합의 안에서 성적 지향은 차별받아서는 안되는 명확한 근거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민 인권헌장은 그 명백한 합의의 틀을 시민위원회 밖에의 물리적 압력에 근거하여 차별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다에 임박한 강물이 때로는 거꾸로 흘러도 결국에는 바다에 닿고 마는 것과 다름없이 인권의 역사는 더디더라도 끊임없이 흘러왔다. ‘인간’이 아니었던 노예가, 사회적 존재가 아니던 여성이, 미성숙의 굴레에 묶여있던 청소년이 그렇게 해방되었거나 여전히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다. 주어진 적 없는 권리를 획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류 보편의 권리로 받아들여지기까지 멈추지 않는 지난한 투쟁의 역사가 바로 인권의 역사다.

2014년 12월 서울에는 성소수자의 인권은 일반의 인권과 다르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있다. 그리고 성소수자와, 그들의 인권은 다른 이들의 인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모든 이들의 동의를 받아와야만 이를 선언해 줄 수 있다는 서울시 정부가 있다.

서울시는 합의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시민위원회는 정해진 방식을 충실히 따라 합의에 도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구체적인 폭력을 중단시켜야 할 책임은 서울시에 있는 것이 자명해 보인다. 폭력을 행사하는 자를 포함한 모두의 합의를 얻어야 폭력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논리가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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