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존재를 의심케 하는 사건들

[양규헌 칼럼] 세월호와 메르스 그리고, 탄저균 택배

한해의 절반을 관통하는 유월이다. 육월, 십월을 유월, 시월이라고 하는 이유는 발음의 편의보다는 그 의미에서 찾는단다. 육, 십이라는 소리가 욕설이라는 뜻과 동음어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승려들이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하여 이런 단어들의 발음을 유, 시로 순화하였고 성리학적으로 보아도 이런 발음이 더 점잖다고 인정되었으므로 그런 소리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작금의 유월을 맞으며 점잖지 않고, 순화되지 않은 육, 십을 마구 외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눈부시게 찬란한 넝쿨장미가 유월의 뜨거움을 달구고 있는데, 사람들의 가슴은 암담한 벽과 마주치고 있다. 유월의 싱그러움은 이파리들을 성숙시키고 있지만 녹음 속에 가두어지는 암울함이 긴 한숨을 동반하게 한다. 사방으로 완벽하게 쳐진 숨 막히는 공간은 절규를 불러오고 있으나 그 절규는 합창이 아니라 나약한 읊조림으로 가늘게 흘러간다. 그래도 유월항쟁의 기록을 남겼던 뜨거운 유월이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라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피눈물로 이루어낸 민주화가 이 정부 들어 산산조각 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민주화는 애당초 없었던 게 아닐까.

진실이 감춰진 채, 바닷 속에 잠긴 세월호는 또 다른 참사를 부른다
메르스보다 지독한 유행병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산재노동자들


1년 전 세월호 참사를 접하며 국가는 무엇인가를 반문하게 되었다. 그 후 1년 동안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조차도 기형적으로 만들어졌고, 그조차도 무력화시키려고 쓰레기 같은 시행령으로 장난을 치고 있다. 죄를 저지른 범인이 수사를 한다는 억지는 진실을 규명하지 않겠다는 술수와 범인을 색출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도가 깔려있다. 이렇게 ‘세월호 특별법’에 따른 시행령은 진실을 은폐하고 말겠다는 지배 권력의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유족과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패대기쳤으며 유가족을 고립시키고 진실규명을 방해했다. 낡아빠진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유족과 국민들 가슴에 대립의 골을 파고, 돈다발을 흔들며 유가족을 모욕하는 것도 모자라 세월호 유족과 함께하고자 하는 노동자 민중들마저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앞세워 폭력을 휘둘렀다. 제발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절규를 끝내 외면하며 폭력으로 정당한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현재의 권력은 한마디로 독재정권의 전형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깊어가는 불신과 아집의 통치스타일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상태에서 뜨거워야 할 유월이 메르스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곳곳이 유령의 도시처럼 두려움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메르스 환자가 150여 명으로 확산되는 동안, 정부는 있으나 없는 것만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건에 문외한이고, 정부는 비밀주의에 사로잡혀 정보 미공개와 초기통제실패가 확산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메르스 공포가 확산되는 동안 정부의 대응은 비밀유지에만 최선을 다하는 꼴이었다. 초기 대응에 스스로 실패하는 혼란을 초래했으면 정부의 최고책임자가 사과를 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박근혜대통령은 메르스 발생 2주 만에 등장하여 메르스 대응보다는 국회법 개정안에 몽니를 부리는데 무게를 실었고, 그 말미에 고작 정부의 “초기 대응이 미흡하다”, “국가적 보건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메르스에 대해 첫 언급을 했다. 여기에 대한 비판이 극에 달하자 대통령은 메르서 환자가 없는 국립의료원에 기자들을 동원하여 방문하고 진정성이 없는 가식의 극치를 보여줬다. 메르스가 사회를 공포로 몰아가는 형국인데 대통령은 메르스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확산되는 것으로 착각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과는 무관한 환자들의 부주의로 생각한 것일까.

국가의 최고 책임자가 책임을 방기하고 싶은 더러운 욕망 때문에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수 십 년 전으로 회귀시키고 있다. 국민안전을 지키겠다고 요란을 떨며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출범시킨 국민안전처가 보여주기식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근거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제2, 제3... 세월호의 연속이다. 요양원과 버스종합터미널 화재로 애꿎은 사람들이 죽고, 군에서는 총기난사와 수류탄 폭발로 죽고, 공연장에서는 환풍구 붕괴로 죽고, 펜션 화재 사건으로 죽고, 암울한 삶에 절망을 극복하지 못해 죽고, 그리고 죽음의 현장과 공장은 노출된 산업재해로 한 해 2천 명에 육박하는 노동자가 죽어나가니 메르스와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노동자라는 이유로 단 하루도 빠짐없이 산재라는 죽음에 노출되어 살아가야하는 이런 나라가 국가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의 운명은 풍전등화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달 메르스 공포와 함께 살아있는 탄저균 샘플이 미국에서 경기도 오산의 주한미군 기지로 보내졌다. 세균전에 쓰이는 탄저균을 미군이 주한미군 기지에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미군은 이를 우리 정부에 통보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한국 몰래 생물학 무기를 마음대로 반입하는 미군의 의도는 무엇인가. “세균전”하면 일제하에 일본군의 731부대의 상징 아닌가. 미국은 과연 이 땅에서 세균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일까. <알자지라>에 의하면 미국이 한반도에서 세균전을 수행한 것은 한국전쟁에서였으며 당시 미국은 세균전을 실험할 공간이 한반도였다고 한다. 64년이 경과한 지금 경기도 오산 주한미군 기지에서 미국으로부터 살아있는 탄저균을 택배로 받았다는 것은 코미디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섬뜩하지 않은가.

탄저균 택배가 문제가 되자 미군은 실험실 내 모든 표면을 닦아내는 방식으로 제독을 했고, 24시간 뒤에 공기 중에서 탄저균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탄저균은 생존능력이 대단히 높은 세균이라고 한다. 이런 와중에 주한미군은 5월 29일 보도자료를 내 "이번 생화학방어 실험훈련은 처음 진행된 것으로 추가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중단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1년간 탄저균 표본이 한국 오산기지로 배송돼 왔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번 사고가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은 한국 국방부 관계자도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미군이 비활성화된 탄저균을 들여와서 훈련을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 이전에도 미군이 탄저균을 이용한 실험훈련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아닌 비동맹이라면 민중의 자존심은 살릴 수 있다

탄저균이란 사망률이 95%에 이르는 매우 위험한 전염병이며 증세가 나타난 부위가 검게 썩어 들어가는 전염병이다. 오산의 주한미군기지에서 탄저균을 연구한 것은 세균전 공격용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한국에 생화학 분석실을 만든 건 2년 전의 일이며 미군이 해외에 생화학 분석실을 만든 건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서울 용산과 경기도 오산, 평택에 실험실과 병원 등 관련 시설을 설치하고 일선 부대에 탐지·분석 차량도 배치했다. 2004년 철수했던 주한미군 화생방 부대인 제23화학대대의 한반도 재배치가 결정된 것도 이때이다. 북한이 코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치명적 살상무기를 한국정부의 동의 없이 한국 땅에서 훈련할 수 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탄저균 같은 1급병원체는 국제법과 국내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저균을 미국 본토에서 독성 물질을 분석하려면 며칠씩 걸리지만, 한국 실험실을 이용하면 6시간이면 분석이 끝난다고 한다. 주한미군이 행하고 있는 탄저균 실험훈련은 한국은 물론 한반도와 동북아의 운명을 좌우할 사안이며 민족의 운명 또한 풍전등화에 내몰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한국의 국익을 해할 뿐이다. 그럼에도 한국정부는 어느 누구도 미군으로부터 어떤 정보를, 어떤 경로를 통해 받았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방부는 알고 있었다고 하니 어느 말이 맞는가.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 모른척하는 것인지 판단이 어렵지만 모르는 것이라면 무능이고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이라면 책임방기와 주권은 아랑곳없이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한미동맹을 이유로 자국의 주권이 유린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어떤 입장도 없는 것은 물론, 한마디 항의도 없이 침묵이다. 혈맹이라는 한미관계보다는 식민지와 다름없는 한미동맹을 깨고 비동맹으로 전환하는 것이 민중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분노를 딛고 찬란한 유월을 되찾아 희망의 끈을 부여잡기를

미국은 탄저균으로 2014년 집중 테스트를 거쳐 올해 본격 가동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고 하니 한국이 자주적 국가인지 식민지인지 의심스럽다. ‘탄저균 택배’로 한반도정세가 요동칠 수 있는 치명적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메르스 때문에 ‘탄저균 택배쟁점’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세월호로 시작된 국민안전이 도마에 올랐음에도 연일 불거지는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에는 박근혜정부의 무능력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국정운영이 수첩과 비밀주의에 휩싸여 끼리끼리 독식하려는 더러운 권력싸움은 오죽하면 대통령 자신이 속한 새누리당과의 균열조짐까지 보일까. 박근혜정권이 창조를 외치며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며 수많은 처방을 만들겠다고 야단법석을 피워도 공염불이 되고 마는 형국이다.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할까? 안전문화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나라. 정말 절망적이다. 아니 절망적이다 못해 희망을 발견하고픈 분노가 치솟는다.

유월은 역사적으로 아름답게 반짝이는데, 우리가 벽을 마주하며 앉아 있어야 한다면 그 벽은 우리가 만든 벽이 되는 것이다. 절망에서 발견하는 희망은 노동자계급이 추구해야할 가치이며, 모아진 분노는 거대한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되지 않겠는가. 뜨거운 유월항쟁의 급격한 정세가 노동자 대투쟁의 포문을 열었듯이 사방으로 쳐 진 벽을 깨는 것이 박근혜정권의 무능하고 생각 없는 통치를 끝장내는 지름길이다. 답답함을 벗어나 총파업의 불길이 뜨거운 유월을 열어감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정치가 한발 전진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국가를 개조하는 유일한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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