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승전 기념일

백일이 지난 지금도 트럼프가 벌이는 만행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그의 도발은 계속해서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지난주 나는 파이낸셜 타임스(FT)에 정기 기고문을 쓰면서트럼프 행정부의 파트너로서 2차 세계대전 80주년을 기념한다는 문제를 다뤘다.

“칼럼 제목: 트럼프의 미국에서 역사를 기억한다. 2차 세계대전 80주년을 맞아기존의 역사 서사가 다시 쓰이고 있다사진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 기념행사 중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 에릭 드레이퍼/백악관/Getty Images

그때 내가 염두에 둔 건 다음과 같다.

(1) 미국의 글로벌 역할에 대한 트럼프의 역사 수정주의적 관점

(2) 전통적으로 알려진 군사 퍼레이드에 대한 그의 애정과전사한 미국 군인들을 기리는 데 느끼는 어려움

(3) 역사적 서사나 그 중요성을 일관되게 다루는 데 대한 전반적인 경멸그리고 자신을 링컨에 비유하거나 마러라고(Mar-a-Lago)에서 러시모어 산(Mount Rushmore)에 자신의 얼굴을 새기려는 시도

(4) 현재 이스라엘의 역사 정치(history politics)’와 가자지구에 대한 전쟁이 공공 기억의 공간에 만들어낸 극심한 왜곡

공공 기억의 공간을 규정하는 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그것은 절대로 역사 그 자체가 아니다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기념이란 본질적으로 선택과 권력의 행위다오늘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해 벌이는 끊임없는 공격을 홀로코스트의 기억에 기반한 정치적법적 방어 논리 뒤에 숨기기 위해서는 전례 없는 이중사고(double-think)가 필요하다이런 극단적 비틀림을 유지하기 위해 트럼프는 최근 바이든이 임명한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위원회 주요 인사들을 해임하고그 자리를 이스라엘의 진정한 친구들이 맡아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과 함께 자기 사람들로 대체했다트럼프가 지명한 인물 중에는 시드 로젠버그(Sid Rosenberg)도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그는 11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트럼프 유세 연설에서 민주당은 전부 타락한 자들이고유대인을 혐오하는 쓰레기들이다라고 말했다메릴랜드 주의 제이미 래스킨(Jamie Raskin) 하원의원은 이는 20세기 최악의 집단 학살을 다룰 때 정당 정치의 진흙탕을 피하려고 애써온 기관에 대한 노골적인 정치 공격이다트럼프는 이 위원회를 당파적 클럽으로 바꾸고네타냐후의 이스라엘 정치 노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무기로 만들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올해 80주년을 맞아 벌써 논란을 일으켰다그는 1월에 나치 독일을 무너뜨리는 데 있어 미국을 도와준’ 소련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며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나는 이것이 트럼프가 적군(Red Army)이 했던 역할을 인정하려는 시도였다고 본다하지만 애국주의적 성향의 러시아 평론가들에게는 전혀 호응을 얻지 못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건, FT 기사를 마지막으로 수정할 때쯤 트럼프가 2차 세계대전을 직접 염두에 두고 있었고, 본인의 소셜미디어(Truth Social)에서 5월 8일을 승전 기념일(Victory Day)로 선포하면서 판을 더 키우려 했다는 사실이었다.

도널드 J. 트럼프의 2025년 5월 1일 Truth Social. 우리의 많은 동맹국과 친구들이 5월 8일을 승전기념일(Victory Day)로 기념하고 있지만우리는 2차 세계대전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큰 승리를 만들어낸 나라다나는 지금부터 5월 8일을 2차 세계대전의 승전기념일로, 11월 11일을 1차 세계대전의 승전기념일로 다시 명명하겠다우리는 두 차례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했다힘과 용기군사적 탁월함 면에서 우리와 견줄 나라는 없었다그런데 우리는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다 — 그 이유는 더 이상 기념할 줄 아는 리더들이 없기 때문이다이제 우리는 다시 승리를 기념하기 시작할 것이다!”

트럼프의 과장된 발언을 사실로 확인해 보기 위해,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과 민간인의 사상자 수를 간단히 다시 떠올려 보자아래 그래프를 보면 파란색은 군인검은색은 민간인을 나타낸다미국은 전체 사상자 수 기준으로 18위를 기록했고그 대부분이 군인이다.

트럼프가 폄하하기로 선택한 전쟁터인 태평양 전선에서만미국이 연합군 사상자의 주된 부담을 떠안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영광의 열다섯 번째 주에, '이름 바꾸기'는 그가 거둔 많은 '승리중 하나에 불과했다.

· 트럼프 대통령은 낭비성 지출을 줄이고무기화된 행정부를 해체하며국방과 국경 안보에 대한 역사적인 예산 증액을 포함해 총 1,630억 달러의 세금 절감을 실현할 예산안을 공개했다.
· 트럼프 대통령은 재난 대응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고 권한을 주 정부로 되돌리기 위해 FEMA 검토 위원회를 출범했다.
· 트럼프 대통령은 미시간 주 셀프리지 주방위군 기지가 새로운 F-15EW 이글 II 전투기의 본거지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데 대한 인식을 반영해 5월 8일을 '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 11월 11일을 '1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로 명명했다.
· 보건복지부는 '성별 확정 치료(gender-affirming care)'라 불리는 치료에 대한 포괄적 검토 결과를 발표했고이 치료의 되돌릴 수 없는 효과를 뒷받침할 강력한 의학적 또는 과학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 트럼프 행정부는 사소한 토지 분쟁으로 부당하게 기소된 사우스다코타 주 목장주들에 대한 바이든 시절의 법적 탄압을 종식시켰다.
· 국무부는 아이티의 갱단 비브 안산(Viv Ansanm)과 그랑 그리프(Gran Grif)를 외국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다.
· 교육부는 매사피콰 학군이 원주민 마스코트를 제거하지 않을 경우 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한 사안에 대해 뉴욕 교육청을 상대로 민권 조사에 착수했다.
· 교육부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가 제9차 타이틀 IX를 위반했으며이 기관이 침해나 위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 없이 연방법 위반을 지속해왔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FT 기고문에서 나는 트럼프의 미국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을 기념하는 것이 가능한지 물었다그의 행정부가 필요한 엄숙함이나 진지함을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그런데 그가 이렇게 빠르고 직접적으로 답을 내놓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출처] Chartbook 379 American Victory Day - by Adam Tooze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태그
태그를 한개 입력할 때마다 엔터키를 누르면 새로운 입력창이 나옵니다.

의견 쓰기

댓글 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