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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기술의 억압은 덜 억압적일까?
작성자 della <della@www.jinbo.net>
작성일 2001-10-21
 
* 민주사회와 변론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기술의 억압은 덜 억압적일까?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실장)

권위적인 제도보다도 기술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더 크게 위협하고 있는 시대가
온 걸까.
현대의 감시는 기술의 힘을 빌어 과거보다 더욱더 '철두철미하게' 기록한다. 그
러나 현대의 감시가 과거의 감시와 다른 점은 기능적인 탁월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프라이버시 이론가 개리 T. 막스는 "이제 무죄가 명백해질 때까지는 유
죄로 간주"되는 시대가 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혐의 범주가 확장되었다는 말로
이를 설명한다. 컴퓨터 기술은 국가가 여러 가지 데이터베이스들로부터 범죄적
경향이 있는 사람들을 추출해 내는 것을 손쉽게 만들었다. 잠재적인 용의자들,
즉 관찰 대상이 늘어나는 것이다. 늘어난 관찰 대상은 또 현대 기술의 힘으로
손쉽게 감시된다. 그런데 이런 '혐의 범주의 확장'이 반드시 강제적이고 억압적
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서 상황이 복잡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감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이 이미 그렇다. 우
리의 말과 행동은 은행, 거리, 직장에서 익명의 CCTV에 의해 녹화되고 스마트카
드에 의해 기록된다. 이런 기술들은 대부분 혹시 일어날 지 모르는 범죄에 대비
해 도입된 것이라 하고 우리는 이러한 명분을 기꺼이 수용한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곧 나 자신도 잠재적인 용의자로 간주되고 있다는 뜻이다. 무죄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관찰과 통제의 대상이 되는 것을 자처한 셈이다. 국가나
자본가가 개인과 노동자를 관찰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그다지 변한 점
이 없지만 최근의 감시는 강제된다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과거와 상당히 다르다.
누가 강제하는 것도 아닌데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은 시대이다. 관찰당하는 것
을 거부하면 양심에 거리낄 짓을 했을 것이라는 혐의를 받게 된다. 대부분의 시
내버스에 달려 있는 CCTV는 그렇게 '양심'이라는 명분과 교환되었다. 버스 노동
자들은 삥땅을 치지 않는다면 CCTV에 의한 관찰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이다. 이런 상황을 허용한 것은, 프라이버시 이론가 데이빗 라이언에 따르면 우
리의 '편집증'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항상 수집되고
있는 현상, 그리고 그것을 허용하는 세태를 비꼰 것이다. 즉시 찍고 뽑을 수 있
는 가벼운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육교 위에서 다른 '시민'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어떤 '모범 시민'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이럴 때 '불쾌하다'는 것 이외에는
마땅히 거부할 명분이 없다.
현대 기술의 편집증은 조그마한 범죄적 행위도 놓치지 않으며 일체의 숨을 곳을
 박탈한다. 그렇지만 이런 감시가 억압적으로 강제되는 것이 아니다. 철권 통치
는 기술로 인해 부드러운 얼굴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 "벨벳 장갑은 철권을
숨길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무섭다. 숨겨진 철권은 주체가 규율을 내면화하도
록 하면서 복종을 이끌어낸다. 신자유주의적 권력의 속성이 규제를 완화하면서
통제의 빈 부분을 '책임자율성'이나 '성과급'과 같은 심리적인 통제와 자발적인
 참여로 메꾸고 있다고 한다면 현대 기술은 그 천생연분인 것이다.
이런 설명이 기술이 사회적 관계를 결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의 말에 따르면, 문제는 기술의 정치성이다. 기술은 정치적 의도에 의해 고
안되고 설계된다. 그리고 그렇게 발명된 기술은 애초의 의도를 넘어서 살아 있
는 효과를 발휘한다. 버스의 CCTV는 삥땅을 방지한다는 도입 명분을 넘어서서
자본가로 하여금 노동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 통
제 기계이다. 그것은 기술이 가지고 있는 기능 때문이 아니라 정치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맥락 때문이다.
나는 인터넷내용등급제가 바로 이런 점에서 과거의 사전 검열보다 더욱 무서운
검열 제도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은 공권력이 과거와 같은 사전 검열을 할 수 없
는 새롭고도 강력한 미디어 환경을 만들어 내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술적인 방
식의 검열을 통하여 '자율적으로' - 즉 어느 정도는 사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통
치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의 법에는 '청소년들에게 유해하지
않은 홈페이지만 유통하라'는 노골적인 문구는 없으며 '청소년에게 유해한 홈페
이지는 픽스(PICS) 등급을 달것'만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지난 9월부터 음반·
비디오물및게임물등에관한법률에 따라 전국의 모든 피씨방에 음란물차단소프트
웨어를 설치하도록 의무화되었고,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청소년이 출입하는 장소
인 학교, 도서관에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홈페이지로부터 청소년의 접근을 차단
하기 위한 차단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 차단 소프트웨어가,
정부 말에 따르면, '민간의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픽스라는 특정한 방식을 주
로 따를 것이라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차단 소프트웨어들은 등급이 표시되지 않
는 홈페이지를 차단하는 것을 기본값(default)으로 하고 있다. 물론 이 기본값
은, 정부 설명에 따르면, 선택사항(option)이다.
실제로 일어나게 될 일은 이렇다. 나의, 혹은 우리 단체의 홈페이지가 '청소년
에게 유해'한 것으로 판정되어 피씨방, 학교, 도서관에서 혹시라도 차단되는 일
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홈페이지 제작자는 자기 검열을 해야만 한다.
홈페이지가 성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권력이
 가지고 있는 기준과 늘 비교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에게 유해하지
않음'이라는 등급을 달고 복창해야 한다. 사고의 틀이 이렇게 제한되는 것이야
말로 규율 권력이 힘을 발휘하는 지점이며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억압이 발
생하는 시점이다. 바야흐로 '자율'이라는 명분으로 기술적 수단에 의하여 정부
의 의도가 '사실상' 관철되는, 새로운 검열 방식이 등장한 것이다.
1997년 미국의 통신품위법의 위헌 판결이 나기 직전에 저명한 법학자 로렌스 레
식은 [인프라의 폭정]이라는 제목의 기고글에서 "통신품위법은 나쁘다. 그러나
[통신품위법 이후에 도입될 예정인] 픽스는 더 나쁘다"고 주장했다. 법이 아닌
소프트웨어 코드가 검열을 행하는 것이 중립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은 기술이 중립적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거나 간과하고 있다. 오히려 픽스는
 더욱 손쉬운 검열방법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 보이지 않는 기술적 검열이 웹
 인프라의 일부로 작동하면서 개인이용자, 프록시서버,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
), 그리고 국가적 수준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을 이용하는 방식과 내용을 생산하
는 방식, 궁극적으로는 넷의 구조 자체에까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때로 법보다도 소프트웨어 코드가 자유의 실질적인 한도를
정한다. 레식은 이런 환경이 과거 '보이는' 국가의 검열과 씨름해 왔던 활동가
들을 당황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우리 상황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인터넷내용등급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사회
단체간에 일년여나 입씨름이 계속되어 왔지만 인터넷내용등급제 시행을 목전에
둔 지금 이 시점에도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혼란해 하고 있다. 정보통
신 분야에서만 쓰이는 낯선 전문기술용어와 정부의 복잡한 '중립적이고 자율적
기술' 논리에 밀린 탓일 게다. 그러나 "법처럼, 소프트웨어는 가치중립적이 아
니다"라는 레식의 말이 옳다. 언제나 문제는 심층적인 권력 관계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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