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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논쟁들

제 목 인터넷 검열에 대한 한 고찰
작성자 della <della@www.jinbo.net>
작성일 2001-02-16
 
작년에 통신질서확립법 반대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점을
이러저러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직은 발간되지 않은 어떤 책에 실릴 글입니다만,
토론을 위해 이정도 공개되는건 양해가 되지 않을까 해서 올립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하군요.


인터넷 검열과 시민사회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1. 들어가며

다소 논쟁적인 주제로부터 시작을 해보자. 인터넷 때문에 자살을 했다는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문제가 되는 사이트들을 신속하게 폐쇄하고 규제
조치들을 발표한다. 반면 네티즌들은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며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 자살이나 폭탄과 같은 극단적인 사례들 속에서 인터넷 '표현의 자유'는
무책임하며 과도한 가치로 보여진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인류가 역사의 진보
속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권으로 합의해 온 개념이다. 표현의 자유는 인터넷의
유해성에 대한 우려 만큼이나 마땅히 고려되어야 하는 가치인 것이다. 지금
표현의 자유에 대한 옹호 자체가 위기에 처한 데에는 몇 가지 맥락이 존재한다.
일차적으로는 뉴미디어의 사회적 수용을 둘러싼 갈등을 들 수 있다. 이런 갈등은
인터넷이 야기한 표현의 새로운 환경에 대한 강력한 옹호가 권력의 전통적인 매체
규제적 관성과 충돌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는 이를 통신질서확립법 논쟁에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인터넷 표현의 자유 논란은 지금의 내용규제가 불법 정보가
아니라, 유해하거나 불온한 정보에 대해 행정부나 사업자가 자의적인 조치를
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야기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부와
사업자의 강력한 자의적 규제를 허용하는 데는 사회 전반의 정보 격차와 기술
공포(techno-phobia)가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2. 인터넷은 뉴미디어

90년대 들어 인터넷은 새로운 대중적 표현의 환경을 급속도로 확산시켰다. 그러나
이 미디어의 사회적 수용에 대한 논의는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청소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갈등이 첨예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양상은 과거 다른 미디어, 특히 TV가 등장했을 때와 매우 유사하다.
지금은 TV 방송 규제 모델이 TV라는 매체 특성에 관한 일반적인 사회적 합의에
기초하여 자리잡았지만, 이는 대략 1950년대부터 TV가 아동이나 청소년의 공격적
성향 혹은 성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연구가 다양하게 발전해 왔던
데 힘입은 바가 크다. 역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규제 모델이 자리 잡기 이전에는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유해론과 무해론 사이에서 매우 다양하고 격렬하게
전개되었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TV가 시청자에게 일방적으로 자극을 끼친다는
자극-반응 모델보다는 시청자가 처해져 있는 가정이나 사회의 환경이 시청자의
내용 수용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시청자 중심 모델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교육방송학자들은 어린이들의 폭력행위에 TV의 폭력, 공격, 범죄적 내용이 미치는
영향은 가정교육과 같은 기타 다른 요소들에 따라 좌우된다고 지적한다. 즉 TV의
내용은 기존의 행동경향이나 유발된 행위를 보강하는 작용을 할 뿐이며,
어린이들의 TV 수용 형태는 연령, 성별, 지능지수, 교육정도, 사회계층, 부모의
습관, 사회관계 등 제요인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더
나아가 TV의 사회화 기능을 강조하기도 한다.
포르노의 영향에 대한 이론도 카타르시스 모델에 입각한 무해론과 모방 이론에
입각한 유해론으로 나뉜다. 전자는 포르노의 규제, 억압이 더 많은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주장이고 후자는 포르노 규제의 완화가 더욱 심각한 해악을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미국이나 영국은 규제 모델을 수립하기 위한 노력으로 존슨
위원회(1970, 미국), 윌리암스 위원회(1977, 영국), 미즈 위원회(1986, 미국) 등
국가적 차원의 위원회를 가동시켰었는데, 존슨과 윌리암스 위원회의 경우에는
전자에, 미즈 위원회의 경우에는 후자에 속하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즉
포르노가 사회적 행위에 끼치는 영향은 아직 명확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규제 모델 또한 아직 뚜렷치 않다. 반면 지금 우리 사회가 음란의 문제에 대하여
쉽고 단순하게 규제 위주의 결론을 내리는 것은 객관적인 근거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상당 부분 지배 계층의 '혐오감'에 근거한 자의적 기준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마광수, 장정일, 이현세 등 최근 몇년 새 불거진 음란과 표현의 자유
논란의 경우, 자의적 내용규제가 국가 권력을 배경으로 시행된다는 점에서
검열이라는 시비가 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장황하게 이런 인용을 한 것은 인터넷이 일차적으로는 미디어라는 상식이 우리
사회에 특히 부족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이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근거가 부족한 공포가 만연해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이 인터넷을 이용한다는데, 최근 언론의 경향은 자살, 폭력,
음란, 언어 습관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일상 생활에서 제기되는 대부분의 문제의
원인을 인터넷에서 찾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를 들어 자살의 결정적 원인이
자살 사이트에 있는지 자체가 논쟁의 대상이라 하겠다. 이런 문제 제기는
전통적인 미디어 효과론의 관점에서도 제기될 수 있는 '합리적' 문제 제기이며,
특히 인터넷은 쌍방향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보, 혹은 그 효과가
불특정 다수에게 무작위로 미치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특정한 주제의 사이트에는 워낙 그 주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접근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여기서 문제의 모든 원인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자살 사건이 발생하고, 인터넷이 '유죄'로 판정되고, 바로
경찰력을 앞세운 정부의 규제가 정당화되는 데에는 비약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약은 이 미디어의 성격 규정과 수용에 대한 갈등이자, 정부나 언론과
같은, 권력의 전통적인 매체 규제적 관성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인터넷의 등장이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역설이다. 인터넷은,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표현의 수단을 제공하였다.
인터넷으로 인하여 개인이 국경을 넘나드는 매우 광범위한 공중을 대상으로 직접
출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미디어 환경이다.
대중 매체가 중심이 되는 미디어 환경에서 출판 경로가 제한되었던 과거에는
표현의 자유가 언론의 편집권과 동일한 개념이었다. 과거에는 우리 주변을 떠도는
수많은 담론과 정보 가운데 편집권자에 의해 걸러지는 엄격한 사실 정보와 투철한
예술혼이 담긴 표현들만이 '표현'의 적자로 인정되고 유통되었지만, 이제는
아래로부터 직접 생산되는 정보들, 그런만큼 사실 여부가 확인되기 힘들고 가볍기
그지없는 표현들에도 발언권과 유통 수단이 주어진 것이다. 이런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표현'에 대해 새삼스런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모든 종류의 표현이 가능하다고 했을 때 이 사회는 어떤
표현에 유통을 허용하고 어떤 표현을 제한해야 하는가? 아니, 우리는 다른 이의
표현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관용해야 하가?
지배 계층은 이 질문에 대하여 보수적으로 답변을 하는 반면, '네티즌'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미디어의 수혜자들은 기술이 조건을 제공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기준을 최대한 확장할 것을 주장한다. 이런 갈등의 연원은 권력 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충분한 권력을 가지고 다른 이의 표현을 통제하고자 하는 지배 계층과
표현이 자기 권력의 거의 유일한 수단일 수 밖에 없는 피지배 계층 간의 권력
관계와 긴장이라는, 고전적인 문제가 야기한 문제인 것이다. 즉 인터넷 논쟁은
새로운 기술 환경에서 벌어지는, 고전적인 문제에 관한 논쟁이다. 특히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역사는 라디오나 TV와 같은 미디어를 그 규제
모델과 셋트로 '안전하게' 수입하거나, 혹은 일방적인 규제의 범위에 묶어
두었었기 때문에, 이러한 논쟁은 매우 고무적인 '도전'이다. 쉽게 결론을
내리기에는, 인터넷이라는 미디어가 과거의 규제 모델에 수용되기 힘들다는
기술적 특성을 가지고 있고, 인터넷의 이러한 특성이야 말로 인터넷의 탁월한
점이자 산업의 기반이라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우리가 이 문제의 정답을 수입해
올 수 없고 우리 스스로의 시행 착오를 통해 전세계와 동시에 풀어야 하는 상황은
또다른 어려움이다. 분명한 점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가 우리 사회의
역사와 진보를 결정할 것이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해 원론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분명 한때는 낯익었던 '표현의 자유'라는 주제가, 이제 더 이상 낯익지
않다. 우리에게 있어 표현의 자유는 온라인 미디어 이전의 문제로 존재한다.
미국의 정보운동가들이 주로 참고하는 '수정헌법'의 강한 법치주의 전통이
없을뿐더러, 오랜 독재 정권과 국가보안법 '체제' 하에서 우리는 표현의 자유보다
규제에 더욱 익숙하다. 사회 전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표현에 대해 관용하는
정도가 매우 낮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인식 상승과 지지층 확대, 그리고
인터넷 미디어에 대한 이해 확산이 매우 중요하다.

2. 통신질서확립법과 인터넷내용등급제 논란

2000년의 통신질서확립법(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우리 사회에서 인터넷과 표현의 자유 문제가 대중적인 관심사로
부상하도록 만들었다. 이 논란은 기본적으로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의 정의와 규제
모델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인터넷에 방송과 같은 규제 모델이 적용되어야
하는가? 신문과 같은 규제 모델이 적용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규제 모델이
필요한가?
새로운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정부는 경찰력을 바탕으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규제를 하려고 시도한다. 갈등은 여기서 싹텄다.
통신질서확립법에는 내용규제 뿐만이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 내용규제 등 서로 다른 성격의 인터넷 정책들이 혼재되어 있었고, 각각의
사안이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 막 제기되는 문제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충분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보통신부와 산하 기관들에
막대한 규제 권한이 부여되었다는 데 문제의 발단이 있었다. 권력은 '새로운
관점'에서의 접근이 요구되는 문제에 기존의 관성으로 인터넷 규제 모델을
수립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법이 처음 사회적인 문제로 등장한 것은 정보통신부가 이 법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던 지난 2000년 7월 20일에 YMCA 등 27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성명서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통신질서확립법'이라는 약칭은 애초 이 개정안의 별칭이
'개인정보보호및건전한정보통신질서확립등에관한법률'로 명명되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통신질서확립법은 단지 약칭만은 아니었으며, 이 법은 전체
조항의 대부분을 소위 '건전한 정보통신질서의 확립'을 위한 조치들에 할애하고
있었다. 그러나 '건전한 (사회) 질서 확립'이라는 말은 우리의 왜곡된 근대화
과정과 군사 정권의 모토 속에서 되풀이되었던 말이다. '건전'이라는 말이
보편화될 때, 특정 집단의 세계관과 윤리를 절대시하면서 다른 세계관과 윤리를
수렴하고 탄압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그래서 '건전'이라는 말 아래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법률에서도 '건전한
정보통신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많은 장치를
두고 있었다. 불량이용자데이타베이스를 구축하여 사업자들이 공유하고 이용자의
불법행위에 가혹한 처벌을 하는 한편 수사기관이 영장없이 사업자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등 사법적 검토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주요한 사안들이 정부의 결정에 좌우되도록 하였다. 특히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한국정보보호원,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도메인이름분쟁조정위원회 등 새로 신설되거나 대폭 강화되는 조직들이 사이트
폐쇄, 정보 삭제, 도메인 분쟁해결 등 준사법적인 기능을 포함하여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도록 보장하였다. 가장 논란을 빚었던 부분은 인터넷내용등급제였다. 만일
단일 기준이 정부에 의해 강제된다면 이는 다름 아닌 '국가에 의한 검열'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단일 기준이 학교·도서관
등에 강제가 되도록 하였던 인터넷내용등급제의 원안은 분명히 '검열'이었다.
반면 통신질서확립법에 반대하는 활동을 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은 인터넷
내용규제에 대한 입법은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법적 규제의 문제이므로 미디어의
특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함께 해외의 입법사례 등을 고려하고 여성, 청소년을
포함한 다양한 시민사회 구성원과 네티즌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면서
신중히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문제제기에 이어 8월부터는 네티즌들이 이 법에 대한 적극적
반대 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배너 달기와 시위 등
사이버 행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청소년 보호'를 명목으로 시행되는 이
제도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집단은 역설적이게도 청소년 네티즌들이었다. 그
와중에 정보통신부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소동이 벌어졌고 이 사건은 정부와
네티즌 간의 첨예한 입장 차이와 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이
소동은 통신질서확립법을 2000년에 가장 활발한 사회적 논쟁 중 하나로
부각시켰다. 정부에서 8월 19일 법 원안을 최초로 수정한 이후 국회에서 논의가
될 때까지 법안은 여러 차례 수정되었는데, 이는 이 법의 원안이 부실하게
급조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법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그만큼 격렬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법안의 골자는 계속 유지가 되는 가운데, 지난 12월 결국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의 최종안에서는 가장 독소조항으로 부각되었던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정보통신부 장관의 시책과 대통령령으로 유보되고 온라인 시위를 처벌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던 통신질서확립법 제48조3항과
정보통신기반보호법 제12조3항에 대해 '온라인 시위를 금지하기 위한 조항이
아니다'는 입법 취지를 속기록에 남기는 정도로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돌이켜
보면 지난 7월 온 국민을 경악시켰던 정보통신부의 원안에서 상당히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는 인터넷의 자유를 외치며 한 목소리로 활동해 온 청소년, 시민,
노동자 네티즌들과 노동·정치·시민사회단체들의 투쟁과 노력의 성과이다.
그러나 도메인네임 등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 권한이 정보통신부에 주어졌고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정보의 불법성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삭제할 수
있게 되었고 개인 정보는 국민의 권리가 아니라 사업자들이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하였다. 무엇보다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시행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통신질서확립법과 같은 시기에 논란이 되었던 다른
사건들이다. 행정자치부와 성남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홈페이지의 내용을
삭제하고 규제할 수 있는 인터넷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시행하려 하였다.
경찰이 전국PC방의 랜카드 맥주소와 IP주소를 수집하여 물의를 빚었다. 그리고
인터넷 방송국 '청춘'의 운영자는 인터넷 방송국의 설립이 국가보안법 상 '이적'
행위라 하여 구속연행되었다. 그런 한편 통신질서확립법상의 인터넷내용등급제와
온라인 시위에 대한 비슷한 독소 조항을 담은 정보통신기반보호법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차례대로 입법예고되는가 하면 통신질서확립법에서
삭제되었던 사업자 인지 책임이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상의 문제 조항들은 결국
삭제되었지만 이런 소동은 이 법이 담고 있는 개별 조항의 적시 사항보다도 이
법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더욱 정확하게 드러내 준다.
바야흐로 인터넷을 규제하려는 지배 계층의 총체적인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미국의 통신품위법(CDA, Communication Decency Act)처럼
인터넷 미디어 혹은 그 내용규제에 특화된 법·제도를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빼놓지 말고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인터넷 시장에 대한 자본의
이해가 인터넷 미디어와 표현에 대한 담론에 미묘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과거에는 인터넷 시장에 대하여 마치 미국 건국초기의 서부시대와 같은
자유주의적이며 낙관적인 담론이 학계, 언론계 뿐 아니라 국가 정책에서도
지배적이었으나 이제 시장이 어느 정도 활성화되면서 인터넷 통제에 대한
요구들이 늘고 있다. 이는 일정 정도 인터넷 시장을 이제 재화/용역 통제가
가능한 수요/공급의 법칙 안으로 구획/정돈할 필요성에서 제기되는 것일 게다.
"인터넷의 잡음들로 인해 소통(혹은 사회의 안전)이 방해를 받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사회적 주목이 커지고 있다. 이제 인터넷 통제의 문제가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며 핵심적인 문제는 누가 '정상적인 신호'와 '잡음'을 구분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3. 불법정보, 유해정보, 불온정보와 정부의 권한

인터넷의 내용규제에 대한 논란은, '불법' 정보가 아닌, '불온'(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하거나 '유해'(청소년보호법) 정보가 차단되는 데서 발생한다. 정부의
내용규제는 특히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전세계 여러
국가들에서 최근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대한민국의 현행법에서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모든 행위는 당연히 온라인에도
허용될 수 없기 때문에 불법 정보는 해당 법률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된다. 물론 그
법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은 별도로 전제하고 말이다. 그러나 '청소년유해정보'와
같은 '유해정보'는 명확한 불법성의 여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판단에
따르게 되어 있다. 이러한 유해정보는 불법 여부를 따지는 사법적 판단과 조치
영역의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에 곧 정부나 사업자 등에게 이를 '신속히' 통제하기
위한 준사법적 조치가 부수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자의성과 불공정성 시비가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통신품위법 논쟁에서 이와 같이 '불법
정보'와 '유해정보'를 구분하여 정부나 사업자가 현행법상의 불법성보다 더
모호하고 광범위한 '유해성'의 기준으로 내용을 규제하는 것이 사법권에 대한
도전이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지적되었던 것이다.
정부가 자율이라고 주장하는 이번 인터넷내용등급제의 최종안에서도, 청소년에게
'유해'한 사이트에는 강제 조처가 따르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누가 청소년에게
유해한지를 결정하는가의 문제이다. 지금의 선정 기준은 현행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기준이다. 그러나 이 기준은 그간 지나치게 모호하고
포괄적인 제한으로 문화예술 창작 욕구를 꺾고 동성애를 금지하는 등 정치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되어 왔다. 즉 문제의 정보가 실제로 청소년에게
유해한지의 여부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가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판단과 처벌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의 입장에서 보기에 불쾌하고 유해한 정보가 청소년에게
유해한 정보와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청소년동성애운동단체가
운영하는 청소년동성애사이트(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유해매체물')는 진정
누구에게 유해하다는 말인가? 청소년에게?
청소년보호 논리, 혹은 청소년유해정보의 문제점은 법이 일으키는 모순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과거 '불온'한 정보의 대부분은 정치적인 것이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통제는 정치 윤리 뿐 아닌 사회 윤리적이고 일상적인 영역으로까지
침투해 들어왔으며 각국 '청소년보호법'의 제정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성담론
통제는 권력의 가장 '일상적인' 통제 기제이자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이다. 인터넷과 청소년의 관계에 대한 논란은 기본적으로
'인터넷의 방종'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인 맥락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내용규제는 불법정보와 유해정보의 구분조차
명확히 하지 않은 상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성인방송국이 만일
형법상 음란물의 범위에 들어갈 정도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면 불법이
아니라 청소년유해매체물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여기서 청소년들에 대해서 출입
금지 조치를 취했다면 이에 대해 청소년보호법상의 처벌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는, 정부가 취하는 대부분의 조처가 불법
정보나 유해정보의 기준이 불명확한 '불온 정보'에 대한 법률, 즉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은 한마디로 '정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보기에 불온한 정보는 삭제되거나 이용권이 박탈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대부분의 매체 규제가 과거 '불온'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불법매체와 청소년유해매체에 별도로 적용되면서 어느 정도
'합리화'하고 있다면, 인터넷은 우리 나라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를 적용받고
있는 불행한 매체인 셈이다.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는 현재 위헌 소송에 계류되어
있다. 즉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조치들에 대해 반발이 일고 있는 것은 네티즌들이
방종하기 때문이 아니라, 뚜렷한 근거 없이 심리적인 혐의나 혐오에 기반하여
행해지고 있는 정부의 조치들이 위헌적이며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에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부작용에 대한 학부모층의 우려가 두터운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우려가 인터넷에 대한 규제 권한을 정부에 위임하는 경향으로 곧바로 연결되곤
한다는 데 있다. 앞서 살펴 보았듯 인터넷이 유해한 행동을 야기한다는 주장의
논거가 불명확하고 인터넷에는 기존의 매체 규제책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규제 권한의 위임은 그 효과가 미지수일 뿐더러 정부의 매체
통제력만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비약에는 인터넷에 대한 정보 격차와
'기술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미 행정부에 설치된 아동보호위원회는 일년 간의
연구 끝에 2000년 10월 아동을 온라인 미디어에서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위헌 시비를 낳는 별도의 매체 규제 법률이 아니라 아동포르노금지법률 등 현행
법률이 그 취지에 맞게 온라인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인터넷 등 온라인 미디어에 대한 부모의 우려와
통제력 상실은 부모세대와 차세대간의 정보 격차로 인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부모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4. 인터넷 논쟁의 기술적 성격

인터넷내용등급제가 다른 미디어의 등급제와 가장 다른 점이자 가장 위험한
부분은 기계적인 선별과 차단이라는 점이다. 인터넷은 다른 미디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매순간 막대한 내용들을 생산한다. 따라서 인터넷등급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수단을 반드시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 하더라도 기술적인 방식의 선별과 차단은 탈맥락적으로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논란이 불거질 수 밖에 없다. 이미 1997년경부터
인터넷내용등급제 논쟁을 하고 있는 미국에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섹스'라는 단어가 음란 사이트 뿐 아니라 생물교육이나 성교육 사이트에서도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거나 '가슴'이라는 단어는 요리 사이트에서도
쓰이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기계적 방식의 도입에 대하여 반대하여 왔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개발되어 PC방에 설치되어 있는 차단 소프트웨어들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동성애인권운동단체들의 사이트들을 차단하여 논란을 빚었던
바 있다. 그러나 기술적 논쟁의 본질은 기술 보다는 그 기술을 둘러싼 세력 간의
경합이라는 데 있다. 기술의 뒤에는 그 기술의 기준을 설계하고 적용하는 이의
'의도'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를 관통해 온 많은 기술 논쟁(technology debate)들은 '잠재적인 특성'에
대한 것들이었다. 현대 기술이 시스템화되면서 일단 설치한 후에는 시스템이나
제도로부터 특정 기술을 분리해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천상 기술 논쟁은 -
사후약방문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 - 기술이 설치되기 이전에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다 보니 기술 논쟁은 이 기술이 현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저 기술은 막대한 위험성을 야기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 있다는 등 실제로는 발생하지 않은 사실들에 대해 논박하는 형태를 띄게
된다. 여기서 서로 경쟁하는 각각의 진술들은 나름대로의 논리적 타당성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논쟁 과정을 지켜 보다 보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기술적인' 합리성은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
논쟁은 과학적인 논리보다는 각자가 그렇게 판단했던 가치 기준, 즉 정치적
신념이나 배경이 겨루는 것이다. 핵기술을 둘러싼 논쟁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기술학자들은 기술 논쟁은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결국 모든 기술 논쟁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지적한다. 인터넷의 '잠재적 위험'과 '잠재적 가능성'에 대한
기술 논쟁들도 기본적으로는 이런 맥락에서 정치적 논쟁이라 할 수 있다.
통신질서확립법도 그런 의미에서 매우 흥미로운 논쟁 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이
법률안의 내용은 매우 다양한 층위의 기술 논쟁을 부를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내용등급제가 과연 기술적인 실효성을 가질 것인가, 도메인네임 등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를 국민 국가가 통제할 능력이 있는가, 동시에 여러 이용자가
접속하여 온라인에서 시위를 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얼마나 위협적인가 등등.
그러나 이 모든 논쟁들은 결코 기술적인 수준에서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 기술적
근거들은 양 진영이 필요할 때마다 소환되었을 뿐, 논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진행되었다. 지난 8월 발생했던 정보통신부 '해킹' 소동은
이 사안의 정치적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법과 이 법에 포함되어 있는 인터넷내용등급제에 반대하는 네티즌들과
단체들은 8월 20일 오후10시부터 2시간 동안 온라인으로 시위를 하기로 결정하고
네티즌들의 참여를 공개적으로 호소하였다. 시위 방식은 정보통신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검열반대]라는 말머리를 달고 항의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위를 제안했던 이들도 놀랄 만큼 당시 네티즌들의 참여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1차 시위 일정이 마무리된 후에도 매일 5~6백 건의 글들이 계속 등록되었으며
시간이 갈수록 네티즌들의 참여가 늘었다. 1차 온라인 시위를 제안했던 단위들은
8월 28일 정오부터 2시까지 2차 온라인 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하였고 이때 시위
방식으로 제안된 것은 '가상 연좌 시위'(virtual sit-in 혹은 netstrike)였다. 즉
항의대상의 사이트에 접속하여 일정 시간 동안 브라우저의 '새로 고침'(Reload)
버튼을 계속 누름으로서 마치 현실 공간의 연좌 시위가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듯
서버의 정보 처리 흐름을 방해하여 서버의 속도를 저하시키는 시위 방식이다.
이는 외국의 단체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식으로서 시위 참가자가 아주 많아 서버의
처리 용량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서버가 다운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위를 앞두고
네티즌들 사이에 시위 방식에 대한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서비스를 거부하는 이
시위 방식은 자발적인 참가자들이 항의 의사를 표현하는 수동적 방식임에도 국내
언론에는 다른 서버를 해킹하여 여러 기계를 동원하는 '분산 서비스
공격'(Distributed Denial of Service)과 혼동되어 알려졌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논란의 와중에 시위 일자를 이틀 앞둔 8월 26일
정보통신부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시스템 마비의 원인에 대한
추측이 분분한 가운데 정보통신부는 진보네트워크 게시판에 익명의 이용자가
등록한, 새로 고침 버튼을 자동으로 누르게 되어 있는 자바 스크립트 파일이
시스템 마비의 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시위를 제안한 이들은 네티즌들의
반대 여론을 수용하기로 결정하고 2차 시위 방식을 1차 때와 같은 [검열반대]
항의글 쓰기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MBC와 연합뉴스 등 언론들은 정보통신부
시스템 마비의 원인을 일제히 해킹이라고 보도하였고 경찰은 8월 29일 용의자로
지목된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실을 7시간 동안 압수수색하였다.
그런데 10월 12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시스템
마비의 원인은 네티즌들의 온라인 시위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 결함 등 내부문제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즉, 정보통신부 시스템이 마비되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외부의 공격에 따른 것이라는 증거가 불충분했을 뿐더러
확인 결과 당시 정보통신부 서버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문제의 자바 스크립트가 쓰였다는 정보통신부의 주장은 '추정'에
불과했으며 익명의 이용자가 진보네트워크 게시판에 등록한 이 파일이
진보네트워크센터 측에 의해 게시되거나 쓰였다는 정보통신부의 주장은
억측이었던 것이다.
온라인에서 시위를 하는 것은 정말로 테러만큼 위험한가? 정보통신부는 국회 모임
등에서 정보통신부 시스템 마비의 사례를 들어 온라인 시위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 관계에서 정보통신부 시스템 마비는 온라인 시위와는
무관하였다. 사실은 왜곡되어 논리를 뒷받침하는데 사용되었던 것이다. 결국
온라인 시위에 대한 반대 근거는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온라인 시위에 대한 가치
판단의 문제였다. 결국 정보통신부는 통신질서확립법에 온라인 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조항을 추가하였으며 우리 사회는 별다른 이견 없이 이 조항을 수용하였다.
온라인 시위나 사이버 행동은 기본적으로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언론·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국민의 권리에 관한 이
문제가 '잠재적 위험 논리'에 일방적으로 편입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인터넷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에서 되풀이될 것이다. 최근 들어 특히
인터넷은 지나치게 방종하며 기존 사회의 질서에 위협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온라인 시위는 정말로 위험했던가? 여기서 기술적 진술은 매우 일부분만을
설명해 주었을 뿐이다. 인터넷 논쟁에서 우리는 기술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술 이전에 존재하는 사회적 맥락을 통찰하는 것이며 정치적
의도를 읽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권과 민주주의 수호라는 원칙적 입장에서
인터넷의 문제에 접근해 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터넷의 '잠재적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다.

5. 나가며

한 청소년이 자살을 하였다. 그 혹은 그녀의 죽음의 원인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여기서 가정이나 사회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보다는 자살 사이트가
갑자스런 영향을 끼쳤다는 답이 훨씬 명확해 보인다. 인터넷내용등급제와 같은
기술적 수단으로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도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답변은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찾는데도, 재발을 막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런 경향이 무엇을 정당화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최근에 인터넷이 야기했다고 하는 극단적인 사건들 속에서 정부의 규제 조치들은
매우 합당하고 시기적절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인권인
표현의 자유가 정부 혹은 기술적 조치에 일방적으로 위임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문제는 논쟁을 풍부하게 하는 사회적 토론 자체가 막혀 있다는 것이다.
이면에서는 '유해하다'거나 '불온하다'는 자의적인 기준과 언론에 의한 성급한
유죄 판결이 판을 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새로운 미디어의 규제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즉, 이 미디어의 규제에 관한 문제에 네티즌을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 수용자들과 사회 구성원들이 토론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토론을 가로막는 또 다른 요인은 인터넷 담론들이 기술화하면서 정책적
결정사항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둘러싼 여러 기술적
논쟁들의 기본 성격은 어느 하나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것이 없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네티즌 등 인터넷 문제에 당사자적인 집단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연대하여 인터넷 문제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런 노력들은 내용규제의 문제 뿐
아니라 앞으로 다양한 층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될 인터넷 정책과 정치에
대한 논쟁에서 참여적 설계를 보장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점점 더 일상적이 되어가는 내용규제에 익숙해지거나 위축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설 필요가 있다. 가장 두려운 결말은 규제가 내면화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인터넷을 둘러싼 정치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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