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 넘어 평등을...5년만에 열린 부산 성소수자 광장

2024 메리퀴어스마스, 부산 서면 일대서 모두의 존엄 외쳐

"우리는 원한다, 평등한 세상을", "우리는 원한다 윤석열 퇴진을". 윤석열 퇴진을 넘어 모두가 평등하고 차별 없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부산 지역 성소수자 시민이 모였다. 이들은 혐오세력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5년 만에 다시 광장을 밝혔다. 시린 겨울, 함께 나선 거리에서 "누구도 존재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고 마음을 모았다. 

'2024 메리퀴어스마스'. 사진작가 장영식

22일 오후 2시 부산 서면 일대에서 100여 명의 성소수자와 앨라이(ally, 성소수자 권리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이들) 시민이 모여 '2024 메리퀴어스마스'를 열었다.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성노동자, 장애인, 여성, 청소년 등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이들의 존재와 권리를 함께 찾는 자리였다. 

김민준 영남 지역 성소수자 지지모임 활동가는 "성소수자든 비성소수자든 아름다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세상, 내가 원하는 곳에서 안심하고 놀며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세상, 내가 원하는 종교에서 혐오를 받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 내가 원하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나와 같은 존재를 연기하는 배우를 보고 이 세상 모든 존재를 응원할 수 있는 세상, 차별과 혐오를 평등의 정신이 이겨낸 세상!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여러분과 함께 지금 태어날 것이다. 메리 퀴어스마스, 해피 뉴이어"라고 마음을 전하며 이날 행사의 문을 열었다. 

내년이면 20년 차가 되는 한 게이 커플도 발언에 나섰다. 이들은 스무 해째 사랑을 이어오기 위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동성 커플에게 뿌리를 내리지 말라고 강요한다. '가족이 사회의 기본'이라고 말하면서도, 우리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세금만 내고 조용히 사라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게이 커플은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인정받으며 살 권리가 있다"면서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자, 우리가 이 사회에서 누려야 할 권리"라고 짚었다. 

또한 "내란의 정신적인 공범인 보수 기독교 세력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우리 동성 커플들에게도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면서, "우리가 결혼, 상속제도 같은 권리를 요구하며 싸우는 것은 단지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2024 메리퀴어스마스'. 사진작가 장영식

퀴어 문제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라는 발언들도 이어졌다. 

보라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 활동가는 "국가는 참사를 참사라 부르지 못하게 하였고 폭력을 폭력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왔다. 여성 폭력의 존재를 지우며 국민을 싸움 붙여 왔다. 도가니 사건이라는 끔찍한 장애인 혐오 사건을 계기로 온 국민이 일어나, 힘겹게 만들어 낸, 장애인의 성적권리 보장을 지웠고, 이주민이 동등한 사람임을, 청소년이 동등한 존재임을 부정하고 지웠다. 부산의 학생인권조례는 성소수자의 존재는 지워진 채 발의되었으며,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은 침묵으로서 동의하고 있다"면서 "소수자의 존재를 외면하고 지우는 작금의 현실은, 소수자를 외면해도 되고 지워도 되는 존재로 만들었다. 이는 국민 모두의 존재를 지우고 국민을 송두리째 무시한 채 대통령의 계엄 사태까지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보라 활동가는 "그래서 우리는 모였다. 단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억압받는 우리는, 더욱 거세게 존재를 드러내며 불평등에 저항하고자 모였다. 서로의 차이를 소통하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의 존엄을 위해 싸우고자 모여서 외쳐왔다"고 밝히고, "내 존재를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고 소리 높였다. 

소연 전교조 여성위원회 소속 중학교 교사는 "학교 내 성소수자 혐오 문제가 단지 학생들만의 일이 아니라 교사들도 함께 겪고 있는 문제임을 알리고 싶다"면서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교사가 위협받고, 혐오를 두려워하는 교사가 침묵하게 되는 현실은 학생과 교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소연 교사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학교는 혐오와 두려움이 아닌, 존중과 환대가 가득한 공간이어야 한다.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향한 혐오를 멈추고, 다름을 인정하는 학교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가르치는 교실은 더 이상 그 누구의 고통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24 메리퀴어스마스'. 사진작가 장영식

다양한 발언과 함께 '다시 만난 세계 떼창' 시간 등을 가진 참여자들은 서면 일대를 행진하면서 "우리는 원한다 평등한 세상을", "우리는 원한다 평등한 학교와 일터를", "우리는 원한다 윤석열 퇴진을" 등의 구호를 더 많은 시민들과 나누었다. 

'2024 메리퀴어스마스'는 노동해방 마중,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부울경퀘어웨이브, 체제전환운동 부산모임,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 등 부산 지역 16개 단체가 함께 주최했다. 혐오세력과 해운대구청의 차별행정으로 인해 부산퀴어문화축제가 중단된 지 5년 만에 다시 찾은 '성소수자 광장'이었다. 

한편, 이날도 같은 시각 가까운 곳에서 '건강한 부산 시민 만들기 시민연대'가 "성소수자에 반대하는 맞불 집회"를 열었다. 혐오세력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메리퀴어스마스' 참여자들은 즐겁고 당당하게 "모두의 평등을, 더 나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광장을 넓혔다. 

'메리퀴어스마스'를 함께 준비한 김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는 참세상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12월 3일 전에도, 이미 일상 속에서 비상계엄의 폭력을 느꼈던 많은 소수자들이 자기 존재와 목소리를 드러내고, 우리가 어떤 사회를 함께 그려 나가야 하는가 이야기할 수 있는 광장"으로서 이날의 의미를 환기했다. 

김찬 활동가는 또한 "퀴어들이 지자체의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5년 만에 모여서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의 존엄을 외친 것은, 평등을 고민하는 다양한 사회운동의 기반을 키우는데 또 하나의 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가는, 소수자들의 일상을 바꿀 수 있는 광장들을 계속 열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태그

부산 차별 존엄 평등 성소수자 윤석열 퇴진

의견 쓰기

댓글 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