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경제"? 과거의 그림자로부터 복합 위기를 해체하기

어떻게 하면 유화 정책의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국가였던 영국이 1930년대 나치 독일보다 군비 지출에서 뒤처졌던 운명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제목나치 독일의 재무장은 영국의 재무장보다 훨씬 대규모였다)

출처 : Marzian & Trebesch 2025

유럽은 새로운 전쟁 경제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우리가 정말로 독일이 재무장하는 걸 원하는 걸까지난번을 기억해 봐!”

지난 몇 주 동안 나눈 몇몇 대화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멈춰 서서역사를 되돌아보고 싶어졌다그것이 영원불변의 진리를 제공하거나 반복되는 유사점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맥락을 제공하고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불안과 혼란 속에서, "전쟁 경제"와 나치 독일의 침략을 떠올리게 하는 20세기 중반의 역사적 경험은 우리 시대의 무게와 드라마에 걸맞은 지적·역사적 참조점 역할을 한다동시에익숙한 것이기에 우리에게 일종의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이미 "알고 있는과거이므로우리는 그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안개 속을 밝혀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만약 그런 과거의 기억이 사실은 신기루 같은 것이라면과거의 어두운 환영이 우리의 논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라면?

우선, "전쟁 경제"에 대한 논의와 1930년대의 교훈을 제대로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 경제란 무엇인가?

전쟁 경제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시리아 내전에서 볼 수 있듯이—전쟁 자체가 경제가 되고경제가 전쟁이 되는 상황이다모든 경계선이 사라지고군사적 폭력이 군벌들의 즉각적인 경제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며그들의 활동이 경제의 모든 생산과 분배를 결정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좀 더 안정적인 상황에서는—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고전적전쟁 경제처럼—군사와 민간 생활정치와 경제의 영역이 어느 정도 분리된 상태가 유지된다이런 경우전쟁 경제는 평시 경제가 완전히 전쟁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거대한 전쟁 수행을 위해 경제가 동원되는 과정을 의미한다경제학자들은 계획을 세우고거시경제가 새로운 역사적 중요성을 얻게 된다생산이 전쟁을 위해 전환되고군대에 징집된 남성을 대신해 여성 노동자가 투입되며무역과 소비가 제한되고시장 경제가 배급제로 대체되는 등 변화가 일어난다.

이미 제1차 세계대전 당시통계를 통해 측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참전국들은 전쟁 수행을 위해 전체 생산량의 30~40%를 동원하는 것이 "정상적"이었다아래 표에서 군사 지출은 1913년에서 1918년 사이 GDP 대비 정부 지출 증가율로 대략 나타나 있다.

출처 : Harrison and Broadberry 2005

1914~1918년 동안 이러한 수준의 동원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1914년 이전까지만 해도 주요 강대국들은 대규모이면서도 강력한 군사 조직을 유지하고 있었다이들은 전함 함대를 구축하고 수십만 명의 병력을 상비군으로 두고 있었다하지만 이러한 전통적 군국주의의 전성기에도이들 국가가 군사에 지출한 비용은 GDP 대비 35%를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비율적으로 보면이들의 군사 지출은 1970~1980년대 나토 회원국들의 군사비 지출과 비슷한 수준이었다절대적인 금액으로 보자면당시 경제 규모가 현대 기준으로 보면 중하위 소득 수준이었기 때문에, 20세기 후반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준의 군비 지출이었다.

출처 Ferguson 1994

1914년 이전에도 일부 비관적인 예언자들은 총력전을 상상했지만공식적인 전쟁 계획은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고 전장에서 승패가 결정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수립되었다그러나 1914년 가을이 되어서야 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끔찍한 현실이 서서히 인식되기 시작했다.

1916년 베르됭(Verdun)과 솜(Somme)에서 벌어진 소모전(Materialschlachten)에서는 병력과 물자의 소모가 전쟁의 핵심 원리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독일러시아 등 여러 참전국의 경우경제적·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본국 전선이 붕괴했고군대 자체의 물적 소진이 심화하면서 결국 혁명적 몰락과 함께 전쟁이 종식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 교훈을 분명히 깨달았다1차 세계대전 이후영국 제국과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 강대국들은 육군 군축을 추진하는 한편전략적 해군력을 독점하려 했다이 조합을 통해이들은 더 급진적인 군사 동원 없이도 경제적으로 부담 가능한 수준에서 글로벌 패권을 유지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에 반해소련을 필두로 파시스트 이탈리아나치 독일일본 제국 같은 도전적인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정치 체제를 총동원 체제의 프로젝트로 구상했다.

전간기 독일 군사 이론가들은 소련으로부터 국방국가(Wehrstaat) 개념을 차용했다. 1930년대 초 본격적인 재무장이 시작되자그들은 이 구상을 현실로 만들었다평시임에도 불구하고 군사 지출은 사상 유례없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한편영국의 유화 정책이 초기 대응이 느렸던 것은 실수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었다영국은 장기적으로 경제적 균형을 유지하면서해군과 공군을 중심으로 한 첨단 전략 전력에 의존하는 전략을 세웠다.

출처 : Tooze Deluge 2014

결국 영국의 전략은 미국과 소련과의 연합을 통해서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하지만 비록 영국이 승전국이 되었다 하더라도억제(deterrence) 전략으로서 그것은 실패한 것이었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점진적으로 억제 전략은 무너졌고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 때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동원이 이루어진 전쟁으로 돌입했다소련나치 독일일본 제국은 극단적인 총동원 체제를 운영하며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마크 해리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경제 동원에 대한 대표적인 참고 자료를 정리했다그의 수치는 전시 경제의 엄청난 규모를 실감하게 만든다.

오늘날 유럽의 방위 정책을 논의하면서 나치의 재무장과 "전쟁 경제시대를 상식적인 참조점으로 삼는 것은최소한 충격적이라고 할 만하다.

실제로유럽에서 가장 과감한 군사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조차 1930~40년대 수준의 군사 동원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그리고 이는 지극히 타당한 일이다현재 유럽이 참고해야 할 대상은 나치 독일의 무분별한 군비 확장이 아니라오히려 유화 정책 시기 영국의 군비 지출 수준이다.

나치의 재무장 지출은 균형을 잃었고무계획적이며전략적 방향성이 부족했다이는 독일 군 지도부를 반란 직전까지 몰고 가기도 했다반면, 2025년 현재 독일은 국방 예산을 GDP의 34% 수준으로 증액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30~4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다이런 수준의 방위비 증액을 "전쟁 경제"라고 부르는 것은 현실을 흐리는 표현이다.

미 국방부(DOD)의 예산이 대폭 삭감되지 않는 한독일 연방군(Bundeswehr)의 계획된 지출 수준은 비율적으로 볼 때 미국의 국방 예산과 비교해도 평범한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러시아가 주요 적대국이라면현재 논의되는 방위비 수준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와의 대규모 전쟁을 수행 중이지만공식적인 데이터에 따르면 군사 지출이 GDP의 10%에도 미치지 않는다이는 "전쟁 경제수준과는 거리가 멀다물론 러시아 경제는 핵심 산업 역량과 풍부한 석유·가스를 보유하고 있지만, EU 경제와 비교하면 여전히 규모가 작다따라서 유럽이 러시아의 전력을 상쇄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 역시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현재 유럽은 몇 가지 중요한 기술적 약점을 안고 있으며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얻은 실전 경험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하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대규모의 전면적 "전쟁 경제"가 아니라효율적인 산업 정책과 우크라이나의 전투 경험에서 시급히 교훈을 얻는 것이다.

독일은 유럽 방위를 위해 자국의 경제력과 규모에 걸맞은 기여를 해야 한다이는 독일이 1인당 기여를 가장 많이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전체적인 기여 규모에서 가장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의미다그렇다고 해서 독일이 유럽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뜻은 아니다독일은 이웃 국가들보다 압도적으로 큰 나라가 아니며국방에 대한 의지도 폴란드보다 훨씬 낮다폴란드는 국방비를 GDP의 5%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역시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며동유럽 국가들의 인력과 산업 역량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독일의 재무장이 유럽 내 세력 균형에 근본적인 도전이 될까확실히 변화는 맞다하지만 우리는 전후 유럽이 성공적으로 구축한 시스템이 무엇을 기반으로 했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독일 연방공화국(서독)이나 독일 민주공화국(동독)이 완전히 군축되었거나 국방비 부담에서 자유로웠다는 생각은 신화일 뿐이다독일이 국방비를 최소 수준으로 줄인 시기는 2000년대 이후가 가장 가까운 사례일 것이다.

 출처 : Marzian & Trebesch 2025

2차 세계대전 직후 초기에 서독과 동독 모두 국방비 부담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처음에는 점령 비용을 부담하는 예산 지출 형태로 이루어졌고이후 자체적인 군대를 구축했다.

그 과정에서 두 독일은 각각 후원국인 미국과 소련의 군사 장비를 사용했지만동시에 독일의 군사적 전통과도 직접 연결되었다.

규모 면에서 보면서독 연방공화국(Federal Republic)의 군사 구조는 독일 제국(Kaiserreich) 시절과 유사한 면이 있었다.

서독은 유럽의 "정상적인군사 강국이었다보편적 징병제를 기반으로 대규모 상비군을 유지했으며이후 예비군 복무를 통해 전력을 보강하는 구조였다. 1980년대까지도 병역을 거부하는 젊은이는 드물었고군국주의적 문화가 여전히 일반적이었다.

1980년대 서독 연방군(Bundeswehr)은 50만 명의 병력을 운용했으며동원 시 최대 130만 명까지 확충할 수 있었다조직적으로도 연방군의 기갑 및 기계화 부대는 베어마흐트(Wehrmacht) 모델을 따랐다.

주력 전력은 3개 군단, 12개 강력한 사단, 36개 여단으로 구성되었으며최정예 주력 전차(main battle tank) 약 3,000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경제적 부담 측면에서도 이 수치는 "정상적인수준이었다서독의 국방비 지출은 1960년대 초 정점에 이르렀을 때도 GDP 대비 5%를 넘지 않았으며이후 1970~80년대 내내 약 3% 수준을 유지했다.

이 모든 수치는 독일 제국(Kaiserreich) 시절에도 그리 놀라운 수준은 아니었다서독은 군사적으로 비군사화된(demilitarized) 국가가 아니었으며강력한 나토(NATO) 동맹 체제 내에서 정상적인 군사 강국이었다.

다만나치 시대처럼 총동원 체제(total mobilization)를 갖춘 국가는 아니었다사실현대 군국주의에서 나치식 총동원 체제야말로 예외적인 사례였지일반적인 기준이 아니었다.

이러한 모델이 독일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냉전 시기 미국에서도 징병제가 시행되었으며당시 군 복무를 수행한 인구 비율은 1914년 이전 프로이센보다도 약간 더 높았다.

서독 역시 이러한 전통을 이어갔으며자국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전후시대에도 군사력은 국가 정체성의 핵심 요소였다데이비드 에저턴이 지적했듯이현대 국가에서 복지(welfare)가 전쟁(warfare)을 압도하게 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의 일이다.

서독 역시 이와 같은 흐름을 따랐다독일 국가 예산에서 국가 안보와 대외 기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사회적 비용"을 초과했던 시점은 1970년대 이전이었다.

1980년대 서독 연방군(Bundeswehr)은 유럽에서 가장 큰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일반적으로 높은 군사적 역량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다하지만 이는 유럽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았고오히려 나토에 대한 핵심적인 기여로 간주하였다.

물론당시 미국이 나토에 강력히 개입하고 있었으며영국프랑스미국이 모두 독일에 주둔군을 배치하고 있었다는 점도 이러한 인식에 기여했다.

냉전이 끝난 후당시 제기되었던 우려와 달리 독일은 이를 이용해 유럽에서 패권을 확립하려 하지 않았다오히려 "평화 배당(peace dividend)"을 선택했다하지만 중요한 점은서독이 처음부터 비군사화된 상태로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안보 정책을 취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그것은 비교적 최근의 변화일 뿐이다.

현재 추산에 따르면유럽 내 미군을 완전히 대체하는 데 필요한 병력은 약 33만 명 혹은 55개 여단으로 예상된다이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현재 독일은 간신히 전투 준비가 완료된 사단 한 개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하지만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자국 방위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데 제2차 세계대전의 악몽을 다시 불러올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1970~80년대 나토 억제 전략이 작동하던 시기의 "정상적인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이러한 변화가 쉬운 일은 아니다냉전 후반기의 현실은 결코 편안한 것이 아니었다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면당시 만연했던 핵전쟁 공포와 제3차 세계대전 시나리오가 드리운 악몽 같은 그림자를 기억할 것이다.

1980년대 후반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핵 대치 상태의 해소는 엄청난 안도감을 주었다하지만 그 이전의 세계는 "전쟁 경제"도 아니었고, "비상사태"도 아니었다—적어도 극좌파나 평화운동가들의 시각을 공유하지 않는 한 그렇다.

냉전 후반부는 단순히 에릭 홉스봄이 말한 "극단의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갈등과 분열이 일상화된 세계의 현실이었다.

우리가 현재 직면한 "복합 위기(polycrisis)" 속에서유럽은 새로운 안보 과제에 직면해 있다하지만 과거의 기억을 어설프게 끄집어내 현재 상황에 덧씌우는 것은 불안감을 더욱 가중할 뿐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도 충분히 복잡하고 어렵지만과거 군사 폭력이 지배했던 어두운 시대보다 더 암울한 것은 아니다.

[출처] Chartbook 360: "War economies"? Disentangling the polycrisis from the shadows of the past.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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