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끝에 목숨 끊은 28세 이주노동자..."사회적 타살" 더는 없어야

사업장 변경 제한하는 고용허가제 폐해도 지적돼..."이주노동자의 노동인권 보장하는 제도 개선 절실"

또 한 명의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뜰시 분머걸, 스물 여덟 살의 청년은 한국에 온 지 6개월여 만에 주검이 되어 네팔로 돌아갔다. 폭언과 폭행 등 직장내괴롭힘으로 고통을 겪던 분머걸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전해진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분머걸 씨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이라며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이주노동정책의 근본적 개선"이 절실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네팔 이주노동자 직장내 괴롭힘 사망사건 재발방지 대책 촉구 기자회견 현장.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지난 22일 새벽, 스물 여덟살 이주노동자 뜰시 분머걸 씨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네팔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여 만의 일이다. 지난해 8월 한국에 입국한 분머걸 씨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2년 동안 한국에서 일할 계획이었다.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점 등을 토대로 이번 사망사건을 자살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과 전남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의 조사에 따르면, 전남 영암의 공장식 돼지농장인 ‘우성축산’에서 일하던 뜰시 분머걸 씨는 사장과 팀장의 직장내 괴롭힘으로 우울증을 앓는 등 힘겨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파악된다. 우성축산에는 총 20명의 이주노동자가 일하고 있는데, 이중 19명이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사장은 이들과 같은 네팔 출신의 팀장을 앞세워 이주노동자를 관리·통제해 왔다고 알려졌다. 산속 비탈을 깎아 지은 3층짜리 공장식 돼지 축사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직장내 괴롭힘으로 고통을 겪어 왔다고 한다. 

뜰시 분머걸 씨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사장과 팀장이 이주노동자들에게 걸음걸이까지 맞추는 군대식 생활을 강요했고, CCTV가 없는 곳으로 노동자를 데려가 폭행을 하는 일도 빈번했다고 증언했다. 분머걸 씨의 무릎을 꿇리고 영상을 촬영한 뒤 다른 노동자에게 그 영상을 보여주면서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는 협박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주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와 다른 노동시간과 기준을 알 수 없는 임금 지급에 대한 문제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급명세서도 받지 못하고, 기계 고장 등을 이유로 노동자들의 월급에서 알 수 없는 금액을 공제하는 일도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분머걸 씨와 동료들은 방역 규정 등에 따라 민가와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돼지농장에 고립되어 있었고, 한국어 소통이 어려운 사정으로 이러한 현실을 외부에 알리지 못한 채 감내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년간 해당 업체를 떠난 노동자가 28명에 이른다고 한다. 

사건 수사를 담당한 영암경찰서의 관계자에 따르면 우성축산의 사장과 팀장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폭행 등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분머걸 씨 사망 사건 조사와 시민사회 대응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은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잇따르는 이주노동자 사망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로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의 폐해를 짚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분머걸 씨 동료들은 증언에서 '돼지농장에서 나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로 인해, 분머걸 씨와 동료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하고 부당한 노동조건을 감내하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변경의 사유와 횟수가 제한되어 있고, 절차상 사업주의 동의가 필요해 이주노동자를 옭아매고 억압하는 미끼가 된다"는 설명이다. 위원장은 "지금의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강제 노동'을 허용하는 것과 다름 없다"며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사업장의 노동환경에 대한 철저한 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들에 대한 노동인권 교육과 시민 사회 전반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 개선 교육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도 사람이고,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자 같은 노동자로 받아들여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인식과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조창익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활동가는 "분머걸씨의 죽음은 범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노동자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고용주의 개인적 탐욕도 직접적인 원인이겠으나,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것이 보다 근본적 원인"이라 짚었다. 

조창익 활동가는 "인구 소멸 담론에 근거해 이주노동자의 '유입'만을 강조하고, 노동권과 인권, 정주권은 보장하지 않는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과 전남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분머걸 씨 사망 관련 조사단을 구성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6일 오전에는 전남도청 앞에서 지자체의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오후에는 전라남도 이주노동 정책 담당자들과 간담회를 통해 대응 과제를 논의했다. 

단체들은 분머걸 씨 동료 노동자들의 증언과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경찰에 우성축산 사업주에 대한 고소·고발을 진행하고, 고용노동부의 직장내 괴롭힘 조사 절차도 추진할 예정이다. 6일 오후에는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우성축산 현장 조사가 예정된 상태다. 

오는 15일 경에는 고용노동부 목포지청 앞에서 지역 이주노동자 당사자들과 함께 집회를 열고, 분머걸 씨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과제들을 촉구할 계획이다. 

한편, 분머걸 씨의 동료들은 "동료가 목숨을 잃은 자리로 돌아가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면서 사업장 이동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분머걸 씨의 사망 이후 공황 증상 등을 보인 한 명의 이주노동자가 먼저 농장을 떠나 인근 지역 쉼터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돼지농장에 남아있는 16명의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사업주가 2주 안에 사업장 이동을 할 수 있도록 동의 절차 등을 추진하겠다 약속한 상황으로, 단체들은 사업주가 약속을 이행하고 동료 노동자들이 안정적인 일터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료들이 기억하는 뜰시 분머걸 씨는 "밝고 성실한 청년"이었다. 한국에 온 지 6개월여 만에 주검이 되어 네팔로 돌아간 분머걸 씨의 삶과 죽음은,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들이 마주하는 고통어린 현실에 대한 무겁도고 절실한 질문들을 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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