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와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트럼프가 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들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해 높은 세금(관세)을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면서많은 사람들이 이 터무니없는 조치를 정당화할 수 있는 거창한 계획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분명히 하자면경제 정책으로서 트럼프의 관세는 터무니없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특정 산업을 육성하려는 산업 정책의 일환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바이든 행정부의 관세는 이러한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목표는 첨단 반도체 산업과 전기차 산업그리고 더 넓게는 청정 에너지 부문을 육성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세가 좋은 정책이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쟁할 수 있지만적어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분명한 논거는 존재한다반면미국과 오랜 동맹 관계를 맺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긴밀하게 통합된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정당화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러한 세금은 미국 내에서 광범위한 제품의 가격을 상승시킬 것이다또한기업들이 관세의 영향을 분석하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투자 감소와 성장 둔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트럼프가 유럽라틴아메리카기타 지역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부과할 가능성이 높은 관세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관세는 트럼프의 어리석은 자충수처럼 보이지만일부 사람들은 이 혼란 속에 숨겨진 천재적인 계획이 있다고 주장한다나는 이 천재적인 계획에 대해 서로 완전히 모순되는 여러 가지 설명을 들어왔다그 핵심 아이디어는어떻게든 트럼프의 대규모 관세 전략이 미국을 세계에서 유리한 위치로 재배치할 것이며적어도 미국 내 특정 집단에게는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거대한 계획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경제 전반특히 무역에 관한 한 도널드 트럼프가 기본적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상당한 증거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이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그의 첫 번째 임기 초반취임 직후에 발생했다당시 그는 새벽 3시에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마이클 플린에게 전화해 미국이 달러 가치를 낮추기를 원하는지아니면 높이기를 원하는지를 물었다.

이 사건이 즉각적으로 충격적이었던 이유는국가안보보좌관은 보통 전쟁이 임박했거나 이미 발발했을 때 호출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새벽에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플린의 첫 반응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플린은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나 잘못된 사람에게 잘못된 시간에 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넘어, 2016년 대선 캠페인에서 무역과 관세를 핵심 이슈로 내세웠던 대통령이 달러 가치의 상승과 하락 중 어느 것이 바람직한지도 몰랐다는 점이 더욱 황당했다이것은 무지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트럼프가 이번에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믿을 이유는 전혀 없다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이제 대표적인 음모론적 해석들을 살펴보자.

저평가된 달러 전략

이 이야기는 미국이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역할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에 기반하고 있다이 논리에 따르면각국이 정상적인 무역과 사업 운영을 위해 달러를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달러 가치는 지속적으로 과대평가 되어 왔다이러한 과대평가로 인해 미국 상품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졌고그 결과 미국은 대규모 무역적자를 기록하며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각국이 자국 통화 가치를 달러 대비 상승시키도록 강제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관세는 그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도구이다일단 협상이 시작되면, 1987년 플라자 합의와 유사한 협정을 체결하여 주요 교역 상대국들이 모두 자국 통화 가치를 달러 대비 상승시키도록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우선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역할에 대한 개념부터 잘못되었다달러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축통화이지만유일한 기축통화는 아니다각국은 외환 보유고로 유로영국 파운드일본 엔심지어 스위스 프랑도 보유하고 있다.

만약 각국의 외환 보유액 중 달러의 비중이 10~20%포인트 줄어든다고 해도그것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물론이것이 하룻밤 사이에 발생한다면 달러에 대한 대규모 투매가 발생하고 가치가 급락할 수도 있다그러나 35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된다면달러 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이는 경제적 충격을 일으킬 만한 일이 아니다.

달러가 국제 무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통화인 것은 사실이지만이는 단지 편리성 때문이지 국제법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니다현재도 수조 달러 규모의 무역이 유로위안기타 통화로 이루어지고 있다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에 위안화로 석유를 판매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실제로 그런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이를 막을 만한 장치는 없다.

석유가 달러로 가격이 책정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이는 현대 금융 시스템에서 거의 무의미하다오늘날 컴퓨터는 몇 분의 일초 만에 환율을 계산할 수 있다따라서 국제 무역에서 달러 사용 비중이 50% 줄어든다고 해도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다국제 무역을 위한 달러 수요는 극히 적으며거래는 몇 초 안에 완료된다심지어 수천억 달러 규모의 대형 거래라 하더라도거래 당사자들이 달러를 보유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면달러에 대한 수요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해호주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호주는 세계적인 기축통화를 보유한 국가가 아니다그러나 최소한 1980(해당 데이터셋이 시작된 시점)부터 2019년까지 매년 큰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해 왔다.

호주는 세계 기축통화의 "과도한 특권"을 누리지 않았음에도지속적으로 수입이 수출을 초과하는 상황을 유지할 수 있었다그 이유는 사람들이 호주에 투자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이것이 바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트럼프의 목표가 정말로 외국인들이 미국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인가?

이 저평가된 달러 전략과 관련해 추가로 지적할 점이 몇 가지 있다만약 트럼프의 목표가 플라자 합의와 같은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라면왜 직접 협상에 나서지 않는가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 가치를 낮추고 싶다면대다수의 주요 교역 상대국들이 여전히 미국의 동맹국이거나 적어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직접 협상 테이블에 이를 안건으로 올리는 것이 훨씬 간단한 방법이다오히려 미국이 이들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제품에 일방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어떤 협상에서 유리한 점을 만들어낼지 알기 어렵다.

이것은 협상 전략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미국은 교역 상대국들에게 무역흑자를 줄이라고 요구하면서동시에 그들의 무역흑자를 줄이는 조치를 일방적으로 취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결국그들이 자국 통화 가치를 올려 무역흑자를 줄이도록 강제하겠다는 것인데이는 "우리가 네 팔을 부러뜨리겠다네가 동의하면 네 팔을 부러뜨리는 방식으로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마지막으로트럼프는 무역이 보다 균형을 이루고대학 학위가 없는 노동자들도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던 '황금기'가 존재했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듯하다물론과거 제조업 일자리는 다른 산업에 비해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제조업에서의 임금 프리미엄은제조업 일자리가 다른 산업보다 노조에 가입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1980년 당시 제조업 일자리의 32.3%가 노조에 가입되어 있었던 반면나머지 민간 부문에서는 15.0%에 불과했다현재 제조업의 노조 가입률은 7.9%로 감소했으며민간 부문의 나머지 산업에서는 5.9%에 불과하다이로 인해 제조업 일자리가 가지던 임금 프리미엄은 거의 사라졌거나 완전히 없어졌다.

따라서 무역적자를 급격히 줄인다 해도보통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이것이 과거의 '황금기'를 되찾는 방법이 아니다.

출처 : Unsplash, Marco Zuppone

고평가된 달러 전략

대안적인 관점은트럼프가 관세를 이용해 달러의 세계적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고 강화하려 한다는 주장이다이 논리에 따르면트럼프는 달러 가치가 높을수록 수입품을 더 저렴하게 들여올 수 있으며이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그는 취임 직전 BRICS 국가들이 대안적인 기축통화를 만들 경우 거대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거의 아무런 논리적 일관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BRICS 국가(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여기에 트럼프는 스페인까지 포함시켰다)는 공통 통화를 도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이 문제는 가볍게 논의된 적은 있지만실제로 추진될 기미는 전혀 없다더 나아가이들 국가특히 인도와 러시아를 상대로 한 관세 위협은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다이들은 미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그나마 맞아떨어지는 부분은 관세가 달러 가치를 상승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논리에 따르면수입이 줄어들면 국제 외환시장에서 달러 공급이 감소하고그 결과 달러 가치가 상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효과는 투자 수요에 의해 완전히 압도될 수 있다관세 및 기타 트럼프의 정책들은 경기 침체 가능성을 대폭 높였고이로 인해 달러에 대한 투자 수요는 급격히 감소했다현재 달러 가치는 트럼프 당선 이전보다 유로 및 기타 주요 통화 대비 더 낮아졌다만약 관세를 활용해 달러 가치를 상승시키고그 결과 미국 소비자들이 수입품을 더 저렴하게 구매하며동시에 미국 수출품의 실질적인 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이 목표였다면현재 상황은 정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관세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는 혼란을 넘어선다!

트럼프의 정치적 반대자들조차트럼프가 정치 캠페인과 대통령 임기의 중심 의제로 삼았던 관세 문제에서 완전히 무지할 것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관련 증거는 너무나도 명확하다트럼프는 관세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치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 수표를 보내주는 것처럼 말한다실제로는 미국 노동자들이 수입품에 대한 세금을 부담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거대한 전략도 존재하지 않는다오직 트럼프의 자아와 허풍만이 있을 뿐이다. 1기 때 트럼프를 억제할 수 있었던 이른바 어른들은 이제 모두 사라졌다현재 그는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반복하는 예스맨들에 둘러싸여 있다이것이 우리나 세계에 좋은 소식일 리는 없다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며우리는 이를 직시해야 한다.

[출처Trump Tariffs and the Dollar as the World Reserve Currency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딘 베이커(Dean Baker)는 1999년에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를 공동 설립했다. 주택 및 거시경제, 지적 재산권, 사회보장, 메디케어, 유럽 노동 시장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세계화와 현대 경제의 규칙은 어떻게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가' 등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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