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플라밍고와 노란 조끼

트럼프 일가가 외딴 섬을 인수하려는 계획에 반대하며 알바니아 시민들이 들고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지도부 없는 이 봉기가 과연 기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알바니아 티라나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추진하는 초호화 개발사업 계획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출처: kos_data

티라나(Tirana)의 여름에는 비가 내려도 습기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알바니아 수도를 둘러싼 산맥에서 뜨거운 공기가 다시 차오르다가 결국 또 한 번 폭발하듯 쏟아진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

지난 한 달 동안 알바니아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531일 이후 비가 오든 맑든 시민들은 매일 거리로 나왔다. 마치 점점 커지는 적란운처럼 불만이 쌓여 폭발하는 분위기였다. 시민들은 티라나 중심부의 웅장한 광장인 스칸데르베그 광장에 모였다. 이곳은 한때 독재자 엔베르 호자의 거대한 동상이 시민들을 내려다보던 곳이다. 시민들은 그곳에서 총리실까지 행진했다. "알바니아는 팔아넘길 수 없다(Albania is not for sale)"라고 적힌 팻말을 들었고, 운동의 상징이 된 분홍 플라밍고와 함께 알바니아계 코소보인의 전통 모자인 첼레셰(qeleshe)를 썼다. 620일에는 참가자가 약 25만 명에 이르며 시위가 절정에 달했다. 이는 45년에 걸친 공산주의 독재가 끝나고 19913월 다당제 선거를 실시한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알바니아 시민들은 이 시위를 '플라밍고 혁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5월 말 재러드 쿠슈너와 그의 아내 이방카 트럼프가 사잔섬(Sazan Island)과 인접한 습지에 추진하는 초호화 리조트 개발에 반대하는 환경운동으로 시작했다. 이 습지는 펠리컨과 백조, 분홍 플라밍고의 중요한 서식지다. 이후 시위는 2013년부터 집권해 온 사회당의 에디 라마(Edi Rama) 총리와 민주당 대표 살리 베리샤(Sali Berisha)의 동반 사퇴를 요구하는 전면적인 정치운동으로 확대됐다.

논란의 시작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1년 쿠슈너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딸인 이방카는 알바니아 해안을 따라 요트를 타고 여행했다. 쿠슈너는 이 요트가 금융투자가 냇 로스차일드의 소유였으며, 그가 자신을 알바니아 정부 관계자들에게 소개했다고 밝혔다. 이 여행에서 두 사람은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해안의 옛 군사기지인 사잔섬을 '발견'했다. 훗날 악명 높은 인터뷰로 남은 렉스 프리드먼(Lex Fridman) 팟캐스트에서 이방카는 "그렇게 그곳을 발견했다. 우리는 섬까지 헤엄쳐 갔고, 맨발로 산을 올랐다. 그곳에 완전히 매료됐다. 그리고 여러 해에 걸쳐 그 잠재력을 실현할 기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알바니아의 브요서-나르터 델타(Vjosë-Nartë Delta) 보호구역에 있는 나르타 석호(Narta Lagoon)에 새들이 모여 있다. 이 지역에는 펠리컨과 백조, 분홍 플라밍고를 비롯해 약 300종의 조류가 서식한다. 출처: 피니어스 뤼커트(필)

2024년 말 알바니아 정부는 이 사업을 전략적 투자자사업으로 지정하고 예비 승인을 내렸다. 사업 규모는 사잔섬에 약 14억 달러, 섬 맞은편 아드리아해 연안인 브요사-나르타 해안 개발에 약 47억 달러에 달했다. 이후 환경보호 비정부기구인 PPNEA 활동가들은 라마 정부가 1990년대 초부터 유지해 온 환경보호 규정을 조용히 폐지했기 때문에 이런 사업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알바니아 시민들은 계약이 이미 체결된 뒤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라마 총리는 지금도 최종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 거래를 둘러싼 모든 과정은 의심스러울 정도로 불투명했다. 국제탐사보도기구 조직범죄·부패보도프로젝트와 알바니아 언론 가 처음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2024년 환경 규정이 변경됐을 뿐 아니라 토지 소유권도 카타르 사업가 무타즈 알카야트(Moutaz Al-Khayyat)와 라메즈 알카야트(Ramez Al-Khayyat)가 소유한 알바니아 랜드 디벨롭먼트(Albania Land Development)라는 회사를 통해 확보됐다. 이후 이 소유권은 쿠슈너의 회사인 어피니티 파트너스(Affinity Partners)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영향평가도 허가도 받지 않은 불도저가 13세기 수도원 인근 나르타 습지 한가운데 있는 조용한 마을 즈베르네츠(Zvërnec) 공사 현장에 들어오자, 몇 달 동안 쌓여온 시민들의 분노가 거리로 폭발했다. 즈베르네츠 인근에서는 민간 경비업체 직원들이 시위 참가자를 바닥에 질질 끌고 가는 장면이 촬영됐고, 국가경찰은 이를 무심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 장면을 본 알바니아 시민들은 과연 누가 이 나라를 실제로 통치하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6월 말 어느 무더운 저녁, 나는 수도 티라나에서 열린 시위에 합류해 군중을 따라 총리실까지 걸어갔다. 총리실은 바랜 분홍색 외벽을 가진 소박한 건물이었고, 행진은 그 앞에서 멈췄다. 현장에는 작은 사다리를 세워 두었고, 리본으로 장미 한 송이를 묶어 놓았다. 누군가는 초록색 레이저를 건물의 감시카메라에 비춰 거리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한쪽에는 어린이 공간도 마련해 긴 종이 위에 색연필과 펜을 놓아두었고, 시위에 나온 많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매일 밤이면 시민들이 차례로 마이크 앞에 서서 몇 분씩 발언했고, 그 뒤편 건물 벽에는 영상이 투사됐다. 이날 밤 벽에는 분홍 플라밍고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그 아래에는 "알바니아는 팔아넘길 수 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티라나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 현장에 마련된 어린이 공간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이번 시위에는 학생운동가부터 가족 단위 시민, 일부 외국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출처: 피니어스 뤼커트(필)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그 메시지는 분명하다. 시위 현장에서 가장 자주 울려 퍼지는 구호 가운데 하나는 "라마는 감옥으로, 베리샤는 감옥으로(Rama në burg, Berisha në burg)"이고, 또 다른 구호는 "이방카, 집으로 돌아가라(Ivanka, go home)".

매일 밤 분홍 플라밍고 모양의 판넬은 시위 노래의 리듬에 맞춰 위아래로 흔들리고, 저렴한 의료서비스, 해외 거주 알바니아인의 투표권 보장, 조기 총선 실시 등 요구 사항은 계속 늘어난다. 이 상징들은 군중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좌절만큼이나 강렬하다. 하지만 결국 폭풍이 몰아친 뒤 이 운동이 어디로 향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Yellow Vests)이나 미국의 월가 점거 운동(Occupy Wall Street)처럼 플라밍고 혁명도 의도적으로 지도자를 두지 않는 운동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문제는 624일 학생운동가들이 티라나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개최한 토론회의 핵심 주제였다. 토론회를 진행한 국제관계학과 학생 알리 디즈다리(Ali Dizdari)는 다른 많은 알바니아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도 3주 넘게 스칸데르베그 광장에 모여 총리실까지 행진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21세인 디즈다리는 참가 학생들이 티라나뿐 아니라 해안도시 두러스(Durrës), 그리고 마케도니아 국경 인근 고원지대의 코르처(Korçë)에서도 왔다고 강조했다.

몇 주 동안 시위를 이어간 이 다양한 학생들은 다음 단계를 논의하기 위해 교수들과 만나기로 했다. 이들은 크라우드펀딩으로 스칸데르베그 광장을 내려다보는 고급 호텔 강당을 빌릴 비용을 마련했고, 운동의 발전 방향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교수 8명을 초청했다.

활동가들이 티라나에서 열린 시위에서 분홍 플라밍고 모양의 판넬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각종 개발사업이 알바니아의 야생동물과 보호구역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출처: 피니어스 뤼커트(필)

디즈다리는 <트루스디그>(Truthdig)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첫걸음이다. 우리는 감정에 휩쓸리고 싶지 않다.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어 가려 한다. 그것은 과정이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티라나 인터내셔널 호텔에 모인 학생들 대부분은 독재정권 붕괴 이후에 태어났다. 엔베르 호자(Enver Hoxha)의 철권통치는 1985년에 끝났지만, 소련과도 단절돼 오늘날의 북한에 자주 비유되던 알바니아 공산정권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나서야 무너졌다. 그러나 학생들은 민주주의가 돌아왔어도 기대했던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앞줄에 앉아 있던 압둘라힘(Abdulrahim)"이곳의 부패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알바니아의 막대한 천연자원이 낭비됐고, 쿠슈너의 개발사업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에 수십억 달러가 투입되는 동안 평범한 시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알바니아 시민들은 권위주의적 탄압을 두려워해 현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언론·분석 사이트 <엑시트>(Exit.al)의 창립자 네리탄 세야미니(Neritan Sejamini)는 나무 그늘 아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위 장면을 반복해서 내보내는 TV 화면을 바라보다가 이번 시위가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시위는 두려움을 없앴다. 모두가 라마는 무너뜨릴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저항하기보다 이민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번 시위는 알바니아인은 행동하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뜨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은 총리에게는 전혀 전달되지 않은 듯하다. 라마는 물러설 기미를 거의 보이지 않았다. 농구선수 출신 화가로 티라나 시장 시절 이름을 알린 그는 오히려 이번 시위를 외국 세력이 벌이는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상황에 따라 그리스, 이란, 코소보의 개입을 주장했고, 시위를 취재하는 외국 언론인의 신뢰성까지 문제 삼았다.

리조트 개발사업에 대해서도 그는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내가 있는 한 이 투자는 절대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623<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다시 묻자 그는 더욱 노골적으로 "엿이나 먹어라(Go fuck yourself)"라고 시위대를 향해 말했다.

그럼에도 이번 시위가 2013년 집권 이후 국제 언론의 총애를 받아온 라마가 처음 맞닥뜨린 중대한 정치적 고비라는 점은 분명하다. 세야미니는 "지금까지 라마의 가장 큰 강점은 홍보(PR)였다"고 말했다.

라마는 국제회의에 자주 참석하며 편안한 복장과 때로는 가볍고 거친 욕설까지 섞어 쓰는 화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라마의 대대적인 이미지 관리 전략에는 이미 2025년 재선 무렵부터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알바니아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인 레아 이피(Lea Ypi) 교수는 <가디언>기고에서 라마가 투표율 44%에 그친 선거에서 재선했다고 지적했다. 그의 집권 기반은 자신의 높은 인기가 아니라 야당인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비호감에 더 크게 의존했다. 이피는 "선거 공약도 없었고, 야당과의 원칙 있는 정책 토론도 없었다. 국민의 90% 이상이 유럽연합 가입을 지지하는 나라에서는 유럽 여권 사진을 광고판에 붙이고 2030년 가입이라는 날짜만 반복하면 충분했다"고 썼다.

20266월 티라나에서 열린 시위에서 34세의 에요나 알리아이(Ejona Aliaj)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그는 <트루스디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똑같은 정치인과 대통령, 총리 밑에서 살아왔다. 이제는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고,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할 새로운 인물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피니어스 뤼커트(필)

『분노와 기아: 발칸의 민주주의 위기』(Hunger and Fury: The Crisis of Democracy in the Balkans)의 저자 자스민 무야노비치(Jasmin Mujanović)는 트루스디그와의 인터뷰에서 "이 체제는 자유롭고 공정한 시스템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라마의 통치 방식을 "탄력적 권위주의"라고 규정하며, "투명성과 책임성을 갖춘 것처럼 인위적으로 연출해 깊숙이 자리 잡은 비자유주의와 권위주의적 성향을 감추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지난주 알바니아를 방문한 프랑스 좌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La France Insoumise)’ 소속 유럽의회 의원 엠마 푸로(Emma Fourreau)는 쿠슈너-트럼프 부동산 거래의 불투명성이 발칸뿐 아니라 전 세계 민주주의가 직면한 더 큰 문제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쿠슈너가 발칸 국가에서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도 그는 버려진 건물을 고급 호텔로 개발하는 사업과 연관된 바 있다.

푸로는 "그린란드, 베네수엘라, 쿠바에 대한 위협뿐 아니라 알바니아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새로운 미국 제국주의가 유럽에서조차 거침없이 확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든 민중이 연대해 알바니아 국민의 투쟁을 함께 지지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야미니는 이번 연대의 물결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여름 휴가철,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결국 라마가 물러설지 여부 등 여러 요인에 달려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 시위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진 것 자체가 영웅적인 일"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 부패를 폭로하는 활동을 지난 5년 가까이 이어온 디지털 활동가 겐티 프로그니(Genti Progni)는 국제사회의 지지가 시위의 지속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운동의 미래는 결국 알바니아 시민들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티라나 도심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서 한 시민이 총리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피니어스 뤼커트(필)

프로그니는 프로그래머에서 반정부 활동가로 변신했으며, 지금은 매일 밤 스칸데르베그 광장에서 마이크를 운영하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자신을 지도자라고 부르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농담처럼 "나는 시위의 웨이터라고 부른다. 나는 인터넷과 확성기를 제공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양당 체제가 지배해 온 나라에서 프로그니는 이제 막 시작된 시위운동의 원로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며, 동시에 운동이 특정한 얼굴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가장 분명하게 주장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는 "우리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지도자가 생기면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일을 벌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6월 어느 날, 나는 시위가 시작되기 불과 며칠 전에 프로그니가 문을 연 코워킹 공간에서 그를 만났다. 라마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위협을 받고 있는 그는 총리의 사퇴를 "첫 번째 도미노"라고 표현했다. 그 이후의 과제로 그는 구체적인 요구 사항도 제시했다. 토지 및 투자 관련 법률 개혁, 개표기구 전면 개편, 해외 거주 알바니아인의 투표권 보장, 정당 재정과 언론 소유구조의 투명성 의무화 등이었다.

그는 "내 아이들이 더 나은 미래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나 역시 기꺼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때까지 그는 비가 오든 맑든 계속 시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시위 현장으로 돌아오자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고, 시위 참가자들은 차양 아래로 몸을 피했다. 티라나의 거대한 브루탈리즘 양식 건물 회랑 아래에서 사람들은 이 운동을 대표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를 함께 불렀다. 이탈리아의 반파시즘 노래인 「벨라 차오」(Bella Ciao)에서 '벨라(Bella)' 대신 '라마(Rama)'를 넣어 부른 개사곡이었다.

적절한 선택이었다. 이 노래는 원래 19세기 북부 이탈리아 농장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항의하며 불렀던 노래로 알려져 있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반파시즘 저항가로 널리 퍼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 노래는 훨씬 더 폭넓은 의미를 갖게 됐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에게 저항의 의지를 불러일으키지만 특정한 하나의 운동으로 한정하기 어려운 세계적인 저항의 상징이 됐다.

[출처] Pink Flamingos and Yellow Vests: Can Albania's 'Flamingo Revolution' Maintain Momentum?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피니어스 뤼커트(Phineas Rueckert)는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언론인이다. 그의 글은 《더 네이션》(The Nation), 《자코뱅》(Jacobin), 《바이스 월드 뉴스》(Vice World News), 《뉴 라인스 매거진》(New Lines Magazine), 알자지라 영어판(Al Jazeera English) 등 여러 매체에 실렸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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