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산』, 역사는 어떻게 다보스에서 끝났는가… 1907년 9월 무렵

우리는 역사적 전환의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방향을 찾기 위해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특히 깊은 통찰을 얻기 위해 위대한 문학 작품을 읽는 일도 마찬가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접근에는 모두 함정이 있다.

좋은 역사학은 스스로를 부정할 수도 있다. 특히 근대사를 다룰 때는 단절과 급격한 변화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역사가 주는 '교훈'이라는 것도 결국 "예상하지 못한 일을 예상하라"는 말 이상이 아닐 수 있다.

문학 역시 나름의 함정을 안고 있다.

소설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유럽에서 근대적 역사의식과 근대 역사서술이 등장하는 과정과 깊이 얽혀 있는 장르다. 소설의 서술 방식 자체와 작중 인물, 작가, 독자가 공유하는 시간과 상상의 공동체에 대한 전제는 고전적인 역사 서술 방식과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뛰어난 소설은 아무리 훌륭하고 치밀한 사료 연구를 바탕으로 쓴 역사서라도 따라가기 어려운 현실감을 만들어낸다. 소설가는 인물을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다. 역사학자도 인물과 상황, 장면을 구성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료의 제약을 받는다. 과학자라기보다는 법정 변호사에 가깝다. 우리는 사료가 합리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논의를 전개하기로 스스로 선택한다. 그것은 하나의 선택이다.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던 시기 사람들은 소설이 사람을 도취시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더 깊은 문제가 숨어 있다. 독자는 상식적인 사실주의 서술을 즐길 수 있지만, 그 서술이 전제하는 시간과 경험, 역사 논리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매우 불안정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톨스토이는 역사에 강한 집착을 보였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역사 서술 방식에 깊은 회의를 품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쇼펜하우어, 마르크스, 니체, 베르그송, 프로이트, 초기 페미니즘 등 19세기 사상의 급진화가 영향을 미치면서 유럽과 미국의 소설가들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역사는 무엇인가. 시간은 무엇인가. 이런 배경에서 사실주의 서사는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하는가.

1920년대에 이르러 많은 작가는 훨씬 더 파편화되고 다중적인 관점을 담은 접근만이 진정한 사실주의라는 이름에 걸맞으며 단순한 모방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 등장하면서 인물 연구는 소용돌이가 됐다. 그것은 분명 현실적이었지만 독자에게 안정적인 기준점을 제공하기보다 아찔한 심연으로 끌고 들어갔다.

따라서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를 살펴본다고 해서 쉬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문학사의 위대한 고전을 읽는다고 해서 간단히 답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앞으로 연재할 글에서 근대사를 함께 만들어낸 문학 작품들을 읽고 사유하면서 얻은 나 자신의 경험을 정리하고 기록하려 한다.

나는 이미 그런 방향에서 여러 차례 시도를 했다. 그로스만, 말라파르테에 관한 글이 그 예다. 앞으로 다시 그 작품들도 다룰 생각이다.

이번 주말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작품은 토마스 만(Thomas Mann)의 놀라운 세계적 베스트셀러 『마의 산』(Zauberberg)이다. 이 작품은 1924년 독일어로 출간됐고, 1927년 『매직 마운틴』(Magic Mountain)이라는 제목으로 영어권에 소개됐다.

우연히 나는 올여름 초 1900년대 초반 다보스의 한 요양원을 배경으로 한 이 방대한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지난 두 달 동안 이 작품은 내 사고를 지배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6월 말 마틴 울프는 폴 크루그먼과 함께 진행하는 정기 팟캐스트의 '문화 코다(Cultural Coda)' 코너에서 만의 소설을 직접 언급했다.

"이번 주 문화 코다는 소설이다. 나에게는 이것이 20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소설, 적어도 가장 많은 것을 드러내는 소설이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다. 1924년에 출간됐다. 나는 요즘 들어 1920년대와 1930년대를 점점 더 많이 생각한다. 이 책의 핵심은 20세기 전반을 뒤흔든 지적 격동이다. 한쪽에는 제템브리니(Settembrini)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전통적이고 문명화된 자유주의적 인문주의가 있다. 그는 내가 지지하는 종류의 견해를 말하며, 나 역시 그것이 점점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반대편에는 나프타(Naphta)가 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혁명가지만 끝까지 밀어붙여 보면 극우 혁명가들과 매우 닮아 있으며, 결국 히틀러와 스탈린의 차이도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깊은 갈등의 감각을 전달한다. 만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이후 이어진 파괴의 출발점이었다는 생각을 제시한다. 그는 전쟁 중 이 작품을 집필했고 전쟁 직후 출간했다. 100년 전에 나온 소설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힘없는 자유주의적 인문주의자들과 열정적인 권위주의자들 사이의 대립을 이토록 뛰어나게 묘사한다는 사실은 놀랍다."

울프에게 『마의 산』은 자유주의 세계화의 위기를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다. 이것은 제템브리니와 나프타의 유명한 논쟁을 떠올리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제템브리니는 자유주의적 진보를 옹호한다. 반면 나프타는 훨씬 어두운 인물로, 더욱 급진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인간의 더 깊고 어두운 동기를 끌어내는 근대사의 비전을 주장한다.

제템브리니와 나프타의 논쟁은 거대한 서사를 이루는 하나의 축에 불과하다. 그 논쟁 자체도 아무 결론 없이 끝난다.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이 자살하고, 19147월 위기와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이라는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충격이 요양원의 일상을 깨뜨리면서 이야기는 중단된다. 브래드 들롱(Brad DeLong)이 울프의 『마의 산』 해석을 논평하며 현명하게 지적했듯이, 『마의 산』에서는 사물이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인 경우가 드물다.

『마의 산』의 핵심은 전통적인 서사소설의 외피를 쓴 모더니즘적 늑대라고 할 수 있다. 만은 사실주의와 아이러니, 상징주의를 교묘하게 엮어 누구나 읽을 수 있으면서도 끝없이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사물은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인 듯하다. 그러나 다시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마의 산』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작품인가. 작품의 형식은 내용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그리고 그것들은 이 작품이 쓰인 시대,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질문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답이 자명하지 않다. 끝까지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겠지만, 대부분은 『마의 산』을 읽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충격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이 작품은 너무 길고, 너무 강하게 독자를 몰입시킨다. 독자는 읽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태도를 바꾸는 경험을 해야 한다. 『마의 산』은 이런 의미에서도 교양소설(Bildungsroman)이다. 이 책은 독자를 변화시킨다. 이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독일적이고, 매우 기이하며, 빌헬름 제국 이후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 강렬한 인상은 무엇보다 문체에서 비롯된다. 만의 문장은 길고, 때로는 장황하기까지 하다. 문체는 우아해서 독자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동시에 많은 인내를 요구하며 말도 많다. 묘사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그렇다면 『마의 산』을 사실주의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오히려 현실과 현실 인식 자체를 끊임없이 문제 삼는 작품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만은 마술적 사실주의처럼 극적인 충격을 추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초현실주의 작가도 아니다. 그럼에도 『마의 산』은 일상의 흐름과 의식의 경계를 함께 탐구하는 소설이다.

이 시대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내면세계가 핵심이다. 20세기 초 유럽 사회를 한눈에 조망하는 서사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작품의 배경은 '세상'과 멀리 떨어진 다보스다. 당시 다보스는 새롭게 떠오르는 스위스의 휴양 및 스포츠 도시였다. 다보스 자체도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윤곽만 제시한다. 우리는 사회보다 날씨와 햇빛, ,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Hans Castorp)의 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카스토르프는 함부르크(Hamburg)의 명망 있는 상인 가문 출신의 젊은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그는 특별한 열정도 야망도 없이 해양기술자의 길로 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정식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 '뭔가 몸 상태가 완전히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여름휴가를 이용해 결핵 초기 증세를 치료하려고 다보스로 요양을 떠난 사촌을 찾아가기로 한다. 때는 19078월이다.

만은 이후 7~8년에 걸쳐 카스토르프를 따라가며 독자를 요양원이라는 폐쇄된 세계 안으로 이끈다. 그는 단순히 그 공간을 묘사하지 않는다. 독자가 그곳의 일상과 습관 속으로 직접 들어가게 만든다. 만이 그린 요양원은 점점 더 외부와 단절된 폐쇄 공간이며, 독특하고 기이한 규칙이 지배하는 세계다. 그래서 이 작품은 1914년 이전의 세계를 다루면서도, 바로 그 세계가 역사와 정치, 지정학, 경제에서 떨어져 나와 각각의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경향을 다룬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근대 세계가 끊임없이 '버블'을 만들어내는 경향과, 근대적 시간성, 곧 동시대성을 공유하는 상상의 공동체가 더 이상 사람들을 하나로 묶지 못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만의 소설이 동시대 역사를 성찰하는 작품이라면, 그것은 1900년대 초 역사 자체가 멈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마의 산』이 J. G. 발라드(J. G. Ballard) 같은 작가의 작품을 예고한 선구작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발라드의 작품이 심리적 효과를 최소화하고 차가운 문체를 유지한다면, 만이 보여주는 내면세계는 훨씬 깊고 때로는 열병을 앓는 듯하다.

만이 『마의 산』을 역사소설(Geschichtsroman)이 아니라 시간소설(Zeitroman)이라고 부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 작품은 역사의 로망스가 아니라 시간의 로망스다. 베르크호프(Berghof)20세기 초 '역사의 종말'이다. 그곳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엑스레이 검사와 진찰, 체온 측정, 식사, 연애에 대한 집착뿐이다.

이것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매우 진지하다. 요양원은 여러 측면에서 풍자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의료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중증 환자이며 실제로 많은 사람이 죽는다. 내가 보기에는 『마의 산』에 관한 평론들은 결핵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죽음의 감각을 충분히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

요양원은 여러 면에서 우스운 공간일지 몰라도 결핵은 결코 우스운 병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활동성 결핵 환자 대부분은 치료를 받지 못하면 결핵으로 사망했다. 양성 판정을 받은 뒤 치료받지 않은 폐결핵 환자의 누적 사망 비율. 폐결핵은 폐를 침범하는 질환이다. 자료는 20세기 초 진단받은 환자를 바탕으로 했다. 출처: Our World in Data

풍자를 걷어내고 그 안의 냉혹한 핵심만 남겨 보면, 만의 요양원 복합체를 20세기 초판 위험사회’(risk society,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일부로 보지 않기 어렵다. 요양원 생활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식은, ‘소모(consumption)’의 과정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해하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투쟁으로 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결핵이 치료 가능한 병이라는 안전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 책을 읽는다. 그러나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을 비롯한 주목할 만한 독자들이 1940년대에 처음 『마의 산』을 접했을 때, 손택은 1939년 결핵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어린 시절에는 천식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미국판 다보스라 할 수 있는 애리조나주 투손(Tucson, Arizona)에서 지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에서 요양원이 환자들에게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치료를 제공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을 기존의 시간 감각에서 점차 해방하고 죽어가는 과정을 정상화한다. 이 자체에는 구조적 논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픈 사람이든 아니든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누가 이곳에 속하고 누가 속하지 않는가. 결국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죽음을 향해 움직이는 복잡한 유기체다. 우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모두 병들어 있다. 이 소설의 아이러니는 결핵이라는 심각한 질병 자체에서 나오지 않는다. 처음부터 독자는 한스 카스토르프가 중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거의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건강하지는 않다. 처음 3주간 머문 뒤 감기에 걸리고, 19079월 의사들이 진찰한 결과 우려스러운 잡음이 들린다고 말한다. 그는 요양원 생활에 잘 적응하는 듯해 체류 기간을 연장한다. 그러나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질병과 건강, 병적 상태와 활력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는 바로 이 작품의 핵심 수수께끼다.

이 소설의 놀라운 성공은 카스토르프가 의료 체제의 마력에 점점 빠져드는 과정을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는 데 있다. 시간 감각을 잃는 사람은 카스토르프만이 아니다. 이후 천 쪽과 이야기 속 7년에 걸쳐 독자의 시간 감각도 유동적으로 변한다. 만은 여러 대목에서 독자와 허구 속 인물, 화자의 목소리 사이의 관계를 농담처럼 납작하게 만든다. 900쪽쯤 지나면 만은 우리 모두 시간의 흐름을 놓쳤고, 누가 누구에게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 더 이상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쾌활하게 말한다. 실제로 작품을 시작하기 전 서문에서 만은 이 거대한 소설을 적어도 두 번 읽을 생각을 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몇백 쪽을 읽고 나면, 만이 이런 제안을 하면서 자신을 19079월 카스토르프에게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무기한 체류를 권한 요양원 의사들과 같은 위치에 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몸과 의사, 환자의 의식 사이에서 결론 나지 않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우리가 이 게임에 동의해야 할까.

만 자신은 1912년 다보스에 있는 아내를 방문했을 때 진단 체계에 붙잡힐 위험에 처했지만,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현실의 삶으로 돌아갔다. 우리도 그래야 할까. 만은 우리에게 거짓말쟁이의 역설과 같은 문제를 남긴다. 의미 있는 시간 감각의 상실을 경고하면서도 우리의 시간을 이토록 많이 요구하고, 더 많은 시간을 자신과 보내기만 하면 더 큰 통찰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작가를 우리는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이것은 일종의 호텔 캘리포니아인가. “언제든 체크아웃할 수 있지만 결코 떠날 수는 없다.”

사실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만의 메시지는 시간에 대해 현실적이기란 사실상 매우 어렵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존재를 이루는 두 기본 좌표 가운데 하나가 유동하는 셈이다. 세계를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라는 사실주의의 문제에 이르기 전에, 애초에 우리가 어떻게 세계 안에 존재하는가라는 존재의 문제가 먼저 나온다.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마르틴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가 함께 『마의 산』을 즐겨 읽었다고 전해진다. 이 대작 소설의 출간은 192411월 두 사람의 연애가 시작된 시기와 겹친다. 『마의 산』을 1927년 출간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더 넓은 문화적 배경의 일부로 보는 것은 충분히 타당하다. 1929년 하이데거와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가 서양철학을 놓고 시대를 가른 논쟁을 벌인 여름학교가 열린 곳도 우연이 아니게 다보스였다.

『마의 산』은 적어도 독일어권에서는 한 시대를 규정한 소설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올여름 『마의 산』을 아도르노의 『역사와 자유』(History and Freedom) 강의와 함께 읽으니 훌륭한 짝을 이룬다고 느꼈다. 아도르노의 강의는 1964~1965년에 이루어졌지만 1920년대의 분위기를 품고 있다. 악명 높을 만큼 난해한 아도르노의 독일어도 강의 형식에서는 『마의 산』에 나오는 장황한 독백들보다 오히려 더 매끄럽게 흘러간다. 1940년대에 만과 아도르노는 퍼시픽 팰리세이즈(Pacific Palisades)에서 이웃으로 살게 된다. 정말로 호텔 캘리포니아다.

그러나 마틴 울프의 제안으로 돌아가 보자. 결핵과의 투쟁을 제외하고 20세기 초의 현실 세계가 만의 다보스에 침입하는 방식은 카스토르프의 두 스승인 제템브리니와 나프타의 논쟁이다.

결핵과 관련해서는 두 사람 모두 어느 정도 희망이 없는 상태다. 누구도 평지로 돌아가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 밖에는 철학적 스펙트럼의 양 끝을 대표한다. 제템브리니는 자유주의자로, 세계 개선을 위한 국제위원회에 끝없는 글을 기고한다. 다른 한쪽의 나프타는 공산주의를 미래로 보는 예수회 신부다. 그는 나프타의 아버지가 포그롬에서 십자가형을 당한 뒤 서유럽으로 도피한 유대인 가문 출신이라고 설명한다. 나프타 역시 변화를 원하지만 그것은 투쟁과 규율, 더 크고 강력한 제도에 대한 복종을 통해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인물 모두 풍자적 과장이다. 내가 읽은 독일어 대중판의 해설은 말 그대로 이들을 수다쟁이(Schwätzer)’라고 일축한다. 만이 두 사람 모두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카스토르프도 성숙하고 세련돼질수록 두 사람 사이에 자신의 위치를 잡는다. 그러나 이 부분을 독서 경험에서 잘라내는 것은 만이 문제 삼는 바로 그 속물주의에 빠지는 일이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은 진지하며, 만은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을 시도한다. 가장 극적인 대목 가운데 하나에서 카스토르프는 독학으로 스키를 배운다. 그러나 그는 새롭게 얻은 이동성을 이용해 휴양지의 군중에 합류하지 않고, 거의 의도적으로 숲속에서 길을 잃으려 한다. 눈보라가 몰아치면서 카스토르프는 실제 위기에 빠진 듯 보인다. 버려진 헛간을 임시 피난처로 삼아 기대어 주저앉고,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의식 속을 오가자 만은 카스토르프의 광적인 꿈속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그리고 바로 이 꿈의 내적 독백 속에서 만은 방대한 작품의 메시지를 전한다.

질병, 건강! 정신, 자연! 그것들이 모순인가. 나는 묻는다. 그것들이 문제인가. 아니다. 그것들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들의 귀족성도 문제가 아니다. 죽음의 무모함은 삶 속에 있다. 그것이 없다면 삶도 없다. 그 중심에는 신적 인간(Homo Dei)의 위치가 있다. 그는 무모함과 이성 사이에 있고, 그가 속한 국가는 신비적 공동체와 경박한 개인주의 사이에 있다. 나는 내 기둥 위에서 이 모든 것을 바라본다. 그는 이 상태에서 용감하게 살아야 하며, 자신을 친근한 존경으로 대해야 한다. 오직 그만이 귀족적이며, 대립항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립항들의 주인이다. 그것들은 인간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으므로 인간은 그것들보다 더 귀족적이다. 죽음보다 더 귀족적이고, 죽음에는 지나치게 귀족적이다. 그것이 정신의 자유다. 삶보다 더 귀족적이고, 삶에는 지나치게 귀족적이다. 그것이 마음의 경건함이다. 내가 하는 말에는 운율도 있고 이치도 있다. 나는 인류를 위한 꿈의 시를 만들었다. 나는 그것을 붙들 것이다. 나는 선해질 것이다. 나는 죽음이 내 생각을 지배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선함과 인류애는 바로 거기에 있고 다른 어디에도 없다. 죽음은 위대한 힘이다. 사람은 그 앞에서 모자를 벗고 비틀거리며 발끝으로 지나간다. 죽음은 떠난 자들의 위엄 있는 주름깃을 두르고 있고, 우리는 엄숙한 검은 옷으로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성은 죽음 앞에서 소박하게 선다. 이성은 덕일 뿐이지만, 죽음은 해방이고 무한함이며 방종이고 욕망이기 때문이다. 내 꿈은 욕망이라고 말한다. 색욕이지 사랑은 아니다. 죽음과 사랑, 아니다. 나는 그것들로 시를 만들 수 없다. 둘은 어울리지 않는다. 사랑은 죽음에 맞선다. 죽음보다 강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사랑이다. 달콤한 생각을 주는 것도 이성이 아니라 오직 사랑이다. 형식은 오직 사랑과 달콤함에서 생겨난다. 형식과 문명, 친근하고 계몽된 아름다운 인간적 교류는 언제나 피의 희생을 말없이 인정하는 가운데 생겨난다. , 그렇다. 정말 잘 꾼 꿈이다. 나는 결산을 마쳤다. 나는 기억할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죽음에 대한 신의를 지키되, 죽음과 죽은 자에 대한 신의가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순간 그것은 악이 되고 인류에게 적대적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선함과 사랑을 위해 인간은 죽음이 자신의 생각을 지배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말과 함께 나는 깨어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만은 우리를 가지고 논다.

카스토르프는 대립항의 주인인간에 대한 이 영웅적 비전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만들어낸 환각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날씨가 개고 몽롱한 상태에서 벗어나자 그는 이 모든 일이 겨우 15분 동안 벌어졌음을 깨닫는다. 실제로 얼어 죽을 위기에 처한 것도 아니었다. 저녁이 되면 무사히 숙소로 돌아가 식사를 즐기고, 열병 속 꿈의 명료함은 사라진 채 다시 평소의 흐릿한 상태로 돌아간다.

한편 제템브리니와 나프타는 근대사의 천둥을 소설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맡았지만, 두 사람 모두 스스로 시대 밖에 있다. 제템브리니는 프리메이슨이자 19세기 초 이탈리아의 비밀 혁명결사 카르보나리(Carbonari)의 후손이다. 1900년대 초 그는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인물이다. 나프타도 흔히 동시대 혁명가, 어쩌면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ács)의 풍자로 해석하지만, 실제로는 중세를 돌아보는 인물이다.

독일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도표가 나프타의 사상적 원천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나프타>(NAPHTA), 실제 모델(Reales Vorbild)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ács, 1885~1971): "그가 말하는 한 그는 옳았다."— 토마스 만. 설명: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문학이론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빈에서 토마스 만과 짧게 만남
<소설 속 외모 묘사> : "작고 마른 남자였다. 예리하고 자극적인 악의를 품은 듯한 얼굴이었다." (p.511), "두꺼운 코, 좁은 입, 뺨에는 움푹 팬 흉터가 있었고, 수염은 면도를 제대로 하지 않아 거칠게 남아 있었다. 얼굴은 날카롭고 주름져 있었다." (p.512), "나프타의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는 청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p.513), "그는 머리를 이탈리아 쪽으로 기울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p.513)→ 세밀하고 정확한 인물 묘사가 특징이다.
<모델들>(Vorbilder): 막스 슈타이네르(Max Steiner, 1884~1910) 학문주의적·반계몽주의 성향의 작가. 니체가 말한 '금욕주의적 사제' 유형. 루트비히 데렐트(Ludwig Derleth, 1870~1948) 작가.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
<소설에서의 기능> 제템브리니(Settembrini)의 대립자, 한스 카스토르프(Hans Castorp)의 또 다른 스승
<토마스 만이 이 인물을 평한 말> "절망에 빠진 정신적 반동주의자","신비주의의 진취적 옹호자", "반(反)이성의 변호인" 출처: Zeit 블로그

북독일 개신교 환경에서 자란 카스토르프는 나프타가 예수회 신부라는 사실을 알고 그런 것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데 진심으로 놀란다. 만은 나프타의 방이 웅장한 교황풍 양식으로 꾸며졌다는 점을 크게 부각한다. 더 나아가 제템브리니와 나프타의 논쟁이 불화로 확대되자, 그것은 급진적으로 시대착오적인 방식으로 해결된다. 효과를 망칠 수 있으니 더 말하지 않겠다.

큰 논점으로 돌아가면, 이 소설은 전쟁 이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야기의 기본 논리는 독자를 그 세계의 현실 속에 몰입시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제공받는 비판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일정한 거리 밖에 두는 데 있다.

1913~1914년 무렵, 만은 날짜를 직접 밝히지 않지만 추론할 수 있다. 카스토르프의 교육은 끝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 교양소설의 결말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실제로 카스토르프는 점점 무의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혼자 하는 카드놀이인 패이션스에 집착한다. 한 패를 놓고 또 다른 패를 놓는다.

정확히 카드놀이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제템브리니에게 말했다. “그저 카드를 펼쳐 놓고 추상적인 우연과 한판 겨루는 겁니다. 우연이 부리는 수작이 흥미롭습니다. 바람처럼 일관성이 없지요. 아첨하듯 굴다가 갑자기 등을 세우고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세 번 연속 성공했고, 한 번은 두 줄로 나왔습니다. 기록이지요. 그런데 믿으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서른세 번째인데 한 번도 절반 이상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제템브리니 씨는 지난 몇 년 동안 자주 그랬듯 우울한 검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쨌든 자네는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군.” 그가 말했다. “내가 찾는 위로나 내면의 상처를 달랠 연고는 여기서 얻기 어려워 보이네.”

상처요?” 한스 카스토르프가 카드를 다시 펼치며 되물었다.

세계 정세가 나를 혼란스럽게 하네.” 프리메이슨이 한숨을 쉬었다. “발칸연방은 성사될 걸세, 기술자 양반. 내가 받는 모든 정보가 그쪽을 가리키고 있네. 러시아가 이를 위해 열정적으로 움직이고 있지. 이 결합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겨냥하고 있으며, 어떤 계획이 실현되기 전에 그 제국은 무너져야 하네. 자네도 내 양심의 갈등을 이해하겠지. 물론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오스트리아를 온 힘을 다해 증오하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고도로 문명화된 대륙 전체에 횃불을 놓으려는 사르마티아 전제정에 마음속으로 지지와 정당성을 보내야 할까. 반면 내 조국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아무리 작은 수준이라도 외교적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그것을 불명예로 볼 걸세. 이런 양심적 갈등이—

“74.” 한스 카스토르프가 말했다. “83. , , . 성공하겠군요. 제템브리니 씨, 행운을 가져다주셨습니다.”

이탈리아인은 침묵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이성과 도덕의 눈인 검은 눈이 슬픔 속에서 자신에게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잠시 더 카드를 놓다가 뺨을 손에 기대고, 장난을 친 아이처럼 순진하고도 뉘우침 없는 표정으로 스승을 올려다봤다.

자네 눈은 자네가 자신의 상태를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헛되이 숨기려 하는군.” 스승이 말했다.

플라케트 엑스페리리(Placet experiri, 시험해 보는 것이 즐겁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제템브리니 씨는 떠났다. 버려진 카스토르프는 흰 방 한가운데 놓인 탁자에 오래 앉아 턱을 손에 괴고 생각에 잠겼다.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엇갈린 방향으로 치닫는 데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전율했다. 세상이 악마들과 원숭이 머리를 한 신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이 일그러진 웃음과 찡그린 얼굴로 날뛰고, 그 통제되지 않는 지배를 위대한 덤프 신이라고 부르는 상황에 몸서리쳤다. 묘한 공포를 일으키도록 만들어진 종말론적이고 사악한 이름이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이마와 심장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그는 두려웠다. ‘이 모든 것이 좋은 결말로 이어질 리 없고, 재앙이 다가오며, 오래 참아온 자연이 반란을 일으켜 폭풍과 회오리바람으로 솟구치고 세계를 사로잡은 거대한 결박을 끊어버릴 것처럼 느꼈다. 삶을 정지점너머로 낚아채고, 어느 끔찍한 최후의 날에 사소한 것들을 끝장낼 것 같았다.

카스토르프를 구원하는 것은 사랑도 정치도 과학도 아니라 음악이다. 살아 있는 음악이나 연주, 하물며 작곡도 아니다. 그런 것은 그의 소박하고 탈역사적인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 패이션스를 놓던 사람이 갑자기 아리아를 작곡할 수는 없다. 그를 구하는 것은 녹음 음악이다. 독일 문화기술의 훌륭한 산물인 현대식 축음기가 요양원에 들어오자 카스토르프는 완전히 매료된다.

녹음 음악 애호가라는 이 이차적 역할은 중요해 보인다. 카스토르프는 음악을 연주하지도, 하물며 작곡하지도 않는다. 그는 듣는다. 감상한다. 선택한다. 축음기 바늘의 감식가가 된다. 그렇다면 ‘20세기 최고의 소설은 버림받은 주인공이 디제이(DJ)가 됨으로써 주체성과 자아를 회복하는 최초의 소설이기도 한가.

다시 한번 나는 역사의 종말을 떠올렸고, 이번에는 코제브(Kojève)의 헤겔 강의에 붙은 유명한 각주가 생각났다.

1948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과 소련을 비교하기 위해 여러 차례 여행한 뒤 나는 이런 인상을 받았다. 미국인이 부유한 중소(中蘇)인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러시아인과 중국인이 아직 가난하지만 빠르게 부유해지고 있는 미국인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나는 미국적 생활양식이 탈역사 시대에 고유한 삶의 유형이며, 세계 속 미국의 실제 존재가 인류 전체의 영원한 현재라는 미래를 미리 보여준다고 결론 내릴 수 있었다. 따라서 인간이 동물성으로 돌아가는 일은 더 이상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현재에 존재하는 확실성이 됐다.

그러나 최근 일본을 여행한 뒤인 1959년에 나는 이 점에 관해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그곳에서 나는 독특한 사회를 관찰할 수 있었다. 일본은 거의 3세기 동안 역사의 종말속에서, 즉 모든 내전과 대외전쟁이 부재한 상태에서 살아온 유일한 사회였다. 평민 출신 히데요시(Hideyoshi)가 봉건제를 청산하고, 귀족 출신 후계자 이에야스(Yiyeasu)가 구상하고 실현한 인위적 고립정책 이후 그렇게 됐다. 목숨을 걸지 않게 됐고 결투조차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노동을 시작한 것도 아닌 일본 귀족들의 삶은 결코 동물적이지 않았다.

탈역사적일본 문명은 미국적 방식과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일본에는 이 말들의 유럽적또는 역사적의미에서 종교와 도덕, 정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순수한 형태의 속물주의는 자연적혹은 동물적인 것을 부정하는 규율을 만들어냈다. 지속적인 경제·정치적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본인은 예외 없이 완전히 형식화된 가치, 역사적의미에서 모든 인간적 내용이 비어 있는 가치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알렉상드르 코제브(Alexandre Kojève), 『헤겔 읽기 입문』(Introduction to the Reading of Hegel), 레이몽 크노(Raymond Queneau) 번역, 뉴욕: 베이직 북스, 1969, 161~162.

결국 디제잉이란 취향과 세련됨, ‘속물주의를 특별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어쨌든 축음기가 카스토르프의 정신상태에 미치는 효과는 극적이다. 그는 음악 속에서 자신을 잃는 동시에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러나 이 새로운 여정이 현실로 이어지는가. 단순한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다.

카스토르프가 음악을 통제하는 능력은 자신의 정신을 되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죽은 사촌의 유령을 불러내는 데까지 이른다. 그 사촌은 그가 요양원에 온 원래 이유였다. 그는 일찍 퇴원해 부대에 합류했지만 다시 돌아와야 했고, 기관지 결핵으로 끔찍하게 죽었다. 여기서도 모두가 혼란에 빠진다. 이 유령은 실재하는가, 아니면 일종의 서커스 속임수인가.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만은 카스토르프가 깊이 흔들렸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확실한 결론을 거부한다. 카스토르프는 새롭게 얻은 영적 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강령회장을 박차고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후 음악 이야기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소설을 끝내는 것은 작품 내부의 어떤 요소가 아니라 대문자 역사의 침입이다. 물론 마지막 약 100쪽 전부터 소문은 돈다. 요양원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외부 소식의 암시도 나타난다. 그러나 카스토르프는 오래전에 신문 읽기를 그만뒀다. 제템브리니가 외교 문제를 꺼내려 하면 카스토르프는 다시 패이션스를 놓는다. 더 이상 달력도, 회중시계도 갖고 있지 않다. 다보스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계절마저 서로 뒤섞인다.

역사는 진정 외생적이다. 그래서 결말도 그에 맞게 거칠다’. 제템브리니의 불안한 보고를 통해 외교적 움직임을 암시한다. 사라예보 암살 사건이 일어나자 요양원 투숙객들조차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불과 며칠, 몇 쪽 만에 평소의 사색도 깊은 성찰도 없이 카스토르프는 요양원이라는 꿈의 세계를 탈출한다. 어쩌면 그 갑작스러움 자체가 핵심일 것이다. 만은 평소답지 않게 거의 설명하지 않는다.

카스토르프는 다보스 도르프(Davos Dorf)역 승강장에서 제템브리니와 작별한다. 자유주의적 이탈리아인인 제템브리니는 전쟁에서 반대편에 서게 될 것이고, 눈물을 머금고 손을 흔든다.

핵심이 있다면 이것이다. 카스토르프처럼 살아가면 역사가 당신에게 닥친다.

트로츠키가 전쟁을 두고 했다고 전해지는 말처럼, 당신이 전쟁에 관심이 없더라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

화자가 카스토르프를 떠난다고 알리자 아무런 전환도 없이 우리는 그를 마지막으로본다. 그는 1914년 초기 국경전투, 이른바 무고한 자들의 학살에서 맹렬한 돌격을 감행한다. 짧지만 생생한 장면에서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수만 명의 자원병이 죽음을 향해 돌진한다.

에른스트 윙거(Ernst Jünger)와 『강철 폭풍』(Storms of Steel)이 어울리는 세계에서 한스 카스토르프는 총알받이다.

만 자신은 전쟁이 발발했을 무렵 이미 『마의 산』 집필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 작품을 중단하고 더 노골적인 선전 활동에 몰두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형 하인리히 만(Heinrich Mann)과 세계 문단의 상당수로부터 소외됐고, 자신의 세계관 전체도 산산이 무너졌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위기, 특히 19226월 발터 라테나우(Walther Rathenau) 암살 사건이 나머지를 결정했다. 1922년 그는 독일 공화국 지지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대표적인 이성의 공화주의자(Vernunftrepublikaner)가 됐다. 군주제나 파시즘에 대한 열정적 헌신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이성에 따라 공화국을 지지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1924년 출간한 『마의 산』은 만이 진정한 세계적 명사가 되는 전환의 첫걸음이었다.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을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독일 부르주아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됐고, 노벨상 수상 뒤 1930년대 망명생활을 거치며 1930~1940년대 대표적인 대서양주의 지식인으로 자리 잡았다.

토마스 만이라는 인물과 『마의 산』은 어떤 동시대인을 떠올리게 하는가.

며칠 동안 생각했지만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2부에서 말하겠다.

[출처] Chartbook 463: Zauberberg/Magic Mountain - how history ended in Davos ... on, or about September, 1907.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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