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패권

자유주의적 견해에 따르면 국제 통화 및 금융 시스템은 무역이 이루어질 수 있는 편리한 결제 체계를 제공함으로써 모든 참가국의 이익을 증진하는 장치라고 한다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국제 시스템은 서구 제국주의의 패권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동시에 이 패권을 유지한다국제 시스템의 중심축이 미국 달러라는 점에서국제 경제에서 달러의 패권은 서구 제국주의의 패권에 의해 유지되고다시 이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이 패권은 심지어 참가국들 간의 상호 편리한 무역마저 방해한다.

예를 들어 이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가령 국가 1이 국가 2가 보유한 x라는 상품이 필요하고국가 2는 국가 1이 보유한 y라는 상품이 필요하다고 하자현재 시스템에서는 이 두 상품을 단순히 서로 교환하지 않는다두 국가 모두 상대방의 상품을 구매하기 전에 먼저 달러를 확보해야 한다그리고 각 국가가 처음부터 충분한 달러 보유고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러한 무역은 단순히 일어나지 않는다다시 말해국제 거래에서 달러가 유통의 매개체로 작용하기 때문에 일부 국가들이 달러 부족에 시달리는 경우 그들 간의 상호 거래조차도 중단될 수 있다특히 제3세계 국가 간의 무역에서 이 현상이 두드러지는데이들 국가는 공통적으로 달러 부족으로 인해 무역이 제한된다이들은 자국 통화로 거래할 수 있다면즉 '탈달러화'를 통해 상호 무역을 확대할 수 있다. '탈달러화'란 국제 거래에서 유통 매개체회계 단위또는 보유 자산으로서의 미국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 Unsplash+, Katelyn Perry

그러나 탈달러화는 미국의 반대에 직면한다세계 경제에서 미국 달러가 핵심적이고일반적으로 '금과 같은 가치'로 여겨지기 때문에 미국에 막대한 이점을 제공한다이는 마치 미국이 자유롭고 고갈되지 않는 금광 위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미국은 단순히 더 많은 달러를 발행함으로써 다른 나라의 자원을 구매하거나기업을 인수하거나해외에 원하는 만큼 투자하거나자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충당할 수 있다.

그러나 무제한적이고 보장된 가치를 가진 국제 구매력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러한 명백한 이점 외에도미국은 달러의 역할을 활용해 다른 국가들이 자국의 패권을 받아들이도록 강압할 수 있다미국은 자신이 선호하는 국가에는 달러를 제공할 수 있고반대로 처벌하고자 하는 특정 국가의 달러 보유고를 압수할 수도 있다이러한 보유고는 대개 서구 은행에 예치되어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미국은 이란에서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가를 대상으로 이러한 처벌을 가해왔다최근 몇 년간 이러한 압수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달러 부족으로 일반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제3세계 국가들에 의해 선호되는 탈달러화 경향이 크게 탄력을 받았다.

만약 전 세계 국가의 3분의 1이 서구의 일방적 제재즉 유엔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원칙 수호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제재(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반()아파르트헤이트 제재와 같은 경우와 대조적으로)에 직면했다면이는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과 그러한 제재를 받은 국가들 사이에서 탈달러화에 대한 강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이러한 욕구는 최근 브릭스 국가들의 카잔 정상회의에서 표현되었다.

지난 10월, 러시아 카잔에서 브릭스 정상회의가 열렸다. 출처 : 브릭스, 러시아 공식 홈페이지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 제재가 탈달러화 욕구를 강화한다는 사실은 미국 행정부 내부에서도 인정되고 있다미국 재무장관 재닛 옐런(Janet Yellen)은 7월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서 미국의 경제 제재가 브릭스국가들로 하여금 탈달러화를 시도하게 만들었다고 발언했다그는 "미국이 제재를 더 많이 가할수록 더 많은 국가들(브릭스)이 미국 달러를 포함하지 않는 금융 거래 방식을 찾으려 할 것"이라고 인정했다옐런의 발언에는 미국이 달러 패권을 이용해 다른 나라들을 자신의 입장에 따르도록 압박하고 있으며이러한 방식으로 압박받는 국가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내용이 내포되어 있었다.

일방적인 제재를 통한 패권 행사에는 특유의 변증법적 성격이 있다제재가 한두 개의 반항적인 국가들에 대해 이루어진다면 전체 구조에 위협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그러나 다수의 국가들에 제재를 가하면 그 구조 자체가 위협받게 된다또한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국가들이 겪는 고통을 감안할 때시간이 지남에 따라 반항적인 국가들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제재를 받는 국가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탈달러화 경향 역시 필연적으로 강화된다이와 동시에 달러 패권의 이면에 존재하는 강압성즉 이 패권이 제국주의적 압박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며달러 체제가 모든 국가의 이익을 위한다는 자유주의적 주장도 허구임이 노출된다.

달러 패권의 중요한 근접적 이유 중 하나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이는 미국과 산유국들 사이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로 이루어진 합의에 기인한다이 합의는 석유 가격이 달러로 표현되고 석유 무역이 달러로 이루어지도록 했다석유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이는 달러의 위상을 크게 강화했다실제로 최근에는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 루블을 약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러시아가 석유와 가스 수출 대금이 루블로 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루블이 회복된 바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석유 수출국들과 체결된 이와 같은 합의만으로는 이제 달러 패권의 지속을 보장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이전에 탈달러화 논의를 비웃었던 재닛 옐런조차 이제 이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이러한 맥락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달러에서 벗어나려는 국가들에 대해 미국으로의 수출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것은 놀랍지 않다트럼프의 이러한 위협은 달러 패권 뒤에 미국 제국주의의 강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든 이에게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강압은 탈달러화가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효과적일 수 있다탈달러화 과정에 있는 국가들의 미국으로의 수출이 그 사이에 제한된다면그들은 달러 부족으로 인해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비록 비달러 결제를 통해 수입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 하더라도, IMF, 세계은행혹은 서구 금융기관들에 달러로 외채를 상환해야 하는 경우 이를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따라서 트럼프의 위협은 심각한 것이다주목할 점은이 위협을 통해 트럼프가 평소에는 자유주의적 수사로 위장된 미국 제국주의의 작동 방식을 뻔뻔하게 폭로했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이러한 위협은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더 많은 국가들로 하여금 탈달러화의 필요성과 달러 패권이 미국에 대한 종속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 것이다물론의미 있는 탈달러화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고카잔 정상회의에서도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트럼프의 위협 이후인도를 포함한 여러 국가들이 탈달러화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그러나 이는 미국의 호의를 유지하기 위한 단기적인 움직임일 수 있으며제국주의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 문제에 대한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통일된 태도그리고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제국주의를 지지하며 전형적으로 이에 동조하는 모습은 제국주의에 대한 도전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탈달러화 논의는 이러한 도전의 일부이다그러나 브릭스 국가들조차 현재의 금융 체제를 대체할 명확한 대안적 금융 구조에 대해 구체적인 구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세계의 진보적 여론은이러한 대체 체제가 언제 이루어지든단순히 달러 패권을 다른 화폐의 패권으로즉 다른 국가나 국가 집단의 패권을 반영하는 체제로 대체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달러가 기존 통화든 브릭스 대안 통화든 다른 화폐로 대체될 때 동일한 구조가 유지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규칙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특히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현재의 브레튼우즈 체제와 마찬가지로 적자국에 지불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정 부담을 지우는 대신흑자국이 그 부담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출처] The Hegemony of the Dollar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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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외환보유고 패권 수출 브릭스 탈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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