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산업 금융체제를 가로막은 노예주들

미국 노예주들의 이해관계는 1913년까지 미국의 통화·은행 정책을 억눌렀다

출처: Unsplash, Planet Volumes

노예주들이 미국 헌법의 형성에 미친 영향은 노예제 자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은행과 금융정책에서 이러한 주() 권한 중심 정책이 미국에 남긴 독특한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노예주들의 가장 큰 목표는 연방정부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민주적 다수결을 통해 연방정부가 노예제를 제한하거나 폐지하는 조치를 취하지 못하도록 막고, 노예제가 서부로 확대되는 것도 저지하려 했다. 처음부터 남부 노예주들은 연방정부가 가능한 한 많은 권한을 각 주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또한 각 주가 미국 전체에 적용되는 연방정부의 정책을 저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반()연방주의 정책은 남부와 북부·서부를 대립하게 만들었다. 남부 노예주들은 북부의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 노예주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할 인물들이 하원과 상원, 대통령 선거에서 잇달아 당선될 것을 두려워했다.

그 결과 남부는 보호관세, 국내 기반시설 투자, 국립은행 설립과 산업 투자 및 고용을 위한 신용을 공급하는 상업은행 체계에 반대했다. 이것은 헨리 클레이(Henry Clay)가 주도한 휘그당(Whig Party, 1833년 창당되어 1850년대 중반까지 활동한 미국의 주요 정당)이 추진한 핵심 정책이었다. 그러나 남부는 이러한 정책이 북부 주들의 인구를 늘려 결국 노예제 폐지 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이 강해질 것으로 보았다.

남부 노예주들은 의도적으로 긴축 재정을 강요하기 위해 통화와 신용을 금화와 은화 중심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목표는 연방정부가 거둬들인 세금과 관세 수입이 다시 경제로 흘러 들어가 은행 신용의 기반이 되는 것을 막아 경제를 신용 부족 상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남부는 은행 신용이 산업 투자와 도시 고용을 확대하는 수단이라고 보았다. 그렇게 되면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이 노예들에게 먹일 곡물 가격이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목표는 면화를 비롯한 플랜테이션 수출품의 가격을 최대한 낮춰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통화정책을 둘러싼 첫 번째 충돌은 1791년에 벌어졌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재임 1789~1795)은 정부 조폐국을 설립하고 필라델피아에 미국 제1은행을 세울 것을 제안했다. 미국 제1은행은 중앙은행은 아니었다. 재무부의 지급준비금을 보유하지도 않았다. 다만 주 경계를 넘어 지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가받은 국립은행에 불과했다. 그러나 반연방주의자였던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3대 대통령, 재임 1801~1809)과 그의 뒤를 이은 버지니아 출신 노예 소유주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4대 대통령, 재임 1809~1817)은 통화 관련 기능은 각 주 정부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지니아주 출신 민주당 상원의원 존 테일러(John Taylor, 1792년부터 1824년까지 여러 차례 재임)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의회가 은행을 설립할 권한을 가진다면, 노예를 해방할 권한도 갖게 될 것이다.” () 권한을 옹호한 정치인들은 연방정부가 노예제 폐지를 지원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두려워했다.

보다 현실적인 우려도 있었다. 전국적인 은행 체제가 발전하면 산업화가 진행되던 북부의 도시 지역이 가장 큰 혜택을 받을 것이었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는 영국 방직공장에 면화를 공급하는 데 크게 의존했던 남부의 플랜테이션 경제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남부는 노예들에게 먹일 곡물 가격을 낮게 유지해 면화와 담배를 저렴하게 생산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북부 산업에 더 많은 신용을 공급하고 보호관세를 시행하면 북부의 도시 산업 인구가 늘어나고, 그 결과 곡물 수요가 증가해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이 노예들에게 먹일 식량 비용도 함께 늘어난다. 이 때문에 남부 정치인들은 북부의 산업 발전에 반대했고, 식량 가격 상승을 막기 위해 가능한 한 통화를 금과 은 같은 실물 화폐에 묶어두려 했다.

민주당이 남부를 장악했던 이른바 '솔리드 사우스(Solid South)' 체제 아래에서 연방정부는 1820년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금·은 실물화폐를 중시하는 통화정책을 유지했다. 통화는 은화와 금화 같은 실물 화폐를 기반으로 했다. 이러한 정책은 디플레이션을 초래했다. 반면 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들은 산업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은행권 등 지폐 통화를 적극 발행하고 있었다.

은행들이 대량의 금과 은을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하도록 만든 것은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재임 1829~1837) 대통령 이후 의도적으로 추진된 공공정책이었다. 정부는 1812년 전쟁으로 발생한 국가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이후 20년 가운데 단 두 해를 제외하고 모두 재정흑자를 기록했다. 그 결과 잭슨 대통령 재임 중이던 1835년에는 국가부채를 모두 갚을 수 있었다.

이러한 연방정부의 흑자는 대부분 관세 수입에서 나왔다. 당시 관세는 반드시 금이나 은으로 납부해야 했다. 그 결과 금화와 은화가 민간 경제와 은행 체계에서 빠져나가 재무부로 집중되었다. 재무부는 현금을 쌓아두었지만, 그 대가는 경제 전체가 치러야 했다. 은행들은 지폐와 예금을 금이나 은으로 바꿔 달라는 요구에 대비하기 위해 많은 양의 금화와 은화를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해야 했다. 특히 가을철 농작물의 운송과 판매 자금을 마련하는 시기에는 이러한 수요가 급증했다. 금과 은 중심의 이러한 통화 체제는 은행들이 뱅크런 위험 없이 지폐와 신용을 확대하는 데 큰 제약이 되었다.

헨리 클레이가 이끌던 북부 산업자본과 자유노동 세력을 대표하는 휘그당은 재무부가 재정흑자를 다시 경제에 공급하기를 원했다. , 재무부가 보유한 금과 은을 은행에 예치해 정부의 흑자를 은행 지급준비금의 기반으로 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은행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이용한 남부 정치인들은 이러한 방안에 대한 반대를 결집시켰고, 결국 디플레이션을 초래하는 통화정책을 유지했다.

잭슨 대통령은 1836년 미국 제2은행의 인가를 연장하는 것을 거부했고, 재무부 예금을 해당 은행들에서 모두 인출했다. 이 조치는 은행들이 안전한 신용체계를 구축하고 북부 산업에 필요한 신용과 지폐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캘빈 콜턴(Calvin Colton)은 ⟪미국의 공공경제⟫(Public Economy for the United States)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잭슨 행정부와 그 참모들이 공공연하게 내세운 목표는 미국에서 지폐 통화를 억제하고 금속 화폐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독립재무제도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클레이가 지적했듯이, 이 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으며, 오히려 가장 위험한 형태의 지폐 통화 체제를 만들어낼 것이었다.”

남북전쟁 이후에도 비슷한 통화 긴축이 벌어졌다. 북부는 그린백(greenbacks)이라 불린 불환지폐를 발행해 전쟁 비용을 조달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채권자 집단과 남부는 다시 이 지폐를 금과 은으로 교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1890년대까지 지속되는 장기적인 디플레이션이 이어졌다. 189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은 이러한 상황을 두고 농업과 산업이 황금의 십자가에 못 박혀 있다고 표현했다. 공화당의 보호관세 정책은 재정흑자를 만들어냈지만, 그 흑자는 반드시 금화와 은화로 납부해야 했다. 그 결과 금과 은이 경제에서 빠져나갔고, 은행들은 자신들이 발행한 지폐를 금화와 은화로 바꿔줄 의무를 져야 했다. 이는 은행들이 신용을 확대하는 데 큰 제약이 되었다.

1907년 금융공황 이후 미국이 세계 각국의 은행 제도를 조사하기 위해 국가통화위원회를 설치했을 때, 데이비드 킨리(David Kinley)는 미국 재무부의 역사를 다룬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독립재무제도를 설립한 법률에 따르면 정부는 자체 자금을 직접 보관하고 국내 은행들과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아야 했다.” 이는 곧 경제의 통화 수요와도 단절된다는 뜻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독립성때문에 관세와 국유지 매각으로 발생한 재정흑자는 금화와 은화를 경제와 은행 체계에서 계속 흡수했다.

마침내 1913년 연방준비제도가 창설되었고, 정부가 유지해 온 디플레이션적 금과 은을 중심으로 한 통화정책으로부터 독립성을 부여받았다. 연방준비제도는 이러한 독립성을 활용해 주주이기도 한 회원 상업은행들을 지원했다. 2026629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행정부가 임명한 공직자들을 전반적으로 해임할 권한을 인정했다. 다만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는 예외로 두었다. 1913년 이전 정부가 은행 체계를 차별적으로 대하고 통화와 신용 창출을 억제했던 것과는 달리, 연방준비제도는 은행 체계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아 왔다. 연방준비제도의 갈수록 무분별해지는 신용 창출은 2009년 이후의 제로금리정책(ZIRP)과 오늘날의 IT 거품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정책 전환은 1913년 이전 정부가 시행했던 금과 은을 통화의 중시믕로 하는 신용 억제 정책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되었다.

[출처How Slave States Blocked America’s Industrial Credit System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마이클 허드슨(Michael Hudson)은 월스트리트 금융 분석가, 캔자스시티 미주리대학교 경제학 석좌 연구 교수, 장기경제동향연구소(ISLET) 대표다. 주요 저서로 ⟪미국 제국의 경제 전략⟫, ⟪그리고 그들의 빚을 용서하라⟫, ⟪호스트 죽이기⟫, ⟪버블과 그 이후⟫ 등이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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