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리 537번지 김병환의 방, 조선공산당 3차 당대회를 품었다

조선공산당의 3차 당대회는 고양군 아현리 537번지, 즉 현재의 마포구 아현동 331-12번지에 위치한 김병환의 하숙방에서 개최되었다. 지금껏 이 장소는 나에게는 막연히 아현동의 재개발로 인하여 새로 지어진 고층아파트 단지 속 어딘가에 편입된 것으로 생각했다.

춘경원에서: 조선공산당의 분열

당 중앙의 주류 세력이었던 레닌주의 동맹은 1928년 2월에 별도의 당대회를 치르게 된다. 1925년 4월 창당 이후 하나의 조선공산당을 유지하던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은 양당 체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조선공산당은 해산 결정이 내려진 1928년 12월까지 당의 분열 상태를 극복하지 못...

사회운동을 통일하려고 했던 그들

1927년 11월 6일 이 사직공원에 산책을 나와 한담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사내가 만났다. 그들은 양명과 김세연이었다. 이 둘은 비밀결사 조선공산당의 긴급한 현안을 가지고 만났다. 그 현안이란 다름 아닌 중앙지도부의 조직과 관련한 것이었다.

창당에서 해산까지 함께한 안동의 사회주의자들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창당에서 해산까지 당의 주요한 직책을 맡으면서 함께했던 사람들의 지역이 있다. 바로 안동이다. 다른 많은 지역도 일제강점기 내내 사회주의 운동에 종사했으나, 안동과 같이 창당과 해산의 과정에서 조직의 주요간부로 활동한 지역은 흔치 않다.

노동자 농민 주인되는 세상 안내한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

1925년 4월 17일 식민지 조선의 한복판인 경성의 중국요릿집에서 조선공산당이 비밀리에 창당되었다. 올해는 그로부터 딱 100년이 된 해다. 식민지 시절 가장 선두에 서서 치열하게 민족해방투쟁을 전개했던 사회주의 운동세력의 중심에는 조선공산당이 있었다.

2024년 계엄으로 돌아보는 1948년 계엄

이승만은 여순항쟁이 벌어진 지 6일이 지난 10월 25일에 계엄을 공식선포한다. 이 계엄령은 국무회의를 거쳤으며, 국무위원들이 서명을 거쳐 발표되었다. 하지만, ‘공식적’ 계엄 선포 3일 전인 10월 22일에 이미 현지 5사단 사령부 사령관인 김백일에 의해서 법적인 근거 없이 이미 선포...

서대문 형무소 밖 모처, ‘경찰과 그 공포 속’ 열린 조선공산당 제2차 당 대회

기억은 엇갈리기 마련이다. 더구나 기록도 일관되지 않았다. 조선공산당 2차 당 대회가 그렇다. 우선 일제 관헌이 자료에는 당 대회 장소가 서대문형무소밖 독립문 부근 (김준연등 32인 예심종결결정), 서대문 형무소 부근 (김준연등 28인 판결문), 혹은 천연동 (김철수 신문조서 3회) 으...

김철수가 혜화문 부근 산에 오른 까닭은

아직 여름의 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1926년 9월 3일 정오의 기온은 24.6도였다. 삼선평으로 넘어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혜화문 부근 산속에 은밀하게 세 명의 사내가 모였다. 그 사내들의 이름은 김철수, 원우관, 신동호였다. 이들은 이곳에 모인 이유는 조선공산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재건...

책임비서의 비밀 안가: 조선공산당 비상대책위가 구성된 곳

아마도 김재봉은 일제경찰의 허를 찌르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그가 몸을 숨기기로 결정한 곳은 도심의 한복판, 그것도 유흥지구이기에 유동인구가 많아서 낯선 이가 돌아다녀도 의심을 받지 않을 곳이면서 조직과 연루된 사람이 아닌 의외의 인물의 집을 선택한 것이다. 낙원동 195번지에 몸...

아서원의 그들

아서원은 1934년 반도호텔 공사가 시작되면서 부지를 환지(換地)하여 지금의 롯데호텔 건물의 중간쯤에 있던 2층이던 건물을 비우고 주소를 황금정 181-4로 옮기고 400여 평에 3층 건물을 신축하였다. 이곳은 한국 사회주의 운동에서 의미가 큰 곳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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