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부터 7월 1일부터 시행된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이 올해 60주년을 맞이한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일하는 사람 곁의 산재보험이었다며, 앞으로 더 넓고 더 촘촘하고 더 두터운 산재보험이 되겠다고 하지만, 그 동안 아픈 노동자들의 경험은 매우 다르다. 산재보험의 현재와 과제를 접근성을 중심으로 짚어보려고 한다.
출처: Unsplash, Josh Sonnenberg
한국의 산재보험, 시작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
산재보험은 한국의 4대 사회보험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된 사회보험제도다. 다른 나라의 산재보험은 대부분 노동자들의 건강과 산재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을 갖고, 노동조합을 통해 이를 사회적으로 문제 제기하면서 수립되었다. 보상 위험을 분산하고자 하는 개별 자본가의 이해나 질병이나 사고로 손상된 ‘노동력’을 재생산하려고 하는 정부의 이해관계도 맞물려, 보편적인 사회 제도로 확립돼왔다.1
하지만 한국에서 산재보험 시작은 이와 매우 달랐다. 1960년 군부 쿠데타 세력이 조직한 국가재건 최고회의에서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보장 제도가 군사정권이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정책 아이디어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이미 정권의 정당성 확보의 가장 중요한 전략은 ‘경제발전’이었으므로, 산재보상보험은 이를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구상되었다.2
그래서 처음 법이 만들어졌을 때 산재보험은 보편적인 제도라고 보기 어려웠다. 11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경우만 보상이 되어, 큰 부상이 아니면 보상 대상이 되지 않았다. 산재로 인한 휴업 급여 역시 평균 임금의 60%로 낮은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1964년 시행 당시 산재보험 대상 사업장은 500인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한 광업과 제조업 뿐으로, 적용 노동자는 64개 사업장의 8만여 명에 불과했다.3
이렇게 한국에서 산재보험은 처음부터 노동자 권리 보장이라기보다 시혜적으로, 아래로부터의 힘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선심성 행정으로 시작되었다. 이런 한계는 지난 60년간 산재보험에 대한 ‘접근성’ 확대를 투쟁의 최전선으로 만들게 했다.
투쟁으로 넓혀온 산재보험 적용 대상
이렇게 좁게 시작한 산재보험은 2017년부터는 상시근로자 수가 1명 미만인 사업장에도 모두 적용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적용 대상 확대는 ‘특고’ 노동자들에게 있었다. 법적으로 노동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이 산재보험 가입 대상이더라도 이는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나는 노동자들이 산재보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투쟁 끝에 2008년 보험설계사, 콘크리트믹서 트럭운전자, 학습지교사, 골프장캐디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이름으로 처음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되었다. 이후 2012년에는 택배기사, 퀵서비스기사, 2016년에는 대출모집인, 신용카드모집인, 대리운전기사, 2019년부터는 27종의 건설기계 조종사, 2020년부터는 방문판매원, 대여제품 방문점검원, 화물차주가 추가 적용되었다. 확대되어가는 방향은 환영할 일이었지만, 나날이 늘어나는 특고 노동자 규모에 비하면 매우 제한적이었다. 또, 산재보험 대상이 되는 ‘근로자’ 정의를 확대하는 대신 투쟁이 벌어지는 특정 직종에 대해서 적용을 확대하는 방식의 땜질식 접근이었다.
2023년 7월부터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대신 ‘노무제공자’로 명칭을 확대하며 이전에 ‘주로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제공’한다는 조건을 달았던 조항을 없애 여러 개의 플랫폼 사를 통해 업무를 수행하는 배달 라이더나 대리운전기사 등의 노동자들도 산재 보험에 접근이 쉬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특정 직종의 특고 노동자에게만 적용된다는 점, 본인이 원하면 적용 제외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다.
사실 ‘근로자’ 중에서도 산재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경우가 아직도 남아 있다. 농임어업 중 개인이 운영하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 가구에 고용되어 일하는 가사사용인 등은 여전히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모든 일하는 사람이 적용 대상이 되어야 한다.
산재 은폐를 줄이고 실제로 향유할 권리가 되려면
법률상의 적용 범위가 확대된다고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일하다 다치거나 아파서 산재로 치료받으려는 노동자들은 산재 신청부터 종결까지 다양한 제도상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올해 3월 말부터 5월 사이에, 전국의 여러 노동안전보건단체와 노동조합들이 「윤석열 정부 산재보험 제도 개악 대응 함께4」를 꾸리고, 온오프라인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총 2,845명이 참여한 이 조사는 조사의 특성 상 3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가 50%,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다는 응답자가 95%였다.
그런데도 ‘지난 3년 이내에 일을 하다가 업무로 인하여 다치거나 아픈 적이 있다’는 응답자 1,262명 중 산재보험으로 처리한 경우는 32%에 불과했다. 경미한 부상이나 질병이라서 산재처리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절반 정도였지만, 그 뒤를 이은 답변은 ‘산재 신청 절차를 잘 모르고 어려워서’(125명,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않은 경우의 14.6%)였다.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는 노동자들도 이런 상황인데, 노동조합도 없는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치거나 아프다고 해서 산재보험을 통해 제대로 치료와 재활을 받을 권리를 누리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산재 청구 절차가 노동자가 대리인 없이도 쉽게 청구할 수 있을 만큼 지금보다 훨씬 간단해져야 한다. 노동자가 직접 신청하는 외에,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에 급여를 청구하듯이 진료를 담당한 의료기관이 산재보험에 직접 청구하는 방안을 병행할 수도 있다.
산재 신청을 망설이는 이유가 제도상의 허점만은 아니다. 산재를 신청할 경우 여전히 회사나 관리자의 불이익이 두렵다. 앞서 언급한 올해 설문조사에서도 95명의 응답자가 산재 신청 시 불이익이 걱정되어 산재 신청을 못 했다고 답했다.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다는 조항은 있지만, 산재 요양 중에 계약이 만료되는 경우도 흔히 본다. 산재 은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 대상이지만, 처벌은 미미하다.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2022년 한 해에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적발한 산업재해 은폐 혹은 미신고 건수는 5만 건이 넘었다.
취약한 보장성이 더 어려운 노동자의 접근성을 제약
산재보험 휴업급여는 평균임금의 70%다. 처음 산재보상제도가 도입됐을 때보다는 인상되었지만, 산재 이후 가계소득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노동조합은 단체협상을 통해 30%의 임금 손실을 보전해준다. 이런 추가적인 보상을 기대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경우 ‘그거라도 받고 쉬는 게 나을 때까지’ 최대한 참고 일하게 된다. 낮은 보장성이 고용 안정, 임금 수준, 사회관계와 네트워크 등 자원이 부족하고 열악한 노동자에게 산재 이용의 문턱이 된다는 뜻이다. 더 어려운 노동자가 제도를 덜 이용하게 된다.
산재 승인이 되더라도 치료비 부담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산재보험은 원칙적으로 본인 부담이 없지만, 비급여 진료가 이루어지면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비급여 진료’에는 종합병원에서 병실이 부족해서 상급병실을 사용해야 하거나, 수술이나 약물 치료 과정에서 주치의가 치료 목적으로 권고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환자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근로복지연구원 조사를 보면 산재보험 1건당 비급여 의료비가 1백만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응답자의 80%가 본인 부담금이 부담됐다고 답했다.5 간병비 부담도 상당하다.
정부는 ‘나이롱 환자’ 운운하면서, 마치 산재 보상이 과도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가 승인되어도 부족한 생활비나 치료비로 경제적 부담에 놓이게 된다.
산재보상, 노동자 건강 문제는 결국 정치의 문제
이 글에서는 주로 접근성을 중심으로 논의했지만, 그 외에도 산재보상제도의 과제는 많다. 주로 사고 중심의 산재 보상에서 근골격계질환, 뇌심혈관질환, 정신질환, 직업성 암으로 업무상 재해 포괄 범위가 늘어난 데에는 유가족과 당사자, 노동조합과 노동단체들의 투쟁이 있었지만, 여전히 사고가 아닌 질병을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노동자 스스로 인과성을 증명해야 한다. 해당 질병이 산재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도 문제다. 상병수당이나 유급병가가 공적으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산재로 승인되지 않을 경우, 노동자는 경제적으로 크나큰 손실을 보게 된다. 산재 승인 뒤 치료나 재활, 복귀의 질도 여전히 열악한 편이다.
이런 각각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제도적 대안이 제시되어 왔다. 실현되지 않는 것은 대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것을 현실화할 노동자 정치의 부재 때문이다. 모든 노동자가 산재보험에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일하다 다치거나 아플 때 보상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병들거나 다치면서까지 일해서는 안 되고, 혹시라도 병이나 부상을 입으면 충분히 쉬면서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박정희의 유산으로 만들어진 산재보험 60년에, 일하는 사람 누구나 일하다 아프거나 다칠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 노동자 정치를 생각한다.
1) 유범상, 영국 산재보험의 형성과 노동정치의 역할에 관한 연구, 노동정책연구 12(1), 2012.
2) 임자운, 노동안전보건 법제도의 변화 흐름과 과제, 2023
3) 송윤아, 산재보험의 운영체계에 대한 연구, 보험연구원 조사보고서, 2010.
4) (사)김용균재단, 건강한노동세상, 금속노조법률원, 노동건강연대,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민주노총법률원, 민주노총경남본부,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전국금속노동조합,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5) 이은혜, 산재근로자 비급여 본인부담금 현황 및 특성에 관한 연구, 근로복지공단 근로복지연구원, 2023.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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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