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23명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참사 후 두 번의 계절이 저물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영정을 품에 안고 거리에 있다. 성탄절 전야, 184일간의 쉼 없는 투쟁을 돌아보고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는 유가족과 연대 단체들이 모였다. 이주노동자도 정주노동자도 더는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향해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 마음을 모았다.
"끝까지 싸운다! 에스코넥은 유족 앞에 사과하라!". 참세상
24일 오후 5시, 삼성전자 서초사옥 본관 앞,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해결 투쟁 문화제'가 열렸다. 아리셀 산재피해가족협의회와 아리셀 참사 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이날 문화제에는 참사 유가족들과 연대 단체 활동가, 시민이 함께 자리했다.
유가족 최현주 씨는 "지난 6개월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울고 분노했고 희망을 보기도 했고, 절망했고 절규했고 그리워했고, 평생 느껴야 될 감정을 다 느낀 것 같다"면서 "사실 6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똑다. 우리가 요구하는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정당한 보상 재발 방지, 이 기본적인 요구들이 이렇게 어려운 줄은 정말 몰랐다"라고 타들어 가는 마음을 전했다.
유가족 여국화 씨는 "우리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다. 아리셀 참사는 아직 해결이 안 됐다.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니, 앞으로 더 큰 연대와 지지 부탁드리겠다"고 호소했다.
고 엄정정씨의 엄마라 자신을 소개한 이순희 아리셀 산재피해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내가 뭐 했나 생각해 보니, 아이들과 같이 고기 구워 먹었던 것 같다. 근데 그런 날이 이제는 다시 못오지 않겠나"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순희 씨는 "우리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만은 여러분들께 진짜 소리 높여 외치고 싶다. 재발방지가 될 때까지 끝까지 연대를 부탁드린다"고 힘을 내어 말을 이었다.
김태윤 아리셀 산재피해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아직 제대로 진상규명이 되지 못했고, 박순관 그리고 에스코넥도 처벌받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는 일하러 나갔다가 죽지 않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아직까지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짚었다.
김태윤 대표는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투쟁을 새롭게 시작한다. 여기 계신 분들께 우리의 180일은 연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너무나도 컸던 시간들이었다. 이 빚을 갚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끝까지 싸워서 반드시 승리하고, 박순관이 엄중하게 처벌받고, 다시는 이러한 차별이 일어나지 않고, 일하다가 죽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 단결하고 투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아리셀 참사 유가족 발언. 참세상
유가족들과 연대하여 투쟁을 이어온 이들도 이야기를 전했다.
엄길용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위원장은 "함께하는 동지들 그리고 유족들의,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결국은 사과를 받아내고 승리를 이끌 것이고, 우리 사회를 한 발 더 한 발 전진시킬 거라 믿고 있다."면서, "동지들과 함께 승리하는 그날까지, 사과받는 그날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송성영 아리셀 중대 참사 대책위 공동대표는 이날이 성탄절 전야임을 환기하면서, "성경 로마서 12장 15절에는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하고,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에는 고통을 당한 이웃과 함께 우는 자가, 연대로 함께하는 자가 몇이나 될까" 물었다.
그는 "대형교회들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한 이들과 함께하고 있지 않다"면서 "이주노동자, 내국인, 비정규직 차별없이 생명이 존중받는 노동존중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 평등한 세상을 실현하는 길"이기에 유가족분들과 함께 "또 다른 걸음으로 모든 역량을 동원해 끝까지 함께하고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권수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사무국장은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은, 노동권 주거권 생명권 등에 있어 항상 계엄 상태"라 짚고 "이주노동자 분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차별과, 이주노동자 분들의 죽음의 행렬을 멈추고, 노동 현장을 안전하게 만들어 모든 노동자와 그 가족이 안심하고 출근하고, 살아서 퇴근해 따스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일상의 계엄을 푸는 것, 그것이 우리가 투쟁하는 이유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권수 사무국장은 "여전히 아리셀 유가족분들의 목소리에 묵묵부답인 에스코넥과 삼성전자를 비롯한 기업들과 노동당국 등 노동자들의 피땀과 희생을 외면하는 현 실태를 바꾸자는 외침", 그것이 "지금 이곳 우리의 광장에서 외치는 우리의 간절한 목소리"라면서 "끝까지 싸워 박순관의 사과를 받고, 끝까지 싸워 이 모든 차별, 아픔, 슬픔이 없는 그러한 세상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해결 투쟁 문화제. 참세상
투쟁 문화제 참여자들은 "아리셀 참사는 에스코넥이 주범이다", "삼성은 에스코넥과 즉각 거래를 중단하라", "악질적인 박성관과 그 밑에서 일하는 경영진들도 즉각 유가족들에게 사죄하라"고 함께 외치며, 너르고 깊은 연대를 다짐했다.
지난 6월 24일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아리셀 참사 이후, 유가족들은 지난 184일 동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해 거리에서 투쟁을 이어갔다. 유가족들과 연대단위들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박순관 아리셀 대표이사는 구속 기소되고, 아리셀·에스코넥의 불법파견과 군납비리 진상이 세상에 드러났지만, 아리셀의 지분 96%를 보유한 모기업 에스코넥은 단 한차례도 유족과 교섭에 응하고 있지 않다.
유가족들과 연대단체들은 이후 집단적 민사소송 투쟁과 함께 형사재판 대응 투쟁을 통해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해결을 위한 싸움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