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바닷가에서 모래사장을 따라 죽어있는 해파리 떼를 보았다. 해파리가 그렇게 크고 두툼한 생명체일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그 광경이 징그럽고 이상했다. 지금도 그때 보았던 해안가의 사체 더미들이 기억난다. 그래서일까, 나는 바다를 좋아하지 않았다.
올여름은 역시나 뜨거웠다. 선풍기만으로 버티는 집은 밤이면 더워서 잠들 수 없었고, 아이스팩을 수건으로 감싼 채 껴안고 자다 깨길 반복했다. 수면 부족이 이어져 결국 약을 먹고 잠들어야 했다. 내가 ‘보통’의 방법으로는 잠들 수 없었던 올여름, 바다에서도 높아진 수온으로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독성 해파리인 노무라입깃해파리의 국내 바다 유입량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보름달물해파리와 함께 어업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종으로 지목되는 이 종은 중국, 일본, 한국의 바다에서 주로 살아가며, 2000년대부터 그 수가 급격하게 늘어, 올여름엔 작년보다 360배 더 자주 출몰했다고 한다. 다소 생소한 이름의 이 존재는 길이 2m, 몸무게 200kg까지도 자라는 거대한 생명체다. 크고 무거운 몸이 그물에 걸리면, 그물은 찢어졌다. 어민들은 그물의 손상과 잡아들인 해양 생명체들의 ‘선도’가 떨어진다는 피해를 호소했다. 또한 그에게 쏘일 경우 부종과 발열, 근육 마비, 호흡 곤란, 쇼크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어서 피서객들이 안전하게 바다를 즐길 수 있도록 그는 박멸 대상이 되었다. 박멸의 방법은 바닷속에서 그들의 몸을 절단하거나, 선박으로 끌어 올려 절단하거나, 해수욕장 모래사장에 파묻는 것이었다. 그것은 ‘구제(驅除)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강원도는 7월 23일부터 약 한 달간 강릉과 삼척에서 80톤, 속초와 고성 등에서 80톤 등 총 160톤가량의 해파리를 죽여 사람들을 ‘구제(救濟)’했다.
출처: 강원특별자치도, 해양수산부
노무라입깃해파리의 문제를 다룬 기사들에는 그 원인이 기후위기로 인한 수온 상승이라고 설명이 되어있었으나 자성은 없었다. ‘박멸’은 국가의 돈으로 행해졌다. 8월 16일 기사에는 해수부가 해파리를 잡아 오면 사들이는 수매 사업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한 예산 16억 2천만 원이 소진된 상태였고, 추가 예산을 요청한 경남, 경북, 강원에 약 3억 원을 추가 지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여름철, 한 종을 박멸하고자 국가가 20억 가까이 되는 돈을 푼 것이다.
인간이, 문제라고 판단하는 특정 종을 대하는 전형적인 방식은 두 가지다. 콕 집어 제거 명령을 내리거나, 그의 천적을 풀어놓는 것. 전자의 경우엔 현상금이 붙기도 한다. 목숨마다 얼마 또는 무게당 얼마. 노무라입깃해파리의 현상금은 킬로그램당 300원이었다.
1. 박멸
뉴트리아를 죽여서 1억을 벌어 화제가 되었던 ‘뉴트리아 아저씨’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박멸의 공존>에서는 전자의 방식이 잘 드러난다. 뉴트리아 아저씨는 자신의 배추밭을 망쳐 놓은 뉴트리아를 잡아죽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골프채로, 이후엔 익사나 아사의 방법을 사용했다.
"한두 마리 같으면 안락사를 하겠지만 몇천 마리 정도 되는 걸 어떻게 안락사를 합니까? 그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그래서 할 수 없이 물속에 익사를 시키던가 굶겨서 죽이는 이 방법밖엔 없어요."
출처: <박멸의 공존> 김아람
그렇게 죽은 뉴트리아의 목숨은 한 명 당 2만 원이었다. 그는 뉴트리아 말고도 베스와 붉은귀거북을 잡았다. 뉴트리아처럼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종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낙동강유역 환경청 자연환경과에서는 공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공존할 수 있죠. 왜 못합니까?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우리 토종이라든지 고유종들이 피해를 입다보니까 뉴트리아는 세력을 확장하는데 우리 토종들은 얘네들이 확장하면서 면적은 제한되어 있는데 (토종의 영역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죠. 우리 토종 애들이 무슨 죄입니까?"
이번엔 곤충의 이야기다.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증가함에 따라 윤영희 서울시의원은 '서울특별시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했다. 그에 따르면, 시민들에게 상당한 불편을 유발하는 대발생 곤충의 적절한 관리 및 방제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시민들의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조례에서 대발생 곤충이란 감염성 병원체를 매개하지는 않지만, 주거·상업 지역 등 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지역에 대량으로 출현하여 시민들에게 상당한 신체적·정신적 피해 또는 불편을 주는 곤충을 말한다.” 그간 러브버그와 관련한 기사의 제목들은 극도로 부정적이었으므로, 이러한 조례가 나오는 일은 놀랍지 않았다. 뉴트리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하지만 뉴트리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시민들이 조례안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서를 낸 것이다. 성명서에는 ‘불편’을 이유로 곤충을 방제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드러나 있다. “대발생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과학적인 근거 없이 불편하다는 민원을 근거로 적극적인 방제를 가능하게 하는 이 조례안이 통과될 경우, 곤충에 대한 공포와 혐오감을 키우고 어떤 곤충도 죽일 수 있는 ‘데스노트’ 조례가 될 수 있어 사회적 혼란이 우려된다. 꿀벌과 야생벌을 비롯하여 생태계를 유지·보전하는 수분 매개 곤충들뿐 아니라 무수한 동식물이 방제에 희생되고 생물다양성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될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이 존재한다. 성명서는 생태계에 ‘이로운 존재’들이 박멸될 것임을 우려하고 있다. “조례안에서 언급된 동양하루살이, 붉은등우단털파리(일명 ‘러브버그’)는 사람을 물거나 질병을 매개하지 않고, 유기물을 분해하고 식물의 수분을 돕거나 포식자의 먹이가 되는 등 생태계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이 조례안이 통과되면 안 된다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다. 생태계에 도움이 되는 종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살려둬야 한다는 것은 비인간의 생명을 차등적으로 대하는 우리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러브버그가 만약 질병의 매개가 되거나, 농작물을 갉아먹는다면 이 조례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이렇게 뜨거웠을까. 다행히 이 조례안은 9월 6일 보류 처리됐다.
“인간의 허영은 고라니가 도로교통법을 준수하고, 농작물과 아닌 것을 구별하고, 인간에게 불필요한 것들만 먹기를 바란다.” 문선희, 『이름보다 오래된』
덧붙여 보호종이나 토착종에도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며 ‘시민’의 삶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
2. 천적
후자의 경우는 좀 더 흔하다. 쥐가 많았던 마라도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천적인 고양이를 들였다. 그런데, 천연기념물인 뿔쇠오리에게 위협이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번엔 고양이가 쥐의 위치가 되었다. 그 결과 전자의 방법으로 ‘박멸’ 대상이 되었다. 뉴트리아처럼 현상금이 붙어 살해되는 일은 면했지만, 납치·이주당하는 공포를 겪어야 했다.
출처: 국가유산청
천적을 푸는 방법은 해파리에게도 적용되었다. ‘바다의 해적’이라 불리는 노무라입깃해파리와 보름달물해파리의 천적인 쥐치가 이용되었다. 2010년 보령에서는 해파리를 남김없이 먹어 치운다는 쥐치 20만 마리를 1억 원을 들여 대천해수욕장 부근 바닷가에 풀었다. 당시 관계자는 “지역 특성에 맞는 고부가가치 어종인 ‘쥐치’를 방류, 어업인 소득 높이기는 물론 여름철 해수욕장 해파리 떼로부터 피서객을 보호해 쾌적한 해수욕장 환경 조성에 보탬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해파리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천적인 거북과 쥐치가 무분별한 어획으로 인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쥐치를 많이 풀어 놓는다고 될 일은 아니다. 풀어놓은 쥐치는 무분별한 어획이 계속되는 한, 다시 사라질 것이다.
직접 죽여 제거하는 것이든, 천적을 이용한 방식이든, 여기엔 인간이 동물에게 부여한 위계가 명백하게 존재한다. ‘천연기념물’은 자연유산 중 역사적·경관적·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국가유산청장이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종을 말한다. ‘유해야생동물’ 역시 환경부령으로 정한다. 유해야생동물을 규정하는 근거는 인간의 피해가 기준이 된다. 농·림·수산업, 항공기 또는 특수건조물, 군 작전, 인명·가축, 분묘, 전력시설, 문화재 훼손, 건물 부식 등에 피해를 주면 유해야생동물이 된다. 누구든 국가에 의해 유해야생동물로 규정될 수 있다.
"우리가 멸종 위기종을 지정하는 이유는 위험에 처한 동물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멸종이라는 최악의 사태만큼은 피하기 위해서다. (중략) 당연히 이 모든 일의 끝에는 ‘동물’이 있어야 한다." 박소영, 『살리는 일』
어떤 존재는 원래 살아야 할 바다에 있었을 뿐인데 물 밖으로 끌려 나와 살해당하고, 어떤 존재는 천적을 ‘박멸’해서라도 보호한다. 끝나지 않는 종들의 멸종과 인간의 피해 앞에서, 인간에게 불편함을 주거나 인간 연대자가 없는 종부터 박멸 대상이 될 것이다.
* 인용 및 참고
<해파리 잡는 ‘쥐치’ 바다에 풀어> 아시아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노무라입깃해파리 (Nomura's jellyfish)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마라도 고양이' 다 쫓아내고…쥐 퇴치에 1억 씁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독성 해파리 유입 역대 최대…해수욕장·어가 '몸살'> 연합뉴스
<한달새 없앤 해파리 160톤…강원도는 '독성 해파리'와 전쟁 중> 뉴스1
<"1㎏당 300원, 불청객 해파리 삽니다"> 세계일보
<한국의 멸종위기 야생생물> 뿔쇠오리, 한국자연환경보전협회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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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리는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