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체포영장과 지루한 부조리극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집회 현장. 참세상 

대한민국은 참 황당한 나라다. 한편으로 보면 대통령이 불법으로 계엄을 선포한 걸 시민(여기에는 ‘제복입은 시민’도 일부 포함된다)이 곧바로 저지하는 성숙한 민주적 의식의 나라인데, 또 한편으로 보면 대통령이 적법하게 발부된 체포영장을 깔아뭉개고 헌정과 법치를 유린하는 후진적 나라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지금까지 진행된 윤석열의 내란 사태를 1부와 2부로 나눠본다면, 1부는 분명 전자의 서사가 중심이 되는 구조였다. 1부의 마지막은 환호 속에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며 끝이 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영화나 드라마는 보통 여기서 엔딩을 맞이한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현재 2부의 중반부에 들어와있다. 2부는 고통스럽고 지루하며 난해하다.

이 난해함과 지루함의 원인은 직무정지된 현직 대통령 윤석열 등 일부 법조 엘리트와 이들을 중심으로 한 통치 카르텔의 곡예에 가까운 여론 왜곡 기술에 있다. 이들은 윤석열을 대상으로 발부된 체포영장에 법적 하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로 공수처는 내란죄에 대하여 수사권한이 없으며, 둘째로 체포영장에 형사소송법 110조, 111조 예외가 적시된 것은 판사의 월권이며, 셋째로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한 것 역시 공수처의 관할은 서울중앙지법이라는 점에서 불법이라는 거다. 이 주장은 윤석열의 변호인들과 여당인 국민의힘이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보수언론 중에서도 조선일보는 이들의 주장을 강하게 대변하며 공수처와 사법부의 수사 및 영장 발부를 논란의 사안으로 만들어 이들이 ‘정치’를 하고 있다는 식의 프레임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사법부는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조희대 대법원장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서울서부지법은 윤석열 측의 체포영장에 대한 이의신청을 기각하면서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 논리를 인정했다. “이 사건 영장에는 내란죄뿐만 아니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혐의사실이 포함된 것으로 보이고, 이는 공수처법에 포함된 범죄다. 그것과 관련이 있는 내란죄를 혐의사실에 포함시켰다고 하여 위법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수처의 수사권에 대한 논란은 사법부의 이러한 판단으로 더 의미가 없어졌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2024년 1월 천대엽 대법관을 법원행정처장으로 임명하였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7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형사소송법 주석서를 비롯한 다수 학설도 물적인 압수수색과 인적인 체포수색의 경우는 달리 취급하는 것이 맞다는 게 다수 학설”, “당시 영장판사는 주류적인 견해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체포영장을 형사소송법 110조, 111조 예외로 보는 것에 특별히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측의 ‘공수처의 관할은 서울중앙지법’이란 주장은 공수처법 제31조를 근거로 하는 주장인데, 31조는 이렇게 되어있다. “수사처검사가 공소를 제기하는 고위공직자범죄등 사건의 제1심 재판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관할로 한다. 다만, 범죄지, 증거의 소재지, 피고인의 특별한 사정 등을 고려하여 수사처검사는 「형사소송법」에 따른 관할 법원에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이 조항은 영장 청구가 아닌 기소에 대한 내용인데, 이 조항에 따르더라도 ‘「형사소송법」에 따른 관할 법원’은 용산을 관할하는 서울서부지법이어서 공수처의 영장 청구는 문제가 없다.

이런 사실을 종합하면 윤석열 측 주장은 ‘가짜뉴스’에 가까운 내용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여당과 조선일보는 이게 무슨 근거가 있는 얘기인양 반복 주장을 하면서 논의를 흙탕물로 만들었다. 이러한 행위의 목적은 1차적으로 윤석열이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하고 요새화된 관저에 틀어박혀 헌정을 유린할 명분을 주고 이를 정당화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조기대선 국면에서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느닷없이 벌어진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과정에서의 ‘내란죄 철회’ 논란에도 마찬가지 의도가 실려있다. 윤석열 측은 국회 탄핵소추단이 내란죄와 관련해 형사법적으로 다투지 않겠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사실상 탄핵사유가 사라진 것이며 국회에서 의결한 탄핵소추안과의 동일성이 훼손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당은 이러한 주장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면서 탄핵소추안의 재의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조선일보는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 ‘법이 무너졌다’는 등의 평가를 연일 지면에 싣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 탄핵소추안에 담긴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탄핵심판 과정에서 무엇을 징계 사유로 삼을 것인지를 재정리하는 일은 정상적인 과정일 뿐이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국회 측 탄핵소추 사유를 시간대별, 행위별로 계엄선포, 포고령 1호, 군경의 국회 봉쇄 및 진입 등 국회 활동 방해, 군의 영장 없는 선관위 침탈, 법관 체포 지시 등 5가지로 분류해 헌법, 계엄법, 형법(내란, 직권남용,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위반 여부를 살피겠다고 한 상태다. 국회 탄핵소추단 측 주장은 이 중 형법 위반 여부를 다투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아닌 형사법정에서 다룰 수 있는 문제이며, 같은 사실관계를 헌법 위반의 관점으로 평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파면의 필요성을 논할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윤석열 측이 앞서 본 바와 같이 공수처 수사권의 적법성부터 문제를 삼는 등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침대 축구’로 일관하며 시간 끌기에 돌입할 태세가 분명한 것과도 연관이 있다. 이 정부는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도 임명하지 않고 미루는 위헌적 행위를 일삼았다. 온갖 논란 끝에 2명이 울며 겨자먹기로 임명된 상황이지만, 4월 중순이면 2명의 헌법재판관이 추가로 퇴임한다. 이들은 대통령 추천 몫인데, 대통령 권한대행이 적극적 권한행사를 할 명분이 크지 않다. 헌법상 헌법재판소의 존재 의의는 헌정질서의 수호이다. 현재 상황과 같은 맥락에서 징계재판의 당사자이자 직무정지된 대통령과 정부의 헌법재판소를 사실상 마비시키거나 헌법재판소 결정의 권위를 훼손하려는 시도는 헌정질서의 파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따라서 탄핵심판을 신속히 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과 여당은 이 두 가지 맥락을 엮어 ‘탄핵심판에서 내란죄를 뺸 것은 이재명의 조기 대선이라는 이익 때문’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냈다. ‘이재명의 이익을 위해 탄핵 심판의 속도를 빨리 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담론 구조 속에 집어 넣은 것이다. 이 시도는 얼마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등을 보면, 정상적으로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도 중도층의 망설임이 눈에 띄게 증가한 걸로 추정되는 대목이 보인다. 이런 저런 ‘법적 논란’(과연 이런 논란이 법적이기는 한가?)이 가랑비가 옷을 적시듯 영향을 주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는 거다.

그러나 맥락에 맞는 질문은 ‘오직 이재명의 대선 출마 원천 봉쇄만을 위해 윤석열의 임기를 하루라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여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재명이 문제면 이재명을 안 찍으면 된다. 이게 왜 윤석열 정치 생명 연장의 이유가 돼야 하나?

윤석열 일당은 노동자 민중에 대해선 ‘건폭’이라고 하고 떼쓰지 말라고 하며 법치 운운하는 명분으로 찍어 누르기 바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을 향해선 정당하고 적법하게 발부된 체포영장 집행을 영화 드라마 만화에서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막으면서, 가짜뉴스를 뿌려 지지층을 규합해 사병화하고, 극우 유튜브 사업가들이 사회를 좀먹는 걸 돕고 있는데, 이런 자들의 음흉한 목적을 가진 궤변을 일부 언론의 탈을 쓴 음모가들이 조용히 거든다. 이게 대한민국 집권 세력의 실체이고, 글 서두에 말한 이 지루하고 난해한 부조리극으로 이루어진 2부의 주제다. 물론, 절망할 필요는 없다. 2부가 끝나면 또 3부가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가 3부작인지 6부작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덧붙이는 말

김민하는 정치·사회 평론가, 칼럼니스트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에서 일하며 한국의 진보정치가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으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기대만큼 잘되지 않았다. 지은 책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냉소 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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