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생, 입사 1년여만 간 녹아내려"..."유해한 산업에 더 싼 인력 채우려는 반도체특별법 반대"

"회사에서 코피가 2시간가량 멈추지 않아, 반차를 내고 병원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 후 회사에 복귀하였을 때도 걱정이나 안부조차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독성 간 질환으로) 수술을 한 후 학교와 교육청, 회사조차 안부를 묻는 연락이나 걱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학교(마이스터고)를 괜히 나왔나 많은 후회를 하였고 화가 많이 났습니다. 오히려 회사에서는 제가 근무를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님을 알면서도 더 이상의 병가를 줄 수 없다며 무단결근으로 인한 해고 처리를 하였습니다."

"이제 수술을 하여 몸이 이런데 이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이 가장 크게 다가왔습니다. 할 줄 아는 일들이 이런 것들뿐이고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이런 것인데 어린 나이에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에 나는 이제 미래가 불확실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나쁜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4일, 김선우(가명) 씨가 아버지를 통해 전한 이야기다. 선우 씨는 지난 2020년 10월, 18살에 현장실습생으로 반도체 회사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반도체 칩에 전자기판을 부착하는 공정에 투입돼 여러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며 일을 하던 선우 씨는 입사 1년 2개월 만에 독성 간 질환에 걸려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은 선우 씨의 "간이 완전히 녹아내려 형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선우 씨는 산업재해 신청을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5월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현재 선우 씨와 가족들은 산재 불승인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김선우 씨 아버지. 반올림 

거대 양당이 저마다의 이해를 타산하며 반도체특별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갈팡질팡하던 민주당은 주52시간제 예외 조항을 제외하고 반도체특별법을 신속 처리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겠다고 나섰다. 노동계에서는 반도체특별법의 문제는 주52시간제 예외 조항만이 아니라며 저항하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은 "재벌 특혜, 기후 악법"인 동시에, 선우 씨와 같은 "현장실습생의 생명과 건강을 밟고 세운 유해한 반도체 산업"의 문제를 심화시키고, "노동자 안전과 건강을 위협"한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과 재벌 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은 지난 4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도체 특별법 논의에서 제외되고 있는 청소년 노동의 위험과 노동자 안전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선우 씨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선우 씨의 아버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동 약자들은 자기의 권리조차 찾기 힘든 실정이다. 강압적인 분위기에 눌려, 어찌 대처해야 할지도 몰라서, 몸과 마음이 상하고 무너져가는 줄도 모른 채, 자기 몸이 아파 힘들어도 참아가며 일을 하고 있다"면서 "반도체특별법을 통해 근무 시간이 늘어나 노동강도가 올라가고 위험한 화학 물질에 더 많이 노출이 되면 이들은 누가 보호하는가. 대기업, 힘 있는 사람들은 위험한 일, 하기 싫은 일들은 노동 약자들에게 떠넘기고 나몰라라 할 것이고, 지치고 죽어 나가는 것은 노동 약자들"이라 짚었다. 아버지는 또한 "노동약자들과 노동 환경에 대한 대책 없이는 반도체특별법을 시행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장실습생으로 반도체 산업에 투입돼 일을 하다 병을 얻은 것은 선우 씨만이 아니다. 

지난 2007년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 씨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화학물질로 세척 업무를 하다 1년 8개월 만에 백혈병을 얻어 투병을 하다 스물셋의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고 황유미 씨도 선우 씨와 같은 18살에 일을 시작했다. 삼성전자 1차 하청업체 케이엠텍에서 갤럭시 휴대전화를 만들던 이승환 씨도 고3 현장실습생으로 일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급성 백혈병이 발병했다.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는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반도체산업의 유해성을 너무도 쉽게 간과하지만, 선우 님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빈번하게 화학물질이 바뀌고 너무도 많은 화학물질이 사용된다"면서 "삼성반도체는 기흥공장에서만 1천여 가지의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선우 님이 일한 스태츠칩팩에서는 환경부 공시에 따르면 365가지의 화학제품을 사용한다. 이 중에서 간에 독성이 있는 물질은 26가지나 된다. 그러나 작업환경측정은 고작 15가지만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짚었다. 

이 활동가는 "10대의 몸은 유해물질 노출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암이나 질환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부와 국회는 반도체고등학교 육성, 반도체특성화대학 등이 포함된 반도체 특별법안으로 10대, 20대의 젊은이들을 유해한 반도체 산업으로 이끌고 있다"며 "얼마나 더 젊은이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이처럼 너무 많은 청년들의 피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싼 인력, 더 젊고 문제 제기하기 힘든 현장실습생, 10대, 20대 인력으로 반도체 산업을 키우겠다고 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힘 주어 말했다.

"현장실습생 건강과 노동인권 외면하는 반도체 특별법 반대한다". 반올림

이상현 녹색당 대표는 "반도체 특별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가 반도체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인력 확보를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반도체 특성화대학 및 특성화대학원, 반도체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를 지정하고 운영과 연구개발비를 지원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대학인원 총량규제에도 불구하고 정원을 증원할 수 있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고 소개하며 "반도체 산업을 미래 먹거리 산업이라고 상찬하며 제대로 안전망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산업에 특혜를 주어가며 양성한다면 그에 뒤따를 수많은 희생이 자명하다"고 이야기했다.

난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는 "지금 반도체 특별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반도체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접할 수 있는가. 직업계고 학생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반영될 수 있나. 아마도 어떤 이들은 학생들도, 노동자들도 반도체 산업이 확대되는 걸 원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산업이 커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존엄한 삶, 생명과 안전을 중심에 둔 국가정책, 기후위기 시대에 생태전환의 가치를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오로지 삼성, SK 등 재벌기업의 요구대로 반도체 산업의 인력양성소로 전락한 국가의 첨단전략산업 정책, 반도체 특별법 입법에 반대한다"면서 "국가핵심기술, 영업비밀 우선주의에 밀린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 알 권리의 부재 속에 추진되는 반도체 인력양성계획에 반대한다. 가장 유해한  산업을 가장 탐욕스런 자본들이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반도체 산업에 청년들을 내모는 것에 결코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오는 6일은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알린 고 황유미 씨의 기일이다. 

이날 오후 6시 반올림과 재벌 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은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고 황유미 18주기 추모, 반도체특별법 폐기 결의대회'를 연다.

 '고 황유미 18주기 추모, 반도체특별법 폐기 결의대회' 웹포스터.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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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에 이 글을 접하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18살, 19살 이런 젊은 아이들이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하는지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몸도 마음도 아플 텐데, 산재처리도 되지 않은 이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움은 학교, 회사, 근로복지공단이 느껴야하는데 말입니다.

    명백한 산업재해인데,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너무나 무자비한 일입니다. 만약 선우씨가 나라면, 내 아이였다면 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이 기사가 계속 후속 기사화 되어서 최소한 산재라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 2의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아야 합니다. 아직도 00마에스터고에서는 신입생 모집을 했을 것이고, 스태츠칲코리아에서는 누군가는 그 위험한 일을 계속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이 기사를 보는 분들이라도 이 기사를 알려야겠습니다.

    응원합니다. 선우씨와 가족들!

    그리고 고인이 된 유미씨, 승환씨. 우리는 너희를 기억할 것이고, 연대할 것이야. 연결될수록 단단해지니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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