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시대를 이론화한 경제학자, 에드먼드 펠프스

미국 경제학자 에드먼드 펠프스(Edmund Phelps)가 최근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펠프스는 통화주의 계열의 전형적인 자유시장 주류 경제학자였으며, 2006년 노벨 경제학상(실제로는 스웨덴 중앙은행상) 수상자였다.

펠프스는 1966년까지 예일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쳤다. 이후 펜실베이니아대학교로 옮겨 그를 유명하게 만든 논문들을 발표했다. 그는 2001년부터 2024년 폐쇄될 때까지 컬럼비아대학교 자본주의와 사회 센터의 창립 소장을 맡았다.

2013년 그는 ⟪대번영의 조건⟫(Mass Flourishing)을 출간했다. 이 책은 현대적 가치— 창조하고 탐구하며 도전에 맞서려는 공동의 욕망 — 가 경제 역동성의 원천이라고 주장한 그의 신념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는 혁신적인 경쟁적 자유시장조합주의와 국가의 죽은 손에 의해 억압되면서 이런 가치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보았다.

1960년대 펠프스는 대표적 통화주의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함께 중앙은행과 정부가 고용과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려 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 관점에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이런 접근이 결국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펠프스는 중앙은행이 장기 인플레이션은 통제할 수 있지만, 동시에 장기 평균 생산 증가는 거의 통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처럼 두 목표가 양립 불가능해질 경우, 통화당국이 취해야 할 최선의 정책은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추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설령 그것이 —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 일자리를 희생시키는 대가를 치르며 금리를 인상하는 것을 의미하더라도 말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주요 경제권에서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주의 거시경제 관리론을 실추시켰고, 겉보기에는 펠프스의 주장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 펠프스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주요 이론가 가운데 한 명이 됐으며, 균형재정, 민영화, 저인플레이션을 지지했다.

펠프스는 자본주의 경제가 높은 인플레이션을 감수한다고 해서 실업률을 낮출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까지 경제학자들은 필립스 곡선에 근거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가정해 왔다. 그러나 펠프스는 정부지출이 증가하면 모든 경제 주체들— 즉 가계와 기업 — 이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예상하게 되고, 그 결과 노동자들은 더 높은 임금을, 기업주들은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인플레이션 기대가 경제성장과 그에 따른 실업 감소를 애초에 꺾어버린다는 것이다.

펠프스는 완전고용을 인플레이션 없이 달성하려 했던 케인스주의 거시경제 관리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는 옳았다. 하지만 그 이유는 그가 말한 것처럼 정부지출이 과도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나와 다른 연구자들은 케인스주의 정책 실패의 주된 원인이 1970년대 자본 수익성의 하락이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중앙은행들이 경제를 부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금리를 인하했다. 그러나 그 정책은 1980년대 초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볼커(Volcker)에 의해 뒤집혔다. 하지만 1970년대 인플레이션을 실제로 꺾은 것은 1980~82년의 대침체였다. 그 침체는 미국 제조업을 초토화했고 실업률을 급격히 끌어 올렸다.

최근 몇 년 동안 펠프스의 기대 이론은 중앙은행들과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점점 더 받아들여지고 있다. 2008~09년 대침체와 2020년 팬데믹 침체를 거치면서 통화주의와 케인스주의 인플레이션 이론이 모두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2022년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 급등 시기, 바이든 백악관 경제자문들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장기적으로 지속적인 물가 압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인플레이션 기대다.”

하지만 펠프스의 이론은 애초에 왜 인플레이션이 시작됐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 이론은 가격 형성에 대한 어떤 객관적 분석도 제거해 버린다. 인플레이션이 다른 객관적 이유들 — 2022년의 경우에는 분명히 세계적 공급 부족 — 때문에 상승하기 시작한 이후에야 기대가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실증적 증거는 인플레이션이 수개월 동안 높은 수준으로 지속된 이후에야 경제 주체들이 그것을 미래 전망에 반영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기대는 대체로 적응적이다. 즉 순수하게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반영하는 성격이 강하다. 기대는 인플레이션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뒤따라간다.

경제학자 제러미 러드(Jeremy Rudd)는 펠프스의 인플레이션 이론을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기껏해야, 기대가 인플레이션의 장기적 특성을 결정한다는 인과관계를 뒷받침하는 것은 정황적 증거에 불과하다. 똑같은 현상은 설문 응답자들이 실제 인플레이션 변화에 반응해 꽤 그럴듯한 인플레이션 전망을 내놓고 있는 상황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관련 이론 및 실증 문헌을 검토해보면, 이런 믿음은 극히 취약한 토대 위에 놓여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을 비판 없이 받아들일 경우 심각한 정책 오류로 쉽게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 역시 가능하다.”

펠프스는 계속해서 인플레이션이 과도한 정부지출과 인플레이션 상승에 대한 기대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7~08년 세계 금융 붕괴(와 그 뒤를 이은 2008~09년 대침체는 그 이론을 무너뜨렸다. 2000년대 초 실물경제의 인플레이션은 낮은 수준에 머물렀고 정부 재정적자도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193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침체가 발생했다. 펠프스 자신도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경제학자들은 그 내재적 위험도 보지 못했다. 내 동료들 대다수는 시장이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을 능력이 없었다. 결국 그들은 지난 30~40년 동안 시장이 매긴 가격은 무엇이든 옳다고 설교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비판은 펠프스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펠프스는 대침체 이후 케인스주의 정책을 부활시키려는 사람들에 맞서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통화주의 이론은 실패했다. 통제 불능 상태가 된 것은 상점의 상품 가격이 아니라 금융자산 가격이었고, 그것이 결국 붕괴하면서 금융위기를 촉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케인스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펠프스는 주장했다. “일부 사람들의 생각은 케인스로 향하고 있다. 불확실성과 투기에 대한 그의 통찰은 깊었다. 하지만 그의 고용 이론은 문제가 있었고, ‘케인스주의적정책 해법 역시 기껏해야 의심스럽다… 생애 말년에 케인스는 잘못되어 시들고 우스꽝스러워진 모더니즘적인 것에 대해 썼다. 그는 친구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에게 다음 책에서 자신의 이론을 다시 검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분명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케인스의 놀라운 공헌에 대해 갖고 있는 존경심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막아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세계 금융 붕괴는 펠프스의 사고에 일정한 변화를 가져왔다. 2009년 이후 그는 다른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처럼 잠에서 깨어난 듯 시장의 일부 영역은 충분히 규제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정부는 은행 대출이 금융자산과 부동산 투기에 사용되지 않고 생산적 투자에 사용되도록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희망은 2009년 이후 주식시장에서 계속된 신용 기반 투기, 은행 뱅크런, 암호화폐의 부상 속에서 철저히 무너졌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도 펠프스는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열정적으로 옹호했다. 정책은 높은 역동성과 폭넓은 포용성을 가진 기업 부문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연구의 과제는 어떤 제도가 역동성으로 가는 경로가 되고, 어떤 제도가 장애물이 되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펠프스에게 사회주의는 기업 역동성에 대한 하나의 위협일 뿐이었다. 또 다른 위협은 조합주의였다. 그는 그것을 기성 기업들과 고착된 특수이익 집단들이 정부와 결탁해 안정성과 보호주의를 위해 대담하고 불확실한 혁신을 억누르는 체제라고 정의했다.

펠프스는 계속해서 노동시장 규제 완화를 주장했다. 즉 노동자들의 고용 권리를 없애고, 노동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한도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직원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자리를 찾아 나설 필요가 줄어들수록, 기업들의 혁신 역량은 더 약해진다. 독일에서 시행되는 공동결정제 같은 모델은 특히 해로울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장을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전하는 결정을 직원들에게 맡긴다면, 그것이 장기적으로 회사와 사회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더라도 노동자들은 항상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말년의 펠프스는 경제를 통제하고 기업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시하려 했던 트럼프의 경제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그것을 파시즘 시대의 경제정책 같은 것이라고 불렀다. 그는 국제적 자유무역, 신중한 재정정책,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의 정부 간섭으로부터의 독립성 유지를 주장했다. 끝까지 철저한 자유시장 신자유주의자였던 셈이다.

[출처Edmund Phelps: free markets and inflation expectations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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