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변신

요즘 내가 가장 몰두하는 큰 질문은 급진적인 경제 변화를 어떻게 사고하는가, 혹은 왜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다. 다시 말해, 경제사를 온전한 의미에서 어떻게 이해하려 애쓰는가 하는 문제다.

곧 출간할 기후·에너지에 관한 내 책도 바로 이 문제를 다룬다.

또 다른 사례가 세계 통화 체제, 특히 달러 체제의 미래를 둘러싼 문제다. 오늘날의 통념은 현 체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듯 보인다. 사람들은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를 대신할 통화가 무엇인지 묻는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방식 자체가 그것이 성립한 역사적 조건을 가려 버린다. 기축통화라는 개념을 마치 변하지 않는 실체처럼 받아들여, 통화와 금융 시스템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화해 왔는지도 놓친다.

'통화 체제', '패권 통화', '기축통화', '주도 통화' 같은 개념은 무엇보다도 현실을 단순화하고 안정적으로 이해하려는 틀이다. 무질서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마주하면 "그렇다면 역사는 달러 체제의 미래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라고 묻는 일은 어딘가 위안을 준다. 적어도 그런 질문은 '달러 체제'라는 실체가 존재하며 그것을 하나의 대상으로 논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실제로 세계 경제가 기축통화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세계 경제사를 질서 있는 연속으로 배열할 수 있다. 제노바에서 네덜란드, 영국, 미국으로 이어지며 기축통화가 차례로 교체되었다는 식이다.

이처럼 연대기적으로 도식화한 서술은 미래를 향한 질문의 틀도 규정한다. "달러 다음에는 무엇이 오는가?"라는 질문이다. 한때는 파운드 스털링 체제가 있었고, 지금은 달러 체제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은 무엇인가?

하지만 이런 논리는 연속해서 배열한 대상들이 하나의 계열을 이룰 만큼 충분히 비슷할 때만 설득력이 있다. 과연 네덜란드의 상업·금융 시스템이나 제노바, 스페인, 포르투갈의 금융 시스템은 19세기 대영제국이나 20세기 미국의 금융 시스템과 정말 비슷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는 모두 널리 사용된 통화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유비는 드러내는 것만큼이나 많은 것을 가려 버린다.

오히려 통화의 역사를 기술의 역사처럼 바라보는 편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마차, 증기기관차, 휘발유 자동차, 현대의 고속철도, 전기차는 모두 지상 교통수단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 계보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이전 기술을 매끄럽게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질적인 단절이 일어나기도 하고, 서로 다른 기술이 오랫동안 나란히 공존하기도 한다. '지상 교통수단'이라는 범주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어느 시점에 이르면 '말 없는 마차'라는 표현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더라도 더 이상 유용한 개념이 아니었다는 데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은 흔히 파운드 스털링을 달러 이전의 '기축통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성격이 전혀 다른 시스템들을 지나치게 포괄적인 하나의 범주로 묶어 버린다. 더구나 일반적으로 20세기 중반에 시작했다고 여기는 '달러 체제'라는 표현 역시 금융사의 매우 다른 국면들을 하나로 뭉뚱그린다. 달러 시대 내부만 보더라도, 포드 모델 T, 포드 F-150 픽업트럭, 현대의 전기차만큼이나 서로 다른 단계들이 존재한다.

이번 주 초 <파이낸셜 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달러의 미래를 논할 때 우리가 너무 쉽게 이런 함정에 빠진다고 주장했다.

달러 체제는 무엇을 기반으로 작동하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이런 질문에 현실적으로 답하려 하지만 온갖 신화가 우리의 시야를 흐리고 있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가 파운드를 대신해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었다는 말은 이제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유는 달러 체제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창조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달러 체제는 15년 전은 물론이고 1940년대와도 전혀 다른, 새롭고 불안정한 형태를 띠고 있다. ……

여기서 나는 이 주장을 한층 더 밀고 나가고자 한다. 금본위 파운드 체제는 그 이후 등장한 체제와 성격이 매우 달랐으며, 비교적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반면 '달러 체제'를 충분히 면밀하게 살펴보면, 우리는 적어도 다섯 차례의 서로 다른 달러 체제를 거쳐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각각의 체제는 저마다 고유한 정치경제적 성격을 지녔다.

내가 이런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하나의 범주를 잘게 나누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발전이 불균등하게 결합하며 만들어 내는 끊임없는 역동성을 과소평가하지 말자는 데 있다. 배리 아이컨그린(Barry Eichengreen)은 최근 출간한 화폐사에서 "달러의 후계자는 달러였다"라고 재치 있게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사실 같은 달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971년 이전의 달러와 이후의 달러는 전혀 다른 체제였다. 세계적 달러는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존재다.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달러 체제가 반복적으로 변신을 거듭해 왔다는 사실이다.

파운드 스털링과 런던 금융가, 그리고 영국은행이 세계 금융을 주도했던 시대는 법정화폐의 시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금본위제의 시대였다. 당시 체제를 떠받친 기준은 파운드 자체가 아니라, 영국 통화와 런던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례 없는 금융 네트워크가 금에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영국은행이 그 금 연동을 안정적으로 관리했기 때문에 체제는 신뢰와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초래한 재정·통화 충격 이후에야 각국은 대규모로 통화를 외환보유액으로 보유하기 시작했다. 당시 주된 대상은 파운드 스털링과 미국 달러였으며, 그중에서도 미국 달러가 빠르게 중심 통화로 부상했다. 그러나 외환보유액의 대부분은 여전히 금의 형태로 보유했다. 왼쪽 그래프에서 보이는 달러와 파운드의 비중은 오른쪽 그래프에서도 다시 나타난다. 하지만 훨씬 더 큰 금 보유액 위에 얇고 점점 줄어드는 짙은 붉은색 띠로 표시될 뿐이다.

대공황으로 영국이 1931, 미국이 1933년에 차례로 금과의 연동을 포기하자, 각국이 통화를 외환보유액으로 보유하는 관행도 다시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동시에 한 가지 사실도 분명해졌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나치 독일처럼 고도로 발달하고 역동적인 경제도 외환보유액을 거의 갖지 않은 채 오랫동안 운영될 수 있었고, 파운드 블록과 같은 주요 통화권도 관리된 방식으로 사실상 변동환율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진정한 의미의 달러 중심 세계는 20세기의 세 번째 거대한 재정·통화 충격, 즉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 속에서 시작되었다. 1940년대에 미국은 대출 프로그램과 마셜 플랜을 통해 비공산권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1944년에 합의되었지만, 처음에는 실패한 실험에 가까웠다. 1944년부터 1958년까지,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초기의 여파 속에서 달러 체제는 복잡하고 비대칭적인 동맹 체제였다. 유럽 국가들은 유럽결제동맹을 별도로 운영했고, 영국은 파운드권을 유지했다. 나는 이 시기를 달러 체제 1기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미국이 새롭게 재편된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축이 된 이 질서를 미국 내부에서는 어떤 이해관계의 결합이 떠받쳤을까? 이에 대한 답으로 나는 레오 패니치(Leo Panitch)와 샘 긴딘(Sam Gindin)의 뛰어난 저서 ⟪세계 자본주의의 형성: 미국 제국의 정치경제⟫(The Making of Global Capitalism: The Political Economy of American Empire)를 꼽고 싶다. 이 책의 분석에 나는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달러 체제 2기는 1958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마침내 본격적으로 작동하면서 시작되었다. 달러는 금에 연동되었고, 미국이 주도하는 진영의 주요 통화들은 무역과 장기 자본 이동에 대해 완전한 태환성을 보장하는 고정환율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것은 에드워드 시대의 금본위제를 단순히 되살린 것이 아니었다. 세계화의 수준은 당시보다 훨씬 낮았고, 브레턴우즈 체제는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진 에드워드 시대와 의도적으로 결별하려는 시도였다.

무역 세계화는 두 차례의 큰 전성기를 거쳤다. 첫 번째는 1914년 이전, 두 번째는 2007년 이전이다.

그러나 단기 자본 이동은 규제했음에도 금융 투기의 힘은 서서히 커지고 있었다. 1950년대 후반이 되자 월가는 1930년대 대공황에서 입은 역사적인 타격을 극복하며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동시에 브레턴우즈 체제가 국가에 부여한 규제 권한에 점차 반발하기 시작했다. 계급 간 힘의 균형도 변하고 있었다. 1960년대에 이르러 런던 금융가에 기반을 둔 미국 금융기관들을 중심으로 역외 유로달러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이 서로 다른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브레턴우즈 체제를 유지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브레턴우즈 체제, 즉 달러 체제 2기는 전쟁 이전의 금본위제처럼 견고하고 안정적인 구조가 아니었다. 오히려 시행되자마자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체제를 연명시키기 위해 각국은 금의 이동을 제한하고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를 구축하는 등 추가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이런 노력도 결국 실패했다.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은 달러와 금의 연동을 폐기했다. 이는 미국의 권위가 크게 흔들린 사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로 당시 국제정치는 베트남 전쟁, 석유수출국기구의 부상, 신국제경제질서(NIEO) 요구, 소련의 세력 확대 등 미국에 여러 도전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금융의 관점에서 보면, 1970년대와 그 이후의 시기, 즉 달러 체제 3기는 미국의 쇠퇴가 아니라 규제에서 벗어난 월가가 눈부시게 팽창한 시기로 이해하는 편이 훨씬 적절하다. 이 시기를 '월가 달러' 체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바로 이 전환을 두고 배리 아이컨그린(Barry Eichengreen)은 다음과 같은 재치 있는 표현을 남겼다.

⟪국경을 넘어선 화폐: 크로이소스에서 암호화폐까지, 세계 통화의 역사⟫, 배리 아이컨그린
새로운 지배자를 만나다. 그다음 제기된 질문은 달러를 대신할 통화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답은 달러였다.

그러나 달러 체제 3기는 분명 달러 체제 2기와는 다른 체제였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달러 체제는 법정화폐 시대를 열었고, 이는 폭발적인 세계화와 맞물려 전개되었다. 이러한 결합은 이전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물론 초기에는 매우 불안정했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국제수지 불균형 때문에 달러를 대신할 기축통화가 등장할 가능성을 두고 여러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1979년 폴 볼커(Paul Volcker)가 단행한 금리 충격은 그런 논쟁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변동환율제와 자유로운 자본 이동은 민간 금융의 팽창과 결합하며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이는,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역할도 금본위제에서 독립적인 중앙은행으로 넘어갔다. 중앙은행은 더 이상 금에 연동된 통화를 관리하는 기관이 아니라, 통화 안정성을 책임지는 새로운 수호자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세계는 마침내 1914년 이전과 맞먹거나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본 이동성을 회복했고, 금융위기도 다시 빈번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와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2009년에 출간한 베스트셀러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에는 이러한 변화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그래프가 실려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제목은 내용과는 정반대라는 점에서 다소 역설적이다.

자본 이동성과 은행위기의 발생 빈도: 전 세계(1800~2008년)

1980년대 들어 금융위기가 신흥시장을 휩쓸자, 현실의 신자유주의는 반복적인 위기를 관리하는 체제로 변질되었다. 신자유주의는 규율과 재량 없는 정책을 내세웠지만, 미국의 신자유주의 엘리트들이 이끌었던 달러 체제 3기는 실제로는 임기응변식 위기 대응이 일상화된 시대였다. 라틴아메리카 채무위기, 멕시코 금융위기, 아시아 금융위기에 미국이 개입하는 과정에서 월가, 연방준비제도, 미국 재무부의 핵심 인사들은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이 시기에 이르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 출신 인사가 미국 재무장관을 맡는 일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당연한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세상을 구할 위원회. '세 명의 시장주의자'가 어떻게 세계 경제 붕괴를 막아 왔는지에 관한 뒷이야기(지금까지는). 

그러나 결국 세계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워싱턴 정가의 '슈퍼히어로'들이 과감한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 아니었다. 진정한 이유는 달러 체제가 다시 한번 변신했기 때문이다. 주요 신흥국들, 무엇보다도 중국은 외부의 구제를 원하지 않았다. 이들은 월가 달러 체제(달러 체제 3)가 만들어 낸 고위험 금융 환경 속에서 달러 체제 4, 즉 브레턴우즈 2.0을 구축했다. 이 체제의 핵심은 정부가 주도해 외환보유액, 특히 달러 자산을 대규모로 축적하는 것이었다. 그 목적은 무엇보다 금융위기에 대비한 자기보험을 마련하는 데 있었다.

이 체제를 브레턴우즈 2.0이라고 부른 이유는 분명하다. 1980~1990년대의 금융 혼란을 겪은 신흥국들은 자국 통화를 경쟁력 있는 수준에서 달러에 일방적으로 연동했고, 무역흑자를 바탕으로 외환보유액을 꾸준히 늘려 갔다. 그렇게 축적한 막대한 달러 보유액은 외부 충격이 닥치더라도 국제통화기금이나 미국의 구제금융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전략의 핵심 수단이 되었다.

외환보유액

이 체제는 신흥국의 수출기업들에게도 유리했다. 각국 정부는 이를 통해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었다. 비록 자본 통제가 완전한 자본 이동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월가는 이런 외환보유액을 중개하고 운용하는 금융 서비스를 기꺼이 제공했다. 게다가 언젠가는 중국도 자본시장을 개방하며 기존 국제금융 질서에 수렴할 것이라는 기대가 널리 퍼져 있었다.

이처럼 각국의 외환보유액을 모두 합산해 보면, 그 축적 규모가 얼마나 엄청났는지 한눈에 드러난다. 1990년대 후반부터 각국은 법정화폐, 특히 달러를 외환보유액으로 대규모 축적하기 시작했고, 이런 현상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외환보유액 규모

축적된 외환보유액이 모두 달러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달러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무엇보다 이런 외환보유액은 주요 신흥국의 정부와 중앙은행 같은 공식 보유기관들이 집중적으로 쌓아 올렸다. 브레턴우즈 2.0, 즉 달러 체제 4기는 흔히 말하는 '과도한 특권'의 시대였다. 그러나 이 특권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 특히 중국이 선택한 정책의 결과였다. 미국은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대규모로 사들이면서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특권을 누렸다. 반면 그 대가는 미국 국내 제조업, 특히 국제 경쟁에 노출된 산업과 수출시장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기업들이 강한 압박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차이나 쇼크 1.0‘이다.

우리가 "파운드를 잇고 달러를 이을 다음 기축통화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순간, 사실은 이 브레턴우즈 2.0, 즉 달러 체제 4기를 과거와 미래 모두에 투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체제는 대략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이어진 매우 특수한 역사적 국면에 속했다.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자, 주요 외환보유국들은 더 이상 공식 외환보유액을 크게 늘리지 않기 시작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은 여전히 자국 통화를 달러에 연동하고 자본 이동을 통제했으며, 무역흑자도 계속 쌓였다. 미국도 국채 발행을 이어 갔고, 특히 2018년 이후에는 그 속도가 더 빨라졌다. 하지만 새로 발행된 국채를 더 이상 정부나 중앙은행 같은 공식 외환보유 관리자가 대거 매입하지는 않았다. 큰 주목을 받지는 않았지만, 이 시기 달러 체제는 다시 한번 기어를 바꾸고 있었다. 달러 체제 4기는 달러 체제 5기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핵심 외환보유 자산인 미국 국채의 해외 보유 규모를 살펴보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변하는 투자 선호. 해외의 미국 국채 보유 규모(조 달러)

브레턴우즈 2.0 시대에는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를 메운 것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공식 외환보유액 축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금융시장이 다른 어떤 경쟁 시장도 압도할 정도로 우위를 차지하면서, 해외 자금은 미국의 민간 자산으로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여전히 전례 없는 규모로 이어지고 있다. 해외 투자자들도 계속해서 미국 국채를 매입하고 있지만, 재정적자가 워낙 커진 탓에 이들의 매입은 새로 발행되는 국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전보다 작아졌다. 대신 해외 자금은 미국 주식과 기업 자산 등 민간 금융자산으로도 대규모로 흘러 들어갔다. 이러한 자금 유입은 미국의 수요와 기업 이익을 끌어올렸고, 높아진 기업 수익성은 다시 해외 투자자들에게 미국 자산의 매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브레턴우즈 2.0과 마찬가지로 자금의 순환 구조는 다시 하나의 고리를 이루지만, 그 작동 방식은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해외의 미국 채권·주식 매입. 베르토-저드슨(Bertaut-Judson) 자료와 미국 TIC 자료 기준(최근 12개월 누적)

내가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문에서 주장했듯이,

불평등이 심화한 미국의 K자형 경제는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의 '꿀단지'. 그러나 브레턴우즈 2.0의 전성기와는 달리, 이제는 중국이 이를 이끌지 않는다. 2015년 이후 베이징은 강력한 자본 통제를 시행해 50~60조 달러에 이르는 중국의 예금을 금융 방화벽 뒤에 묶어 두었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축적하는 것과, 시진핑 체제의 중국에서 민간 자본이 대규모로,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오늘날 미국의 재정적자는 유럽, 한국, 대만, 일본에서 유입되는 자금이 메우고 있다. 그렇다면 달러 체제의 이 새로운 국면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잡종 브레턴우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헤지펀드 달러'라고 해야 할까? 미국 국채 시장에서 헤지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후자의 이름도 솔깃하다. 하지만 상대가치 거래는 지나치게 전문적인 용어여서 이 시대의 성격을 제대로 담아내지는 못한다. 베이징에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을 연구하는 한 중국인 동료와 이 문제를 논의했을 때, 그는 통화 체제의 성격은 결국 그것을 떠받치는 계급 관계가 규정한다고 말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시대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이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사익 추구를 기려 '억만장자 달러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론 머스크와 스페이스X의 기업공개가 부의 규모 자체를 새롭게 정의했다는 점에서 '조만장자 달러가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적어도 오늘날의 달러 체제에서는 미국의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지나치게 걱정하는 사람이 오히려 시대를 읽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우리는 더 이상 1990년대에 살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는 오랜 세월 금고, 건전성, 안정성을 떠올리게 했던 '기축통화라는 표현 자체도 내려놓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오늘날 미국의 통화는 무엇보다도 풍부한 유동성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이며, 거대한 규모의 제약 없는 자본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다.

달러 체제 5. 나는 이것을 '이윤의 달러(profit dollar)'라고 부르고 싶다.

[출처] Chartbook 457: The metamorphoses of the dollar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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