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쪽방에서 석탄발전소까지, 5만 명의 바람 "공공재생에너지"

[필자 주] 공공재생에너지 입법 청원 캠페인이 마감을 이틀 앞두고 목표했던 5만 명의 참여를 끌어냈다. 25일 오전 9시 50분경 5만 명을 넘긴 청원인 수는 오후 4시 무렵 5만 7백여 명에 이르고 있다. 재난이 일상이 된 기후위기의 시대, 모두의 존엄을 지키는 정의로운 전환을 고민하며 각자가 마주한 일과 삶의 현장에서 마음을 모아온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입법 청원 마감을 앞두고 <참세상>은 세 개의 연속 기사를 통해, 공공재생에너지(법)에 담긴 노동자·시민들의 절실한 고민과 바람을 톺아본다. 지난 첫 번째 기사에서는 고 김용균과 김충현을 떠나보낸 자리에서 '죽음의 발전소'를 멈추기 위한 대안으로 공공재생에너지를 요구하고 나선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민들을 살펴봤다. 이번 두 번째 기사에서는 (재생)에너지 민영화 문제를 쪽방촌 주민들이 마주한 에너지 빈곤의 현실과 교차해 살펴본다. 이어질 마지막 기사에서는 공공재생에너지에 대한 다양한 사회운동 주체들의 고민과 함께, 청원 캠페인 이후 남아있는 과제들을 짚어볼 계획이다.

 

동자동 쪽방에서, 태안 석탄화력발전소까지

지난 5월 31일, 대선을 사흘 앞둔 주말, 폐쇄 예정 석탄화력발전소가 밀집한 충남 태안과 경남 창원에서는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정의로운 전환을 촉구하는 노동자·시민들의 행진이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기후정의버스'를 타고 모였던 2천 5백여 명의 참가자들 사이에는 서울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도 함께였다.

차재설 동자동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공동대표는 이날 태안에서 행진을 마치고 이렇게 말했었다. "정부에게 버려진 쪽방촌 주민들과 발전 노동자들의 삶이 꼭 닮아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함께 힘을 합해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집, 가난해도 돈 걱정 없이 필요한 전기를 쓰며 여름과 겨울을 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면 좋겠어요."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서 태안의 석탄화력발전소까지, 발전 노동자들과 쪽방 주민들의 일과 삶은 어떻게 관계맺고 있을까. ‘모두의 전환’을 내건 공공재생에너지법으로 연결된 이들의 고민과 바람은 무엇일까.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5.31 노동자·시민 대행진에 참여한 쪽방촌 주민들과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들. 참세상 

"에너지는 '상품' 아닌 '권리'여야"

"저희가 공공재생에너지를 요구하는 이유는 우리 발전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안전만을 생각해서는 아니에요. 모든 시민들이 안전하고 깨끗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에너지 공공성을 지키려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을 하는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김영훈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의 이야기이다. 그는 “지금처럼 민간 기업들 중심으로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 막대한 '민영화 비용'이 시민들에게 전기요금으로 전가될 것”이라 우려했다. “전기가 비싸지면 결국 그 피해는 이미 가난하고 불안한 이들에게 더 크게 다가갈 거예요. 격차가 더 벌어지고 불평등이 심화될 겁니다.”

쪽방촌 주민들과 반빈곤·주거권 운동을 함께해온 빈곤사회연대의 재임 활동가는, 최근 공공재생에너지법 청원 캠페인에 참여를 호소하는 글에서 한 홈리스 시민의 쪽방 입주를 도왔던 경험을 환기했다.

“특약이 빼곡한 (쪽방) 임대차계약서에는 전기밥솥과 전기장판, 선풍기, 커피포트 등을 쓰면 월세에 더해 1~2만 원의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끼니를 때울까. 난방을 땔까’ 고민이 커집니다. 먹고 자는 데 꼭 필요한 전기조차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사치로 취급됩니다.”

재임은 "‘전기요금이 무섭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라며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재생에너지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금처럼 민간 기업과 자본이 장악한 구조에서는 에너지조차 불평등하게 배분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를 만든 건 에어컨 빵빵 틀고 자동차 타고 다닌 사람들인데, 기후위기의 피해는 왜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못 놓는 쪽방 주민들이 봐야 하나"라는 한 쪽방 주민의 말이 "기후위기의 불평등을 정확하게 지적한다"고 소개했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와 반빈곤 활동가, 쪽방 주민들은 에너지는 '상품'이 아니라 '권리'여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의 삶에 꼭 필요한 전기가, 민영화된 에너지 체계 아래에서 점점 더 소수 기업의 이윤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깊이 우려한다. 그런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마저도, 초국적 민간 기업들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이익 역시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격차를 더욱 키울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다.

"이익은 기업들이, 비용은 시민들이"

공공재생에너지연대가 이달 16일과 18일 발표한 이슈브리프에 따르면, 현재 발전산업의 민영화는 이미 절반 가까이 진행됐고, 재생에너지 분야는 그보다 훨씬 상황이 심각하다. 2023년 기준 전체 발전 설비 중 45.9%는 민간 소유이며,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경우 민간 부문의 비중이 76.5%에 이른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원 중 가장 많은 발전 용량을 담당하고 있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각각 98.5%, 91.2%가 민간기업 소유다.

발전산업 민영화 현황. 공공재생에너지연대 

더 우려스러운 것은 앞으로의 전망이다. 현 추세가 유지된다면 2023년 기준 전체 발전설비의 54.1%를 담당했던 공공 부문 비중이 2038년에는 40.3%로 감소하고, 민간 부문은 59.7%로 증가해 발전산업의 민영화가 심화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공공재생에너지연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전력 수요 및 공급 전망・계획에 따라, 2038년까지 현재의 태양광과 풍력 발전용량의 민간 비중이 유지됐을 때의 수치를 산출한 것이다. 발전공기업들은 폐쇄가 예정된 석탄화력발전소를 중심으로 발전설비를 구성하고 있는 반면, 확대될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주로 민간사업자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기에, 이 같은 추세라면 이후 재생에너지가 더 확대될 발전산업에서 공공 부문의 역할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공공재생에너지연대의 설명이다.

재생에너지 민영화 추세 유지 시나리오. 공공재생에너지연대

반면 공공재생에너지법을 제정해 공공 중심의 재생에너지 확대에 나선다면, 이 같은 발전산업 민영화를 막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함께 제기됐다. 공공재생에너지법에서 명시한 것과 같이 2030년부터 태앙광과 풍력 발전 용량에서 공공과 민간의 비중을 각각 50:50이 되도록 하고, 이를 유지한다면, 2038년에는 전체 발전 산업에서 공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60.6%로 증가하고, 민간 부문은 39.5%까지 줄어들게 된다.

공공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민영화 저지 시나리오. 공공재생에너지연대

그렇다면 발전산업 민영화의 문제는 무엇일까. 우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꼽힌다. 공공재생에너지연대가 주요 재생에너지 발전원 중 하나인 해상풍력을 기준으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민간 기업보다 공공부문이 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할 때의 경제적 이익이 훨씬 컸다.

1GW(기가와트)의 해상풍력을 공공 부문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방식으로 개발할 경우, 자본 조달 비용에서 민간 부문보다 연간 960억 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공공 부문이 낮은 금리의 공적 금융을 이용할 경우에는 그 차이가 연간 1,980억 원으로 벌어진다.

해상풍력을 20년간 운영한다고 가정하면, PF 방식의 공공부문과 민간 부문의 비용 차이는 1조 9,200억 원에 이르고, 공공 부문이 공적 금융을 이용할 때는 민간 부문과의 소요 비용 차이가 3조 9,600억 원까지 확대된다.

공공 해상풍력과 민자 해상풍력의 비용 비교. 공공재생에너지연대

공공재생에너지연대는 이러한 분석이 해상풍력 사업을 민간사업자에게 맡기는 경우,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민영화 비용’을 드러낸다면서,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민간기업들은 이 막대한 비용을 결국 전기요금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전가할 것이라 지적했다.

이러한 우려는 단순한 가정만은 아니다. 이달 8일 반빈곤운동단체들이 함께하고 있는 ‘아랫마을’에서 만난 빈곤사회연대 재임 활동가는 에너지 산업 민영화 이후 에너지 요금이 급등한 유럽의 사례를 통해 그 심각성을 지적한다. "유럽의 사례들을 보면, 에너지 민영화가 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너무나 분명해요. (여러 에너지 접근권 관련 통계들을 살펴보면) 유럽에서는 2000년 이후 저소득 가구의 소득 중 에너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두 배가 되었다고 해요. 유럽인 10명 중 1명은 적절한 난방을 하지 못하고, 매년 최대 10만 명의 유럽인이 추운 집에서 사망한다는 거예요. 영국에서는 추울 때 난방을 포기하는 가구가 35%고, 스페인에서는 자동차 사고보다도 에너지 빈곤으로 인한 조기사망이 더 많다는 분석도 있어요."

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참세상

한국에서도 이미 에너지 비용 상승의 부담은 가난한 이들의 삶을 더 고되게 하고 있다. 재임 활동가가 소개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2023년 초 난방비가 급등했을 때 저소득 노동자들은 소득의 약 9-10%를 난방비로 지출했다. "임금이 적을수록, 에너지 비용 부담은 더 컸고요. 응답자의 대부분은 생필품 가격도 올라서 다른 필수 소비도 줄이고 있다고 답했어요. 가장 먼저는 식비를 줄였고, 난방비 등 공공요금까지 줄이면서 겨울을 견뎌야 했던 거죠."

"일반적으로 에너지빈곤 가구는 '가구 소득의 10% 이상을 난방, 취사, 조명 등과 같은 광열비로 지출하는 가구'라고 정의해요. 이 지표는 소득대비 에너지비용 비율을 기준으로 하는 만큼 고소득·에너지 과지출 가구 또한 에너지빈곤가구로 포함돼요. 그래서 경제적 이유로 에너지소비를 비정상적으로 줄이는 가구는 비가시화된다는 한계가 존재하죠."

재임 활동가는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의 2022년 수급자 가계부 조사 결과도 환기했다. "조사 참여 가구의 월평균 수도·광열비는 26,037원이었는데, 2022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나타나는 평균 연료비는 154,000원이에요. 수급자에게 요금 감면·할인 또는 에너지바우처가 적용되는 점을 감안해도 적은 금액이죠. 조사에 참여한 수급가구 대부분이 광열비 지출을 포기하고 있었어요. 겨울에도 난방을 떼지 않고 온수 목적으로만 보일러를 튼다거나, 외투를 입고 자는 등의 생활을 했다고 해요. 이런 조사나 통계에 다 담지 못하는 숫자 너머의 현실은 더 가혹해요."

주거·에너지 빈곤이 맞물린 자리, 매일의 재난

서울역 인근 빌딩 숲 사이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쪽방촌이 자리해 있다. 1960년대부터 도시 빈민들이 모여 형성된 동자동 쪽방촌에는 현재 850여 명의 주민들이 평균 1.5평 남짓한 방에 30만 원이 넘는 월세를 부담하며 살아간다. 폭염과 혹한, 폭우와 가뭄, 감염병이 예고 없이 일상을 삼키는 기후위기의 시대, 쪽방촌 주민들은 매일 재난을 마주한다.

정대철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 참세상

타오르는 여름, 쪽방의 내부 온도는 쉽게 40도에 이른다. 지난 15일 동자동에서 만난 정대철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는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방에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겨우 잠이 들었다가도 자꾸 깰 수밖에 없고요”라고 말했다. 정대철 이사는 오랜 시간 어머니와 함께 쪽방에서 살아왔다. “너무 더운 날에는 밤에 골목에 나가서 잠을 청하는 때도 많았어요. 지난주에도 이웃들 몇 분은 너무 더워서 한밤중에 길에 나와 주무시기도 했어요.”

앞선 11일, 동자동과 도로 하나를 맞대어 자리한 양동 쪽방촌에서 만난 50대 주민 배모 씨도 “낮에는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주방이 따로 없어 조리를 하려면 방안에서 가스버너를 켜야 하는데, 한여름에는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아 식사를 포기하는 일도 잦았다. 방안의 유일한 냉방 시설인 선풍기를 켜봐도 숨 막히는 뜨거운 공기만 더 번질 뿐이다. “밤에도 몇 번씩 (방 밖, 복도에 있는 공용 샤워실에) 왔다 갔다 하면서 찬물을 끼얹으면서 버티는 거죠”.

양동의 한 쪽방. 같은 건물의 다른 쪽방에 비해서는 '넓은 편'에 속하는 방이다. 참세상

“창문도 없는 쪽방들이 많아요. 창문이 있는 방은 5만 원 더 비싼데 바람이 잘 통하는 창문이 아니라, 맞은편 쪽방이나 건물 벽에 가로막힌 것들이 여럿이죠. 공기 순환도, 단열도 되기 어려운 노후한 건물들이다 보니까 에너지 효율이 무척 떨어지는데 방 안에서는 뜨거운 바람을 내뿜는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을 나는 거죠.” 재임이 전한 이야기다. 

“몇몇 건물 복도에는 에어컨들이 설치되어 있기는 해요. 양동 쪽방촌에는 대부분 설치되어 있고, 동자동은 드문 편이고요. 오세훈 서울시장이 “약자와의 동행”을 내걸고 민간기업들의 지원을 받아 쪽방촌에 에어컨 달기 사업을 벌였는데, 쪽방을 나눈 벽들 대부분이 얇은 합판이어서 에어컨을 달면 무너질 위험이 있기도 하고, 방마다 설치할 만큼의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등의 이유로 방안이 아닌 건물 복도에 에어컨을 달았어요. 방안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려면 결국 방문을 열어 놓아야 하는데, 주민이 아닌 사람들도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쪽방 건물 구조상 안전 문제에 대한 위협도 크죠. 특히 여성 주민들의 경우에는 걱정이 더할 거고요. “안전함과 시원함” 중에 선택해야 하는 거예요.” 

실제 양동 쪽방촌에서 만난 한 80대 여성 주민은 “너무 더워서 어쩔 수 없이 내내 문을 열어 놓지만, 오가는 사람들에게 방안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것이 걱정”이라고 이야기했다. 게다가 문을 열어 두어도, 복도 제일 끝에 위치한 그의 방으로는 에어컨 바람이 잘 닿지도 못했다.

복도 에어컨 바람이 방안에 닿지 않아, 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어둔 한 쪽방. 참세상

서울시는 이 밖에도 폭염 대책으로 골목이나 건물 입구에 쿨링포그(안개형 냉각장치)를 설치하고, 무더위 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재임 활동가는 이 같은 대책들은 "결국 주민들이 집을 나와야만 시원해질 수 있는 조치들"이라면서 "주민들이 방안에서도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주거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차재설 동자동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공동대표는 "동자동 주민이 800명이 넘는데, 쪽방상담소 지하에 마련된 대피소에는 8~10명 정도만 잠을 청할 수 있는 텐트들이 겨우 마련되어 있다"면서 "실제 다녀온 주민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시끄럽고 불편한 환경으로 제대로 잠을 청하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양동 쪽방촌에서 만난 60대 주민 박모 씨는 "너무 더운 날에는 밤 더위 대피소 등을 이용하거나 PC방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면서 "내 방을 놔두고 밖에서 쪽잠을 자야 하는 게 서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쪽방 안에서 생활하기 위한 최소한의 냉난방 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전기요금에 대한 부담으로 만만치 않다. 쪽방들은 일반적으로 월세에 전기요금이 포함돼 있지만,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전자제품을 방안에서 사용한다는 이유로, 주민들에게 달마다 추가 전기요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흔하다.

실제 한 쪽방 임대차 계약서의 특약사항에는 주민들이 공용시설 외 방안에서 밥솥, 전기장판 등 별도 전자제품들을 쓰면 월세에 더해 1~2만 원의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전자제품 사용시 요금 추가를 명시한 쪽방 임대차계약서. 재임 제공

차재설 대표에 따르면 "이 같은 '특약'은 동자동에서 흔한 경우로, 많게는 3만 원까지 매달 전기요금 명목으로 추가 요금을 받는 집주인들도 있다"고 한다. 서울시에서 7월부터 9월까지 달마다 10만 원씩 총 30만 원의 전기요금을 지원하는 에어컨의 경우도, "사용량을 초과했다면 집주인들이 주민들에게 전기요금을 추가 징수하는 경우도 잦다"고도 덧붙였다.

이렇게 추가된 요금은 주민들에게 큰 부담이다. 차 대표는 "주민들은 매달 76만 원 수준의 생계급여로 생활하는데, 병원비와 식비, 최소한의 교통비와 통신비를 감당하기에도 빠듯한 상황"이라 말했다.

게다가 집주인들은 전기요금 상승을 명분 삼아 월세를 인상하기도 한다. 차재설 대표는 "우리 건물 월세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21만 원이었는데, 관리인이 바뀌면서 25만 원, 30만 원, 지금은 35만 원에서 40만 원 수준까지 올랐다""집주인들은 전기요금이 올랐다는 핑계를 대면서, 주거급여가 오르는 것 이상으로 매년 월세를 올려대는데, 사회적으로 큰 낭비"라고 생각한다면서, "쪽방 주민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걸 집주인들도 잘 알고 있으니, 싫으면 나가라는 식"이라고 이야기했다.

"가난한 이들의 권리, 공공재생에너지"

이처럼 ‘에너지 빈곤’과 ‘주거 빈곤’이 맞물린 현실 속에서, 쪽방 주민들은 공공이 책임지는 재생에너지 전환을 지지하고 나섰다.

차재설 동자동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공동대표. 참세상

차재설 대표는 "쪽방촌에서 생활하면서 해마다 지구가 더워지는 것을 무섭게 실감한다"면서 "하루라도 빨리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민간)기업이 하게 되면 결국 자신들 이득만 챙길 뿐 노동자나 주민들의 삶은 책임지지 않는다"면서 "(재생에너지마저도) 민영화되면, 쪽방촌 주민들을 비롯한 가난한 사람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공공이 해도 잘못은 할 수 있지만, (민간)기업들보다는 우리가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문제가 생겨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다"고도 짚었다.

쪽방 건물을 소개하는 박종만 양동쪽방촌주민회 위원장의 뒷모습. 참세상

박종만 양동쪽방촌주민회 위원장도 역시 에너지 민영화에 대한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쪽방촌 주민들을 비롯한 도시빈민들의 삶을 위해서는 공공재생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박 위원장은 "철도, 의료와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전기가 민영화되면 당장 요금이 오르고, 안전 문제도 더 소홀해질 것"이라면서 "민영화에 절대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양동 쪽방촌 주민들은 완공을 앞둔 공공 임대 주택에 다음 달이면 입주를 하게 되는데, 입주 후에 각자 부담해야 할 전기요금에 대한 걱정도 크다"면서 "민영화로 에너지 요금이 오르게 되면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더 힘겨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에너지나 주택 같은 것들은 다 당연히 공공이 나서서 해야 한다"면서 그래야 "가난한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재임 활동가는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공공성이 중요하다"면서 "집과 에너지와 같이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이 개인의 능력과 경쟁에만 떠맡겨질 때, 빈곤과 불평등은 모두에게 가까운 일이 되고 기후재난의 피해는 더 많은 사람들의 일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짚었다.

재임은 또한 "공공성이란 이윤보다 삶의 지속을 우선하는 사회적 결정"이라며, 쪽방촌 주민들이 오랜 시간 요구해 온 공공임대주택 확대와 공공재생에너지 입법 등 주거권 운동과 기후정의 운동의 의제를 연결해 "주거빈곤과 에너지 빈곤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자 결과인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를 바꾸어 내고, 사회공공성을 강화해 나가는 노력들을 함께 꾸려나가고 싶다"고 마음을 전했다. 

공공재생에너지법 입법 청원 페이지 화면 갈무리. 공공재생에너지연대

25일 오전,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끌어낸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에는 이 같은 고민과 바람들이 연결돼 있다.

법안은 "우리 모두의 것인" 태양과 바람을 초국적 대기업들의 이윤을 위해 사유화하는 것을 막고, 중앙정부와 공공기관, 지자체, 노동자·시민의 민주적 협력과 공적 투자를 통해 신속하고 정의롭게 재생에너지를 개발·소유·운영하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5만 명의 청원 동의 기준을 달성한 법안은 이후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비롯한 관련 위원회에 회부되어 심사 절차를 밟게 됐지만,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와 심사, 본회의 통과 등 실제 법 제정과 이행에 이르기까지 아직 산적한 과제들이 여럿이다.

재임 활동가는 입법 청원을 알리는 호소문에서 "에너지는 생존의 권리"로, "시장이 아닌 공공이 책임져야 하고, 가난한 이도 요금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필요하다"면서 "가난한 이들의 권리,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을 청원한다"고 밝혔다.

가난한 이들도 삶에 꼭 필요한 전기를 쓸 수 있는 세상, 에너지가 '상품'이 아니라 '권리'로서 차별 없이 고르게 가닿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연대는 다시 시작이다. 입법 청원은 27일까지 계속된다. 청원 마감일까지, 청원 마감 이후에도 더 너르고 단단한 사회적 힘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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