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말리, 니제르, 부르키나파소, 수단, 기니에서 군사 쿠데타가 잇따라 발생했다. 한동안 아프리카 정치에서 자취를 감췄던 군사 통치가 다시 부활했다.
쿠데타 지도자들은 시위를 억압하고 언론을 탄압했으며, 공공의 안전을 이유로 민간인들은 피를 흘렸다. 이들은 내부와 외부의 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일부 적은 정권 장악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고, 다른 일부는 실제로 존재하는 적이다. 그러나 군사 정권은 폭력적 극단주의를 악화시켰다고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장군들은 적과 싸우는 것만큼이나 서로 싸우기도 한다. 부르키나파소에서는 쿠데타 세력 간 경쟁이, 수단에서는 완전한 내전으로 이어졌다.
서아프리카에서는 군사 지도자들이 지리정치적 질서를 뒤흔들면서 프랑스와 미국을 멀리하고 러시아(정확히 말하면 러시아가 자금을 지원하는 용병들)를 더 가까이 끌어들이고 있다.
외부 관찰자들과 내부 인사들 중 많은 이들이 이런 상황에 놀랐다. 이는 군사 통치가 과거의 유물, 특히 냉전 시대의 잔재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군사 통치가 다시 나타난 이유를 두고는 외부 세력, 특히 러시아의 개입을 강조하는 의견이 많다. 또 다른 시각에서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 초기부터 겪어온 빈곤과 부패 같은 문제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을 키웠다고 본다.
나는 군사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로, 1980년대 군사 독재를 연구하던 중 비슷한 상황이 현재 다시 일어나는 것을 우려하며 지켜보았다. 내 책 ⟪군인의 낙원: 제국 이후 아프리카의 군국주의⟫(Soldier’s Paradise: Militarism in Africa After Empire)에서 주장했듯이, 군사 통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의 쿠데타는 독립 이후 아프리카 정치에서 중요한 전통 중 하나였던 군국주의가 다시 나타난 것을 보여준다.
군국주의는 군인이 통치하는 체제로, 군사적 목표와 정치가 섞이고 군대의 가치가 국가 전체의 가치로 자리 잡는 정부 형태를 말한다.
서아프리카의 최근 연속적으로 발행한 쿠데타를 이해하려면 탈식민 역사에 대한 장기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과거의 군사 정권들은 잔혹하면서도 혁신적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규칙, 새로운 제도, 새로운 사회적 기준을 만들어냈고, 아프리카를 질서 있고 번영된 낙원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실패했지만, 당시에는 대중에게 인기가 있었다.
아프리카의 군사 정권
군사 정권은 합의가 아닌 무력을 통해 통치했지만, 그 엄격한 규율은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때로는 실제로 대중을 단속하는 방식으로, 세상이 지나치게 혼란스러워졌다고 느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독립이 항상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았고, 군인들의 엄격한 사고방식은 탈식민화 과정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우리가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한 부분이다.
군국주의는 오랫동안 더 희망적인 이념들에 가려져 있었지만, 이제 다시 아프리카 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내 책에서는 군국주의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왜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소심하고 편집증적인 정권들
1956년부터 2001년까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약 80번의 성공적인 쿠데타, 108번의 실패한 시도, 그리고 139번의 음모가 있었다. 일부 국가는 쿠데타가 자주 일어났고(예: 수단은 1950년 이후 18번 시도가 있었다), 다른 국가는 전혀 없었다(예: 보츠와나). 하지만 군대가 실제로 권력을 잡지 않은 나라에서도 쿠데타 위협은 민간 통치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성공한 쿠데타는 오랫동안 지속된 군사 정권을 만들어냈다. 군사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정권이 "임시적"이거나 "관리형"이라고 주장하며, 곧 민간인에게 권력을 넘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한 경우는 드물었고, 일부 국가에서는 군사 통치가 수십 년간 이어졌다. 이는 한 세대 동안 단일 군사 지도자가 안정적으로 통치한 경우(예: 부르키나파소)부터, 하나의 군사 정권이 다른 정권으로 끊임없이 교체되는 혼란(예: 나이지리아)까지 다양했다. 군사 정부는 소심하고 편집증적이었으며, 각 장교는 자신의 뒤에서 기회를 엿보는 경쟁자들이 줄지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혁명"이라 부른 가운데, 새로운 이념이 등장했다. 군국주의는 비교적 일관된 사회적 비전을 제시했으며, 모든 군사 정권이 동일하지는 않았지만 공통적인 정치적, 도덕적,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군국주의의 정치적 가치는 복종과 규율이었다. 도덕적 가치로는 명예, 용기, 계급 존중이 있었고, 경제적 논리는 질서를 바탕으로 번영을 약속했다. 군국주의는 독특한 미학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프리카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고 어떤 느낌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군대 내부의 원칙들은 전체 정치의 규칙으로 자리 잡았다. 장교들은 민간인을 군인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훈련이 국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역설적으로, 일부는 오직 엄격한 규율만이 진정한 자유를 가져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권력을 잡은 군 장교들은 사회를 군사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려고 했다. 이들은 이상주의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이념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당시의 주요 사상으로 단순히 축약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군사 정권 중에는 좌파, 우파, 중도파도 있었고, 급진적이거나 보수적인 경우도 있었다. 또한 토착주의적이거나 국제주의적인 성격도 가졌다.
군국주의는 미국식 자유주의, 소련식 사회주의, 혹은 유럽 신식민주의를 군복으로 치장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강력한 외부 세력들이 아프리카 정치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모든 것을 좌우한 것은 아니었다. 군 장교들은 자신들이 아무의 명령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군사 독재
군국주의의 매력 중 하나는 독자적인 독립성이었다. 군사 정권들은 니제르와 부르키나파소가 2023년에 프랑스와 관계를 단절한 것처럼, 인기 없는 외국 세력들과 결별하며 대중의 호감을 얻었다.
군인들은 국가를 전쟁을 치르듯이 운영했다. 전투는 정치의 비유였다. 그들의 목표는 '승리'였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적이 자국민일 때 '승리'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이들은 무질서, 마약, 범죄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민간인들에게 이는 폭정과 구별하기 어려웠고, 군사 통치는 길고 잔혹한 점령으로 느껴졌다.
어떤 군사 독재도 군인들이 약속한 '군사적 유토피아'를 실현하지 못했다. 정부 내 다른 부문들은 군사 정권의 계획에 저항했으며, 아프리카 사법부는 특히 강력한 반대 세력이었다. 시민 사회 단체들은 군사 정권과 치열하게 싸웠고, 해외, 특히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로부터 도전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실패한 혁명과 마찬가지로, 군국주의자들은 대중이 그들의 비전에 헌신하지 않았다며 비난했고, 외부 세력이 그들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에도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대 군사 정권들은 과거의 군사 정권들처럼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아 보이지만, 권력을 오래 잡을수록 계획을 세우기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병영으로 돌아가겠다는 모든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당분간 물러날 기미가 없다.
아프리카의 군사 정권들이 앞으로 무엇을 할지 예측하려면 과거를 살펴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20세기 후반 군사 정권들은 아프리카를 '군인의 낙원'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오늘날에도 그들의 전략 일부로 남아 있다.
[출처] Military rule is on the rise in Africa – nothing good came from it in the past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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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아데툰지(Jo Adetunji)는 영국의 저널리스트로, 현재 '더 컨버세이션 UK(The Conversation UK)'의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