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책언니 수업을 하는 시간 오후 네 시 반. 딱 배가 출출해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언제나 엄마들이 돌아가시면서 간식을 챙겨주신다. 간식의 종류는 빵이나 과일, 옥수수, 군만두, 피자까지 다양하다. 간식타임이 끝나고 나면 막 던져놓은 빵 봉지와 과자 부스러기 따위로 주변이 난장판이 된다.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잔뜩 어질러진 방 안을 정리하는 건 책언니들의 몫이다. 책상과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음료수가 여기저기 흘러 끈적해진 테이블을 닦고, 애들이 들고 온 메이플스토리, 검정고무신 등등의 만화책을 한 무더기 집어 들어 제자리에 갖다 둬야 한바탕 청소가 끝난다. “아, 좀 같이 치우자!” 말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딴 건 됐으니 자기가 읽은 책만이라도 좀 갖다놓자!” 협상을 시도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때 마다 꼭 하는 소리. “내가 본 거 아닌데?” 다들 자기는 한 게 아니므로 나는 상관없다고 한다. 오늘 돌려가면서 읽는 거 다 봤는데 뻥쟁이들. “그렇게 치면 나도 내가 읽은 거 아니거든!” 대꾸할 때쯤엔 이미 모두들 잽싸게 빠져나가고 난 뒤다. 어쩌겠나. 알아서 치워야지. 일일이 붙잡고 청소 같이 하자고 실랑이를 벌이는 게 더 번거롭다. 혼자 치워버리는 게 훨씬 빠르다. 내 딴엔 이까짓 거 금방 하면 되지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애들 맘에는 그렇지 않나보다. 다들 청소 좀 하자고 하면 어찌나 질색을 하고 도망가는지….
맨날 책언니들만 청소하는 게 억울해서는 아니고, 지금 이대로가 마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서 수업한 공간을 같이 치울 수 있도록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봐야할 것 같긴 하다. 같이 쓰는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을 하는 건 누구나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수업 시간을 통째로 할애해서 얘기해도 될 만큼 중요한 주제라고도 본다. 단, 애들은 청소하는 걸 이미 무진장 싫어한다. 싫은 청소를 억지로 하게끔 강제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청소 좀 해!” 빽 하고 한 마디 쉽고 빠르게 내지르기 이전에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바로 어린 사람들에게 청소가 왜 이 정도로 싫은 일이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청결한 공간을 원하는 건 누구?
우리 막내는 유치원 때까지만 해도 언니들이 방바닥을 빗자루로 쓸고 있으면 눈을 반짝이면서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그래, 네가 해라’하고 빗자루를 쥐어주면 기껏 모아둔 쓰레기와 먼지더미를 조그만 손으로 쓸고, 또 쓸고, 쓰레기는 엉뚱한 곳으로 퍼지고 또 퍼지고 청소는 망하고 또 망하고…. 그랬었다. 막내는 청소를 신기한 놀이쯤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별 도움이 안 됐을 뿐이고, 그래서 다음번엔 청소 빨리 끝내야 되니까 저리 가라고 쫓아냈지만, 덕분에 알게 된 건 모든 아이들이 처음부터 청소를 싫어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막내가 좋아했던 건, 방을 깨끗하게 만든다는 의미의 청소가 아니었다. 막내는 뭘 깨끗하게 만드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원래 애기들은 암만 비싸고 좋은 옷 입혀줘도 뭣이 중헌지 모른다. 더러운 진흙탕에 가서도 좋다고 까르르 웃으며 데굴데굴 구르고 논다. 애초에 청결을 따지는 건 어른들의 기준이지, 아이들의 필요는 아니었다. 낙서 없는 단정한 벽지에 깨끗하게 정돈된 책상을 원하는 건 누구였을까? 막내는 텔레비전 선반 남은 자리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장난감들을 보고서도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막 널브러진 스케치북이며 나무 블럭들을 보고 다이소 가서 플라스틱 상자라도 하나 사와서 모조리 담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건 내 쪽이었다. 애들 입장에서는 장난감 꺼내서 논 지 얼마나 됐다고 자꾸 정신없다, 치워라 성화인 어른들이 오히려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또 갖고 놀 건데. 이렇게 당장 좁혀지지 않는 감각의 차이가 있건만, 이 사실은 언제나 쉽사리 무시당한다. 애들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재밌게 해서 잘 납득시켜주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불친절하게 ‘당연히 치워야지’를 전제로 한다. 흔히들 어린 시절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른들이 시키기 때문에 하는 것으로 자잘한 심부름이나 방 청소 등을 수동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런 경험들이 가사노동을 내 필요와는 상관없이 안 하면 혼나니까 해야 하는 것으로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첫 단추 아니었을까.
네 방이잖아! 그러나 내 집은 아닐 뿐이고
나만 해도 10대 때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잔소리가 울 엄마의 ‘방 청소 좀 해라’였다. 나도 지저분한 방은 싫었다. 다만 타이밍이 항상 뭐 같았다. 오늘 청소하려고 했는데! 꼭 그리 맘 먹은 날에 딱 맞춰서 엄마는 와다다다 잔소리 폭격을 쏟아냈다. (억울해!) 게다가 엄마의 신경질적인 말투와 ‘여자애 방이 이게 뭐냐, 돼지우리가 따로 없네’ 같이 속을 긁는 표현들 때문에 더 기분이 상했다. 또 내 방은 내 영역이라고 여겼기에 간섭 받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얼마나 지저분하든 내가 알아서 하고 싶었다.
흔히들 애들에게 어떤 공간에 대한 청소를 시키면서 ‘책임감’을 논할 때가 많다. 선생님은 교실 청소를 시키면서 여기는 너희가 생활하는 곳이니 너희가 직접 치워야한다고 말한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너도 이 집 식구잖아. 집안일 같이 해야지. 사실만 놓고 보면 너무나 맞는 말이다. 다만 어려운 것은 학교나 집이 어디 애들 스스로 잘 쓸고 닦고 윤내고 싶을 정도로 애정 하는 ‘나의 공간’일 수가 있나? 학교를 가고 싶어서 가는 애들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교실이라는 공간의 주인은 과연 학생일까? 우리 집은 내 관할인가? 솔직히 엄마아빠가 집주인 아닌가? 자식이 대든다고 열 받으면 ‘그 따위로 굴 거면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하지 않나? 권력은 내가 속한 공간 안에서 약자들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만들고, 그곳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혐오를 키우게끔 한다. 왜? 이 공간은 존재만으로도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니까. 과연 아이들이 거부하는 게 단지 청소라는 이름의 노동이기만 할까. 실은 그 공간 자체에 대한 거부라면? 억지로 강제된 삶의 조건들을 수고롭게 보살피고 싶지 않다는 시위라면?
사람들은 청소하기 싫어하는 애들을 보며 말한다. 저 봐라. 요즘 애들은 자기 편한 것밖에 모른다, 이기적이다, 제 방도 치울 줄 모른다, 무책임하다. 잔소리는 참 쉽다. 애들 탓만 하면 되니까. 그 어떤 자유도, 권한도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책임과 의무만 강조하는 태도가 사람 환장하게 만든다. 내가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숱한 공간들 속에서 어린 사람들은 대체 어떤 종류의 책임감을 가져야하는 걸까.
아빠도 청소 안 하잖아
청소와 관련해서 얼마 전 본 기사가 하나 있다. ‘청소도 못해 도우미 부르는 어른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는데, 대학생이나 취준생들이 자취하면서 가사 일을 스스로 안 하고 가사도우미를 불러 돈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이를 보고 전문가들은 부모의 과보호 아래 성장한 이른바 ‘헬리콥터 맘’ 세대의 의존성 때문이라느니, ‘내가 사는 공간은 내가 치운다’는 상식적인 논리가 익숙지 않아 나타난 현상이라느니, 몸만 큰 ‘어른아이’들이라는 식으로 진단이라는 이름의 훈계를 늘어놓고 있었다. 집안일 안 하는 10대들에 대한 한탄이 20대까지 확장된 모양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집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는 남자 어른들을 떠올려봤다. 그들도 내가 사는 공간은 내가 치운다는 상식적인 논리가 익숙하지 않은가 보다. 대한민국의 무수한 가부장 아빠들도 몸만 큰 ‘어른아이’들이었다. 어쩐지 의존적이고, 미성숙하고, 이기적이더라니. 쯧쯧. 방 청소도 설거지도 엄마는 하는데, 아빠는 안 한다. ‘청소’라는 노동이 과연 모두에게 평등하게 요구되는 일이던가. 하는 만큼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던가? ‘우리가 쓰는 공간을 함께 치우자’는 주장은 당장 집에서부터 가사노동을 둘러싼 불평등을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우리 아빠처럼 애초에 안 해도 되는 사람이 있는 일이었는데도. 여기까지가 청소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손쉽게 ‘이기적이고 버릇 나쁜 요즘 애들’이라는 진단을 내리기 전에 따져봐야 할 것들이다. ‘청소’를 주제로 잔소리가 아닌, 이해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하고 싶다면 알아야 할 것들이다.
길게 썼지만, 결론적으로 그렇다고 해서 청소를 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청소하기 싫어하는 이유를 이해한다고해서 그러니 안 해도 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안 하면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하니까. 우리가 도서관을 안 치우고 가면 애꿎은 사서 언니가 청소를 해야 한다. 그런 미안한 일을 할 순 없다. 아빠가 안 하니까 나도 안 해? 따라할 게 따로 있지, 덩달아 엄마 등골 휘게 해서야 쓰나. 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숱한 노동들을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하고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책언니를 하는 애들이랑도 이런 얘기를 나누고 싶다. 부디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아마 어렵겠지?
출처: 주간 인권신문 [인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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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건 님은 교육공동체 나다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