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교육
한국 공교육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 위기에 대한 진단도 다양하며, 그만큼 처방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사교육비, 교육 불평등, 학력 서열화, 살인적인 입시경쟁, 대학서열체제로 인한 학벌사회, 교육의 공공성 상실 등 우리 교육의 산적한 문제는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듯하다.
문제 해결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교육의 역사를 잠깐만 거슬러 가보면 한국 교육 문제의 핵심은 국가주의였다. 교육에 관한 국가의 책임이라는 공적인 의미가 아니라 국가를 가장한 부도덕한 정권의 이데올로기 전파 수단으로 교육이 이용당했던 국가주의 아래에서 학교는 민주주의라거나 민주 사회의 시민을 양성하는 기관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목숨도 바쳐야한다는 파시즘의 병영이었다.
이런 교육현실을 폭로하고 학교 교육에서 민주주의를 세우는 데에 전교조가 기여한 바는 작지 않다. 학교장에 의한 의사 결정의 독점과 그의 대리인으로서 교사의 역할을 그만두고, 학교를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만들어가는 희망의 교육 공동체로 세워 나가는 과정이 바로 전교조의 역사였다. 이 과정에 얻은 소중한 성과가 교육의 주체론이다.
그런데 세계화 또는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우리 주변에 횡행하는 그 때부터 교육의 주체라는 말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가 아니라 학교에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있으며, 수요자의 요구와 지불 능력에 따라 각기 다른 교육을 서비스해야 하는 의무를 공급자는 지니게 되었다.
국민의 기본권이 수요자의 선택권으로
수요자-공급자관이 교육을 지배하면서 취약한 한국교육의 공공성은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그나마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 평준화체제에 대하여 갖은 유언비어를 통하여 공격하더니, 이제는 기득권층을 위한 특별한 학교를 만들고자 몸부림치고 있다. 그 노력의 결과가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자들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외국교육기관이나 자립형사립학교 등이다. 수요자의 선택권 논리는 그도 모자라 국민의 5%만을 대상으로 하는 수월성교육, 학교내에서 우열을 가르는 수준별 교육 등으로 교육을 통한 차별을 일상화 제도화하고 있다.
한국의 교육을 지배하는 것은 학력에 의한 서열 이데올로기이다. 대학서열체제로 인한 학벌사회, 초중등 교육과정을 왜곡하는 대학입시, 객관적 공정성이라는 이유의 국가단위 시험, 그리고 최대한 학생들간의 서열을 구분하려는 학교내 평가는 교육목표의 도달이라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학력이라는 오직 한 가지 기준에 의해 서열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 학력이 학습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나 능력의 발현이 아니라는 데에 모순이 있다. 학력은 개인의 능력이나 공교육기관의 활동보다는 거주 지역, 경제력, 문화자본, 사회적 지위 등의 사회적 요인이나 가정적 배경 변인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차이가 입시제도, 교육과정, 학제와 같은 교육 제도적 요인에 의해 구조적으로 유지 강화되고 있다.
지금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교원평가도 그 내용을 따져 보면 교육의 주체로서의 관점이 아니라 수요자-공급자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평가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주체의 참여를 배제한 수요자의 입장에서만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에게는 의사소통의 과정이 본질적인 관건이다. 즉,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의 확보와 그 전제로서의 주체들의 법적 존재 확립이 최우선 과제이다. 이를 위해 교사회나 학부모회의 법제화와 학교 운영과정에서 이들 법적 주체의 의사를 반영하는 과정의 확립이 필요하다.
불안한 공조, 위험한 반대
때문에 교원평가를 둘러싸고 교육주체들 간에, 또는 교사단체들 간에도 대립과 갈등의 국면이 연출되는가 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체들 간에 어깨동무를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 몇 장면들을 보도록 하자.
장면 1. 2005년 5월 3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앞.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교원노동조합 등 교원 3단체가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주최로 이날 오후 2시부터 열리는 '교원평가제도 개선안' 공청회에 반대, 참여 거부를 선언하는 자리였다. 회견장에는 '교장선출보직제 도입하라', '수석교사제 도입하라' 등 전혀 다른 주장의 구호가 담긴 피켓이 장식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피켓을 든 교사들은 서로 어색해 하면서도 언론을 의식해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섰다. 이들은 공동 성명서를 읽어 내려가며 "졸속 교원평가를 즉각 중지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장면 2. 같은 날 1시간 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대강당.
교육부가 주최하는 교원평가 공청회는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다. 단상 아래에는 '교원평가 반대한다'는 피켓을 든 교사 몇 명이 도열해 있고, 단상 위에는 교원평가의 부당성을 알리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상당수의 청중은 의자에 앉아 있거나, 복도에 서서 고함을 지르고 있다. 참가자들 사이에 상황을 두고 실랑이가 있기도 했지만, 곧 물러서고 만다. 이 날 사건과 관련하여 5월 20일, 교육부는 공무집행 방해를 이유로 소속직원이라고 할 수 있는 교사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날 항의 행동에 참여했으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던 모 여교사는 자기도 참여했다며 고발을 스스로 자청하기도 했다.
장면 3. 기독교 신자들이 가입대상이 되고 있는 '좋은교사'는 5월 6일, 국민의 여망을 수용하기 위해 '학생평가 중심 다면평가'를 찬성하기로 결정하면서, 근무평정제도 폐지라는 전제도 포기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발표하여 혼란을 더했다. 이들은 교직사회를 향한 호소문을 통해 국민의 여망인 '학생, 학부모 평가가 포함된 다면평가제'를 조건 없이 수용함으로 전문성 신장을 도모하고, 나아가 교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씻고 서로 신뢰하는 길로 나서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5월 31일 돌연 '교육부는 기존 평가 매뉴얼을 폐기하고 학생 평가중심 매뉴얼을 다시 만들라'며 교육부 안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 성명에서 '학생에 의한 수업평가 중심 다면평가제에 근거한 매뉴얼을 다시 제작할 것', '동료들의 수업 참관이 아니라, 학생에 의한 수업 평가가 새 평가제도의 중심에 서도록 할 것'을 주장했다.
장면 4. 5월 20일 교원평가와 관련하여 참교육학부모회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내용은 교원평가제는 반드시 도입되어야 하고 교원평가에 학부모와 학생의 실질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육부가 시행하려는 교원 평가제는 학부모와 국민이 바라는 부적격교사 문제 해결 방안이 전혀 들어있지 않고, 공개수업을 보고 설문에 답하도록 되어 있는 등 학부모의 참여가 형식적인 점, 나아가 교원의 전문성 향상에도 미흡한 방안이라고 판단하여 이에 반대하고 있다.
반대의 속사정은 다 다르다
이 장면들은 모두가 다 이구동성으로 교육부의 교원평가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박수 소리는 같지 않다. 다시 말해 반대한다고 해서 같은 이유가 아니라는 말이다.
먼저, 공동 대응을 하고 있는 교총과 전교조의 입장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현재 실시하고 있는 교원 근무평정 제도를 유지하느냐, 폐지하느냐 하는 것이다. 전교조는 현재의 교장에 의한 근무평정제를 폐지하고, 이른바 '학교교육종합평가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교총은 근무평정제를 유지하되, 문제점을 제도적으로 보완하자는 입장이다.
더 들여다보면 두 단체의 생각 차이는 뚜렷해진다. 전교조는 학생회와 학부모회, 교사회 등 학교자치기구에 평가권을 주고 매 학년 말 학교의 정책과 교육환경, 운영방침, 교육계획 등을 평가하자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학년별 교과별 협의회가 의견서를 내고, 평가 결과는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하자는 것이다. 전교조는 이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학교자치기구를 법제화하고, 기존의 교장 자격증제를 폐지하는 대신 교장선출보직제를 도입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교장선출보직제는 희망하는 교원 중에서 교사나 학부모가 참여해 교장을 뽑되 대학의 보직교수처럼 임기가 끝나도 다시 평교사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또 교원 평가는 교장 교감의 경우 학교종합평가의 한 항목으로 다면평가 방식으로 실시하고, 교사는 매년 학기말 스스로 평가하는 '자기평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교총은 현재 운영하고 있는 근무평정에 절대평가 형식을 추가해 교원 사이에 지나친 점수경쟁의 폐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지금의 평가자인 교장 교감에 동료교사를 포함시키되 교원자격체계를 바꿔 수석교사나 선임교사를 평가자로 참여시키자는 안을 요구하고 있다. 수석교사제는 수업과 동료장학만을 주 임무로 하는 교사로, 스스로 연구하고 연구결과를 동료 교사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교사자격체계를 2급 정교사 1급 정교사 선임교사 수석교사 등 4단계로 나누고 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감을 거쳐 승진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편 학부모단체는 교원평가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부적격 교사를 퇴출시키는 내용이 빠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부적격 교사 퇴출은 별도의 대책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교총이나 전교조 입장과는 정반대다. 참교육학부모회는 학부모들이 교원평가제 도입을 강력하게 희망하는 이유는 비록 소수일지라도 현재 학교에 존재하는 부적격 교사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면서 학부모와 학생의 실질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의 말이 정말 이상하다
사실 교육부는 처음 교원평가안을 제출하면서 지금까지 수시로 그 내용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교원평가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만큼은 변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24일 교육부는 교원평가제와 관련한 기자브리핑에서 강행의지를 다시 밝혔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이번 교원 평가가 교원 구조조정이나 성과급이나 승진제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그렇게 강변하고 있는 교육부가 시범실시를 강행하기 위해 희망학교를 모집하면서 해당학교의 시범학교는 교원전체에 승진가산점 부여하겠다고 브리핑에서 밝힌 것이다. 이날 브리핑에 참여한 또 다른 교육부 관계자는 "시범학교로 지정될 경우 교원 전체에게 승진점수에 적지 않은 가점이 주어지기 때문에 희망학교가 상당히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또 이상한 일이 있다. 교육부는 수업의 전문성과 학교의 교육력을 높이기 위해 평가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한국 학생들의 학업 성취는 전 세계에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학습노동이 아니라 배움의 과정과 배움의 의미 회복에 있다. 실제로 학생들은 우리를 입시경쟁의 지옥에서 구해달라며 촛불을 켜들고 있다.
정작, 수업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면 이는 평가가 아니라 양성이나 연수 과정을 개혁해야 한다. 사실 교과전문성이 부족한 경우는 대부분 7차 교육과정의 도입으로 인한 교과 폐쇄나 축소, 새로운 교과의 증설로 하여, 부전공 연수를 통해 교과를 바꾼 교원들의 경우다. 또한 조령모개식, 유연화 목적의 교원정책으로 인해 중등교사를 초등으로 임용하고, 단기 속성으로 자격 소지자를 양산한 교원정책의 실패의 결과이다. 심지어 어떤 교사는 미술교사로 발령을 받고 근무하다가 3달의 연수를 마치고 한문교과를 담당했다. 그러나 그나마도 일년 뿐, 또 다시 6개월 연수를 마친 뒤에 지금은 일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정부의 교원정책의 실체이다.
학교의 교육력을 높이고, 수업의 전문성을 신장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평가가 아니다. 법으로 정해진 법정 교원수를 확보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하기에 교원평가는 공교육 부실의 주된 원인을 교원 개개인의 자질 문제로 떠넘기는 술책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평가의 지표이다. 지금이야 학교의 수업활동에 관한 인기투표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이것을 실효성이 있도록 객관화된 지표로 측정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바로 전국 단위의 학업성취도 평가가 등장한다. 동일한 문제로 학생들을 측정하면, 지역과 학교와 학생간에 분명한 서열이 매겨지고, 그를 담당하는 교사들의 업적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것이 교육부와 기득권층이 바라는 교원평가의 도달 지점이다. 학력서열화를 강화하고, 교육으로 인한 차별을 대물림하는 것.
교원평가 논란의 본질
평가는 한해만 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매년 진행되며, 매년 누군가는 부적격 교원, 이른바 '능력개발필요교원'으로 정해지기 마련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동료교사들 누구나 불신하는 극소수 교원이 지목될 것이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모든 교원 전체가 그 대상자가 된다.
덧붙여 정부가 들여오고자 하는 교원평가는 자신의 책임은 내팽개친 채 교사들을 옭아매는 통제와 구조조정의 수단이다. 그렇기에 교사들에게 성찰을 통한 더 나은 교사로서의 길을 열어주기는 커녕, 가슴 졸이면서 눈치만 보게 만든다. 바로 교원노동에 관한 통제가 강화되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제 교육부의 의도를 알겠다. 사실 교육운동 진영의 최대 조직은 전교조다. 올 한해 교육 정책의 주요한 흐름을 보면, 정부는 외국교육기관특별법을 강행했고, 교육 자치를 일반자치에 통합시키고 있으며, 시범실시가 끝난 자립형 사립고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대안학교법이 통과되었으며, 대학구조조정이 가속도를 붙여 진행 중이다. 대학입시제도의 파동은 계속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 전교조는 교원평가에 발목을 잡힌 채 변변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교육부의 노림수였다. 목에 밧줄을 얽어맨 상태에 있으니 전교조는 무력화되어 버렸고, 범국민교육연대 등 진보적인 교육단체들의 저항은 묵살한 채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을 정부는 강행하고 있다.
교육은 다음 세계를 위한 준비이다. 현재의 삶이 차별적이거나 불평등하다면 선택권을 앞세운 소비자 주권론을 통해 불평등을 확산할 것이 아니라 교육의 공공성을 확립하여 차별을 줄여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의 대안은 하나다. 교원평가저지 투쟁을 빨리 끝내는 길 밖에. 전교조는 교육부가 던져 놓은 올가미를 총력 투쟁을 통해 벗어 던지고, 신자유주의 교육개악을 저지하는 전선으로 복귀하여 민중과 함께 투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