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의도
북한이 2월 12일에 핵실험을 단행한 이유는 이튿날 있을 미국 오바마 정부의 2기 첫 국정연설(연두교서) 발표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북한과의 협상 문제를 우선순위에 올리기 위한 신호라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북한이 핵 포기로 가는 명확한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어떠한 협상도 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6자회담은 중단된 지 오래고, 최근 한일정보협정을 통해 드러났듯 한미일 삼각동맹, 한국과 일본의 군사력 증강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으로서는 이 상황을 타개할 일종의 ‘활로’가 필요했다.
또 체제 안정화를 위한 포석으로도 보인다. 아직 새로운 지도자의 통치 체제가 안정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로켓 발사에 이어 핵실험을 감행해 어린 지도자의 성과를 강조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핵시험은 우주를 정복한 그 정신, 그 기백으로 강성국가건설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우리 군대와 인민의 투쟁을 힘 있게 고무추동’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북한의 전술은 성공할까
결국 북한의 핵실험은 오바마 대통령의 연두교서에 등장했다. 그리고 파괴력에 대한 분석이 분분하긴 하지만 1, 2차 핵실험에 비해 확실히 개선된 핵 능력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북한의 단기적 목적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한동안의 냉각기를 거치고 나면 이전처럼 대화 테이블이 열리지 않겠냐는 기대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북한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북한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정상 국가화’, 즉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오랫동안 미국에 의한 안전보장 약속(불가침조약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 등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외부의 인식이 변하고 있다. 이전에 북한의 핵개발 시도는 협상용 카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북한은 이미 헌법을 고쳐 ‘핵보유국’을 명기했고, 우라늄 농축 시설도 공개했다. 장거리 로켓 능력을 과시하고, 핵실험을 거듭하면서 타격 능력을 적극적으로 과시했다. 북한의 핵실험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
북한의 후견인 격인 중국마저 북한의 핵실험을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이유다. 홍콩의 한 언론은 13일 ‘말 안 듣는 이웃나라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번 핵실험은 북한이 중국의 압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을 환기’시켰고, 이에 따라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전략 변화 요구가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핵보유는 동북아시아의 정세를 근본적으로 뒤흔든다는 점에서 중국도 결코 원치 않는 상황이다. 더구나 천안함, 연평도 사태를 통해 확인했듯 북한의 도발이 미국의 보다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을 부른다는 점도 중국으로서는 불편한 문제다.
유엔안보리는 보다 강력한 대북제재 조치를 강구할 기세고, 북한 위협을 빌미로 한국을 비롯한 일본, 미국 등의 군사력 증강 시도가 발 빠르게 이어질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 시도가 지속될수록 북한이 주장하는 지역의 안정도, 북한 체제의 안전도 보장받기 어려운 쪽으로 흘러간다.
세 번째 핵실험의 의미
거듭되는 북한의 핵실험은 그동안 미국,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군무력의 철수, 주한미군 철수, 남북의 무력 감축, 한반도 평화보장체제 구축 등을 요구했으며,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이러한 요구를 철저히 무시한 채 적대정책을 유지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부시 행정부에 이어 오바마 정부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옵션을 유지했다.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활용해 북한의 경제적 취약성을 공격하는 대북 제재 강화는 핵무기를 매개로 열세를 극복하려는 북한의 시도를 부채질했다. 더불어 핵무기 보유국의 핵군축을 강제하지 못하는 핵비확산조약(NPT)은 결국 핵무기 보유국, 특히 미국의 핵능력 우위를 보장하는 체제로 기능하면서 북한의 핵무장 시도를 가속화시켰다. 세 차례에 걸친 북한의 핵실험과 핵무장으로 나아가려는 일련의 흐름은 미국을 위시로 한 국제사회의 대응, NPT 체제의 총체적 실패를 증명한다.
핵무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북한의 핵무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북한은 세 번에 걸친 핵실험을 통해 공개적 핵무장 단계에 다가서고 있다. 예전 북한은 핵무기가 최소한의 자위적 수단이며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제국주의에 대항한다는 냉전 시기 소련의 핵무기 개발 논리와 닮아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핵보유를 헌법에 명기하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논의 테이블에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의 길에서 멀어지고 있다.
유엔안보리는 지난달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하면서 ‘추가적인 장거리로켓 발사나 핵실험이 있을 경우 북한에 대해 중대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무장 시도는 북한의 협상력을 높이기보다는 국제사회의 강경한 대응과 군사적 대결 국면을 초래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동북아시아 주변국들은 북핵 위협을 군사력 증강과 대북 강경 대응에 대한 알리바이로 삼는다. 때문에 핵무장을 통해 세력균형을 이루고 체제 안전을 보장받겠다는 북한의 의도는 그 자체로도 성공하기 어렵다. 한반도 인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도박은 결국 세계적인 핵확산의 불을 당길 뿐,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담보하지 않는다.
강력한 제재가 필요한가
정부는 이번 핵실험을 기다렸다는 듯 다시 한 번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북한의 도발에 상응하는 조치를 통해 추가적인 핵실험이나 군사적 행동을 제어해야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위협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북한의 폭력적 대응에 대한 알리바이로 작용해왔음을 인식해야 한다. 실제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이번 핵실험이 ‘합법적인 평화적 위성발사 권리를 난폭하게 침해한 미국의 포악무도한 적대행위에 대처하여 나라의 안전과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실제적 대응조치의 일환’이라고 밝혀,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안보리 제재를 핵실험의 명분으로 삼았다. 대북 강경 대응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지도, 날로 높아지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지도 못했다는 점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북한 위협을 빌미로 한 협잡
북한의 핵실험을 한국의 군사력 증강의 알리바이로 삼거나, 대북 적대 정책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일체의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정부는 12일 성명에서 ‘북한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미사일을 조기에 배치하는 등 군사적 역량을 확충하는 데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시도는 한반도를 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군사력 경쟁을 강화할 것이다.
또한 김장수 국방안보실장 내정자는 12일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역시 예전 같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북한의 핵실험에 따라 차기 정부의 대북 정책이 강경 노선이 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당선되자마자 예산 등 갖은 이유를 들어 복지문제, 경제민주화 문제에 대한 대선 공약을 내팽개치려 하는 것처럼, 차기 정부가 이번 사태를 이용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민중들의 요구를 묵살하려해서는 안 된다.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투쟁하자
한국의 평화운동 진영은 모든 핵에 반대하는 반핵의 입장을 굳건하게 견지한 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줄이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을 옹호한다면 결국 핵문제에 대한 혼란과 무감각을 조장해 한국의 핵무장 주장에 대해서도 대항할 수 없게 된다. 핵무기는 평화를 가져오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전쟁 유발 요인이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해왔음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동아시아에 집중하려는 미국, 이에 조응해 군사력 증강을 꾀하려는 한국과 일본의 호전 세력들은 북한의 핵실험을 빌미로 민중들을 협박하며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핵무장 시도만이 아니라 지금의 사태를 불러온 대북 적대정책, 공격적인 한미동맹과 한미일 삼각동맹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내야 한다.
첫째, 곧 있을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의 문제를 적극 알려내자. 한층 더 강화된 제재는 사태를 해결하기보다는 북한의 폭력적인 대응을 유발한다. 또한 제재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보다 강력한 억지력을 확보해야한다는 논리를 강화하고, 이를 위한 국가의 동원에 무감각해지도록 만든다. ‘제재 강화–반발–도발 심화–긴장 고조’라는 악순환을 깨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둘째, 북한 위협을 빌미로 한 한미동맹의 폭력적 대응에 맞서야 한다. 특히 3월 초에 예정되어 있는 ‘키리졸브 훈련’에 주목해야 한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로켓 발사 직후에도 서해상에서 무력시위 성격의 합동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한반도 전면전 상황을 상정한 군사훈련인데다, 북한의 핵실험 직후인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키리졸브 훈련이 보다 강력한 무력시위가 될 것이고, 이것이 지역의 긴장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한반도의 긴장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어떠한 시도에도 단호하게 반대하며 군사적 긴장 완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민중운동이 함께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