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고쳐지지 않은 문제들
예기치 못하게 일어나는 것이 사고이다. 사고자체를 0으로 만들 수는 없다. 문제는 사고발생의 예방책과 사후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난 대구에서조차 문제점은 시정되지 않았다. 대구지하철 안전인력은 서울과 마찬가지로 공익요원이 담당하고 있는데, 뭔가 문제가 발생하여 직원을 찾으면 전화를 해야 하고, 이 전화가 사령실을 한 번 거쳐 다시 역무원에게 연결된다. 긴급 상황에 대처하기에는 절차가 복잡하다. 전화연결이 안되면 대처를 할 수가 없다. 또 10년 전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1인 승무제가 중요하게 지적되었지만 대구지하철은 오히려 전자동 무인시스템으로 운행되고 있다.
부산에서는 유사한 사고가 일어날 뻔했다. 2012년 8월 27일 40여명이 병원에 입원한 부산 지하철 1호선 대티역 전동차 화재 사고가 그것이다. 전동차에 전력을 공급하는 집전장치에서 불꽃이 튀면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지하철역이 정전되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피 안내 방송은 물론 대피요원의 지원도 없었다.
10년 전 참사 당시 지적된 문제는 왜 시정되지 않고 있을까? 이는 경영효율화를 위한 철도의 구조조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역량도 없고 인력도 없다
국토해양부는 2012년 4월 「철도안전 추진현황 및 향후대책」에서 우리나라 철도 안전의 주요 문제점으로 차량 정비역량 부족, 안전문화 미정착, 전문성 부족, 시설안전 투자 부족, 안전제도 미흡, 안전감독과 정책기능 한계를 지적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의 해결책으로 국토해양부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 및 철도안전법 개정을 내걸었다.
그런데 차량정비역량과 전문성 부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전문가들은 한국철도가 100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도 역량과 전문성이 부족한 것은 무원칙한 아웃소싱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인력을 대규모 감축하고 핵심 기술역량이 필요한 영역을 외주화했기 때문에 역량이 쌓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 철도공사는 협력업체의 지원이 없으면 새로운 부품도 고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도 철도공사는 아웃소싱을 늘리려 한다.
시설안전투자부족과 안전감독·정책기능 한계는 왜 발생하는가? 예산이 투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영효율화를 목표로 하는 경영진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고를 위해 예산을 투입하지는 않는다. 앞서 언급한 부산 대티역 전동차 화재 사고는 차량 노후화로 인한 사고였다.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차량을 교체하거나 유지보수를 더욱 강화했어야 했다. 하지만 부산교통공사는 오히려 검수주기 연장과 검수 인력 감축 등을 단행했고, 이것이 화재사고로 연결되었다. 이는 서울지하철 1~4호선에도 해당된다. 서울메트로의 시설은 상당히 노후화되어 있는데 시설 교체도 되고 있지 않을뿐더러, 계속된 구조조정으로 유지보수 기능마저 약화되었다. 유지보수 인원뿐만이 아니다. 철도는 전국 곳곳에 계속 새로 생기는데 안전인력은 늘지 않고 있다. 이 역시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기관사 잡는 1인 승무제와 징계중심 노무관리
서울메트로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지금도 2인 승무제로 운영되지만, 도시철도공사는 1994년 개통 때부터 1인 승무제로 운영되었다. 1997년에 개통한 대구도시철도도 1인 승무제로 시작하였고, 1998년에는 부산도시철도에 강제적인 1인 승무제가 도입되었으며, 2000년대부터 한국철도에서도 교외선 일부에 1인 승무제가 도입되었다.
최근 기관사들의 잇따른 자살로 도시철도공사 기관사의 정신건강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었는데, 가장 큰 원인으로 1인 승무제가 지적되고 있다. 어두운 터널에서 몇 시간 동안을 혼자 운전해야 하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다. 또 혼자 일하기 때문에 방송과 안내 등의 책임도 도맡아야 하고, 생리현상이나 졸음‧급작스런 건강상태 악화 모두 부담이다.
지난해 9월 발표된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 정신 건강 실태 조사 및 개선 방안 연구’에서 도시철도공사 소속 기관사가 서울메트로보다 근속이 더 짧고 혼잡도가 낮은데도 정신건강 수준이 더 나쁜 것으로 드러났다. 운전 직군은 보상 문제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직무 스트레스가 높게 나타나 ‘스트레스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트라우마 유병율은 8.3%로 일반인의 8배, 공황장애는 4.0%로 일반인의 15배로 나타났다.
징계중심의 노무관리도 노동자 자살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은 징계 중심적인 노무관리 체계를 갖고 있다. 2011년 2월 광명역 KTX 탈선사고를 기점으로 언론에서는 대대적으로 지하철과 철도의 각종 사고를 이슈화하였고, 이전에는 철도사고로 규정되지도 않았던 퇴행운전을 비롯한 사소한 운행 장애도 커다란 사고인 듯 기사화했다. 사고의 원인으로는 기관사들의 근무기강 해이와 철도사업장의 안전불감증을 짚었다. 선정적인 언론 보도 속에서 거의 모든 철도사업장 사측은 사고 및 운행 장애를 일으킨 책임자를 찾아내고, 징계하는데 혈안이 되었다. 전체 안전 시스템을 점검하기보다 단순히 해당자를 직위 해제하거나 전출시키고, 인격모멸적인 교육을 부과하였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지난해 1월 15일 한 기관사가 전 역에서 예정 시간보다 1분 늦게 출발해 가속 운전을 하다 승강장을 지나친 실수를 했다. 기관사에게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43일간 독방에서 철도 운전 규정을 필사해 검사를 받았고, 복도 청소도 해야 했다. 사실상 사문화됐던 ‘기관사 인증 재심의’까지 거쳐 2월 28일 업무에 복귀했지만 이 기관사는 조울증에 시달리다 6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자살한 기관사는 다섯 명에 이른다.
노동자가 안전해야 승객도 안전하다
이러한 노무 관리가 기관사의 노동조건에만 영향을 미칠까? 그렇지 않다. 징계중심의 노무 관리가 낳은 대표적 사고 사례로, 2005년 107명이 사망하고 562명의 부상자를 낸 JR서일본의 후쿠치야마선 사고가 있다. 당시 사고 기관사는 정차위치 위반(오버런)과 운행 시간 지연 등의 실수를 범했는데, 이로부터 예상되는 징계 - 인격모멸적 교육, 근무평가로 인한 승진기회 박탈, 임금 삭감 - 를 피하고자 제한속도가 70km인 구간에서 120km까지 과속하였다가 탈선사고가 일어났다. 사고조사위원회는 JR서일본노동조합의 증언을 듣고 ‘사고원인이 JR서일본의 징계위주의 기관사 관리방법과 관계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서에 추가하였다.
한국철도공사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는 철도사고에 대해 “사례 중심적 시정조치는 근본적인 재발방지대책이 되지 못”한다며 “기관사에 의한 인적오류를 궁극적으로 예방하고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인적수행도를 저하시키는 주요 인자인 기기/설비, 직무, 환경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개선방안 수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수는 단순한 부주의가 아니다. 실수는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고, 교대근무로 인해 피로도가 높을 때 필연적으로 생긴다. 한국의 철도회사는 경영효율화라는 명목으로 인간보다는 이윤을 앞세워 노동자들을 극한 상황으로 내몰고는, 그 때문에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서는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이러한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노동자는 물론 승객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다. 건강한 노동자가 안전한 철도를 만든다는 원칙하에 인력감축과 아웃소싱, 억압적 노무관리 등 철도의 경영방식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 대구지하철참사 10주기를 맞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