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하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인식을 고려할 때, 여성노동자들의 절반이 기대감을 표명한 것은 의외다. ‘여성대통령이니까 여성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가 여성노동자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여성정책
박근혜 정부는 ‘저출산 극복과 여성 경제활동 확대’를 국정목표로 세우고, 이와 관련한 국정과제로 ▲행복한 임신과 출산 ▲안심하고 양육할 수 있는 여건 조성 ▲무상보육 및 무상교육 확대(0~5세) ▲여성 경제활동 확대 및 양성평등 확산을 설정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여성관련 공약은 이 네 가지 국정과제 안에 각각 배치될 것이다. 공약 중에는 미래여성인재 10만 양성, 아동 성범죄 강경대응 등도 있지만, 무엇보다 임신과 출산‧무상보육 및 무상교육, 그리고 여성 경제활동 확대 등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이미 3월부터 양육수당과 보육료 지원이 시작되는 등 정책시행 속도도 빠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신과 출산과 관련해서는 ▲저소득층 가구에 12개월 영아까지 조제분유와 기저귀를 지원, ▲난임부부에 대한 지원비 확대,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 등을, 무상보육 및 무상교육과 관련해서는 ▲0~2세 영아 보육료 국가 전액 지원 및 양육수당 증액, ▲민간시설의 보육‧교육 서비스 공공성 및 질 제고, ▲국공립 보육시설 매년 50개 신축, 매년 100개씩 기존 운영시설 국공립으로 전환을 공약했다.
이처럼 임신과 출산, 보육 그리고 여성인력활용에 집중된 여성정책은 ‘저출산은 곧 사회의 위기’라는 판단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고유한 인식이 아니라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한 번도 수정되지 않고 이어져 온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고령화 및 출산율 저하는 생산가능연령인구의 부족으로 이어져 노동인구 부족, 노인부양 부담 증가, 연금기금의 고갈 등 사회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제출해왔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시행되고 정부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족한 이후, 2006년 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새로마지 플랜)이 제출되었고, 이명박 정부는 2011년에 이를 계승하되 보완하는 2차 계획을 확정하였다. 2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은 2015년까지 시행될 예정이다.
여성을 위한 저출산 극복 대책?
10년 가까이 일관된 방향성 하에 진행된 정부의 저출산 극복을 위한 대책은 크게 출산관련지원정책과 육아지원정책으로 나뉜다. 박근혜 정부의 4개의 국정목표 중 3개가 이와 관련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저출산 극복 대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아이를 출산한지 1년 뒤에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이 급증할 것도 아닌데, 12개월 영아까지 분유와 기저귀를 지원한다고 해서 출산을 미루던 가구가 출산을 결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정규직 여성을 위한 일부 장려금 정책이 효용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3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보육료·양육수당 지원 정책도 마찬가지다. 양육수당은 필요한 금액에 못 미치게 지급되고, 보육시설에 다닐 경우 지급되는 보육료는 프로그램이나 시설 차별화를 통해 고급화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요구하는 금액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사회에서 국공립 보육시설확충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보육의 양극화를 막을 수 없다.
문제는 실효성보다 저출산 극복 대책이 전제하고 있는 사고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저출산을 위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생산가능인구가 부족해지기 때문이고, 이는 여성들은 출산을 통해 인구를 늘려 국가경제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저출산 극복 대책은 이러한 여성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국가가 일정정도 도움을 주겠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고 틀에서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자기결정은 논의될 수가 없다. 여성의 출산은 인구정책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저출산 담론 하에서는 여성의 권리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저임금 일자리로 여성 경제활동 확대?
이전에 출산율은 여성의 일과 대립하는 것으로 사고했지만, 최근 OECD의 통계를 보면 출산율이 높은 국가들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도 높다. 2011년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15~64세)은 54.9%로 OECD평균인 60%를 상당히 하회한다. 적어도 OECD평균 수준으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늘려야 한다는 것은 정부와 여성계의 공통된 목표이다. 그런데 저출산 담론 하에서는 여성의 경제적 자립 뿐 아니라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높아져야 한다고 본다. 이에 따라 2006년 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서부터 여성인력활용과 경제활동참가율 제고가 대책으로 제시되었는데, 이러한 대책 하에 시행된 정책은 유연근무제의 확산, 사회서비스의 시장화였다.
유연근무제는 풀타임 위주의 경직적인 장시간 근로환경이 여성에게 경제활동과 자녀양육 간 선택을 강요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유연근무제의 확산이 곧 단시간 비정규직 일자리 창출이며, 이러한 단시간 비정규직 일자리가 고용불안정과 저임금, 노동강도 강화를 낳고 있다는 것은 수없이 지적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유연근무제 확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회서비스 시장화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여성에게 맞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 하에 전통적으로 가족이나 공동체 내부에서 여성이 주로 담당했던 일을 시장화하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런데 이러한 일자리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돌봄노동자로 명명되는 간병노동자, 보육노동자, 장애인활동보조인, 가사노동자는 한국에서 가장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며,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저출산 위기 담론 자체가 문제다
지금까지 저출산 대책과 여성인력활용정책에 대해 상당한 비판이 있었고, 이 때문에 정책에 일부 진전이 있기도 했다. 무상보육의 확대나, 국공립보육기관의 확충, 선언수준에 불과하나 여성 비정규직에 대한 고려 등은 확실히 이러한 성과이다.
하지만 정부의 저출산 담론은 여성의 노동권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는 사고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저출산 담론을 인정한 채 내놓은 요구안은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임신‧출산‧양육에 대한 지원은 여성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아니라, 여성에게 아이를 더 많이 낳게 하기 위한 한시적 정책으로 사고된다. 또한 저출산 담론을 인정한 채로 좀 더 나은 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은 인구정책에 따라 재생산의 권리를 제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저출산 담론 하에서 여성은 생산가능인구를 보충하는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으로써 활용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성의 노동권은 그 자체로 경제적 자립과 자아실현을 위해 노동할 권리가 있다는 의미이며, 이 때 임신‧출산‧양육이라는 여성 고유의 경험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포함한다.
박근혜의 여성정책으로 여성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박근혜의 여성정책은 여성이 아이를 낳아 출산율도 높이면서,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으로 일 할 것을 강요하며, 여성의 재생산의 권리나 노동권을 고려하지 않는다. 는 점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성 스스로가 박근혜 정부의 여성정책을 넘어선 요구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어떻게 하면 여성에게 아이를 더 많이 낳게 할까’ 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여성이 주체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 저출산 대책이 포함하지 않는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남성에 비해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여성의 노동조건의 개선은 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정규직화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또한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곧 생활임금으로 높이는 것이 또한 여성에게 필수적이다.
3월 8일 여성의 날은 여성들이 당시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권리를 스스로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날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여성정책에 한정되지 않는 권리를 우리 스스로 요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