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의 시대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참패를 했다. 1997년 경제위기를 거치며 10년 동안 거듭되어온 자본과 정부의 신자유주의공세, 그리고 노동진영의 거듭되는 패배와 후퇴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삶을 극도로 악화시켰다. 이른바 양극화로 표현되는 현상, 자본에는 거대한 부가 축적되고 노동 측에는 거대한 빈곤과 고통이 축적되어 자본과 노동의 적대성은 극에 달했다. 개량이 아니라 대폭적인 개악의 시기에 개량주의가 득세하고,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사회적 적대가 극에 달해있는 시기에 사회적 합의주의가 횡행했던 역설은 이번 대선에서 일격을 당했다.
현 정세를 분석하면서 이른바 <변혁적 진보정당논의모임>의 강내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2008년 초 현재 형성된 새로운 정치적 국면에서 이제 좌파 세력은 새로운 정당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는 무엇보다도 2008년 1월 현재 한국의 진보진영은 새로운 희망의 국면을 맞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모처럼 맞은 기회이다.
이 기회는 우선 현 단계 한국사회의 진보적 과제는 ‘민주개혁’에 있음을 주장하며 가까이로는 지난 10년간 정권을 장악해왔고, 좀 더 멀리는 지난 20년 넘게 진보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해온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의 붕괴”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진보진영의 기회는 민노당의 패배를 계기로 온 측면도 있다. 그동안 민노당은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과 경합하면서 후자를 ‘개혁세력’으로 보게 하고 자신을 진보진영의 대표로 만들어왔으나 진보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 따른 행보로 인해 대선에서 참패함으로써 진보진영의 대표를 자임하는 데 어려움을 맞게 되었다.1)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으로 표현되는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의 붕괴”, 그리고 “진보진영의 대표” 역할을 해왔던 민주노동당의 몰락은 변혁(진보)진영에게 희망을 주고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지난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의 몰락이 예견되던 상황에서, 그 빈자리를 자신이 차지할 것으로 생각하고 한껏 들떠서, 우경화를 가속하던 민주노동당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돌아보면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의 붕괴”와 민주노동당의 몰락 이전에 변혁적 세력의 몰락이 있었다. 1980년대 격렬하게 타올랐던 계급투쟁의 불꽃은 1991년 (구)쏘련의 몰락 이후 급격히 꺼져갔다. 전노협에서는 노동해방의 깃발이 내려지고, 민주노총은 “국민파”로 불리는 개량주의 세력에게 장악되어 “사회대개혁‘이라는 깃발로 바뀌었다. 비합법 전위조직들은 혹은 패배하여 몰락하고 혹은 개량주의로 합법주의로 변절하여 갔다. 1980년대의 대중투쟁의 성과로, 아직 남아있던 기업단위노동조합의 전투성은 95/96년 총파업투쟁을 고비로 잦아들어갔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자본과 정부는 총공세를 펼쳤다. 결정적 시기마다 개량주의 지도부의 전술상의 오류와 타협으로 패배는 거듭되었다. 한편 이념상의 혼란으로 전망을 상실한 변혁적 현장노동계급활동가들은 정세를 역전시키기는커녕 자신의 존립마저 흔들렸고, 소멸하거나 스스로 개량주의화 되어갔다. 여기에 맞서 끝까지 영웅적으로 투쟁하던 투사들은 자결ㆍ분신이라는 극한적 방법으로 2003년에는 이른바 “열사정국”으로 일시적 반격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비정규직노동자를 중심으로 소규모의 극한적인 투쟁은 계속 이어졌지만 수세적 투쟁에 그치고 총자본과 총노동의 전선은 형성되지 않았다. 거듭되는 패배로 인해 노동대중들은 패배주의, 개인주의, 보신주의에 물들어갔다. 급기야 2006년 비정규직개악법과 노사관계선진화법안 (이른바 “노사관계 로드맵”)이 통과되면서 민주노총은 무기력하게 “우리는 패배했다2)”고 항복선언을 하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2007년에는 “민주노조”들이 급격하게 어용노조로 반동화되어갔다. 2004년에 현대중공업이 어용노조로 드러났을 때는 놀라움과 배신감이 대중적으로 표현되고 민주노총에서 제명을 당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현대자동차에서, 기아자동차에서, 대우자동차에서, 쌍용자동차에서 노골적 노사협조주의가 횡행하고 비정규직노동자투쟁을 파괴하는 행위까지 자행되고 있어도 과거와 같은 노동진영의 공분은 찾아볼 수 없다. 노동조합이 개량주의를 넘어 대대적으로 반동화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민중진영의 반동화는 이명박정권의 성립에서도 증명된다.
다소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다른 측면에서 다시 한번 보자. 사회주의 의식으로 무장한 정치조직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이 결합했었던 1980년대에 노동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세력은 1990년대 초에 인텔리 운동가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급격히 위축되었다. 그러나 노동현장에는 아직은 살아남은 사회주의 활동가들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노동대중에게는 1980년대의 투쟁 속에서 형성되었던 전투성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얼마간의 전진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정점은 95/96년 총파업투쟁이었다. 사상적 지도력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전투성”을 무기로 한 전진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노동대중은 95/96년 총파업투쟁까지 노동과 자본의 전선을 형성하면서 총노동과 총자본의 적대를 인식하는 데까지는 나아갔다. 그러나 그들의 인식은 더 나가지 못하였다. 이 적대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 즉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수립하여, 노동자국가를 만들고, 계급사회를 철폐하여야 한다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였다. 사회주의자들의 몰락 때문에 노동자계급은 세계를 해방시키는, 그리고 자신을 해방시키는 투쟁으로 더 이상 투쟁을 전진시키지 못하고 멈추어버렸다. 사회주의자들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로 되는 바로 그시기에 그들은 없었다. 이 공백을 비집고 개량주의세력이 득세하고 노동대중은 이들에게 지도되며 패배에 패배를 거듭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패배는 개량주의 세력의 패배를 확인시켜주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변혁진영의 희망”인 것은 아니다. 개량주의를 확산시켰던 이유는 사회주의진영의 몰락이다. 현재 정세는 진보진영의 좌우 세력인 혁명진영과 개량주의 진영의 동반몰락, 그리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반동화로 인한 반동적 부르주아정권의 등장이다. 그리고 한마디 보탠다면 한나라당 소속이던 손학규가 통합민주당의 대표가 된 것이 상징하듯이 자유주의부르주아의 반동화이다.
개량주의세력은 대선에서 타격을 입고 크게 위축되었지만, 아직은 파산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노동대중들의 반동화에 보조를 맞추어 그만큼 반동화하면서 후진적 대중들을 추수하려고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한에서는 개량주의세력은 전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자본의 노예화된 반동적인 노동대중에 영합해서는 어떠한 개량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만일 그들이 소부르주아나 독점부르주아를 대변하려 한다면 그것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의 위험성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노동대중들의 자생적 투쟁과 성장이다. 만일 공황 등 어떠한 이유에서든 노동계급의 자생적 투쟁이 고양된다면,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여전히 힘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투쟁을 약화시키고 교란시켜 결국 다시 파괴하기 위해 부르주아지의 육성 하에 진보신당 등 개량주의 세력은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운동적 자산을 자본가계급에게 팔아 자신들의 출세와 부를 사는 것이 주특기인 개량주의세력은, 헌신적 현장의 활동가들이 피로써 쟁취한 운동적 자산이 크면 클수록 혈안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세력은 어떻게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주의세력은 외부의 탄압 때문도, 혹은 개량주의 세력이 자신을 “진보진영의 대표로 만들어왔기” 때문에 몰락한 것이 아니다. 내부의 문제, 사상적 혼란으로 스스로 무너졌다. 그래서 우리의 희망은 깃발3)을 다시 세우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국가문제에 대한 기회주의적 입장
그러면 “변혁진영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서 과연 우리는 희망을 볼 수 있는가? 김세균은 주장한다.
노동자-민중권력 창출의 길은 주어진 현실적 조건과 조성된 정세와 계급적 역관계 등에 따라 다양할 수 있겠지만, 어떤 길을 통하든 부르주아 국가장치의 전면적인 개조와 노동자계급의 전사회적인 헤게모니 확보 및 인민주권기구에서 변혁정당의 민주적 지도력 확보 등이 요구된다.4)(강조는 인용자)
부르주아계급의 지배도구, 노동계급과 근로인민에 대한 조직된 폭력기구인 국가장치를 전면적으로 파괴하고, 반대로 프롤레타리아독재기구이며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폭력기구인 쏘비에트형태의 노동자국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혁명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이것은 맑스-레닌주의 이론의 기본이며 또한 역사적 경험으로 증명된 것이다. 그런데 김세균은 “부르주아 국가장치의 전면적인 개조”를 주장하며 내용을 흐림으로써 결과적으로 혁명을 부정하고 개량주의에 길을 열어주고 있다.
전위정당을 부정
“노동자의 힘”의 박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먼저 모든 당은 특정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며 자신이 대변하고자 하는 계급의 선진 부위가 결집했다는 의미에서 전위정당이다.
비합전위정당은 ‘직업적 혁명가’들의 결사체라는 의미가 강했으며 이는 당시 러시아(특히 1905년 이전의)의 특수하고 구체적인 정세를 반영하는 것으로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개념은 아니다.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직업적 혁명가’ 또는 ‘상근활동가’들만을 중심으로 당을 구성한다고는 아무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5). (강조는 인용자)
‘모든 당은 계급의 선진 부위가 결집했다는 의미에서 전위정당’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노동자의 힘’의 또 다른 주요 이론가인 고민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당은 특정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며, 그러기 위해 바로 특정 계급의 선진적 부위가 우선적으로 결집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대부분 전위정당이다. 민주노동당은 이 점에서 볼 때 계급연합정당임을 스스로 표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계급의 선진적 의식을 반영하고자 하지 않고 평균적 의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위정당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필자가 말하는 노동자계급정당은 계급의 선진적 부위가 우선적으로 결집해야 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 당은 계급의 선진적 의식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전위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6) (강조는 인용자)
“모든 당은 전위정당이다”, 아니다. “모든 당은 대부분 전위정당이다”. 전위당은 ‘직업적 혁명가’ 또는 ‘상근활동가’들의 조직이며 “러시아적 특수한 형태”이다. 아니다. “모든 당은 전위정당”이므로 전위당은 보편적인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심오한 말을 늘어놓다, 마침내 대단한 결단을 내린다. 그냥 넘어갑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위정당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즉 개념 또는 범주로서의 전위정당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규정이나 개념이 아니라 당의 활동이 실질적으로 계급과의 관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는 규정이나 개념이 보장해 주지 않는다.7) (강조는 인용자)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영향력이다”가 결론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당의 정치적 영향력은 정치적노선의 올바름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정치적 노선의 과학성을 결정하는 핵심적 문제가 당에 대한 관점 바로 “ 개념 또는 범주로서의 당에 대한” 관점이다. 어떤 당인가 하는 것은 혁명의 핵심적 문제이다.
그들은 당을 만들자고 하면서 당에 대한 개념을 거부한다. 그런데 개념을 통해 사물은 과학적으로 인식되고 정의된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안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고 알기도 거부하는 것을 “전위정당”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만들자고 주장한다. 추진력만은 높이 인정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표현대로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위가 우선적으로 결집한 노동자계급정당”이란 바로 계급투쟁의 제반문제에 대해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규정이나 개념”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의 이론적ㆍ이념적ㆍ정치적 역할의 부재, 바로 그것 때문에 초래된 반동의 시대에, 이론ㆍ이념의 무용성을 주장하고 있다.
사실 그들은 과거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러므로 국가권력을 단순히 장악하기 위해 조직되는 당은 그것이 어떤 계급의 이해를 자신의 당적인 이념으로 삼는가와 무관하게 노동자계급을 ‘정치적 주체’로 조직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회적 합법정당 노선과 비밀전위정당노선을 양자를 노동자계급 그 자신에 대한 대상화 내지 수동화라고 파악하고 이를 비판하는 핵심적인 이유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 자신을 ‘정치적 주체’로 훈련시키고 조직하는 ‘정당’“으로서 비제도적 투쟁정당을 주장하는 본질적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우리는 자본주의의 의회적인 체계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서 체제의 경계를 확장하는 ‘비제도적인 정당’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들 자신이 투쟁 속에서 그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조직하고 건설할 수 있게 하는 ‘투쟁정당’이라는 의미에서 비제도적 투쟁정당이라고 개념화하였던 것이다.8) (강조는 인용자)
그들의 “비제도적 투쟁정당노선”은 전위정당노선을 부정하는 노선이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비제도적 투쟁정당노선”은 고수되고 있다.
6) ‘노동자계급정당/비제도적투쟁정당’의 구체화
(1) 지금 ‘새진보정당’, ‘정파연합정당’ ‘변혁정당’, ‘사회주의정당’ 등의 개념이 제출되고 있다. 우리가 제안하고 있는 ‘노동자계급정당’은 조직 내적으로는 ‘비제도적투쟁정당’을 표현하는 것이자, 대외적으로는 ‘민주노동당/한국사회당’의 합법주의(의회, 선거주의)를 전제로 한 합법정당(등록은 그를 위한 것), 노동자계급중심성을 기초로 하고 있지 않는 계급연합정당(정파연합정당과는 다르다), 정치적 차원에서 개량주의를 표상하는 진보정당과를 구별 짓는 의미를 담고 있다.9) (강조는 인용자)
그러면 전위정당은 무엇인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이고 선진적이며 조직화된 부분이며, 중요하게는 노동자 계급을 혁명으로 이끌기 위해 가장 앞에서 투쟁하는 조직이다. 그저 “선진적 의식을 반영”하는 조직, 혹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주체화”라는 미명하에 훈수나 두는 조직10)이 아니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조직의 최고 형태로서, 프롤레타아트 독재의 도구로서의 당11)이 전위정당이다.
그들은 혁명이론의 핵심적인 부분인 맑스-레닌주의 국가이론과 전위당이론을 버렸다. 혁명의 방법, 혁명의 무기를 버린 것이다. 비록 그들이 혁명의 내용인 “독점자본의 사회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주체화”를 아무리 주장해도 공허해 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혁명운동의 부활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과학적 이념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부대”를 자처하는 이들 스스로 쏘련의 몰락으로 초래된 이념적 혼돈 속에서 헤매고 있다.
말과 행동의 불일치
내친 김에 “노동자의힘”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사람을 판단할 때 말 뿐만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다.
2005년 ‘노동자의힘’은 ‘사회적 합의주의ㆍ노사정 담합분쇄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의 일원으로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계파를 넘는 통합”을 주장하면서 금속산업연맹선거에서는 사회적 합의주의세력과 손을 잡았다.12)
2004년도 “탄핵정국”에서는 당시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에서 벌어진 논쟁에서도 언행불일치를 보여 주었다. 신자유주의 정권인 노무현 정권을 구출하기 위해 시청앞 광장에서 벌어진 “탄핵반대시위”를 지지하자고 남구현(당시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부소장), 최형익, 이해영 등이 주장했다. 반면 채만수(당시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소장)는 탄핵반대 소동을 “신자유주의 정권 구출투쟁”으로 규정하고 반대하였으며,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을 주장했다. 그런데 “노동자의힘”의 핵심이자 당시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부소장이던 박성인 등은 논쟁자체를 적대13)하였고, 더구나 그 적대를 채만수 소장에게만 집중하여 결국 연구소에서 축출하였다. 당시 말로는 노무현정권에 대한 “민중탄핵”을 주장하던 “노동자의힘”은 자신들의 주요회원들 간 논쟁이자 정치적으로 첨예한 쟁점이었던 논쟁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채만수 소장 축출을 방조하였고, 더욱 중요하게는 노동자계급을 신자유주의 노무현정권의 이중대로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2005년 비정규직노동자의 현대자동차불파투쟁에서 보여준 이상욱 집행부의 배신행위14)에 대한 ‘노동자의힘’ 대응에서도 이 문제는 반복된다. 다음 인용문으로 대신한다.
그 내부에 민투위의 핵심회원을 자신의 회원으로 갖고 있는 노동자의 힘은 열사논쟁과 관련이 있는 회원들에 대한 처리를 둘러싸고 논란만 벌인 채 이를 올바로 마무리하지 못함으로써 자신내부를 정화하는 데 실패하고 이는 결국 노동자의 힘을 정치적 곤경으로 몰고 갔습니다. 노동자의 힘이 자체의 힘으로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15)
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동의 이론적 논쟁과 실천도 중요하지만 먼저 이를 가능하게 할 최소한의 신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언행의 불일치는 장벽이 되고 있다.
자기분열적인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지금까지 노동자계급정당을 추진하는 ‘노동자의힘’이 주축이 된 <변혁적 진보정당논의모임>을 살펴보았다. 이제 다른 한 축으로 지난 2월 23일 공식출범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을 살펴보자. 그들은 “우리의 입장 : 입장, 해설”16)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다음으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1930년대 이후 옛 소련, 동유럽, 북한, 중화인민공화국 등의 사회체제를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반(反)노동자계급적 사회체제로, 노동자계급이 타도해야 할 반동체제로 규정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더욱 엄밀한 과학적 규정이 필요하다. ‘반동체제’라는 규정보다는 더 명확한 과학적 규정(가령 국가자본주의, 관료자본주의 등)이 필요함은 분명하다. 이후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심화된 강령연구와 토론을 통해서 이 부분을 보완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관료주의적 접근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사회주의 사회는 노동자계급의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의 산물이며, 그것을 제외한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옛 소련 등의 몰락 및 타락은 이를 현실에서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파리 꼬뮌과 1917년 러시아 소비에트 유형의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자 대중권력만을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주의 사회로 규정한다.(강조는 인용자)
그들은 “1930년대 이후 옛 소련17), 북한” 등의 “사회체제를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반(反)노동자계급적 사회체제로” 규정하고, “노동자계급이 타도해야 할 반동체제로 규정한다”고 한다.
그들이 아무리 백 마디 천 마디말로 좌익적 언사를 남발하더라도, 실천적으로는 미제국주의자와 한국의 반동부르주아계급의 노동자계급내의 동맹자이다. 적어도 한국의 자유주의 부르주아정당과 한나라당의 이명박계열조차 “북한”을 “타도의 대상”으로 공공연하게 규정하지는 않는다. 한나라당의 박근혜계열과 이회창의 자유선진당 등의 극우세력의 구호이다. “쏘련 타도”는 전세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갔던 미제국주의자들의 첫 번째 구호가 아닌가? 반공컴플렉스에 찌들어 있으면서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입으로는 “맑스주의”를 외치는 자기분열적인 모습, 이것이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실체이다.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은 절박한 노동운동의 과제이다. 그러나 정당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변혁적 진보정당논의모임>과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현재의 한국의 반동적 정세를 규정한 쏘련의 몰락과 이로 인한 한국 내에서의 이념적 혼란을 전혀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이들에게 정세 역전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어떻게! 쏘련의 몰락으로 가위눌려 우리가 버렸던 혁명투쟁의 무기, 맑스-레닌주의를 이론적 실천적으로 복원하는 것! 이것이 노동운동 정치부대의 첫 번째 과제이고, 정세역전의 발판을 만드는 일이다. <노사과연>
1)강내희, “변혁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정세분석”, <변혁정당 건설을 위한 지역/부문/현장 연속토론회> 자료집 “변혁적 진보정당의 필요성과 기본상” 중, 2008년 2월 13일.
2) 당시 국회 앞에서 삭발을 한 모습으로 패배를 선언한 것 외에는 한 일이라고는 없던 조준호 당시 민주노총위원장은 올해 4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경기화성갑에서 출마한다고 한다. 그가 또 어떤 멋진 모습으로 항복선언을 할지 두고 볼 일이다.
3) 1980년대를 상징하는 노래에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라는 구절이 있다. 1980년 광주항쟁에서 동지는 사라져갔지만, 그들이 올린 깃발 주위에는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아 수십 수백 배로 죽음까지 각오한 동지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정확히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4) 김세균, 발제문 “변혁적 진보정당의 필요성과 기본상”,<변혁정당 건설을 위한 지역/부문/현장 연속토론회>, 2008년 2월 13일.
5) 박성인(노동자의힘), 토론문 “‘노동자의힘’, 조직적 결정과 이후 계획”, <변혁정당 건설을 위한 지역/부문/현장 연속토론회>, 2008년 2월 13일.
6) 고민택 <노동자의 힘 중앙집행위원>, “21세기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을 이끌 당으로서 노동자계급정당을 말한다”, 노동자의힘, 2008.2.1. <제 140호>
7) 고민택 <노동자의 힘 중앙집행위원>, “21세기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을 이끌 당으로서 노동자계급정당을 말한다”, 노동자의힘, 2008.2.1. <제 140호>
8) 박영균[노동자의힘(준), 강령국장], “‘비제도적 투쟁정당‘ 건설노선 비판에 답한다”. 노동자의 힘 (준비모임) 강령건설을 위한 논의자료, 2001.12.20. p. 174.
9) 박성인, (노동자의힘), 토론문 <‘노동자의힘’, 조직적 결정과 이후 계획>,<변혁정당 건설을 위한 지역/부문/현장 연속토론회>, 2008년 2월 13일.
10) 박영균[노동자의힘(준), 강령국장], “‘비제도적 투쟁정당‘ 건설노선 비판에 답한다”. 노동자의 힘 (준비모임) 강령건설을 위한 논의자료, 2001.12.20. p. 175.
10) 박영균[노동자의힘(준), 강령국장], “‘비제도적 투쟁정당‘ 건설노선 비판에 답한다”. 노동자의 힘 (준비모임) 강령건설을 위한 논의자료, 2001.12.20. p. 175.“우리의 핵심적 문제의식은 오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투쟁을 기획하고 평가하며 정치조직 그 자체를 스스로 운영하면서 ‘민주주의의 정치적 행위자’로 활동할 수 있는 조직 활동을 통해서만 노동자들 스스로 ‘정치적 주체’로 조직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당을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다.”
11) 스탈린, "레닌주의의 기초”, 스탈린 선집1, 1905~1931, J.V. 스탈린 지음, 서중건 옮김, 전진출판사, 1988, p. 140-153.
12) 사회적 합의주의․노사정 담합 분쇄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 상황실, 2005년 3월 13일.
12) 사회적 합의주의․노사정 담합 분쇄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 상황실, 2005년 3월 13일.“금속산업연맹 선거에 대한 전노투 상황실 입장”
“금속산업연맹 선거에 대한 전노투 상황실 입장”전노투 참가조직인 노동자의힘이 ‘계파를 넘는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금속산업연맹 선거에 ‘사회적 교섭(노사정위 복귀) 추진 세력’과 함께 ‘손잡고’ 금속연맹 임원후보 선거에 나선 것은 전노투 사회적 교섭 결사저지 투쟁정신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전노투가 주장해 온 사회적합의주의 분쇄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다. 또한 전노투가 주관하는 12일 활동가 대회 및 15일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 사회적 교섭 결사저지 투쟁에 내부 혼란과 4월 총파업 조직, 아래로부터 현장 투쟁 강화를 위한 전노투 활동에 대한 현장대중의 신뢰감을 잃게 만들었다.
13) 소장과 부소장과의 논쟁이 조직을 약화시킨다는 조직보신주의 입장을 가진 때문으로 판단된다.
14) 현장투 신문 ‘머리띠를 묶으며’, 2005.2.23.
14) 현장투 신문 ‘머리띠를 묶으며’, 2005.2.23.◆ 이상욱 집행부에 묻는다!
◆ 이상욱 집행부에 묻는다!비정규직 “피 흘리며 결사투쟁”하는데, 언제까지 “말로만 연대”할 건가?
비정규직 “피 흘리며 결사투쟁”하는데, 언제까지 “말로만 연대”할 건가?더 이상 “말로만 하는 연대”는 필요 없다! 이상욱 집행부는 시급히 “행동으로 실천하는 실질적인 연대”에 나서야 한다.
더 이상 “말로만 하는 연대”는 필요 없다! 이상욱 집행부는 시급히 “행동으로 실천하는 실질적인 연대”에 나서야 한다.성명서와 유인물, 집회 등을 통해 이상욱 집행부는 수많은 연대를 선언하고 약속했다. 그러나 문제는 선언하고 약속한 연대가 전혀 행동으로 실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성명서와 유인물, 집회 등을 통해 이상욱 집행부는 수많은 연대를 선언하고 약속했다. 그러나 문제는 선언하고 약속한 연대가 전혀 행동으로 실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여러 말 할 것 없이 울산공장 안에서 농성투쟁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벌써 보름이 다 되도록 단전단수 상태에 방치당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러저러한 말을 떠나 이상욱 집행부가 얼마나 최소한의 실천적 연대조차 방기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울산공장 안에서 농성투쟁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벌써 보름이 다 되도록 단전단수 상태에 방치당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러저러한 말을 떠나 이상욱 집행부가 얼마나 최소한의 실천적 연대조차 방기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우리도 인간이다”며 결사 투쟁하는 비정규직 동지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우리도 인간이다”며 결사 투쟁하는 비정규직 동지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이상욱 집행부의 지난 1년여 과정을 돌이켜 본다면, 말로는 비정규직과 함께 가는 것처럼 온갖 그럴 듯한 포장을 다 하면서 정작 실천행동으로는 전혀 책임지지 않는 모습으로 일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상욱 집행부의 지난 1년여 과정을 돌이켜 본다면, 말로는 비정규직과 함께 가는 것처럼 온갖 그럴 듯한 포장을 다 하면서 정작 실천행동으로는 전혀 책임지지 않는 모습으로 일관해 왔다고 할 수 있다.지난해 임투에서도 이상욱 집행부는 사내하청 관련 사안을 일방적으로 타결해 버리면서 비정규직동지들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았었다. 이상욱 집행부가 절대로 안된다며 포기했던 ‘2·3차 동일적용’ 문제도, 나중에 비정규직동지들이 스스로 파업투쟁과 철탑농성투쟁을 전개하여 쟁취해 냈다.
지난해 임투에서도 이상욱 집행부는 사내하청 관련 사안을 일방적으로 타결해 버리면서 비정규직동지들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았었다. 이상욱 집행부가 절대로 안된다며 포기했던 ‘2·3차 동일적용’ 문제도, 나중에 비정규직동지들이 스스로 파업투쟁과 철탑농성투쟁을 전개하여 쟁취해 냈다.지난 1월 비정규직동지들이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내걸고 5공장 파업투쟁과 전 공장 잔업거부 투쟁에 돌입할 때도 마찬가지다. 말로는 ‘대체인력투입 저지’ 지침을 내려보내 놓고서, 투입된 대체인력의 대다수 유형들을 금지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림으로써 실제로는 대체인력투입을 수수방관했던 것이다.
15) 노동해방실천연대(준). '전국활동가조직'준비모임에 보낸 해방연대 의견서, ‘전국활동가조직’을 추진하는 동지들에게 몇가지 의견을 전합니다. 2006.6.1.
16) http://swl.jinbo.net/bbs/zboard.php?id=why2
17) 이들은 후르시쵸프시대부터 나타났던 쏘련의 수정주의를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쏘련 자체를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